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2천만원 '병원비 폭탄'이 '간병 살인' 불렀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2천만원 '병원비 폭탄'이 '간병 살인' 불렀다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강도영 사건'으로 돌아보는 돌봄위기

돌봄위기와 간병살인이라는 이슈를 사회 전면에 부각한 '강도영 사건'이 잊혀간다. 수중에 2만 원이 없는 어린 청년이 2000만 원이 넘는 병원비 빚을 안고, 아버지를 굶어 죽게 만든 사건이었다. 패륜이라 지탄하는 이들도 있고, 복지 사각지대 속에 방치된 어린 청년의 사연에 가슴 아파하는 이들도 있었다. 청년은 부작위 살인, 즉 돌봄의 의무를 다하지 않음이 죄가 되어 결국 무거운 형벌을 짊어지고 있다.

강도영과 별개로 돌봄위기에 처해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방치하는 일들은 꾸준히 그리고 드물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무수한 강도영들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 사회가 잊지 않고, 돌봄위기에 잇따르는 여러 이슈를 정책 과제로 다뤄야만 하는 이유다.

지난 20일 돌봄위기 해법을 논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강도영 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셜록> 박상규 기자와 <아빠의 아빠가 됐다> 조기현 작가,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양난주 교수, 한국환자단체연합회, 간병시민연대 등 당사자 단체가 모였다. 당사자와 전문가들이 논의한 문제 양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다. 첫째는 과도한 병원비 문제다. 둘째는 허술한 돌봄전달체계 문제다. 토론회 논의를 되짚으며 해법을 전하고자 한다.

▲ 병원비백만원연대 토론회 '청년간병인 강도영, 우리 사회에 남은 과제는?' 모습. ⓒ병원비백만원연대

비급여 간병비와 병원비 재앙

강도영은 아버지가 쓰러진 이후 몇 개월 남짓 동안 2000만 원의 병원비 폭탄을 떠안았다. 긴급의료비 지원, 재난적의료비 지원 제도가 있었지만, 애초에 과도한 병원비가 발생하는 구조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토론회에서 박상규 기자는 "문재인 정권 출범 당시 분명히 병원비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했는데, 그 짧은 시간 안에 2000만 원의 경비가 나왔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며, 타인의 도움 없이 한순간에 그 정도의 고액 병원비를 감당할 수 있는 국민이 몇이나 되겠냐며 안타까워했다.

본 사건에서 가장 큰 비용이 발생한 항목은 요양병원에서의 간병비다. 이를 포함한 비급여 1300만 원 정도가 강도영의 숨통을 조였고, 강도영의 아버지는 퇴원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의료급여로 지원되는 긴급의료비와 재난적의료비는 강도영의 숨통을 조여온 간병비와 비급여를 해결하지 못하는 제도다. 2015년부터 도입돼 간병 서비스를 건강보험체계 내부로 안착한 것으로 평가받는 간호간병통합서비스도 경중증 환자 중심서비스다. 안기종 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뇌출혈 환자나 대소변 환자들은 간호간병통합서비스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며 "강도영 씨의 경우도 직접 간병돌봄을 하거나 사설 간병인을 써야 하는 처지"였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간병돌봄은 한국 특유의 전통적 가족주의에 기반해 가족이나 친척에게 떠맡겨진 실상이다. 사적 간병 규모를 추산한 보건복지부 학술자료에 따르면, 2008년 3조6550억 원에서 2018년 8조240억 원으로 사적 간병비 규모가 치솟았다. 평범한 국민이 돌봄위기에 직면하게 되면, 24시간 붙어서 직접 간병돌봄을 하거나, 모아둔 돈으로 사설간병인을 고용해 간병의 공백을 메워야 한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면, 강도영처럼 돌봄을 위해 생계를 포기하거나, 생계를 위해 돌봄을 포기하도록 내몰린다.

간병시민연대 박시영 활동가는 가족이 독박 쓰는 간병돌봄은 간병파산과 간병살인을 불러온다고 짚었다. "하루 최소 10만 원이 넘는 간병비를 한 달 추산하면, 300만 원이 넘는 비용이 발생하는데, 일반적인 임금을 받는 사람의 월급을 통째로 쏟아도 감당하기 어렵다"며, 결국 일을 그만두고 모아둔 돈으로 간병을 하다가 파산하고, 그 이후 간병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병원비 백만원상한제가 해법이다

강도영 사건 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재난적의료비 지원 제도에 간병비를 포함하고, 지급액을 5000만 원으로 늘리는 등 현행 제도 개선을 중심으로 공약을 내걸었다. 의료비 부담을 폭증하게 만드는 3대 비급여(간병비·선택진료비·상급병실료) 중 선택진료비는 폐지되었고, 상급병실료도 건강보험이 적용되므로, 마지막 남은 간병비를 건강보험 체계 안으로 들이겠다는 약속은 환영할만하다.

하지만, 재난적의료비 지원 제도의 개선이 병원비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과도한 병원비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이유는 건강보험 체계가 포괄하지 못하는 비급여 부분을 민간 실손보험이 무분별하게 보장하면서 형성된 의료 시장의 도덕적 해이에서 기인한다. 공공의료 토대가 취약한 한국에서 민간보험을 들 여유가 없는 저소득 취약 계층일수록 고액 병원비가 큰 위기로 다가갈 수밖에 없다.

해법은 의학적 필요에 의한 비급여를 포함, 병원비 자체에 상한을 두는 것이다. 한 해 동안 건강보험 적용 진료비에 대한 본인부담이 100만 원을 초과할 시 건강보험이 전액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다. 고액 의료비 부담은 경증질환보다 중증질환에서 발생하므로, 정말로 아파서 치료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치료받지 못하는 경우는 방지할 수 있고, 비필수 비급여를 제외하기 때문에 의료시장의 도덕적 해이도 방지할 수 있다.

소요 재원은 통합간호간병으로까지 전면 확대하여 간병비를 포괄하는 경우 10조 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사적간병비 규모만 연간 8조 원 이상을 쓰는 한국 사회에서 병원비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 10조 원에 불과하다.

돌봄이 필요했던 강도영, 사회적 돌봄의 자리

허술한 돌봄전달체계도 문제다. 제도가 있는 것과 제도가 활용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제도가 있으니 그것을 이용하지 못한 이들을 질타할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도가 닿지 못함을 문제 삼아야 한다. 자신의 돌봄 경험으로 책을 펴내 '영케어러(Young Carer) 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든 조기현 작가는 "10년 전 아버지가 쓰러지면서 겪은 일과 강도영 씨가 겪은 일이 다른 게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강도영 씨가 복지부 홈페이지가 아니라 아르바이트를 먼저 구하려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도영은 생계와 돌봄을 수행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자신의 암담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제도적 해결책을 찾지 않았다는 사실만 사회적 지탄의 근거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시각에는 중요한 맥락이 누락되어 있다. 하루아침에 돌봄위기에 직면한 청년이 겪었을 생계불안과 심리적 위축이다. 강도영은 아버지가 죽은 후 자신도 따라 죽으려 했다고 진술했다. 우리가 바라보려 하지 않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강도영 또한 사회적 돌봄이 절실했던 소외된 약자라는 사실이다.

중증 환자 보호자에게서 발생하는 우울증 비율은 상당히 높다. 영국의 저명한 의학 학술지에 발표된 간병가족의 육체적·심리적 문제에 대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간병자의 67% 이상이 우울증을 겪었다. 간병인이 사회적 도움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 활동이 제한될수록 우울증은 심해졌다. 강도영이 품은 자포자기의 심리, 현실을 회피하려 한 행동들, 우울증과 더불어 찾아오는 무기력증. 혼자 감당했어야 할 암담한 상황을 개선할 힘이 강도영에게 없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게 불거진다.

신청주의 보완의 맥락은 여기서부터 도출된다. 사회적·제도적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발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시적으로 이들과 연결되어 있어야 근원적인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양난주 교수는 "신청주의 보완 맥락에서 발굴주의가 유행하지만 효과적이지 못하"며, 제도 신청자의 범위를 넓히는 게 필요하다 강조했다. 서울시 돌봄SOS사업을 예로 들어, 본인이 아닌 주변 사람도 '여기 돌봄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어야 한다고 전했다.

세상을바꾸는사회복지사 이명묵 대표는 신청주의를 진정주의와 신고주의로 보완해서 "실제 도움이 필요한 당사자뿐만 아니라, 담당 공무원, 집주인, 이웃도 공적인 지원을 신청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생계불안 및 심리위축으로 지친 환자와 간병 당사자를 보듬는, 사회적 돌봄의 토대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상담센터 상담번호인 '129'를 널리 알리고, 돌봄전달체계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양난주 교수는 "어떤 문제든지 연락받으면 그 자리에서 정확하게 해결 방안을 찾을 수 있다는 사인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국민에게 알아서 해법을 찾아가라 하지 말고 단일한 체계 속에서 작동하는 돌봄전달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관심이 돌봄의 시작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성탄절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고, 가족과 연말 행복한 시간을 보내려 할 것이다. 예수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자신에게 한 것이라 말했다. 다가오는 성탄에는 내 주변의 가장 취약한 이웃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나와 가족을 넘어서 타인의 아픔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하고, 고통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사회적 돌봄, 돌봄국가의 시작이다.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