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의원 총선거와 자민당의 승리
지난 10월 31일 일본에서 중의원 선거가 치러져 자민당이 과반 의석수를 넘어 절대안정 다수 의석을 확보했다. 자민당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사전 예상을 뒤집은 결과였다.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단명 내각으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기시다 내각은 일단 안정적 내각 운영에 필요한 지지를 확보했다.
장기 정권이 되려면 내년 7월의 참의원 선거 결과도 봐야 하겠지만, 참의원 선거를 치르는 데도 기시다 총리가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장기 정권으로의 길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민당의 승리 요인은, 무엇보다도 '선거의 얼굴'을 바꾸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임기 만료로 중의원 총선거가 목전에 다가오는 가운데 스가 총리의 인기가 급락했다. 코로나19 대책과 도쿄올림픽, 패럴림픽 개최에 이르는 과정에서 드러난 스가 총리의 불통 이미지 때문이었다.
스가 총리에게는 설명 의무를 다하지 않는 총리, 국민과 소통하지 못하는 총리라는 부정적 이미지가 굳혀졌다.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스가 전 총리는 막후의 실력자 니카이 자민당 간사장을 교체하는 것으로 리더십을 발휘하고 당내 반 스가 기류를 제압하여 총재 재임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역풍을 맞고 물러나게 되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알기 쉬운 설명과 활발한 SNS 소통으로 국민적 인기가 높았던 고노 다로가 주목을 받았으나, 당내 파벌 역학을 적극 활용한 기시다가 승리했다. 국민적 인기에 호응해서 적극적으로 전 정권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킨 고노에 대해, 아베를 배출하고 스가를 지원했던 당내 최대 파벌 호소다파가 견제에 나선 것이다.
호소다파는 아베와 이념적으로 가까운 다카이치 전 총무상을 지지했지만, 결선 투표에서는 기시다를 지지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발휘했다. 기시다는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전 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하면서, 당내 파벌 역학도 신경을 써야하는 난이도 높은 정국 운영에 나섰다. 먼저 자민당 인사와 내각 구성에 관심이 쏠렸다.
그 결과는 호소다파의 영향력이 확인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자신의 입지를 굳히는 묘수들이 곳곳에 배치된 인사였다.
자민당 간부 인사에서 주목할 점은, 간사장에 호소다파가 아닌 아마리 아키라(甘利明)를 기용하고 간사장 취임을 기대했을 다카이치를 정무조사회장에 비켜 앉힌 것이다. 그리고 호소다파 인사로는 후쿠다 다쓰오(福田達夫)라는 젊은 의원을 발탁해서 총무회장에 임명했다.
미묘한 것은 후쿠다는 호소다파이면서도 아베 등의 주류와 다른 계보를 잇는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후쿠다는 세습정치인이다. 그런데 후쿠다 가문의 정치인들은 아시아 중시 인물로 평가받고 있으며, 아베 가문과 다른 결을 보여준다.
내각 인사도 언뜻 아베, 스가 정권의 연장인 것처럼 보인다. 호소다파의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를 관방장관으로 임명하고, 모테기 외상, 기시 방위상 등 외교안보 라인은 전 정권의 인물을 유임시켰으며, 아베 총리의 분신과도 같은 하기우다 문부과학상을 경제산업상으로 다시 입각시킨 데에서 이런 모습이 확인된다.
그러나 여기서도 핵심 포스트인 마쓰노 관방장관은 호소다파이면서도 후쿠다 라인에 속하는 사람이다. 기시다 총재의 첫 작품인 당 간부 및 내각 인사는 호소다파를 배려하면서도 아베 전 총리의 영향력을 최소화하는 절묘한 인사였다. 당 간부 인사와 내각 명단을 받아 본 아베 전 총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는 후문이 있다.
총선거의 쟁점과 야당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와 중의원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가장 강조한 것은 '새로운 일본형 자본주의'였다. 이는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통해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진행된 양극화를 해소하여 일본 국민의 불안과 불만을 잠재워 보겠다는 것이다. 경제적 격차 문제를 들고 나올 것으로 보이는 야당의 전략을 선취한 것이자, 스가 정권과의 차별성을 드러내는 전략이었다.
이 분야는 기시다가 속한 고치카이(宏池会)의 본령이기도 하다. 주지의 사실이지만 아베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헌법개정을 밀어붙이다 1960년 안보로 분출한 국민적 저항으로 하야했다.
그 뒤를 이은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내각은 소득배증정책을 내걸고 일본을 정치의 계절로부터 경제의 계절로 이행시켰다. 이케다는 이후 '일본형 자본주의'라 일컬어지는 경제적 성공의 기틀을 놓은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이케다를 기원으로 한 고치카이의 영수로서 기시다는 '새로운 일본형 자본주의'에 그 영광 재현의 염원을 담았던 것이다.
쟁점을 선취당한 야당은 지리멸렬했다. 코로나19 대응 부실에 집중했던 전략도 먹히지 않았다. 상황이 급격히 개선되었던 것이다. 8월 중순 2만 5000명에 이르렀던 신규확진자는 10월 중순 이후 300명 안팎으로 줄어들어 있었다. 스가 총리가 그만둘 필요가 없지 않았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게다가 제1야당이던 입헌민주당이 야당공조를 했던 것이 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했다.
입헌민주당은 4개 소수정당과 함께 '야당공투' 전선을 만들어 후보를 단일화하는 전략으로 총선거에 임했다. 소선거구제에서 당연히 해볼만 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일본공산당과의 공투와 후보 단일화를 수용하지 못하는 전통적인 입헌민주당 지지자가 이탈했던 것이다.
일본에서 자민당에 반대하는 리버럴의 다수는 공산당 반대 세력이기도 하다. 특히 입헌민주당의 최대 지지 기반으로 최대 노조인 '렌고(連合, 일본노동조합총연합회)'가 반대하는 가운데 이를 밀어붙인 것이 결과적으로 실책이었다. 자민당의 과반 확보는 야당에 대한 실망이 표출된 것으로 어부지리의 승리였다고 할 수 있다.
기시다 내각과 한·일관계 개선 가능성
그럼에도 '야당공투'가 아니었으면 나오지 않았을 이변도 있었다. 아마리 간사장이 소선거구제에서 낙선한 것이다. 비록 비례대표로 부활하긴 했지만, 집권당 간사장이 낙선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가 입은 정치적 타격은 매우 컸고, 결국 간사장을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임으로 모테기 외상이 발탁되었다. 모테기 외상은 총리감으로 몸집을 불리게 되었다.
그 후임으로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전 문부과학상이 발탁되었다. 그는 기시다파(고치카이)의 제2인자로, 중국이나 한국 등 아시아에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그가 외상에 취임함으로써 강제동원,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을 둘러싸고 악화일로에 있는 한·일관계의 개선 가능성을 가늠해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성급한 기대는 금물이다. 무엇보다도 기시다 총리 자신이 그 동안 일본 정부가 견지해 온 공식적인 입장에서 한 발자국도 변할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즉 한국 정부가 먼저 '해답'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아베 내각 때 외상이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한 2015년 한·일합의 당사자이기도 하다는 점도 비관적인 전망을 거둘 수 없게 한다.
다만, 기시다 총리가 이전 총리와는 달리 '대화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일본이 강경일변도의 태도를 바꿔, 적어도 대화의 공간을 마련할 가능성은 없지 않다. 하야시가 외상에 취임함으로써 그 가능성은 조금 더 커졌다. 한국 정부는 이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
한 가지 더 기시다 총리와 그의 내각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다. 그가 히로시마를 지역구로 하는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주지하다시피 히로시마는 원폭 희생자들을 안고 있는 도시로, 전후 평화주의를 상징한다. 매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의 날에는 총리가 방문해서 국민에 대한 인사를 통해 평화를 다짐하곤 한다. 이 자리에서는 아베 총리와 스가 총리조차도 비핵 3원칙을 준수하며, 핵무기 없는 세계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확인했다.
기시다는 자민당 정치인 가운데 일본의 비핵평화의 가치에 가장 충실한 사람이다. 미국의 핵우산에 기댈 수밖에 없는 입장에서 당장 핵무기금지조약에 가맹하기는 어려워도 기시다 총리는 그 어느 총리보다도 비핵평화주의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 왔다.
그가 불리한 가운데 펼쳐진 총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는 점은, 그 자신이 스스로 입지를 확보하고 색깔을 내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일본의 전향적인 자세를 이끌어내려면 아베, 스가 전 총리와 결이 다른 기시다 총리의 이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거사를 '돌파'하면 미래를 얻는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과거사 문제에서 '돌파'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서는 기시다 총리가 일본군'위안부' 합의의 당사자라는 점을 거꾸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기시다 내각에 '위안부' 부정론자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역전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이들은 '위안부'의 존재를 인정하고, 일본군의 관여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합의를 '내심' 부정하는 사람들이다. 한국 정부에 의해 '사문화'되고 있는 상황을 '은근히' 반기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합의 이행을 위해 마치 일본에는 아무 책임이 없고, 한국에만 책임이 있는 것처럼 몰아세우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고노 담화'의 사문화에도 앞장서 온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아베 정권에서조차도 '고노 담화' 계승 입장을 번복하지 못하고 있다. 기시다 정부를 상대로, '고노 담화'에 입각해서 2015년 합의의 한계를 보완하고, 합의의 기본 정신에 입각해서 일본 정부가 회피하는 책임을 이행하게 한다면, 이들은 자신의 신념에 반하더라도 내각 구성원으로서 이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위안부' 부정론의 근거지에 큰 타격을 입히는 일이 될 것이다.
일본군'위안부' 합의 내용을 잘 뜯어보면, 우리가 역전의 지렛대를 세울 만한 지점이 있다. 기시다 총리가, 자신이 외상으로서 밝혔던 '일본의 책임인정과 사죄 반성'을 계승한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그 뜻을 피해자들에게 전달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른바 제3의 해법으로의 길이 열릴 수 있다.
한·일관계는 대전환의 입구에 서 있다. 미·중 전략경쟁은 물론, 감염병 대유행, 저출생 고령화, 기후변화 위기 등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는 날로 늘어나고 있다. 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대전환의 전선이 지방, 여성, 청소년들이다. 여기에 미래가 있다.
'과거사'에 묶여 있는 한일관계를 풀고 이 지역의 미래를 열어갈 책무가 한국과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에게 있다. '과거사' 문제도 '미래' 문제도 시간과의 싸움이 되었다. 먼저 움직이는 자(first mover)가 미래를 차지한다. 우리 정부가 용기와 지혜를 발휘해 주기를 바란다. 임기에 관계없이 이 정부가 해결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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