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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현금 공약, 국민에게 좋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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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의 현금 공약, 국민에게 좋은 것일까

[복지국가SOCIETY] 포퓰리즘 버리고 북유럽 복지국가의 길 가야

정치는 나라를 흥하게 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 기반의 복지국가를 건설했던 유럽 선진국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면에 정치는 나라를 망하게도 할 수 있다. 정치적 민주주의를 제도화하지 못한 수많은 저개발 국가들에서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들 국가에서는 정치의 착취적(비민주적) 성격 때문에 경제의 민주적 발전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절차적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복지국가를 건설했던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도 국민행복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 점수와 주관적 행복 수준에서 큰 차이가 난다. 북유럽과 남부유럽 국가들 간의 격차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리스 등 남부유럽은 덴마크 등 북유럽에 비해 왜 이렇게 뒤쳐졌을까. 정치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최근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현금 지급(복지)' 공약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 포퓰리즘'이 그 선봉에 서 있다. 대선을 앞두고 지금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각종 현금 지급(복지) 공약들이 경쟁적으로 제출되고 있다. 현금 지급의 정치, 이것은 남부유럽에서 익히 보던 모습이다. 이대로 가면, 우리나라는 지속가능한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길에서 멀어진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 모델이 아니라 그리스 등 남부유럽의 길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나라 정치권이 안타깝고 걱정이다. 가슴이 답답해진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이 왜 저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걸까. 못 보는 것일까, 아니면 정치적 이익 때문에 애써 외면하는 것일까.

남부유럽이 아니라 북유럽 복지국가로 가야 하는 이유

매년 3월 20일, '세계 행복의 날'을 맞아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가 세계행복보고서를 발표한다. 여기에서 세계인들은 자기 나라의 행복 순위를 알 수 있다. 매년 핀란드와 덴마크가 엎치락뒤치락 1위를 차지한다. 2020년 조사에서는 핀란드와 덴마크가 각각 1위와 2위를 차지했다. 노르웨이가 5위, 스웨덴이 7위였다.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모두 7위 이내에 포함됐다. 해마다 거의 그렇다. 그런데 남부유럽 복지국가 모델에 속하는 나라들은 경제력에 비해 행복 순위가 낮다. 스페인 28위, 이탈리아 30위, 포르투갈 59위, 그리스가 77위였다. 우리나라는 61위다. 남부유럽 4개 나라 중 2개는 우리나라와 같거나 못하다. 나머지 2개도 기대에 크게 못 미친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서도 마찬가지다. OECD 행복지수는 BLI 지표(Better Life Index)의 11개 영역 점수를 합산해 산출한다. 여기에는 주거, 소득, 고용, 공동체, 교육, 환경, 시민참여, 건강, 삶의 만족도, 안전, 일과 생활의 균형이 포함되는데, 우리나라는 30위를 차지했다. 언제나 OECD 행복지수 산출에서 하위권에 머문다. 여기서는 노르웨이가 1위였고, 북유럽 국가들은 모두 언제나 10위 이내에 포진한다. 그런데 남부유럽은 여기서도 순위가 낮다. 그리스 36위, 포르투갈 29위, 이탈리아 24위, 스페인 19위에 불과했다. 조사방식이 다른 두 곳에서 언제나 북유럽 국가들은 최상위권에, 그리고 남부유럽 국가들은 중하위 또는 하위권에 머문다. 복지국가의 성과가 현저하게 다른 것이다. 왜 그럴까.

북유럽과 남부유럽 복지국가들 간에 국민행복 순위의 차이가 나타나게끔 한 성과 요인을 경제부문·재정부문·복지부문으로 구분해서 각각 살펴보자. 석재은(2014)은 자신의 논문 「OECD 복지국가 지속가능성의 다차원적 평가와 지속가능 유형별 복지정책의 특성」에서 중요한 결과를 도출했다. 어떤 복지국가의 성과지표가 좋다면 당연히 그런 나라는 지속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래서 경제적 지속가능성 지표에 고용률, 1인당 국내총생산(GDP), 실질 GDP 성장률을 포함하고, 재정적 지속가능성 지표에 국가재정적자율과 국가부채율을, 그리고 사회적(복지) 지속가능성 지표에 합계출산율, 평균수명, 상대 빈곤율, 지니계수, 삶의 만족도를 포함하도록 해서 개별 국가의 전반적인 지속가능성(성과)을 점수화했다.

연구의 대상이 된 27개 OECD 국가들 중에서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모두 지속가능성 순위에서 최상위를 형성했다. 2위, 3위, 4위를 각각 차지한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는 경제적 지속가능성에서 각각 4위, 3위, 2위를, 재정적 지속가능성에서 2위, 3위, 6위를, 그리고 사회적 지속가능성에서 2위, 3위, 1위를 차지했다. 세 차원 모두에서 지속가능성이 고르게 좋은 성과를 나타낸 것이다. 반면에 복지국가 지속가능성 순위에서 각각 27위, 26위, 25위, 22위로 최하위에 머문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남부유럽 국가들은 경제적 지속가능성에서 27위, 24위, 21위, 25위, 재정적 지속가능성에서 27위, 23위, 24위, 18위, 사회적 지속가능성에서 19위, 23위, 27위, 20위를 차지했다. 세 차원 모두에서 최하위의 성과를 나타냈다.

한편, 이 연구에서 우리나라는 경제적 지속가능성 순위가 27개국 중 15위, 재정적 지속가능성 5위, 사회적 지속가능성 26위로 나타났다. 문제가 많다. 먼저, 경제적 지속가능성은 아직까지 비교적 양호한 편이지만 앞으로 혁신적 성장을 이루어내지 못할 경우라면 장차 노동 투입이 줄어든다는 점을 고려할 때 상황이 나빠질 것임을 예고한다. 그리고 재정적 지속가능성이 좋게 나타난 것은 연구 시점(2013년)에서 고령화율이 OECD 국가들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했고 연금제도가 덜 성숙함으로 인해 복지 지출 수준이 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정 관련 상황은 이미 악화되고 있으며, 앞으로 인구구조와 잠재성장률 등을 감안할 때 더욱 나빠질 개연성이 크다. 세계 최저의 합계출산율과 낮은 국민행복 수준 등으로 인해 사회적 지속가능성은 장차 우리 시대 최대의 도전과제라 하겠다.

한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는 앞으로 남부유럽 국가들보다 복지국가의 지속가능한 존립과 발전이 더 위태로울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나라가 지속가능성의 악화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상황으로 내몰린 것은 정치 탓이 큰데, 이것이 복지국가의 정치적 지속가능성 이슈가 제기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지난 20년 동안 복지국가를 위한 재정 지출과 복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상당 수준으로 GDP 대비 공공복지지출의 비중이 늘었다. 그런데 문제는 지출의 방식이다. 선제적 투자 성격의 복지 지출보다는 사후약방문 식의 땜질을 하는 데 치중함으로써 복지 지출의 효과·효율성을 극대화하지 못했다. 이에 대한 책임은 정치적 지속가능성을 제도적으로 높이지 못한 대한민국 정치공동체에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그런데 최근 대선을 앞두고 무책임한 재정 지출을 선동하는 포퓰리즘 정치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그렇다면, 얼마나 걷어서 어떻게 지출해야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이 높아질까.

누진적으로 걷고 효과·효율적으로 지출해야

우리는 세금을 낸다. 나라 살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세금을 의도적으로 내지 않는 사람들을 정치사회적으로 용납하지 않는다. 납세의 의무가 갖는 중요성을 우리 모두 잘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사회적 합의에 따라 국가는 각종 세금을 걷어 필요한 재원을 충당한다. 세금을 공정하게 잘 걷어야 한다. 어떻게 걷는 것이 가장 공정할까. 세금을 걷는 방식에는 소득에 따른 상대적 개념으로 세금을 감당할 능력이 증가함에 따라 과세율 자체가 감소·일정·증가하느냐에 따라 역진세·비례세·누진세가 있다.

일반적으로 소득세는 누진세(progressive tax), 법인세는 비례세(proportional tax), 그리고 간접세는 역진세(regressive tax)의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조세 부담의 형평성(공정)을 도모한다는 관점에서 누진과세의 원리가 옹호된다. 그런데 어떤 나라에서는 소득세 등의 누진성이 약하거나 역진세의 성격을 갖는 간접세가 조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다. 이런 체계는 저소득층에게 불리하므로 조세의 공정성이 낮다. 앞으로 우리나라는 누진적·보편적 조세 체계를 확립·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GDP의 20%인데, 이는 OECD 평균 조세부담률 25%에 비하면 약 5%포인트 낮다. 우리나라가 OECD 평균 수준으로 조세부담을 가져간다면 증세의 여력은 많아야 연간 100조 원이다. 이렇게 중부담 수준까지는 조속하게 가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이렇게 걷은 세금으로 조성된 국가 재정은 어떻게 지출하는 것이 좋을까. 이 부분과 관련해서는 필자의 신간 《기본소득 비판》의 일부를 인용해보자.

"먼저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기본적으로 필요한 곳에 지출한다. 가령, 국방·안전과 도로 등의 사회기반시설에 재정을 지출해야 한다. 다음으로 중요한 곳은 경제성장을 촉진·지원하고 소득분배의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경제·복지 정책이다. 시장소득의 격차는 어디에서나 불가피한 현상이다. 하지만 사회구성원들 간의 시장소득 격차를 조금이라도 더 줄이는 것이 옳다. 그래서 정부가 최저임금제를 도입하고, 심지어 최고임금 규제를 제도화하자는 주장까지 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지국가가 시장경제에 개입하는 경제민주화 조치인데, 선진 복지국가일수록 이런 개입주의 전략을 잘 구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결정된 시장소득의 분배 결과가 갈수록 불평등해지고, 심지어 양극화 현상마저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조세의 누진성을 강화하고 재정 지출에서 재분배적 성격을 높이려는 노력이 보다 중요해졌다. 선진 복지국가일수록 시장경제에서 나타나는 일차적 소득분배의 격차를 줄이려 하고, 조세재정 정책을 통한 이차적 분배 개선 노력인 재분배 정책을 강화하려는 경향이 더욱 강하다. 그래서 이들 국가는 GDP 대비 정부 재정의 크기가 클 뿐만 아니라 재정에서 재분배적 지출(공공사회지출)이 차지하는 비율도 매우 높다. 그러니까 선진 복지국가일수록 소득분배의 개선 효과가 크다."

정리하자면,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조세정책의 보편적·누진적 성격을 살리면서 복지국가를 운영하는 데 필요한 GDP 대비 적정 수준의 재정을 확보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렇게 확보한 정부 재정을 어떻게 지출하느냐, 이 부분이다. 선진 복지국가일수록 효과·효율적으로 재정을 지출한다. 왜냐하면, 실질적 보편주의 원리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에서 현금 복지 포퓰리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남부유럽 국가들은 상황이 다르다. 이들 국가는 현금 복지 포퓰리즘으로 인해 복지국가의 성과와 지속가능성이 크게 훼손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여야 정치권에서 현금 포퓰리즘을 몰아내야 하는 이유

국민행복 수준과 지속가능성이 획기적으로 높은 복지국가 모델, 그것은 바로 실질적 보편주의 원칙의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이다. 구체적으로 '경제·일자리·복지의 유기적·통합적 체계'인데, 이 모델에서는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라는 네 요소가 유기적·통합적으로 작동함으로써 복지국가의 정당성과 지속가능성을 높여준다. 이와 반대로 남부유럽 복지국가들은 경제와 복지가 분리되어 따로 작동하고, 현금 지출이 일자리를 만들 능력도 열등하다. 현금 위주의 포퓰리즘 정치 때문이다. 여기에 좌·우가 따로 없었다. 정부 재정이 현금 포퓰리즘이 아니라 사회서비스 중심의 보편적·적극적 인적 투자 복지에 더 많이 투입되었더라면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경제·복지 체제의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포퓰리즘 때문에 구조적 어려움에 처한 남부유럽, 이것이 무책임한 현금 포퓰리즘 정치의 민낯이다.

나는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포퓰리즘에서 이런 모습을 떠올린다. 경제적·재정적·사회적 지속가능성은 정치적 지속가능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최근 대한민국 정치는 대선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현금 지급 공약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다. 그만둬야 한다. 부탁드리건대, 이제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가 국민행복 복지국가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줄 진솔한 대안을 고민하고 토론하는 참여적 정치 공간으로 순기능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여야 정치권이 달라져야한다. 현금 포퓰리즘 정치를 배격해야 한다.

앞서 살펴본 석재은(2014)의 연구에서 도출된 ‘복지국가의 성과와 지속가능성을 높여줄 시사점’ 몇 가지를 더 언급해보자.

첫째, 성공한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전례를 따라 경제와 복지에 대한 민주적 개입주의 전략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GDP 대비 정부 재정의 크기를 획기적으로 키울 필요가 있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이 재정 지출의 효과·효율성 제고는 당연한 전제가 될 것이다. 둘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등의 사회투자 성격이 강한 분야에 대한 재정 지출의 비중을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 사람의 능력을 키워주는 복지 투자가 그것인데, 인적 자본의 확충·강화는 가장 정의롭고 효율적이며 지속가능한 재정 투입 분야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현물 급여(보육·교육·의료·요양·직업훈련·공공주거 등)의 상대적 비중을 크게 높이는 방향으로 정부 재정을 지출해야 한다. 그리고 현금 급여는 소득보장(사회보험과 공공부조)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근로 유인을 강화하는 데 주로 투입하도록 해야 한다. 현금 지급 포퓰리즘으로 가선 안 된다.

복지국가의 경제적·재정적·사회적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일은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장할 관건적 사안이다. 이는 그럴듯한 정치적 구호나 공약으로 해결될 일은 아니며, 어떤 왕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북유럽의 성공 경험에서 얻은 교훈과 남부유럽의 실패에서 얻은 반면교사의 배움이 우리에게 가리키는 것은 정당성을 확고하게 입증한 북유럽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길을 참고하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은 작동 원리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무조건적 보편성 원칙에 따른 기본소득은 보편적 복지 원리와 아예 다를 뿐만 아니라 논리적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필자의 신간 《기본소득 비판》에서 발췌한 것임)

첫째, 기본소득은 소득보장의 사각지대에 대한 해법이 되기 어렵다. 재정을 1/n로 모두에게 똑같이 배분하는 보편적·무조건적 기본소득으로 소득보장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면 연간 500조 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재정 지출의 효과·효율성과 재원 조달의 지속가능성이 모두 낮아 용납되기 어렵다.

둘째, 기본소득은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의 해법이 되기 어렵다. 1/n 방식의 기본소득은 소득 재분배와 양극화 개선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OECD 평균 수준의 조세부담(GDP의 25%)으로 모든 복지 필요에 대응하려면 보편적 복지의 맞춤형 지원 강화가 정직한 해법이다.

셋째, 기본소득은 4차 산업혁명시대의 일자리 대책이 되기 어렵다. 기본소득 주창자들의 전망과 달리, 앞으로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이동' 시대가 올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본소득 송금 후 재정적으로 무능한 작은 정부가 아니라 경제·일자리·복지에 적극 개입하는 유능한 보편주의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넷째, 기본소득은 경제의 활성화 및 선순환에 기여하지 못한다. 기본소득 방식은 소비 진작 효과가 열등하며, 경기변동 대응 효과는 아예 없고, 오히려 경기과열 및 물가상승을 부추길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본소득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도 불리하다.

다섯째, 기본소득은 재정적으로 실현 가능하지 않다. 연간 200~500조 원짜리 기본소득의 재정적 실현 가능성이 없으니, 현재 10~25조 원짜리 푼돈기본소득이 거론된다. 문제가 아닐 수 없다. 10~25조 원은 기본소득에서 푼돈으로 모두에게 흩어지지만, 보편적 복지에서는 의미 있는 큰돈이기 때문이다. 재정적 실현 가능성이 없으면 시도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액으로라도 푼돈기본소득을 도입하려는 정치적 시도는 인정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 포퓰리즘은 우리나라가 정치사회적으로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선 후보를 자임하는 주요 정치인들이 가짜 기본소득을 거론한다. 청년기본소득, 참여소득, 농민기본소득, 푼돈기본소득, 안심소득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지출할 정부 재정은 우리 국민이 보편적·누진적 조세를 통해 내게 될 세금으로 조성된다. 국민행복의 지속가능한 복지국가는 실질적 보편주의 원리에 따라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재정 지출의 원칙은 앞서 북유럽과 남부유럽 국가들을 비교하며 살펴본 것처럼, 복지국가의 질 높은 현물 급여(사회서비스)와 보편적 복지 원리에 따른 현금 지급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보편적 복지 원리'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필자의 신간 《기본소득 비판》에서 발췌한 것임).

"복지국가의 보편적 복지(보편주의)는 누구라도 실업·질병·산재·은퇴·출산·육아 등의 사회적 위험이나 각종 복지(사회서비스)가 필요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회안전망이나 복지 체계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실업에 처했을 경우 일반적으로 보편적 사회보험인 고용보험 제도로부터 실업급여가 지급된다. 고용보험 실업급여의 수급 자격이 되지 않는 취약 근로자들의 경우에는 공공부조 성격의 실업부조 제도(국민취업지원제도)가 작동한다. 여기에도 해당되지 않을 경우, 자산조사(means-test)를 거쳐 선별된 빈자들에게 공공부조(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가 최저소득을 보장한다."

"기본소득이 보편적 복지와 무관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의 가장 중요한 특성인 '무조건성' 원칙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무조건성' 원칙은 근로연령층에 대해 소득 수준, 재산 정도, 취업 상태, 근로 의사와 구직 노력 여부 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에게 동일 금액을 획일적으로 지급하도록 하는 기본소득의 핵심 특성이다. 그러니까 보편주의(보편적 복지)와 달리, 기본소득은 사회적 위험이나 복지 필요와 무관하게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정기적으로 현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재명 지사는 소액을 모두에게 획일적으로 지급하는 '푼돈 기본소득'을 제시했다. 연간 10~25조 원으로 국민 모두에게 월 16,600~41,600원씩 지급한다. 가짜 기본소득이다. 게다가 이 지사가 일반회계에서 재원을 조달하므로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에 투입될 소중한 재정 10~25조 원이 푼돈으로 흩어진다. 엄청난 해악이 아닐 수 없다. 이런 포퓰리즘 정치에 여야 정치권이 또 다른 가짜 기본소득으로 대응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 참여소득과 안심소득이 그것이다. 전자는 좌파의 가짜 기본소득이고, 후자는 우파의 가짜 기본소득이다. 정부의 소중한 재정을 이렇게 소진해선 안 된다.

기본소득이나 각종 가짜 기본소득이 아니라 보편적 복지 원리에 따라 정부 재정을 지출해야 한다. 그러니까 "누구라도 실업·질병·산재·은퇴·출산·육아 등의 사회적 위험이나 각종 복지(사회서비스)가 필요한 상황에 처했을 때 사회안전망이나 복지 체계로부터 적절한 지원을 받도록" 하는 데 정부 재정을 지출하도록 해야 한다. 현금 지출의 경우, 오세훈 시장의 가짜 기본소득인 안심소득을 도입하려면 연간 42조 원이 필요하다. 좌파의 가짜 기본소득인 참여소득을 유의미하게 도입하려면 연간 100조 원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이들 두 가지 모두에서 이재명 지사의 푼돈기본소득인 연간 10~25조 원보다 더 많은 재정이 소요됨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추가로 마련할 수 있는 연간 재정은 많아야 100조 원이다. 사람에게 투자하는 보편적·적극적 사회서비스 등과 전 국민 일자리 창출·보장에 이 재원의 대부분을 투입하는 것이 옳을 것이고, 나머지는 현금으로 지출하되 반드시 소득보장(사회보험과 공공부조)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근로의욕을 높이는 데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한다.

대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은 현실의 문제점과 과제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제대로 준비해야 한다. 이재명 지사의 기본소득에서 비롯된 각종 현금 포퓰리즘 정치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야 한다. 게다가 '현금 포퓰리즘 따라 하기' 정치는 필패 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기본소득이나 각종 가짜 기본소득의 길이 아니라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경험에서 도출해낸 국민행복의 보편적 복지국가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한다.

※ 이상이는 제주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다. 2007년부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2021년부터 정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상임공동운영위원장,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복지대타협위원회 공론화위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기본소득 비판』 『이상이의 복지국가 강의』 『복지국가는 삶이다』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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