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가 이틀 동안 주최한 '2021 P4G 서울 녹색미래 정상회의'(5월 30~31일)가 막을 내렸다. 주류 언론들은 평소와 같이 무미건조한 보도를 내보내며 대통령의 발표를 요약해주기 바쁘다. 다수의 시민들은 그저 또 다른 국제 행사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서 이를 금세 잊어버리는 분위기다. 이렇게 정부는 또 하나의 숙제를 큰 무리 없이 마쳤다며 자축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분위기는 한 달 전과 사뭇 달라졌다.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 미국 바이든 대통령 주도로 '세계기후정상회의'가 열렸을 때, 각 단체는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에 분노하며 뒤늦게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이번에는 녹색당 기후정의위원회의 이은호 위원장이 행사 2주 전부터 DDP 앞에서 단식투쟁을 했고, 행사 당일에는 다양한 단위가 함께 행진하며 감정을 한껏 고조시켰다. 이제는 시민사회가 정부의 공허한 선언과 약속에 행동으로 맞서야 한다는 확실한 공감대가 만들어진 것이다.
대통령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시민사회의 주요 요구들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오는 11월 영국에서 열리는 COP26 정상회의에서도 신공항이나 신규석탄 건설을 철회하겠다는 선언을 이끌어내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P4G 정상회의 이후, 한국 사회의 기후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그린워싱'의 대명사, P4G 정상회의
P4G 정상회의는 시작부터 기만과 위선으로 가득 찬 행사였다. 정부는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함께 기후변화에 맞서도록 하고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기반해 녹색회복을 실현하겠다고 말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약속이나 비전은 거의 제시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한국이 기후변화 대응을 선도하겠다고 당당히 말하면서도 국내 신규 석탄발전소 7기 철회 의지조차 명확하게 표명하지 못했다. 주최국이 중심에 서서 분위기를 이끌어가지도 못하고, 참여국들로부터 오히려 압박을 받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이처럼 겉으로는 친환경을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오염과 착취를 계속하는 행위를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 한다. 원래 기업들의 위장환경주의를 짚어내기 위해 만들어진 이 용어는 이제 더 넓은 의미로도 쓰이고 있다. 지금 당장 철회하거나 펼쳐야 할 사업 계획들을 일절 무시하면서, 매번 비슷한 내용의 선언문을 낭독하는 데 그치는 한국 정부의 모습을 정확히 설명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심지어 '탄소중립위원회'의 출범 소식을 제외하면, 이번에 나온 약속들은 지난 4월 22일 세계기후정상회의에서 대통령이 했던 발언에서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 한정애 환경부 장관은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관해 침묵하면서 시민들에게 '플라스틱 줄이기'나 '플러그 뽑기'와 같은 개인의 실천을 강조하기 바빴다. 행사에 초대된 기업들은 경영윤리와 관련 없는 사소한 변화들을 약속하며, 사업장에서 온실가스를 급격히 줄일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연설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대규모 투자를 통한 녹색회복을 약속하는 대신, 고작 900만 달러(약 100억 원) 규모의 소소한 기금 공여를 하겠다고 얘기했다. 우리가 마주한 기후·생태위기가 얼마나 사소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P4G 정상회의에서 드러난 부끄러운 위선도 짚어내야 한다. 한국 정부는 행사 참여국이었던 베트남(붕앙-2호기)과 인도네시아(자와 9-10호기)에 총 3기의 석탄화력발전소를 짓기로 결정한 상황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이 불편한 진실에 대한 언급을 일절 하지 않았다. 정부가 막대한 재정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석탄발전 사업을 고집하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개발도상국들이 온실가스를 줄이고 녹색회복을 실현하도록 돕기는커녕, 이들에게 심각한 기후부정의를 저지르는 이 현상을 말이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한국 정부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냐는 것이 아니라, 의전의 격과 행사의 위상을 어떻게 높이냐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이름만 대면 대부분이 아는 해외 인사들을 빽빽하게 초빙했고, 소위 '미래세대'라 불리는 20-30대 청년들을 병풍처럼 행사장에 세웠다. 활동가들이 DDP 행사장 밖에서 격렬히 시위하는 동안 대기업들은 그 안에서 자기 PR에 흠뻑 젖어있었다. 대통령은 행사 당일을 포함하여 사흘 연속 현장에 직접 방문해서 공허한 발언들을 이어갔다.
정치인들이 겉으로만 '비상사태'를 외치며 손피켓과 화려한 그래픽으로 꾸며진 행사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우리에겐 그저 암울한 미래만 남겨질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후운동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풀뿌리 기후혁명을 위하여
P4G 정상회의가 인터넷으로 한창 생중계되고 있을 때, 멸종반란한국과 멸종저항서울 활동가들은 DDP 행사장 앞에서 직접행동을 감행했다. 이들은 바닥에 녹색 물감을 뿌리며 정부의 그린워싱을 규탄했고, 사다리에 올라서 연막탄을 터뜨리며 연설을 진행했다. 녹색당 당원들이 현장에서 정당연설회를 하는 동안 이은호 위원장은 농성장에서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었다. 필자는 대통령 수행차량이 지나가는 순간 차도로 뛰어들어 "P4G 그린워싱을 멈춰라"는 구호를 외치다가 경찰에 연행되었다.
DDP 행사장 앞에서 이처럼 강렬한 싸움들이 벌어진 이유는 단순하다. 그만큼 시민사회가 정부를 깊이 불신하고, 대통령이 지금보다 적극적으로 화석연료 산업을 규제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임기 내에 유일하게 약속된 변화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조금이나마 상향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올해 안에 탄소중립위원회에서 부문별 2050년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그에 따라 NDC(2030년 감축목표, 현재 24.4%)를 재조정하겠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싸움은 단순히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미국에서 키스톤XL 사업이 취소된 것처럼 다배출 산업을 실제로 멈춰 세우는 장치들을 마련하고, 과학적 시나리오에 담기지 못하는 수 많은 기후정의의 문제들을 발굴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우리의 생생한 위기의식을 거리에서 행동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정부는 시민사회의 성격을 한참 잘못 이해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발표한 '서울선언문'의 한 문구는 "대중의 인식 제고를 위한 시민사회의 역할"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날 거리로 나온 우리는 공익광고나 하는 캠페인 단체가 아니다. 우리가 바로 사회 변혁의 주체이며, 많은 사람과 함께하기 위한 대중운동의 물결이다.
한편으로 시민사회도 정부 행사 일정에 따라서 행동하는 관성을 버려야 한다. 행사는 잠깐 열렸다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이나 다름 없지만, 우리의 운동은 기후·생태위기 시대에 끊임 없이 흐르는 물줄기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곳곳에서 개최되는 정상회의들은 풀뿌리 시민운동이 각성하는 계기일 뿐이다. 사안의 본질은 우리가 '전례 없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임을 잊지 말자.
이에 더해, 우리의 운동이 단지 소수의 급진성에 의존하는 패턴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상징적인 싸움들을 시작으로 더 커다란 행동을 조직하고, 정치권에 실제로 압박이 될만한 다수 시민들의 움직임을 만들어야 한다. 그럴만한 압박과 사회적인 흐름이 없다면 정치권도 빠르게 변할 이유가 없다. 차기 대선에서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필요한 변화들을 의제화시키려면, 지금부터 발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더 이상 정부를 향한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 만족하지 말자. 혁명적 변화를 위한 희망은 우리에게 달려있다. 정치인과 기업인들이 아닌, 바로 우리가 아래서부터 위기를 선포하는 것이다. 벌써 2021년의 상반기가 거의 지나갔다.
P4G 정상회의 이후, 한국 사회의 기후운동은 새롭게 피어나야 한다.
* 내가만드는복지국가는 의제별 연대 활동을 통해 풀뿌리 시민의 복지 주체 형성을 도모하는 복지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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