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정치인 이준석 씨가 제1야당의 대표 선거에 출마했고 당 대표로 선출되는 대기록을 세웠다. 최근 수년 동안, 정당의 행사가 이렇게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적은 없었다. 반면, 그 직전에 치러진 민주당 대표 선거는 있는 듯 없는 듯 지나갔다. 여기에 관심을 가진 국민은 거의 없었다. 왜 그런지, 그 이유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만약 제1야당의 당 대표 선거에서 본선에 올랐던 5명의 후보 중 이준석 씨를 제외한 4명의 다선 정치인들만으로 경선이 치러졌다면 어땠을까? 국민적 관심을 끌지 못했을 것이고, 변화의 희망도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민주당은 어떨까? 180석에 가까운 막강한 여당이지만, 국민적 관심에서 더욱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진심으로 민주당을 걱정하고 있다.
내가 민주당을 걱정하는 이유
민주당은 역사가 깊다. 50년 만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김대중 정부 때만 해도 민주당은 중도보수 성향의 자유주의 정당이었다. 이 부분은 대체로 정치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라 하겠다. 이후 노무현 정부 시기의 민주당은 여기에 진보 성향을 더했다. 그러므로 당시의 민주당은 중도보수와 중도진보 성향이 공존하는 자유주의 정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의 말기에 이르자 신자유주의 바람이 전국을 강타했다. 이명박 씨가 당시 정치적 조류의 최대 수혜자로 등장했고, 2007년 12월 대선에서 압승을 거두었다. 이후 민주당은 존재감이 미미해졌고, 2008년 4월 총선에서 처참하게 패배하면서 겨우 81석을 얻는 데 그쳤다.
2008년 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당시 야당(민주당과 진보야당)과 진보적 시민사회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2007년 10월말 사단법인으로 공식 활동을 시작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공동대표와 운영위원장으로서 보편적 복지와 복지국가 담론을 정치사회적으로 공론화해야 했다. 이후 2년 넘는 기간 동안 시민사회를 근거지로 삼아 최선의 노력을 다했고, 마침내 2010년 3월 15일 기회가 찾아왔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주최한 <복지국가 대국민 제안대회>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 행사를 계기로 사실상 범야권 정당과 시민사회는 보편적 복지국가 담론을 중심으로 힘을 모으기로 했다.
때마침 2010년 봄, 경기도에서 불거진 무상급식 논란이 보편적 무상급식과 선별적 무상급식 논쟁으로 정립되면서 보편적 복지 이슈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했다. 그리고 그해 6월 2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보편적 복지를 앞세운 민주진보 정당의 후보들이 예상외로 약진했다. 당시의 당세에 비하면, 지방선거의 결과는 큰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되었다. 정치적 교두보가 확보된 셈이었다. 그리고 그해(2010년) 10월 3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보편적 복지가 민주당의 강령에 삽입되었다. 이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노력이 정치적 결실을 맺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보편적 복지가 민주당의 강령에 삽입된 일은 정당 정치의 역사에서 거대한 쾌거가 아닐 수 없었다. 이를 기점으로 중도보수 성향의 자유주의 정당인 민주당이 진보적 자유주의 정당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중심에 서고 시민사회에서 함께 이루어낸 복지국가 시민운동의 성과가 정당 정치에 그대로 수용된 것인데, 이를 통해 보편적 복지국가 정책들이 법률과 제도로 구체화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했다. 나는 진심으로 이를 계기 삼아 보편적 복지국가 정치 시대가 활짝 열리길 기대했다.
2016년 겨울과 2017년 봄까지 계속된 적폐 청산 요구에 담긴 촛불시민들의 열망은 본질적으로 보편적 복지국가 정치 시대였다. 그래서 포용적 복지국가를 내건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정치적·경제적 적폐의 청산은 바로 국민행복의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로 이어질 것이었다. 합리적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촛불시민들이 품었던 그때의 기대와 열망은 여전히 미완성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복지국가 건설의 속도와 성과가 기대치에 미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편적 복지국가의 성숙하고 완전한 건설을 위해 우리가 가야할 길은 여전히 멀고, 우리나라의 유독 심각한 저출생·고령화의 조건이 우리들로 하여금 보편적 복지국가를 향한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게 치러졌던 지난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가까스로 당선된 송영길 대표는 최근 요란하게 민주당의 보편적 복지국가 정체성을 흔들어놓고 있다. 나는 지금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 송영길 대표가 이끌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은 2010년 10월 3일 전당대회에서 보편적 복지를 당헌에 명시한 바로 그 민주당의 맥락을 그대로 이은 정당이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정당이다. 당의 강령 전문에는 보편적 복지국가 정신(혁신적 포용국가)이 구체적으로 기술돼 있고, 당의 강령 제8조(복지)에는 보편적 복지를 바탕으로 포용적 복지국가 체제를 수립한다고 규정돼 있다. 그리고 당헌 제2조(목적)에도 "포용적 복지국가 구현"이 기술돼 있다.
민주당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라도 이 점을 부인해선 안 되며, 이런 정체성을 흔들어서도 안 된다. 그런데 최근 송영길 대표는 종부세 감세를 단행했다. 또 보편적 복지에 반하는 기본소득 방식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보편적 복지 원리와 충돌하는 기본소득에 대해 당내 토론을 전혀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이는 민주당의 강령과 당헌에 나타난 보편적 복지국가 정신을 구현해야 할 당 대표의 책무를 망각한 것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민주당의 앞날이 걱정이다.
종부세 감세는 보편적 복지국가의 길을 역행한다
6월 18일, 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표결로 종합부동산세 완화 방안을 확정했다. 올해 11월 고지서가 나가는 1주택자 종부세 납부 대상을 얼마나 축소할 지가 주된 쟁점이었는데, 민주당 지도부는 1주택자 종부세 부과 대상 주택을 공시가격 9억 원 초과에서 상위 2%로 바꾸는 방안을 내놨고, 많은 의원들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끝내 관철시켰다. 올해 종부세 부과 대상 주택은 57만 가구로 전체 주택의 3.1%인데, 민주당은 이것을 상위 2%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이는 명백한 부자 감세다.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정책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의 종부세 상위 2% 부과 방안이 다음 달 국회를 통과할 경우, 시가 기준 16억 원 이하의 주택을 보유한 1주택자들은 수혜를 보게 된다. 종부세 면제 기준선이 공시가 9억 원 이하에서 11억 원 이하로 오르면서 시가 기준의 면제 대상도 약 13억 원 이하에서 16억 원 이하로 확대됐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보유세율은 세계적 기준에서 볼 때 낮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종부세는 이 부분을 누진적으로 보완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종부세와 관련해서 작년과 올해의 달라진 점은 집값이 크게 올랐다는 것인데, 이로 인해 세금을 추가로 내게 되는 것은 상식적으로 당연한 일이다. 당장 세금을 낼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에는 세금의 납부 시점을 유예하면 된다. 그런데 송영길 대표의 민주당 지도부는 집값 상위 3.1%에 속한 일부 부자들(시가 16억 원 주택 소유자까지)의 세금(종부세)을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머지의 주택 소유자들과 무주택자들의 원성이 민주당 지도부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모양이다. 이래 놓고도 선거에서 중산층과 서민들에게 표를 몰아달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내가 송영길 대표를 비판하는 것은 그가 부자 감세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이번 조치는 명백한 부자 감세다. 민주당의 강령과 당헌에 직·간접적으로 규정된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려면 많은 재원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국내총생산(GDP)의 20%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25%이다. 우리나라가 OECD 평균 수준의 복지국가를 만들려면 연간 100조 원의 증세를 해야 한다. 저출생·고령화 추세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5년 이내에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갈 길은 멀고, 발걸음을 재촉해야 할 때임에도 송영길 대표의 민주당 지도부는 감세를 선택했다. 부자 감세를 단행했으니, 이제 서민 감세도 거론할 개연성이 크다. 이런 반동적 사실을 역사의 노트에 반드시 기록하게 하고, 복지국가의 길을 역행한 정치인들에게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보편적 복지 원리에 어긋난다
송영길 대표의 민주당 지도부는 줄곧 기본소득 방식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을 주장했다. 가령, 전 국민에게 1인당 30만 원씩을 지급하자는 식이다. 이 방식은 재난지원금 지급에서 무차별적·획일적 기본소득 원리를 적용한 것인데, 부자든 빈자든, 고소득자든 저소득자든, 취업자든 실업자든 누구나 똑같은 금액(30만 원)을 받게 된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의 이런 무차별성과 획일성은 공정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난다. 기본소득 방식의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소득재분배의 복지 효과와 소비 진작의 경제 효과가 보편적 복지 방식의 필요 맞춤형 선별적 재난지원금에 비해 모두 열등하다. 한정된 정부의 재정을 지출할 때는 반드시 효과·효율성을 따져야 한다.
그렇다고 재정 지출의 크기를 제약해선 안 된다. 적극적 재정 정책을 구사하되, 최대한 재정 지출의 효과·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반드시 민주당의 강령과 당헌에 직·간접적으로 규정된 보편적 복지 원리를 따라야만 한다. 여기서 보편적 복지 원리는 누구라도 사회적 위험과 복지의 필요에 상응하는 충분한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가령, 큰 사회적 위험에 처했거나 복지 필요가 큰 가구에게는 많은 지원을 하고, 필요가 작은 가구에게는 적은 지원을 하고, 필요가 없는 가구에게는 지원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보편적 복지 원리라 하겠다. 그러므로 송영길 대표의 민주당이 필요의 크기를 무시하고 모두에게 똑같이 현금을 배분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보편적 복지 원리를 거부하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민주당이 정부와 협의해서 얻어낸 최대의 재난지원금 예산이 15조 원이라고 가정하면, 이것을 기본소득 방식으로 전 국민에게 30만 원씩 지급하자는 것이 지금 민주당 지도부의 주장이다. 이는 기본소득의 무차별주의 또는 획일주의에 해당한다. 이와 달리, 나는 보편적 복지 방식으로 15조 원을 집행하길 희망한다. 가령, 소득하위 30% 계층에게는 30만 원이 아니라 60∼75만 원을 지급하고, 그 위의 20%(소득 30∼50%)에게는 40만 원을 지급하고, 또 그 위의 20%(소득 50∼70%)에게는 20만 원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다만, 소득상위 30%에게는 현금을 지급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필요 맞춤형 선별 지원인데, 보편적 복지 원리에 잘 부합하는 재원 배분 방식이다. 보편적 복지의 주창자로서 나는 민주당 지도부가 당의 강령과 당헌에 명시된 보편적 복지 원리를 따를 것을 요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 지도부가 거역하려는 당헌과 강령의 보편적 복지 원리를 정부의 재정 당국이 견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는 민주당이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정부는 올해의 두 번째 추가경정예산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재난지원금 지급에서 소득상위 30%는 제외하고, 대신에 신용카드 캐시백 혜택은 모두에게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나는 정부의 뜻이 관철되길 희망한다. 그것이 공정할 뿐만 아니라 정의의 원칙에 부합하는 길이고, 게다가 송영길 대표의 민주당 지도부가 자당의 당헌과 강령에 규정된 보편적 복지 원칙을 지키도록 강제하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어이없는 말이 나온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을 소득하위 70%로 제한하자는 정부 입장에 대해 "합리적 근거 없이 고소득자를 이중 차별하는 것"이라며 반대 의견을 냈다. 이재명 지사는 한정된 정부 재정을 지출할 때 견지해야 할 최소한의 원칙마저 저버리고, 전 세계의 어디에도 없는 엉뚱한 기본소득 논리를 펴고 있다. 아마도 자신이 행한 경기도의 '전 도민 10만 원' 짜리 무차별적·획일적 재난지원금의 늪으로 이 나라를 통째로 끌어다 넣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한, 이 지사의 뜻대로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기본소득 토론의 장을 열라
더불어민주당은 당의 강령과 당헌에서 내용적으로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을 추구하는 정당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런데 유력 대선 후보인 이재명 지사가 들고 나온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둘 다를 채택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작동 원리가 다르고, 한정된 재정을 놓고 경합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면 보편적 복지국가는 폐지하는 것이 옳다. 북유럽 식의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려면 기본소득을 배척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은 아무런 대책도 고민하지 않고 있다.
정당의 노선과 정책 방향을 놓고 내부에서 충돌이 벌어지고 있다면, 당연히 정당 차원에서 치열한 토론을 통해 총 노선을 확실하게 설정해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 지도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다. 사실상 아무 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노선을 민주당이 수용하는 것 같은 모양새마저 엿보인다. 만약, 극단적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당내에 집단적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주도적 정치 세력이 되고자 한다면, 민주당 지도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대로 방치할 것인지, 민주당의 강령과 당헌이 정하는 바에 따라 단호하게 토론하고 대처할 것인지,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동일한 잣대를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에도 갖다 대야 할 것이다. 나는 민주당의 노선으로 기본소득이 옳은지, 보편적 복지국가가 옳은지, 치열하게 토론하자고 지금 민주당 지도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기본소득 토론의 장을 열지 않으면, 이는 결과적으로 당원들을 속이는 일이 된다. 뿐만 아니라 집권 여당이 국민을 속이는 일도 된다. 정당은 합의된 총 노선에 따라 정권을 잡으려는 사람들의 조직적 결사체다. 그런데 민주당은 기존의 노선인 보편적 복지국가에 대항하는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노선을 마주하고 있다. 마치 마무 일도 없는 것처럼 이 둘을 얼렁뚱땅 함께 잡아두는 것은 당원과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그런데 이런 속임수는 오래 가지 못한다. 시민사회가 용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야당이 가만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지금이라도 당내 토론을 활발하게 진행하기 바란다.
※이상이는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다. 2007년부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2021년부터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상임공동운영위원장,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복지대타협위원회 공론화위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기본소득 비판』 『이상이의 복지국가 강의』 『복지국가는 삶이다』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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