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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순례자의 섬으로 떠나는 이 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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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순례자의 섬으로 떠나는 이 길은...

[2022년 10월 섬학교는 <순례자의 길 : 신안 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진섬>]

날마다 모세의 기적보다 더한 기적이 일어나는 신안의 섬. 기점도, 소악도에서는 날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잠깐 물이 갈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바다가 통째로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는 엄청난 기적입니다. 밀물이면 바다가 됐다가 썰물이면 땅이 되는 갯벌. 이 부근에는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등 네 개의 섬이 나란한데 이 섬들 사이에는 모두 노둣길이 놓여 있습니다. 갯벌에 놓인 징검다리가 노두입니다. 노둣길을 따라 <순례자의 길>(공식명칭은 <기적의 순례길>)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새로운 길이 다시 깔린 것은 아니고 노둣길 중간중간에 12개의 성당(기도처)을 건축한 뒤 <순례자의 길>이란 이름을 부여했습니다. 하나 더, 12번째 가롯 유다의 집이 있는 딴섬은 무인도로, 물때가 맞아야 건널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집, 순례의 시작점이다.Ⓒ섬학교

순례자의 길은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4개의 섬 12km 구간입니다. 무명의 섬이었던 이 섬들은 순례자의 길이 생기면서 누구나 한 번 걷고 싶어 하는 핫플로 떠올랐습니다. 이 길의 시작은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면서 부터였습니다. 섬학교 강제윤 교장선생님(시인·섬여행가)도 이 섬을 <가고 싶은 섬>으로 뽑을 때 심사위원이었기에 애정과 인연이 깊습니다. 섬학교 제98강은 이들 섬, <순례자의 길> 위에서 펼쳐집니다. 가을이 깊어가는, 10월 1(토)-2(일)일 1박2일 일정입니다. <순례자의 길>을 걸으며 바다가 사라졌다 나타나는 기적을 함께 체험할 분들을 초대합니다.

▲대기점도아 소기점도 사이 노둣길Ⓒ섬학교

강제윤 교장선생님으로부터 10월 답사지인 <순례자의 길 : 대기점도·소기점도·소악도·진섬>에 대해서 들어봅니다.

갯벌에 넓적한 징검돌 놓아 길을 만들다

신안 갯벌에는 노둣길이 놓인 섬들이 있다. 바닷물이 있을 때는 섬과 섬 사이를 배로 오갈 수 있지만 바닷물이 사라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섬들끼리 오갈 수 없었다. 그래서 썰물 때면 섬과 섬 사이를 걸어서 건널 수 있도록 갯벌에 넓적한 징검돌을 놓아 길을 만들었다. 이 징검다리를 노두라 한다. 노둣길은 이끼가 끼고 세찬 조류에 조금씩 움직이기도 하는 까닭에 해마다 한 번씩 모든 섬사람들이 나와서 돌을 뒤집어주며 이끼도 제거해주고 길을 정비해야 했다. 그 노고가 말할 수 없이 컸다. 그래서 근래에는 섬들 사이에 있던 노둣길을 대부분 시멘트 포장해서 수고로움도 줄이고 자동차도 오갈 수 있게 만들었다. 섬사람들은 이 새로운 길들도 노둣길이라 부른다. 신안의 섬 병풍도와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이들 5개의 섬들은 노둣길로 연결되어 하나의 생활권을 이룬다. 새로운 노둣길이 생겼지만 이 섬들을 건너는 사람들은 갈수록 줄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뭍으로 떠나고 노인들만 남은 까닭이다.

▲안드레아의 집, 대기점도는 고양이가 많아 고양이 조형물을 세웠다.Ⓒ신안군

노둣길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

그런데 최근 이 노둣길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시 이 노둣길을 걷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오로지 노둣길을 걷기 위해 머나먼 섬을 찾아온다. 노둣길을 따라 <순례자의 길>(공식명칭은 <기적의 순례길>)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슨 새로운 길이 다시 깔린 것은 아니고 노둣길 중간중간에 12개의 기도처가 새로 건축되고 이 길에 <순례자의 길>이란 이름이 부여된 것이다. <순례자의 길>은 병풍도는 빠지고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 4개의 섬 12km 구간에만 만들어졌다. 이들 4개의 섬은 묶음으로 기점·소악도라 부르기도 한다. 병풍도가 빠진 것은 기점·소악도가 전남도의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에 선정됐는데 신청 때 병풍도가 빠졌던 까닭이다.

<순례자의 길>은 예수의 열두 제자 이름을 기도처의 이름으로 차용했지만 특정 종교인들만을 위한 기도처가 아니다. 기도처는 예배당일 수도, 성당일 수도, 암자일 수도 있다. 그래서 기도처의 지붕에는 십자가 대신 고양이라든가, 물고기라든가, 새들이 올라 앉아 있다. 열린 기도처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특정 종교의 길이라고 폄하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볼 일은 아니다. 혹은 특정 종교가 독점하겠다고 나설 일도 아니다.

12개의 기도처는 11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참가해서 만들었다. 한국 작가가 6명, 프랑스·포르투칼·스페인 등 외국 작가 5명이 각각 하나 또는 두 개의 기도처를 건축했다. 공동 작업에 참가한 작가도 있다. 기도처는 첫 번째인 대기점도 선착장, 베드로의 집에서부터 일련번호가 매겨져 차례로 순례할 수 있도록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2번째는 안드레아의 집, 3번째는 야고보의 집, 4번째는 요한의 집, 5번째는 필립의 집, 6번째는 바르톨로메오의 집, 7번째는 토마스의 집, 8번째는 마태오의 집, 9번째는 작은 야고보의 집, 10번째는 유다 타대오의 집, 11번째는 시몬의 집, 12번째는 가롯 유다의 집이다.

▲필립의 집은 쟝 미셸 후비오 작품인데 전형적인 프랑스 납부 지방 교회 양식이다.Ⓒ섬학교

가롯 유다는 12사도지만 스승인 예수를 은전 서른 잎에 로마 병사에게 팔아넘겨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만든 배신자다. 사탄의 사도로도 일컬어진다. 그런데 굳이 그의 이름을 딴 기도처를 만들었다는 것은 기독교 교회나 성당으로 한정해서 이 기도처를 만들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그 이름과 상징만을 차용했을 뿐 특정한 종교에 국한되지 않은 기도처를 만들었다는 뜻일 것이다. 절이나 모스크 양식의 기도처도 함께 세워졌다면 더욱 의미 있는 길이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점은 아쉽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고도 하지만 자유로운 순례자의 마음까지 규정하기야 하겠는가. 다들 각자의 신앙의 성소로 또 무신론자는 자기 성찰의 장소로 사용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기도처들은 대부분 두 평을 넘지 않는 작은 공간이다. 본디 기도라는 것이 함께 모여 있어도 혼자 드리는 의례가 아닌가. 공간이 클 필요가 없는 이유다. 대형 교회와 성당, 사찰 등의 팽창주의 건축물에 비해 이 작고 소박한 기도처들은 그 자체로 이미 신선한 감동이다. 역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기도하는데 공간이 무슨 소용 있으랴. 어떤 신이 규정된 공간에서의 기도소리만 경청할까. 전능한 신들인데 어느 장소 어떤 목소리인들 듣지 못할 것인가? 그러므로 이 건축물의 외피를 입은 기도처 또한 하나의 기호나 상징일 뿐 기도를 가두는 괄호는 아니다.

대기점도 선착장 끝에 서 있는 베드로의 집

1번 기도처는 베드로의 집, 압해도 송공항에서 출항한 여객선이 기항하는 대기점도 선착장 끝에 서 있다. 그리스 산토리니 집들을 모방해서 지붕은 푸른색 벽채는 하얀 색으로 만들었다. 언뜻 산토리니에 온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이국적이다. 이 건물이 들어서기 전에는 작은 대합실 건물이 있었다. 그때도 참 울림이 있었는데 이렇게 새롭게 변모해 대기점도의 관문이 됐다. 이 기도처 옆에는 작은 종이 있다. 이 종을 치면서 순례를 시작한다. 마지막 12번째 기도처인 가롯 유다의 집에도 종이 있다. 그 종을 치면 순례가 끝난다.

대기점도 북촌마을에서 병풍도로 건너가는 노둣길 입구에 있는 2번 기도처, 안드레아의 집 앞을 지키고 선 것은 고양이 조각상이다. 지붕에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가 조각되어 있다. 대기점도에 유난히도 고양이가 많은데서 착안했다. 이 섬에만 100여 마리쯤 된다. 그 고양이들이 이제 기도처를 통해 섬의 수호천사로 거듭난 것이다.

대기점도에서 소기점도로 건너가는 노둣길 초입, 필립의 집은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교회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지붕에 십자가 대신 조각된 물고기는 이 섬이 어부들의 땅이란 것을 상징한다. 프랑스에서 온 쟝 미셸 후비오의 작품이다. 붉은 벽돌과 작은 돌들을 차곡차곡 쌓아서 지은 건물인데 작은 돌들은 작가가 하나하나 해변에 가서 주어다 일일이 씻어서 사용한 것이다. 벽돌이나 돌이 아니라 작가의 정성스런 기도로 쌓아올려진 건축물이다. 경건한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외관 때문만이 아닌 것이다. 누구보다 간절한 작가의 기도가 발현된 때문이리라. 예술가로 사는 일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돈이 안 된다. 그래서 쟝 미셀 후비오도 직업은 따로 있다. 스스로 카 딜러라고 칭한다. 프랑스에 살면서 아버지의 고향인 독일에 가 고급스포츠 카를 사서 몰고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로 이동해 판매한다. 2대 정도만 팔면 2년 동안 떠돌며 살 수 있는 수익이 생긴다 한다. 어디든 자유에는 비용이 든다.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공짜 자유란 없다.

▲요한의 집, 주민의 기증으로 마련된 기적 같은 기도처다.Ⓒ신안군

대기점도 남촌 마을의 4번째 기도처 요한의 집은 박영균 작가의 작품이다. 기도처 창틈으로 뒤편 밭 가운데 있는 무덤 한 기가 보인다. 기도처의 땅을 기증한 할아버지는 최근에 아내와 사별을 했다. 2년 동안이나 꼼짝을 못하고 병상에 누워 있다 떠났는데 똥오줌 받아내는 그 모든 병수발을 남편이 지극정성으로 다 들었다. 아내의 무덤이 들어섰고 남편의 무덤 자리도 예정되어 있다. 이제 이 기도처에 드는 모든 기도객들은 내내 창틈으로 땅을 기증한 부부의 무덤을 바라보며 고마움을 표하게 될 것이다.

요한의 집 앞에 있는 조형물의 내력도 재밌다. 언뜻 봐서는 대체 어떤 동물을 표현한 것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처음에는 고양이를 만들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동네 할머니가 “그것 개 아니여” 하셨다. 그래서 개로 바꾸기로 하고 작업 중인데 지나가시던 다른 할머니가 또 “그거 염소 아녀” 하셨다. 그래서 염소로 바꾸어 만들었다. 그래서일까 조각에는 개도 보이고 고양이도 보이고 염소도 보인다. 작가 혼자 작품이 아니라 동네 할머니들과 함께 만든 작품인 셈이다.

▲시몬의 집, 팝 아트 작가 강영민의 작품이다. 바다와 섬들의 풍경을 차단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인다.Ⓒ신안군

<순례자 길>의 끝자락. 놀라운 기적을 체험한다. 출입문도 없는데 무한히 열린 기도처가 있다! 바다와 섬들의 풍경을 차단하지 않고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출입문을 달지 않았다. 이 기도처에 이르러 순례자는 비로소 섬의 자연과 일체가 되어버린 자신을 발견한다. 밀실의 기도처가 아닌 열린 기도처. 열어야 할 문이 없으니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닫아야 할 문이 없으니 어떤 종교로도 제한되지 않는 성소. 기점·소악도 순례자의 길 11번째 기도처다. 순례자의 길에 기도처를 만든 정신을 가장 명징하게 구현해낸 작품이다. 팝아트 작가 강영민이 만들었다. 그런데 나는 기도보다는 저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며 술 한 잔 하면 술이 참 달겠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이런 불경한 생각도 다 받아주는 열린 성소다. 그래서 이런 작품을 만들어준 작가가 고맙다.

▲야고보의 집 내부. 고요히 침잠하기 좋은 기도처다.Ⓒ신안군

<순례자의 길> 개통과 함께 언론 매체들의 관심이 커지고 찾아오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섬에는 편의 시설이 거의 없다. <가고 싶은 섬> 사업으로 건축된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이 있지만 그래도 많이 불편할 것이다. 찾아가는 길도 섬에서 지내는 것도. 언론 보도를 보고 찾아왔다가 벌써부터 불편을 토로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 애초부터 편하라고 만든 길이 아니다. 그래서 잠깐의 불편을 기꺼이 감수할 사람들에게만 추천하고 싶은 길이다. 불편을 못 참는 이들은 입도조차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우리는 그저 여행자로 잠깐 다녀가는 것뿐이지만 주민들은 온갖 불편을 감내하며 평생을 살아간다. 그러니 삶의 터전을 기꺼이 내준 섬 주민들에게 무조건 감사해야 하리라. 길에서는 최대한 예의를 지켜야 하리라. 그렇지 않다면 <순례자의 길>을 걷거나 기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으랴. 게다가 기도처 12곳 중 6곳이 주민들이 기부한 땅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유다 다대오의 집. 뾰족지붕의 부드러운 곡선과 작고 푸른 창문이 여럿 있는 작은 기도처다. Ⓒ신안군

기점·소악도 일대 갯벌은 습지보호구역이자 람사르 습지이고 유네스코 생물권보존지역이면서 갯벌도립공원이기도 한, 최고의 갯벌이다. 갯벌이 좋으니 예전에는 이 바다가 황금 어장이었다. 조기, 부세, 준치, 병어 등을 잡아 가마니로 져 날랐을 정도였다 한다. 생선들은 간독에 절인 뒤 말려서 육지로 팔아 소득을 올렸었다. 다 지나간 옛일이 됐다. 어군탐지기로 쫓아다니며 씨를 말려온 인간의 탐욕이 자초한 일이다. 더 이상 잡는 어업이 소득이 되지 않으니 주민들 일부는 김양식과 새우양식 등 기르는 어업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이런 양식업은 노동력과 자본이 받쳐줘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노인들이 대다수인 섬 주민 대부분은 바다보다는 농사에 의지해 살아간다. 이 또한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는 쉽지 않은 노동이다.

▲고립무원의 섬, 기쁨과 슬픔이 깃든 신성한 노동의 시간Ⓒ섬학교

물고기들뿐만 아니라 갯벌에서 나는 조개나 해조류 등의 수확도 예전만 못하다. 굴, 감태, 농게 등이 소량 생산될 뿐이다. 갯벌의 수확이 적어진 것은 뻘 작업이 힘들어진 탓도 크다. 옛날에는 “갯벌의 뻘등에서 공을 차고 놀 정도로 뻘이 단단했었다.” 그런데 노두를 시멘트 도로로 바꾸면서 갈수록 뻘이 물러져 이제는 많은 갯벌이 진창이 되고 말았다. 노두 때문에 조류가 약해진 것이 뻘을 진창으로 만든 원인이다. 그래서 갯벌에 나가 작업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주민들은 하소연이다. 감태나 맛조개도 많지만 뻘 작업이 어려워 채취를 포기한다. 섬의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 관광객을 불러 오는 것도 좋지만 문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섬 주민들의 터전인 갯벌을 되살리는 일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갯벌을 되살리기 위해 노둣길 사이에 해수 통로를 몇 군데 만들기도 했지만 역부족이다. 더 많은 해수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갯벌이 되살아날 것이다.

▲섬학교 10월 <순례자의 길> 답사 지도ⓒ섬학교

섬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강제윤 교장선생님이 쓴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섬을 걷다> <걷고 싶은 우리 섬> <어머니전> 등 섬 답사기를 참고하면 섬 여행의 의미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네이버 카페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하여 섬학교 기사(10월)를 확인 바랍니다.

코로나19 방역조치에 따라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자는 자신과 동행자의 건강을 위해 최종 백신접종을 완료하시고, 발열·근육통·호흡기 증상이 있는 경우 참가를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섬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을 즐기려는 동호회원들의 체험공동체인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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