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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굥정'이냐, 공정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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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굥정'이냐, 공정이냐​

[복지국가SOCIETY] 청년 위기 해소를 위한 '플랫폼'이 필요하다

잔치는 끝났다. 현란한 불꽃놀이와 폭죽, 구두선이 난무하는 대선판이 끝나자 권력은 저마다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잔치의 주빈으로 대접받는 줄 알았던 청년이 사라지는가 했더니 퇴장한 줄 알았던 구태들이 버젓이 주인공을 자처하고 나서서 시대(?)의 정의를 설파하고 있다. 월 200만 원을 주겠다던 병사 월급 공약이 백지화되고 내각이나 지방선거에 청년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청년들은 대통령을 '굥'이라 부르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청년과 함께 시대적 화두로 대선판을 뜨겁게 달구었던 '공정' 공약도 슬그머니 사라졌다. 취임사에 당연히 중심어가 될 것으로 기대하였던 공정이란 가치가 등장하지 않았으니, 오죽했으면 기자들이 그 이유를 윤 대통령에게 직접 물었겠는가? 예상대로 대통령의 대답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정치의 모든 과정이 공정을 세워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인데 굳이 새삼스레 강조할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반문이다. 평생을 공정을 위해 싸운 대통령에게 공정이란 매일 공기를 숨 쉬듯 몸에 밴 가치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장관 청문회가 쏘아올린 공정의 왜곡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의 인사청문회는 권력에 의한 공정의 왜곡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조국이 그랬던 것처럼, 법무부장관은 한 국가의 사법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막중한 자리이기에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 당연한 명제이다. 조국처럼 탈탈 털라는 요구는 아니었지만, 한 후보는 누가 봐도 명백한 특권과 특혜, 아빠 찬스를 너무도 태연하게 부인하고 모른 척하다가 오히려 피해자 코스프레를 했다.

대선 패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지방 선거에 영혼이 팔려서인지 야당 의원들의 공격도 예봉이 꺾인 상태였다. 이모 교수 논쟁이나 한국 쓰리엠 오독과 같은 준비 부족에 이어 이수진 의원의 버럭 호통은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아 청문회를 희화화하는 데 한 몫을 했다. 한동훈 후보자의 딸 아빠찬스를 둘러싼 공정 논쟁은 사라지고 의원들의 해프닝이나 후보의 패션이 이슈가 되는, 언론의 전형적인 의제 비틀기에 의한 왜곡의 과정이 공공연히 진행됐다.

​정호영 보건복지부장관 후보 자녀의 의전 편입 특혜, 병역비리 의혹은 또 어떤가? 공정의 핵심가치를 대놓고 훼손한 비위임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임명을 강행할 분위기이다. 장관 후보 인사청문회에서 등장한 각종 해괴한 반칙들을 들여다보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우여곡절의 과정을 거치면서 쌓아온 공정과 평등의 가치, 청년 문제가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게 한다.

공정한 자유? 닥치고 경쟁?

취임사를 보면 사라진 '공정' 대신에 '자유'가 중심 테제로 등장했다. 개인과 기업이 불필요한 규제 없이 마음껏 자율적으로 활동하고, 청년들도 마음껏 기회를 누리고 꿈을 이루게 하겠다는 윤 정부의 자유에 대한 관점은 고전적 자유에 가까운 개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인의 자율성과 인권에 바탕한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기본적 가치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자유'가 유독 청년들에게 불온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문제는 무한 찬스를 누리는 장관 후보 자녀들과 같은 일부 특권층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청년의 입장에서 조명해봐야 한다.

인사청문회 기간 동안 아빠찬스, 엄마찬스, 남편찬스까지 일명 '찬찬찬 내각'이란 말이 돌았다. 기업, 가족 찬스를 일컫는 '기가찬'이이라는 말도 유행했다. 장관 후보들의 자녀들과 연관된 여러 파행적 행태는 엘리트 카르텔로 인한 특혜가 아니고는 설명이 쉽지 않지만, 정작 범법의 영역으로 처벌하기에 애매한 구석이 너무 많다는 점이 문제이다.

선의의 경쟁이 아닌, 권력이나 뒷거래가 개입되었지만 불법과 편법을 넘나들면서 교묘하게 '성실하고도 치열한' 경쟁으로 포장되어 있다. 미성년자의 논문과 연구실적 등에 대한 주기적인 실태조사를 벌여 불공정한 특혜를 사전에 방지하자는 취지의 '아빠찬스방지법'을 발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불거져 나오고 있지만, 사회적 공정과 정의를 법망으로 다스리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경쟁하는 사회는 '닥치고 시험'과 같은 능력주의로 포장된 허구의 '공정'이다. 온갖 스펙을 쌓기 위한 여러 유형의 신종 찬스는 같은 선상에서 출발하는 평범한 청소년 경쟁자들에게는 공정이란 형식의 좌절을 양산한다. 고위층 자녀가 누리는 찬스는커녕 기본적인 생활마저 삶의 질곡으로 점철된 위기 상황에 놓여 일상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신음하고 있는 청소년들이 있다. 우리 사회가 말로는 능력주의를 외치면서 인맥과 찬스로 신분을 획득하는 신종 카르텔 계급 사회로 퇴보해서는 안 된다.

청년의 위기, 사회적 격차는 과연?

새 정부가 출범하면 전 정부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각종 통계가 등장한다. 물론 필요한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전 정부를 공격만 하고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똑같은 전철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크다. 출발선상에 선 윤석열 정부가 처한 청소년 문제 상황은 간단치 않다.

4월 28일 KBS에 '위기청소년 최근 통계 및 지원'에 대한 뉴스 보도가 있었다. 지난해 여가부가 위기 청소년 4300여 명을 대상으로 첫 실태조사를 했는데, 최근 1년간 가출한 적이 있다는 위기 청소년이 20%가 넘었다. 가정문제나 학업수행, 사회부적응으로 어려움을 겪는 위기 청소년이 약 78만 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전체 청소년의 9%에 이르는 수치이다. 또한 응답자의 4분의 1 이상이 최근 1년 내 우울감을 느낀 적이 있고, 자해를 시도한 경우는 19%로 나타났다. 최근 1년 내 극단적 시도를 한 청소년도 10명 중 1명꼴, 여성이 남성의 두 배 이상이고, 9명 중 1명은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중·고등학교에서는 '수포자'에 이어 '공포자'라는 말이 돌고 있다. 수학포기 만이 아니라 공부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현장 교사 말에 따르면 시험 시간에 5분도 안되어 답지에 아무 것이나 끼적여 놓고 엎드려버리는 아이들이 다수이고, 어딘가에서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이 가득한 아이들이 새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미래에의 희망이나 개인적인 의욕이 저하된 것도 문제지만, 본인이 처한 여러 조건과 상황으로는 넘기 어려운 사회의 높은 벽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더는 도전할 의지도, 저항이나 분노할 힘마저 상실하게 하는 사회 분위기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학교교육에서 이탈한 청소년 문제는 더 심각하다. 초·중등교육법 상 '학교 밖 청소년'은 전국적으로 약 40만 명에 이른다. 학령아동은 급속도로 줄어드는데 학업중퇴 청소년은 별로 줄어들지 않는 기현상이 지속되고 있다(서울시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 2019). '가정 밖 청소년'도 늘어나고 있다. 가정 밖 생활시작 연령이 평균 15.6세로 빨라지고 있고, 가정 밖 생활 기간 1년 이상인 경우가 40%를 넘었다. 가정 밖 이후 생활공간이 세 군데 이상인 경우가 50%를 넘고, 쉼터 청소년들의 성관계 경험은 40%를 넘는다고 한다(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가정 밖 청소년의 생활문제로는 생활비 부족이 60%, 갈 곳이 없는 경우가 35%이고, 가출 중 자살시도 경험이 있는 경우도 36%나 된다.

'보호종료아동(자립준비청년)' 문제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아동복지시설에서 퇴소하거나 가정위탁이 종료되는 만 18세 이상의 청년으로, 매년 약 2600여 명의 아동이 보호기간 종료로 자립 준비를 한다. 보호종료아동은 불안한 주거, 아르바이트로 인한 학업부담 등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관계망 단절로 인한 심리적 불안, 우울 등을 경험하게 된다. 보건복지부 '보호종료아동 자립지원 강화방안'에 따르면 자립 후 월 평균임금 200만 원 이하로 살아가는 비율이 85%에 가깝고,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 비율이 일반인 3.4%에 비해 훨씬 높은 약 26.9%에 달한다.

공정한 도약의 기회 보장

청소년들이 처한 절박한 위기상황을 들여다볼 때,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자유'를 청년들에게 기계적으로 적용하다보면, 자칫 본의 아니게 심각한 왜곡과 불공정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든다. 자유와 이에 따른 선의의 경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경쟁에서 불가피하게 뒤처질, 그리고 이미 뒤처진 수많은 청소년들을 위해 지원 플랫폼을 하루속히 확대해야 하는 이유이다.

다른 역대 정부들이 그렇듯, 윤석열 정부도 청소년 공약이 방대했지만 정작 국정과제로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축소와 추진유보(장기과제로 전환 등)한 정책이 적지 않았다. 인수위가 최종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 48번에는 학교 밖 청소년 통합지원 체계 구축 및 청소년 위기유형별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 등 다양한 가족의 필요에 따른 가족서비스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91번에는 '청년에게 공정한 도약의 기회 보장' 정책이 제시되어 있다. 채용과정에서 불공정 사례를 모니터링하고 공정문화 확산을 위해 캠페인, 홍보를 하겠다고 한다. 별다른 찬스가 없을 뿐 아니라 삶의 자리가 팍팍한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부디 도약의 기회가 제공되기를 바란다.

코로나 위기로 인한 사교육비 증가와 공교육 정상화도 풀어야 할 과제이다. 코로나 재정 확대로 공교육비가 늘어나 있어 그나마 공교육 강화의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점은 다행인데, 그럼에도 학교 청소년과 학교 밖 청소년들의 격차 문제는 해소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 1인당 연평균 공교육비가 1400만 원인데 비해, 학교 밖 청소년은 55만 원으로 일반학생 2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학교에서 벗어난 청소년 지원 규모를 지자체가 획기적으로 늘려가면서 시민사회, 전문기관과 연계하여 지원 네트워크로 정착시켜가야 할 것이다. 보호종료청년의 경우 만 24세까지는 재입소가 가능한 세컨드 찬스제를 도입하면 어떨까. 다만, 재입소자가 다양한 진로, 직업 훈련을 할 수 있도록 기존 보호시설이 아닌 지역별 자립센터 등의 새로운 공간을 활용하고, 공공포털 활용교육, 직업교육, 금융교육 등의 재도약교육과 이수 후 재도약지원금(청년캐피탈 등)을 지급하는 것이다.

위기청소년을 위한 플랫폼 제안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례에서 보듯이, 보수 정권의 시민단체나 시민사회 영역에 대한 불신이 적지 않다. 보수정권은 이들의 영역을 축소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청소년 문제에 있어서는 지역사회와 시민사회 네트워크가 가장 촘촘히,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지역사회 지원센터는 범죄피해자, 범죄참여자, 가출자, 학교 밖 청소년 등 위기청소년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민간기관의 네트워크가 보다 다양하게 작동하도록 플랫폼을 구축하는 일이 새 정부가 할 정책과제이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 내 통합지원을 위한 단위가 강화되어야 한다. 예를 들면 서울 은평구 '엔젤스헤이븐'에서는 청소년 커뮤니티케어 프로젝트로 지역 네트워크를 강화하면서 청소년 사각지대를 지원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한 발자국씩 내딛은 노력이 새 정부에서도 모델 프로그램이 되어 확산하기를 바란다.

온·오프라인 사회적 지지망이 필요하다. 온라인으로 청소년 돌봄을 위한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여 기존의 다양한 민간기관, 공공기관 프로그램을 상호 연계하도록 하여 지원체계를 좀 더 활성화해야 한다. 오프라인으로는 지자체와 연계된 커뮤니티 기반 지원센터, 마을돌봄센터를 구축하여 언제든지 지역 내 전문가들이 방문할 수 있고, 멘토와 멘티를 자연스럽게 매칭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은퇴한 상담가 등의 지역사회 자원과 돌봄이 필요한 청소년을 연계하는 등 유휴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도 좋고, 거미망식 접근으로 한 학생에게 필요한 다차원적인 요구에 맞춤형 네트워크 매칭을 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리고 지역 네트워크가 실제 청소년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 이미 아픔을 경험한 청년들이 직접 프로그램에 동료지원가로 참여하게 하면 어떨까?

다음 달이면 지방선거가 열린다. 대선에 이어 치러지는 선거라서 그런지 아직도 거대담론이 전국 선거판을 지배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중앙과 지방자치단체를 함께 새로 구성하는 기회를 갖고 있다. 청소년 정책에서도 중앙정부의 방향성과 지방자치단체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통합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지역사회에 이르기까지 촘촘한 청소년 안전망을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대한민국은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선진국의 반열에 접어들었지만, 그늘이 짙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부동의 1위이고, 전 세계 최저 수준 출생률 0.81의 나라다. 행복하지는 않은 나라에서, 부모찬스가 없어도 청소년들이 실질적인 공정과 자유, 행복을 구가하는 나라로의 전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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