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태 교장선생님은 얘기합니다.
봄이 오고 있습니다. 수년 째 우리를 괴롭히는 역병으로 계절을 잊고 산 지 오래인데, 그래도 봄은 또 우리 곁으로 오고 있습니다. 멀리서 힘겨운 몸짓으로 한 발짝씩 다가오는 봄을 맞이하러 오름학교도 ‘봄의 나라’ 제주로 떠나볼까 합니다.
동백동산 그 짙은 숲은 봄기운이 돌아 새소리가 한층 더 가볍고 밝을 듯하고, 남원과 서귀포의 오름들도 이 꽃 저 꽃 다 피어 화사하겠군요. 이번 봄에 찾아 오를 오름들은 하나같이 조망이 멋들어진 곳입니다. 막 피어난 억새와 수크령 새싹들이 잔디처럼 연둣빛 융단을 깔아놓은 그곳에서 산뜻해진 제주의 봄바람을 맘껏 만나고 싶습니다. 봄이 가장 봄다운 빛깔로 눈부신 제주 오름에서요!
오름학교(교장 이승태. 여행작가·제주오름 전문가)의 2022년 4월 15(금)∽16(토)일, 제18강은 <가장 봄다운 빛깔로 눈부신 오름들-동백동산과 주말농장 동굴, 가세오름과 토산봉, 자배봉, 솔오름, 고근산, 우보악>을 찾아갑니다.
2017년 11월 개교한 오름학교는 제1강 <애월의 오름>, 제2강 <안덕의 오름>, 제3강 <표선의 오름1>, 제4강 <제주서부 중산간오름>, 제5강 <곶자왈 특집>, 제6강 <초지능선오름>특집, 제7강 <오름, 가을풍광 속으로>, 제8강 <제주 서부오름 소병악과 대병악, 비양도의 비양봉과 제주의 특별한 건축물 기행>, 제9강 <봄빛 가득, 제주 서남부 오름들>, 제10강 <제주스런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오름들>, 제11강 <그 깊고도 짙은 푸름 속으로! 한여름의 서부 제주 보석 같은 오름들>, 제12강 <제주의 바람, 초원을 흔드는 바람-제주의 가을바람과 가을하늘이 잘 어울리는 오름>, 제13강 <늦가을 서정으로 가득! 제주올레의 아름다운 오름들>, 제14강 <아! 한라산 깊은 산중의 아름다운 여름풍경>, 제15강 <탐라추경(耽羅秋景) 특집 : 윗세오름(영실-윗세오름대피소-어리목), 하논분화구, 여절악, 통오름, 독자봉>, 제16강 <제주 오름의 가을! 세미오름, 부소오름, 부대오름, 골체오름, 민오름, 대수산봉, 낭끼오름, 유건에오름>, 제17강 <제주 원시 숲의 놀라운 기운과 매력-안세미오름, 궤네깃당과 궤네기굴, 삿갓오름, 둔지오름, 대왕산, 성읍 녹차밭과 동굴, 머체왓숲길, 서귀포 치유의 숲>에 이어 제18강 <가장 봄다운 빛깔로 눈부신 오름들-동백동산과 주말농장 동굴, 가세오름과 토산봉, 자배봉, 솔오름, 고근산, 우보악>으로 향합니다.
제주 출신 화가 강요배 선생은 “오름에 올라가본 일이 없는 사람은 제주 풍광의 아름다움을 말할 수 없고, 오름을 모르는 사람은 제주인의 삶을 알지 못한다”면서 제주 오름의 소중함을 얘기했습니다. 이는 제주도가 오름과 오름이 세포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진 곳이어서 제주를 알려면 반드시 오름을 알고 올라보아야 한다는 말일 겁니다. 들판 한가운데, 바닷가에, 작은 마을 뒤편에 순하디 순한 모양으로 솟아 제주의 자연풍광을 이룬 오름. 사람들이 뻔질나게 드나드는 유명 관광지에서는 만날 수 없는, 날것 그대로의 제주의 모습이 그곳에 있습니다.
아름다운 제주도 오름을 순례하는 <오름학교>는 격월로, 제주 자연풍광의 결정체이며 마을 형성의 모태인 오름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면서 그 아름다움과 그 속에 담긴 의미를 짚고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름’은 ‘산’의 제주도 방언으로, 한라산 산록으로부터 해안에 이르기까지 널리 퍼져있는 작은 화산체들을 이릅니다.
2022년 4월 강의를 준비하는 교장선생님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제18강 1일차/4월 15일(금요일)
꽃이 진다고 그대를 잊은 적 없다!
-선흘곶 동백동산
제주의 겨울을 빨갛게 물들이는 동백꽃은 11월말부터 이듬해 4월초까지 피고지기를 반복합니다. 덕분에 이 시기에 제주를 찾으면 고고한 자태를 맘껏 뽐내는 붉은 동백꽃을 만날 수 있죠. 짙은 초록의 숲에서, 때로는 새하얀 눈 속에서도 선홍빛으로 빛나는 동백꽃의 존재감은 실로 강렬합니다.
그러나 4월이면 벚꽃엔딩과 함께 동백꽃도 모두 사라집니다. 꽃이 떠나간 자리엔 초록의 동백나무 숲만 무성합니다. 그때면 적은 개체로 섞여 사는 낙엽활엽수들도 연두빛깔 새싹을 틔워서 선흘리 동백동산은 빈 틈 없이 푸르고 푸릅니다.
제주시 동북쪽 조천읍의 유서 깊은 마을 선흘리에는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0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동백동산’이 아름답습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이 숲의 거대함과 짙은 신록에 놀라게 됩니다. 부러 심어서 가꿔도 이리 빽빽한 숲을 만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동백동산은 그 밀도가 치밀합니다.
20년 수령이 넘은 동백나무가 10만 그루 이상 군락을 이뤄 동백동산이라 부르지만 후박나무와 종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녹나무 같은 난대성 상록활엽수도 숱하게 섞인 천연림입니다. 숲 아래로는 각종 이끼류와 양치식물, 콩짜개덩굴 같은 식물이 뒤덮어 어디라도 신록의 세상입니다. 한라산국립공원 구역이 아닌 평지에 남은 난대성 상록활엽수 숲으로는 제주에서 가장 넓다고 하니 더욱 소중하고 특별한 공간입니다.
들머리의 습지센터를 출발해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에 속하는 도틀굴을 지나 숯막, 상돌언덕,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먼물깍과 포제단을 거쳐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는 원형 동선으로, 모두 5km쯤 됩니다. 쉬엄쉬엄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고요. 고저차가 거의 없고, 해가 들지 않는 울창한 숲 사이로 난 길이어서 더할 나위 없는 산림욕장이기도 합니다. 걷는 내내 싱그러운 숲의 향기와 맑은 새소리, 옅은 바람이 동행하는 행복하고 기분 나는 곳이죠.
이곳 사진 한 장쯤은 있어야 인싸!
-주말농장 동굴
동백동산 맞은편의 한 주말농장 안 작은 동굴이 최근 핫플레이스로 인기몰이 중입니다. 이곳 또한 동백동산의 도틀굴과 함께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에 속한 동굴 중 하나로, 지붕이 얕아서 몇 곳이 무너지며 동굴 출입구와 천장 일부가 드러나 있습니다. 큰 대야만한 구멍이 뚫린 동굴 천장을 통해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그 아래에 의자를 놓고 사진을 찍는 게 제주 여행의 주요한 일정으로 잡힐 만큼 많은 여행객들이 찾는 곳입니다. 사람이 몰릴 때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죠.
인심 좋은 농장 주인분께서 작은 안내판을 설치해 두었고, 길과 동굴도 개방을 해 아무나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드나들면서 낮은 동굴 천장에 혹시 머리가 부딪힐세라 입구에 헬멧도 비치해 두었죠. 우리도 잠시 그곳에 들러 유행에 민감해보겠습니다.
가위를 닮았나? 지그재그 탐방로 인상적
-가세오름
표선의 매오름에서 북서쪽으로 보면 몇 개의 산등성이가 모여 길게 가로누운 풍광이 눈길을 끕니다. 높고 낮은 몇 개의 봉우리를 가진 하나의 산 같지만 이는 작은 알오름을 중심으로 가세오름과 염통오름, 토산봉이 기슭을 맞대고 모인 풍광으로, 모두 토산리의 오름들입니다.
가세를 닮아 가세오름
맨 북쪽에서 가장 크고 듬직한 산체로 솟은 가세오름은 서쪽으로 트인 말굽형 굼부리를 중심으로 북쪽 능선과 남쪽 능선이 비슷한 기세로 마주보고 섰습니다. 또 북릉과 남릉이 만나는 동쪽의 안부가 낮게 내려앉으며, 그 가운데에 산불감시초소가 자리를 잡았죠. 안부를 사이에 두고 두 능선이 갈라진 모양새가 가세(가위)를 닮아서 가세오름이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네요.
오름의 북릉 끝에는 작은 구릉 같은 ‘염통오름’이 붙어 있고, 굼부리 끄트머리엔 샘도 품었습니다. 밋밋하게 흘러내리는 오름의 동쪽 사면은 초지대가 많고, 그 끝에는 공동묘지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남사면은 삼나무가, 북사면은 편백과 삼나무, 활엽수가 적절히 섞였고요. 오름 북록으로 세화리와 토산리를 잇는 도로가 지납니다. 도로가 오름 북동쪽에서 ‘S’자로 굽어 도는 지점에 있는 철문이 들머리입니다. 안쪽은 온통 산담으로 가득하죠.
긴 폭의 지그재그형 탐방로
가세오름 탐방로는 무척 독특합니다. 우선 초지대를 곧장 가로질러 두 능선 사이의 안부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능선에 이르는 가장 짧은 코스로, 겨울이면 매일 출퇴근하는 산불감시원이 주로 이용하죠. 보통은 들머리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편백나무 숲 사이로 들어섭니다. 초입엔 우마의 출입방지용 철문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똑같이 생긴 철문을 탐방로 곳곳에서 여러 번 만납니다. 길은 산담 몇 개를 지난 후 능선을 향해 지그재그를 그리며 오르는데, 그 폭이 하도 길어서 거의 평지를 걷는 느낌입니다. 정상 전망대를 지나 남사면으로 내려설 때도 마찬가지고요. 덕분에 길이 편하고, 시간은 꽤 걸립니다.
능선에 올라서면 커다란 철탑이 보이고, 여기서 왼쪽의 안부가 가깝습니다. 안부의 산불감시초소가 품은 풍광이 여간 멋진 게 아닙니다. 매오름과 달산봉이 선명하고, 통오름과 독자봉, 영주산, 남산봉 같은 먼 곳의 오름도 잘 보이죠. 그 사이의 광활한 들녘과 먼 바다까지, 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일하는 산불감시원은 아무래도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듯합니다. 초소 옆에는 널찍한 평상도 있어서 조망하며 쉬기에 그만이죠.
초소에서 200m 떨어진 남릉의 정상에 2층 구조의 전망대가 있지만, 웃자란 소나무 때문에 초소보다 조망이 못합니다. 전망대를 지난 길은 곧 삼나무로 빼곡한 남쪽 사면을 따라 커다란 지그재그를 그리며 내려선 후 출발지로 돌아옵니다.
솔숲 사이로 걷기 좋은 탐방로
-토산봉
토산봉은 표선면의 가장 서쪽 토산리의 가운데에 솟았습니다. 예로부터 이곳 사람들의 지리개념은 이 토산봉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죠. 토산봉 북쪽 토산1리를 ‘웃토산’ 또는 ‘북토산’으로, 남쪽 바닷가의 토산2리는 ‘알토산’ 또는 ‘남토산’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봉수대가 있는 오름 앞쪽을 ‘망앞’, 뒤는 ‘망뒤’라고 했죠. 그리고 토산봉을 마주한 알오름인 북망봉에 자신들의 사랑하는 이를 묻었습니다. 그만큼 토산봉은 토산리 사람들의 삶에서 중요한 장소였죠.
두 굼부리 가진 복합형 화산체
오름 모양이 토끼형국이어서 토산(兎山)이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옵니다. 조선시대엔 이곳에 봉수대가 생기며 ‘토산망’, ‘망오름’이라는 이름도 추가되었죠. 제주 대부분의 오름에 삼나무가 빽빽한 것과 달리 토산봉은 전체에 걸쳐 해송이 숲을 이뤘고, 상록활엽수와 대나무, 삼나무 일부가 뒤섞인 모습입니다.
동서로 길고 두툼한 형태로 늘어선 토산봉은 동쪽으로 트인 원형에 가까운 말굽형 굼부리와 서쪽으로 형태가 희미한 말굽형 굼부리까지 두 개의 굼부리를 품은 복합형 화산체입니다. 동쪽 굼부리의 남쪽 능선에 정상이, 두 굼부리 사이에 토산봉수가 있습니다.
지역 주민들이 즐겨 찾는 오름이어서 탐방로 상태가 좋고 들·날머리도 다섯 곳이나 됩니다. 이 중 버스정류장과 화장실을 갖춘 소공원이 들어선 남서쪽 들머리가 애용되죠. 탐방로는 들어서자마자 두 갈래로 나뉩니다. 왼쪽은 토산봉수로, 오른쪽은 남쪽 사면을 지나 굼부리 능선의 정상으로 향합니다. 어느 길을 택하든지 굼부리를 한 바퀴 돌고 봉수대를 거치는 코스입니다.
고대 무덤 같은 봉수대
탐방로를 따라 삼나무처럼 높고 곧게 자란 해송이 많고, 남쪽 사면에서는 대숲도 지납니다. 커다란 둥치의 구실잣밤나무도 심심찮게 보이고요. 오름 자체의 높이가 75m로 낮고, 산체도 길고 둥글둥글해서 길은 대체로 완만합니다. 또 길 주변의 자잘한 나뭇가지를 정리한 터라 숲이 밝고 쾌적해서 걷는 기분이 상쾌합니다.
정상엔 2층 구조의 통나무 전망대가 있습니다. 남쪽 바다와 한라산이 훤히 보이는 조망 사진이 세워져 있지만, 지금은 웃자란 나무들로 풍광이 가렸습니다. 굼부리 둘레길에서 서쪽으로 200m쯤 간 곳에서 토산봉수를 만납니다. 커다란 원형의 둑 두 개에 둘러싸인 봉긋한 봉수대가 고대 왕족의 무덤처럼 보입니다. 서쪽으로 자배봉, 동쪽으로 달산봉의 봉수와 교신을 했다는 토산봉수 바로 아래엔 제법 굵은 소나무 사이로 운동시설이 보입니다. 들머리에서 멀지 않고, 오르내리는 길도 좋아서 마을 주민들이 체력을 단련하기엔 최적의 장소일 듯하네요. 봉수대에서는 북쪽으로 조망이 트여 물영아리와 큰사슴이, 쳇망, 붉은오름 같은 중산간 오름들이 가늠됩니다. 여기서 들머리까지는 10분 안쪽에 닿습니다.
분화구 안팎이 온통 숲
-자배봉
중산간도로가 자락을 파고 지나는 남원읍 위미리의 자배봉은 해발 211.3m에 오름 자체의 높이가 111m며 원형의 분화구를 가졌습니다. 구실잣밤나무나 메밀잣밤나무를 제주어로 ‘ᄌᆞ밤낭’ 또는 ‘자밤낭’이라고 하는데, ‘ᄌᆞ배’는 그 열매를 말합니다. 이러한 잣밤나무들이 이 오름에 유난히 많이 보이는 것으로 봐서 오름 이름은 이에 연유한 것으로 여겨지고요.
중산간도로에 접한 남동쪽에 안내판과 평상이 놓인 들머리가 있습니다. 안내판 앞에 차량 서너 대를 주차할 공간도 갖췄고요. 오름 남쪽 사면을 비스듬히 가로지른 탐방로를 따라 300m쯤 올라 만난 능선상의 네거리. 여기서 분화구 안이나 능선 양쪽으로 길이 갈립니다. 둘레 1.23km인 능선을 한 바퀴 돈 후 분화구 안을 탐방하거나 바로 내려서면 되죠.
봉수대, 고인돌 그리고 굼부리 안 탐방로
능선에도 숲이 울창합니다. 지역주민들이 자주 찾는 곳답게 능선 곳곳에는 벤치가 놓였고, 숲 사이로 조망이 트이기도 하죠. 동쪽 화구벽을 따라 400m 남짓 가니 ‘포제’ 안내판이 보입니다. ‘포제(酺祭)’란 사람과 곡식을 해하는 포신(酺神)을 달래려 지내던 제사였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마을을 대표하는 제사가 되며 동제(洞祭)로도 불렸습니다. 제주도 오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포제단(酺祭壇)은 이러한 포제를 지내던 장소죠. 지금은 제주도 전역에서 거의 사라진 풍습이지만, 위미리에서는 한국전쟁 후 자배봉에서 한동안 포제를 거행했다고 합니다.
포제 안내판에서 봉수대 터가 지척입니다. 이곳 자배봉수는 동쪽으로 토산봉수, 남서로 호촌봉수에 응했다고 합니다. 봉수대로 인해 지역 사람들은 자배봉을 ‘망오름’이라고 부릅니다. 봉수대 터 부근에는 평상과 운동기구를 갖춘 쉼터도 있죠. 여기서는 77m 깊이의 둥근 분화구가 가늠되고, 그 너머로 한라산도 선명합니다.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니 위미 앞바다에 접시처럼 떠 있는 지귀도가 아른거립니다. 동쪽 능선의 중간쯤에서 ‘고인돌’도 만납니다. 고인돌을 지난 분화구의 북쪽이 정상이죠. 나무벤치가 몇 개 놓인 이곳에서도 한라산이 훤하고, 동쪽으로 가세오름과 토산망 같은 표선의 오름도 가늠됩니다.
능선을 한 바퀴 돈 후 분화구 안을 둘러보는 것은 자배봉 탐방의 묘미입니다. 여느 오름의 굼부리 안은 풀숲이거나 숲이 있어도 굼부리 바닥은 초지대인 게 보통인데, 자배봉은 굼부리 전체가 삼나무와 해송, 상수리나무, 보리수나무에 온갖 덤불과 덩굴이 뒤엉킨 채 빽빽합니다. 그 사이로 원형의 탐방로가 조성되었고요. 그러나 숲이 너무 울창하고 빼곡해 흐린 날이면 으쓱한 기운마저 느껴질 정도입니다. 굼부리 안 탐방로 옆으로 망주석에 동자석까지 갖춘 오씨의 무덤도 만납니다.
제18강 2일차/4월 16일(토요일)
썩 괜찮은 탐방로와 정상 조망
-솔오름(미악산)
서귀포 구시가지의 정북쪽, 한라산 중턱에 솟은 솔오름은 최고의 숲과 멋들어진 탐방로, 쉼 그 자체인 편안한 조망을 품어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토평동과 동흥동의 경계에 걸친 산체는 남동쪽으로 희미한 말굽형 굼부리를 품은 채 동쪽 봉우리는 토평동에, 정상인 서쪽 봉우리는 동흥동에 풀어놓고 있습니다.
온 몸을 정화시킬 듯한 숲
한자로는 ‘米岳(미악)’ 또는 ‘米岳山(미악산)’이라 표기하고, ‘쌀오름’, ‘ᄉᆞᆯ오름’, ‘솔오름’ 등 지금도 여러 이름으로 불려집니다. 옛날 이 오름이 민둥산이었을 때, 그 모양이 바닥에 쌀을 수북하게 쌓아놓은 듯해서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라는데, 이를 두고도 해석과 평가가 분분합니다. 현재 오름 들머리의 안내도엔 ‘솔오름’이라고 적혔죠.
솔오름 북쪽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극상상태의 난대림 지대라고 합니다. ‘극상림’에 대한 이해가 좀 난해하긴 하나, 귀하고 보호해야 할 최고의 숲인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 때문일까요, 솔오름 오르는 탐방로 또한 빼어난 숲 환경의 연속입니다. 지나기만 해도 몸이 정화될 것 같은 느낌의 편백나무와 해송, 삼나무 숲이 하늘을 가리고, 온갖 덩굴식물이 활엽수와 어우러진 자연 그대로의 수풀지대도 나타나며 온 몸의 세포를 모두 깨워 숨통을 트이게 하는 듯합니다. 이 근사한 숲을 지나는 탐방로엔 데크를 깔거나 나무계단을 설치해 궂은 날씨에도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놓았습니다.
정상에서 만나는 휴식 같은 풍광
오름 남쪽, 산록남로와 동흥로가 만나는 삼거리의 회전교차로 한쪽에 솔오름전망대가 있고, 그 앞에 몇 대의 푸드트럭이 영업 중입니다. 전망대 동쪽 길 건너편이 너른 주차장을 갖춘 들머리입니다. 초입의 운동시설을 지나 곧 만나는 갈림길. 직진하면 A코스, 왼쪽이 B코스입니다. A코스를 따라 정상에 올랐다가 B코스로 내려서는 동선이 애용되죠.
갈림길을 지난 길은 울창한 편백나무 숲 사이로 파고듭니다.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지 파악이 힘들 만큼 이리저리 굽어 도는 길 주변의 숲은 청미래덩굴과 소나무, 삼나무, 단풍나무, 보리수나무, 관목지대 등이 나타나며 계속 얼굴을 바꿉니다. 때로 가파른 곳이 나타나지만 잣성과 산담, 숲속 잔디밭 등이 뒤섞인 길은 대체로 완만하고 널찍해 야생의 정원을 걷는 기분입니다.
길고 비스듬하게 데크가 깔린 A코스의 정상에서 평지 같은 안부를 지나야 진짜 정상을 만납니다. 레이더기지 시설물로 터가 좁아진 정상이지만, 한라산 남쪽이 남김없이 펼쳐지는 풍광이 압권입니다. 고만고만하던 고근산도 여기서는 한류스타 못잖게 멋져 보입니다. 여기저기에 아무렇게나 앉아 이 풍광에 빠져든 이들, 이후의 스케줄은 이미 관심 밖인 얼굴들이군요.
서귀포 전망대
-고근산
조선시대에 섬 남쪽의 정의현과 대정현을 가르던 고근산은 서귀포 신시가지를 감싸며 당찬 산세로 솟았습니다. 북서에서 동남으로 기운 타원형의 산체를 가졌고, 정상에 펑퍼짐한 원형 굼부리를 품었죠. 설문대할망이 백록담에 머리를, 이 굼부리에 엉덩이를 대고 범섬엔 다리를 걸치고는 물장구치며 놀았다는 재밌는 전설이 전해옵니다.
근처에 산이 없이 외로이 섰다고 ‘孤根(고근)’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호근동에서는 ‘호근산’이라고 불렀습니다. 오름을 품은 서호동과 호근동 사람들은 예로부터 용맥이 흐르는 영산으로 여겨 중턱 이상엔 무덤을 서지 않는 금장지역으로 지켜오고 있습니다. 오름 남동사면의 중간쯤엔 국상을 당했을 때 올라와 곡을 하던 망곡단(望哭檀)이 있었다고 하며, 남서사면 아래쪽 숲엔 꿩사냥을 나선 강생이가 빠져 죽었다는 수직굴인 ‘강생이궤’가 시커먼 아가리를 벌리고 있습니다. 산 남록에는 서호동공동묘지가 들어섰죠.
원형 굼부리에 빼어난 조망
올레길을 걷는 게 아니라면 접근이 쉬운 남서쪽 들머리가 편합니다. 여기서는 길이 두 갈래인데, 남쪽의 기존 등산로 입구에서 북쪽으로 80m쯤 들어서면 올레길 코스가 따로 있습니다. 이 두 길을 이용해 오르내리면 되죠.
오름 자체의 높이가 171m로 꽤 높아서 탐방로는 살짝 가파릅니다. 극러나 삼나무와 활엽수로 울창한 숲 사이로 이어지는 계단길이 정비가 잘 되어 있어서 그리 힘들지는 않습니다. 정상부는 원형의 굼부리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조성되었고, 남서쪽엔 산방산 방향이 훤히 보이는 전망대도 갖췄습니다. 띠와 억새가 무성한 굼부리는 희미한 길을 따라 가로지를 수 있는데, 무척 아름답고 멋진 풍광이 펼쳐져 걷는 재미가 좋은 곳입니다.
소처럼 걸어볼까?
-우보악
우보악은 색달동의 중산간, 대유랜드 동쪽에 우두커니 서 있죠. 이름이 참 재밌습니다. 걸어가는 소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우보악(牛步岳), 또는 소가 엎드려 있는 모양이어서 우부악(牛附岳)이라고도 했다는데, 지명에 얽힌 옛 사람들의 안목은 알다가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요리조리 아무리 재어 봐도 오름 모양에서 도무지 소를 찾아내긴 힘들더군요. 겉을 보는 것도 제대로 할 줄 모르니 선조들의 통찰을 감지하는 건 애초에 무리일지도 모를 일이네요.
정해진 길이 없지만 탐방은 쉬워
밋밋한 세 개의 봉우리를 가진 우보악은 마주보는 남봉과 북봉의 직선거리가 500m에 달할 만큼 몸집이 거대합니다. 동쪽으로 시원스레 뚫린 말굽형 굼부리가 눈길을 끌죠. 꽤 깊은 굼부리 안에서는 귤농사와 밭농사를 짓고, 몇 채의 농가도 보입니다. 가축사료용 풀을 심어 가꾸는 초지로 이용되는 오름의 북쪽은 능선과 거의 같은 높이로 이어집니다. 초지 너머엔 골프장이 조성되었고요. 무척 완만한 서쪽 사면도 풀밭이 두텁게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아래론 ATV와 오프로드용 자동차 체험장이 들어섰습니다. 상대적으로 가파른 남쪽 사면은 삼나무와 해송이 주종을 이룬 숲으로 빼곡합니다.
조성된 탐방로가 없어서 앞 사람의 발자취를 찾아 올라야 합니다. 남쪽에서 오르는 길이 있으나 수풀에 뒤덮여 희미해서 대부분은 서쪽, ‘중문오프로드체험장’을 들머리로 잡습니다. 체험장의 거친 길을 따라 들어선 후 넓은 초지를 가로질러 서쪽 능선에 올라서면 됩니다. 방향을 잘 가늠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찾아야 하는 곳이죠. 완만하고, 훤히 보이는 곳이다 보니 어렵지 않게 능선에 오를 수 있습니다. 오프로드 체험장은 가을이면 억새와 수크령이 장관입니다. 멀리 산방산, 군산, 송악산 등이 배경을 이뤄 풍광도 더할 나위 없죠. 10월 중순이 지나면 초지의 풀베기가 끝난 때라서 오르내리기가 한결 수월해집니다. 봄날이면 어떤 풍광일지 사뭇 기대됩니다.
능선에서 마주하는 놀라운 풍광
능선에 올라서서 만나는 풍광은 놀라움의 연속입니다. 북쪽으로 그 넉넉하고 가없는 품을 한껏 펼친 한라산이 친근한 모습으로 서 있고, 거의 평지를 이룬 능선 아래로 깊이 내려간 굼부리도 흥미롭습니다. 그 모양이 고대 로마의 노천극장을 떠올리게 하죠.
폭이 널찍한 서쪽 능선은 트랙의 100m 직선주로처럼 산불감시초소에 닿기까지 곧게 뻗었습니다. 가을이면 억새와 띠, 수크령 같은 가을을 대표하는 벼과 식물들이 어우러지며 환상적인 이곳은 봄날이면 새로이 돋아난 이파리들로 인해 초록 융단을 깔아놓은 듯 아름다울 것입니다.
산불감시초소에서 남봉까지는 150m 거리지만, 수풀이 우거지는 때면 들어서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름학교가 찾을 봄날이면 아직 풀이 제대로 기를 펴지 못했을 테니, 상황을 보고 남봉까지 다녀올 작정입니다.
오름학교 제18강은 2022년 4월 15(금)-16(토)일, 1박2일로 제주도에서 열립니다. 상세한 내용은 네이버 카페에서 인문학습원을 검색하여 오름학교(3월) 기사를 확인하십시오. 오름학교는 생활 속의 인문학을 즐기려는 동호회원들의 체험공동체, 인문학습원(대표 이근성)이 지원합니다.
코로나19 방역조치에 따라 안전하고 명랑한 답사가 되도록 출발 준비 중입니다. 참가자는 자신과 동행자를 위해 최종 백신접종을 완료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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