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000쪽이 넘는, 스웨덴 전 총리 울로프 팔메의 전기가 나왔다. 헨리크 베리그렌의 <울로프 팔메: 우리 앞에 펼쳐진 멋진 나날>(조행복 옮김, 아카넷, 2021)이다. 협소한 한국 출판 시장에서 40여 년 전 사망한 다른 나라 정치가, 그것도 미국이나 여타 주요 강대국 중 하나가 아닌 나라 정치가의 장대하고 상세한 전기가 나오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그런 일이 일어났다.
팔메가 그렇게나 대단한 인물인가? 약간의 정보만 놓고 봐도, '그렇다'고 답할만하다. 우선 스웨덴 같이 평화로운 나라에서 현직 총리가 암살로 돌연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극적이다. 더구나 암살의 배후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암살범 후보 중에는 스웨덴 내 극우파뿐만 아니라 남아프리카공화국 백인 인종주의자들까지 있다.
왜 하필 머나먼 아프리카의 반동 세력이 암살자로 지목되는가? 이것은 팔메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스웨덴인 가운데 한 사람인 또 다른 이유와 관련된다. 1960년대에 팔메에게 국제적인 명성(혹은 악명)을 안겨준 한 장의 사진이 있다. 1968년 2월 21일에 미국의 베트남 개입에 항의하는 횃불 행진에 참여한 교육부장관 팔메의 모습이다. 이 자리에 북베트남 대사까지 참석해 팔메와 나란히 서는 바람에 한때 미국 정부와 스웨덴 사회민주당 정부 사이에는 차디찬 북극 바람이 불었다.
이것은 그저 예외적인 일화만은 아니다. 팔메는 정치가로 활동하는 내내 남반구(당시는 주로 '제3세계'라 불린) 해방운동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였다. 그래서 사회민주당 정부를 격렬히 비판하는 신좌파 청년들과 함께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행진에 참여하는가 하면, 총리로 재직하면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에 맞서는 국제 여론전에 앞장섰다. 그의 암살을 놓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거론되는 이유다.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팔메가 왜 지금껏 전 세계적으로 주목과 기억의 대상이 되는지 일정하게 설명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사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가 배출한 위대한 정치가들을 놓고 따지면, 팔메 홀로 우뚝 서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스웨덴 현대사에서 가장 궁금해 할 복지국가 건설 과정에서는 팔메보다 더 주목받아야 할 이들이 수두룩하다.
예를 들어, 사회민주당의 아버지 격인 얄마르 브란팅이 있고, 대공황 와중에 복지국가 건설에 처음 시동을 건 페르 알빈 한손이 있는가 하면, 팔메 직전에 23년간이나 총리를 지내며 복지국가 전성기를 이끈 타게 엘란데르가 있다. 그런데도 이들은 한국어 전기는커녕 이름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반면에 팔메는 이번에 번역된 책을 비롯해 전기가 벌써 2종이 나와 있다.
이것은 그저 심각한 지적 불균형 상태의 결과일 뿐인가, 아니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가? 걸출한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자들 가운데에서도 유독 팔메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까지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며 지금도 회자되는 까닭은 과연 무엇인가?
전기만은 아닌, 스웨덴 현대사이자 사회민주주의사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도 우선 <울로프 팔메>를 용기 내어 펴봐야 한다. 한데 많은 이들이 책의 서두에서 고개를 갸우뚱할지 모른다. 팔메 집안 이야기가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자세하고 길게 나오기 때문이다. 팔메는 '좌파' 정치가였지만, 좌파 정치가 상당수가 그랬던 것처럼 부르주아 계급 출신이었다. 그것도, 한국이라면 '재벌' 범주에 들 수 있을 대자본가 가문 태생이었다. 책은 100쪽에 걸쳐 이 집안의 사연을 풀어놓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울로프 팔메>는 그저 일반적인 전기가 아니다. 팔메 개인만이 주인공이 아니다. 스웨덴 산업자본주의의 청년기를 흥미롭게 풀어놓으며, 사회민주당의 역사를 상세히 소개한다. 팔메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동료 사회민주주의자들뿐만 아니라 그의 스승 격인 역사적 인물들(대표적으로 엘란데르)에게도 상당한 지면을 할애한다. 더 나아가서는 왼쪽(공산당, 신좌파)과 오른쪽(우파 정당들)에서 사회민주주의를 공격한 인물들도 거의 주연급으로 출연한다.
말하자면 <울로프 팔메>는 팔메의 전기이면서 동시에 20세기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이고, 더 넓게는 지난 세기에 이 나라 전체의 정치, 경제, 문화가 어떻게 전개됐는지 살펴볼 수 있는 스웨덴 현대사이다. 팔메 집안 내력에 관한 소상한 소개도 이런 총체적 서술의 일환이다. 그래서 지극히 부담스러운 분량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감히 추천 도서 목록에 올려본다. 특히 스웨덴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 노동운동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필독서다.
물론 이런 종류의 책이 늘 그렇듯이, 어떤 독자들에게는 저자의 정치적 입장이 눈에 거슬릴 수도 있다. 저자 베리그렌은 아마도 사회민주당 안의 급진파보다는 현실파에 공감하는 것 같으며, 그래서인지 신자유주의에 맞서려 한 몇몇 급진적 기획(가령 루돌프 메이드네르의 임노동자기금 방안)을 다룰 때는 필치가 다분히 냉소적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추천을 꺼릴 이유는 되지 못한다. 저자의 시각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조차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이다. 팔메가 핵발전소를 별 고민 없이 지지하다 이 때문에 총선에서 패해 반세기에 걸친 사회민주당 장기 집권을 끝내는 과정도, 임노동자기금 안을 둘러싸고 노동조합운동과 사회민주당 안에서 격론이 벌어지고 실은 메이드네르의 안에 전혀 동의하지 않았던 팔메가 이 논쟁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과정도 모두 이 책이 아니면 접하기 힘든 생생한 역사적 경험이다. 마치 참여자인 듯 이런 장면들 속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천 쪽짜리 책의 완독에 도전할만하다.
단점이라면, 팔메의 삶에 배경을 이루는 대하(大河)를 포착하느라 막상 총리 팔메의 활약은 책의 마지막 1/3 쯤에 집중돼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외관상의 단점일 뿐이다. 책 전체의 1/3이라 해도 300쪽이 넘기에 그 시기의 서술이 결코 소략하지는 않다.
그리고 이 부분에 밀도 있게 기술된 사건과 쟁점들을 통해 우리는 팔메의 정치 역정이 21세기 지구인에게 여전히 의미 있는 이유를 향해 한 발 더 다가가게 된다. 도대체 어떤 사건들이, 어떤 쟁점들이 있는가? 위에 이미 언급한 핵발전소 논란이 있고, 1980년대 초의 경제 위기에 대응하며 스웨덴 사회민주당 안에서도 바람을 타기 시작한 시장주의 흐름이 있다(팔메는 이를 수용하기도 했고, 긴장 관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나는 두 가지에 주목했다. 하나는 팔메 총리의 쿠바 방문으로 상징되는 남반구 민중과의 연대이고, 다른 하나는 임노동자 기금 논란이다.
복지국가를 넘어 나아가야 했던 시대, 사회민주주의의 조타수
복지국가가 정점에 도달한 1960년대부터 스웨덴 안에서는 복지국가를 '넘어서야 한다'는 논의가 대두했다. 사회민주당의 왼쪽과 오른쪽에서 사회민주당의 성과를 부정하며 복지국가를 흔드는 흐름도 강력히 등장했지만, 사회민주주의 안에서 복지국가를 더욱 굳건히 하면서 그 다음 단계 과제로 넘어가야 한다고 외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래야만 기왕의 복지국가조차 무너지지 않고 더욱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회민주주의 안에서 출현한 '복지국가를 넘어서자'는 흐름은 크게 두 방향으로 나타났다. 한 방향은 군나르 뮈르달의 1960년 저작 <복지국가를 넘어(Beyond the Welfare State)>(1960년)에 명쾌히 정리돼 있다. 뮈르달은 <울로프 팔메>에서는 마오주의자로서 부모 세대의 성취를 신랄히 비판한 아들 얀 뮈르달 탓에 다소 희화화돼 있다. 하지만 그는 사회민주당 전성기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스웨덴이 자랑하는 경제학자였다.
<복지국가를 넘어>에서 뮈르달이 제시한 복지국가 건설 이후의 방향은 일국적 개혁을 넘어 전 지구적 개혁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스웨덴처럼 작은 수출중심국가 안에서 민주적인 혼합경제체제를 유지하려면 주요 산업국가들 사이의 경제 협력과 거시경제정책 조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스웨덴 같은 나라에 등장한 일국적 경제계획을 국제적인 경제계획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뮈르달은 발전된 산업국가들의 협력만을 강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북반구와 남반구 사이의 새로운 관계였다. 뮈르달은 사회민주주의 세력이 국내에 관철시킨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옛 제국주의 국가들과 옛 식민지 국가들 사이에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지 않으면 전 지구적 불평등이 복지국가라는 요새들을 위협하리라는 것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이민-난민 문제를 통해 뮈르달의 예언이 실현되는 묵시록적 장면을 목격하고 있다.
한편 '복지국가를 넘어서자'는 흐름에는 이와는 방향이 다른 시도도 있었다. 그것이 다름 아닌 메이드네르의 임노동자기금 방안이었다. 뮈르달이 일국적 사회민주주의를 넘어서는 초국적 지향을 제기했다면, 메이드네르의 임노동자기금 안은 분배 영역의 민주화를 넘어 생산 영역의 민주화로 나아가자는 구상이었다. 사회민주주의가 사회주의의 본령인 기존 생산 관계의 변혁을 다시 당면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결코 과거 교의의 집착만은 아니었다. 절박한 현실적 근거가 있었다. 생산 영역에서 계속 자본가 독재가 관철되는 한, 분배 영역을 비롯해 사회 전체에는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지닌 특수계급, 즉 자본가 계급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복지국가 같은 양보 조치를 언제든 회수할 수 있으며, 노동계급에게 공세를 재개할 수 있다. 실제로 1980년대 이후 이런 일이 스웨덴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다. 임노동자기금 안은 이런 가능성을 미리 막고 전혀 다른 미래를 열려던 진지한 시도였다.
팔메는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안에서 바로 이런 문제의식과 구상들이 대두하던 시기에 사회민주당을 책임지던 조타수였다. 그리고 지금 돌이켜 보면, 비록 '복지국가를 넘어서자'는 전망의 두 방향 중 어느 하나도 만족스럽게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두 지향이 반영된 구체적 정책들의 집행자 역할을 마다하지는 않았다.
남반구의 해방적 흐름과 연대하려 한 팔메의 노력은 이를테면 뮈르달식 지향의 조심스러운 실천이었다. 또한 그는 좌파-노동 진영이 임노동자기금 안에 합의하자 우파-자본 진영의 격렬한 반발에 맞서며 이를 입법화했다. 팔메는 어쨌든 성실한 조타수였다.
1986년 2월 28일에 멈춰 버린 현대 정치의 시계
물론 베리그렌의 문장들이 전하듯이, 팔메는 확신을 갖고 당대의 가장 급진적인 비전을 밀어붙인 지도자는 아니었다. 복지국가의 방향 전환을 모색하던 그의 정치는 1930년대에 복지국가 시대를 처음 연 페르 알빈 한손 같은 선배들만큼은 성공하지 못했다. 이 점에서 그 또한 후세대가 '넘어서야' 할 인물이다.
그러나 팔메는 적어도 그의 사후에 사회민주주의 진영을 평정한 지도자 유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또한 동시대의 대다수 사회민주주의 정치가들과도 다른 점이 있었다. 그는 프랑수아 미테랑처럼 자기가 국유화한 기업들을 다시 사유화하지도 않았고, 해럴드 윌슨처럼 자기 당의 급진적 정책에 동의하지 못한다 하여 밀실정치를 통해 이를 무력화시키지도 않았다. 게다가 토니 블레어 같은 후배 정치인들이라면 임노동자기금 안 같은 구상이 등장하기 전에 이런 주장을 꺼낼만한 사람들을 이미 당에서 청소했을 것이다.
팔메는 나름대로 한계와 모순을 짊어진 정치가였지만, 그가 떠난 뒤에 사회민주주의 진영은, 혹은 인류는 그에 근접한 정치가조차 경험해보지 못했다. 적어도 집권까지 한 정치가들 가운데에서는 말이다.
1986년 2월 28일, 현대 정치의 시계는 멈춰 버렸다. 그날 돌연 우리 곁을 떠난 사람(팔메)은 정치가 문명을 앞에서 이끌던 시대의 마지막 증거가 되어 버렸다. 그러고 나서 4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세월을 이제 우리는 어떻게 벌충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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