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서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법안 논의가 이제야 진행 중이다. 작년 하반기, 정부가 그린뉴딜과 탄소중립을 천명하였고 국회는 9월에 결의문을 통해서 기후위기 비상상황을 선언하였다. 8월에 일찍 법안을 발의한 정의당을 시작으로, 작년 말에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도 관련 법안을 여러 개 발의하였다. 민주당 측에서는 올해 2월까지는 이 법안들을 처리하여 탄소중립을 법제도적으로 뒷받침하겠다고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 법안들을 제쳐두고, 부산 재보궐 선거를 앞두고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만을 서둘러 처리했을 뿐이다. 비상상황이라고 아무리 천명하더라도, 선거를 앞둔 보수정당들에 기후위기는 언제든 무시해버릴 대상이라는 '진실'을 새삼 확인했다. 국회가 결의문에서 약속한 기후위기특별위원회 설치 논의도 시작되지 않았다. 그 탓에 법안 심의는 기존의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그나마 정무위원회에 발의된 관련 법안을 환경노동위원회로 이관하여 논의하기로 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상황이다.
현재까지 7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되어 있고, 정부는 이를 종합한 대안 법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법안들에는 수많은 쟁점이 놓여 있지만, 정부여당이 터무니없이 서두르고 있어서 충분한 논의 없이 날림 통과가 걱정된다. 5월말 P4G 회의 개최에 맞춰 법적 기반 없이 탄소중립위원회를 출범시킨 후에, 사후적으로 법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서둘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 대응법이 필요하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온 입장이지만, 이렇게 날림으로 법안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먼저 불거진 쟁점은 이명박 정부 때에 만든 '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이하, 녹색성장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령을 만들 것이냐, 말 것이냐다다. 국민의힘 소속 법안심사소위 위원장, 임이자 의원은 녹색성장법을 개정해도 탄소중립 추진의 법적 기반으로 충분하다고 고집하고 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하고서도 석탄발전소를 새로 짓는 모순적인 행동을 한 정부가 내세운 '녹색성장'을 되살리자는 주장에 많은 이들이 황당해하고 있다. 정부여당은 국민의힘의 고집에 밀려 '탄소중립 녹색성장법'이라는 대안을 제시해놓고 있다. 이런 타협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민주당은 '녹색성장'을 거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좀 긴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뒤에서 다시 짚어보겠다.
다음으로 부각된 쟁점은 2030년 감축목표(NDC)를 얼마로 정할 것인지, 또 그것을 법에 명시할 것인지에 있다. 대통령이 여러 번 NDC를 상향하겠다고 국제사회에 공언했고,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2017년 대비) 40% 내외의 감축목표를, 그리고 홍정기 환경부 차관은 2018년 대비 37.5% 감축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정의당과 기후위기 비상행동은 2010년 대비 50% 이상 감축을, 청소년기후행동은 2017년 대비 70% 감축을 요구하고 있다. 이런 차이는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기후정의 관점에서 한국이 져야 할 책임이 어느 정도인가를 둘러싼 논쟁을 불러온다. 송영길 대표와 홍정기 차관의 발언은 IPCC 전지구적 감축 권고치(2010년 대비 45% 감축)에도 부합하지 않을뿐더러, 기후정의 원칙을 감안한 청소년기후행동의 요구와도 거리가 한참 멀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민주적 토론보다는 기술관료적 결정을 더 선호하고 있는데, 관료들이 쉽게 주무를 수 있는 시행령에 감축목표치를 담자고 제안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은근슬쩍 시행령을 바꿔서 후퇴시켰던 역사를 쉽게 잊을 수 없다. 아직껏 아무런 해명과 사과도 없다.
이외에도 잘 부각되지 않았지만 짚어야 할 쟁점은 너무 많다. 특히 ‘탄소중립’ 목표 및 흡수원의 활용에 대해 엄격한 토론이 필요하다. 2050년 탄소중립은 여야가 이견이 없지만, 기후정의의 관점에서는 잘못되었다.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대신 흡수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접근은 화석연료 채굴과 이용 금지 목표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또한 탄소환원주의 아래 숲과 나무를 단순히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는 흡수원으로만 간주하는 경향을 강화한다(산림청의 30억 그루 사업을 상기하라). 무엇보다도 위험하고 효과성도 의심되는 탄소포집이용저장(CCUS) 기술을 정당화한다. 정부의 탄소중립 전략과 시나리오, 그리고 대안 법안에도 CCUS가 상당한 비중으로 포함되고 있다. 비상행동이 제안한 기후정의법안은 배출제로와 탄소중립을 구분하고 있고, 화석연료 사용을 중지하는 탄소제로를 원칙으로 하되, 제한적인 수준에서 국내의 숲에 대한 흡수원만을 인정할 것을 제안했다. 하지만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탈탄소 전환을 추진하면서 버려야 할 에너지원으로 화석연료 이외에도 핵에너지를 명확히 포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의 탈핵 정책을 지속적으로 방해하였던 국민의힘, 그리고 그 후보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윤석열 씨는 핵발전을 기후위기 대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기후선진국들은 EU에서 핵발전은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을 뿐더러, 국내 기후위기 비상행동 역시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반대로 지향해야 할 에너지원으로 신에너지를 제외한 재생에너지임을 분명히 해서 혼란을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석탄에 기반을 두고 있는 IGCC(석탄가스화복합발전)이나 천연가스를 개질해서 얻는 수소(소위 그레이수소)를 제외해야 한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에너지를 기후위기 대응 법안에 담을 수 있다는 발상은 그 기술을 둘러싼 기존 이해관계가 얼마나 강고한지 보여준다. 분쇄해야 한다.
다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녹색성장 프레임에서 벗어날 것이냐다. 필자는 지난 1월에 칼럼을 쓰면서 논의중인 기후위기 대응법은 "'탈탄소경제법'이 아니라 '기후정의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기사 바로 보기). 긴박한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은 경제성장에 대한 집착 속에서 기업들을 해결 주체로 삼아 보호하고 지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후위기의 책임이 적지만 그로 인해 피해를 떠안고 있는 민중들을 해결 주체로 세워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는 방식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늑장인 기후위기 대응법안 논의는 새로운 길을 거부하고 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들이 애초 녹색성장기본법에 토대를 둔 것이어서 녹색성장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다. 민주당에서조차 이명박에 의해서 녹색성장 개념이 오염되었을 뿐,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개념이라는 옹호가 나오고 있다. 야당 시절 녹색성장 비판은 당시 정권에 대한 반대였을 뿐, 새로운 길을 열기 위한 노력이 아니었던 셈이다. 여전히 기업은 보호하고 육성하여 기후위기를 해결하겠다는 지배적인 접근 위에 기후정의니 정의로운전환이니 하는 유행하는 장식품만을 올려두고 있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법안인 이소영 의원안의 경우, "탈탄소경제의 실현"이라는 장을 두고 "국가경제의 건성성과 경쟁력을 강화하고 성장잠재력이 큰 새로운 탈탄소산업을 발굴․육성"하기 위해 9개 조항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업들의 탄소배출량, 감축실적 및 감축계획의 공개등과 같은 기업이 부담으로 느낄 만한 내용이나 일자리 창출과 같은 사회적 관심사도 언급되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기업들이 반길만한 선물들로 가득차 있다. 몇 가지만 꼽아보면 아래와 같다.
탈탄소기술 연구개발 및 사업화 등의 촉진을 위한 금융지원(51조), 탈탄소경제 및 탈탄소산업 지원을 위한 재원의 조성 및 자원 지금, 기반시설 구축 사업에 대한 민간투자 활성화(52조), 탈탄소기술․탈탄소산업에 대한 보조금 지급, 우선적인 신용보증 혹은 보증조건의 우대, 소득세․법인세․취득세․재산세․등록세 등의 감면, 고충을 조사하고 불합리한 규제 등의 시정(53조), 집적지 및 단지 조성, 그 소요 비용의 전부 및 일부를 출연(55조), 자산가치 하락의 위험이 있는 기업의 조기 전환 지원(57조)
당연한 이야기지만, 국민의힘의 법안에도 들어가 있는 조항들이다. 정부 대안 법안에서도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런 조항을 통해서 그동안 온실가스를 거대하게 배출해오던 기업들은 친환경 기업들로 전환할 것을 약속하고 막대한 정부 지원을 얻고 기존의 막강한 권력을 계속 유지하게 될 것이다. 온실가스는 줄일지 모르지만 사회적 불평등은 여전한 세상이 예고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미래가 아니다.
반면에 기후행동과 정의당이 제안하고 있는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묻는 조항은 거부했다. 즉, 대안 법안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정책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기후위기 피해와 손실에 대해 보상해야 할 책임을 가진다"와 "온실가스 배출로 인한 기후위기의 책임을 지닌 사업주는 기후위기에 따른 피해와 손실에 대해 보상해야 할 책임을 가진다"는 문구는 거부되었다. 환경부는 책무규정에는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내용인 손실보상은 담을 수 없다는 법리적인 이유를 제시하고, 정의로운 전환을 통한 포괄적 지원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의로운 전환 요구는 민중들의 권리일 뿐, 정부와 기업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과는 별개다. 행동하지 않아서 위기를 유발하고 가속화한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선물을 잔뜩 안겨다 주는 법은 기후정의법이 아니다. 또 기후위기를 벗어날 과감한 온실가스 감축도 불가능해진다.
제대로 기후위기를 대응할 수 있는 법이 아니라면, 하는 척하는 것이 더 위험하다. 게다가 잘못된 해결책을 담고 있는 법이라면 차라리 만들지 않는 것이 낫다. 기후정의법이 아니라면 그만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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