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상치 않은 북한의 시장물가
최근 북한의 시장물가가 폭등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지난 10월경부터 시장물가가 갑자기 오르고 달러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 당국은 국제사회의 경제제재, 코로나 19, 자연재해 등을 원인으로 내세우며 주민들에게 설명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외부적 원인보다는 북한 당국의 정책에 기인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동안 북한의 시장물가는 달러 가격과 연동되어 움직였다. 달러 가격이 오르면 시장 가격이 오르고 달러 가격이 내려가면 시장가격도 떨어졌다. 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북한 경제의 달러화(달러라이제이션)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북한 원화의 화폐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함을 의미했다. 실제로 북한에서 달러화, 위안화 등 외환이 북한 원화보다 선호되었고, 물가 표시 역시 외화로 표시되곤 했다. 북한의 시장가격은 외부와 연계되어 민감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달러화 약세가 지속되면서 북한 시장에서도 달러화는 약세이다. 1달러당 8000(북한)원을 전후로 움직였는데, 최근에는 평균 약 6700(북한)원 정도다. 달러화 약세 추이를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위안화 가격도 덩달아 1200(북한)원에서 600(북한)원 수준으로 급락했다. 달러화의 낙폭보다 큰 폭으로 하락했다. 중국과 접경 지역에서는 달러보다는 위안화 사용이 일반화되어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중국과의 무역이 급감하면서 보이는 현상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렇듯 외화가격이 떨어지면 시장물가도 연동되어 하락해야 하는데, 무역이 막혀있는 바람에 시장물가는 오히려 급등하고 있다. 특히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콩기름, 설탕, 맛내기(조미료), 밀가루 및 휘발유 등은 2배에서 10배 이상 오른 품목도 있다. 의약품은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로 품귀현상을 보인다고 한다.
반면 북한 내부에서 조달되는 쌀, 옥수수 및 기타 생필품 가격은 소폭의 상승을 보이는 데 그치고 있다. 1kg 당 4000(북한)원 대 중·후반에 형성되던 쌀 가격은 5000(북한)원 대 중반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아프리카 돼지열병(ASF)으로 불안정했던 돼지고기 가격도 1kg당 1만 4000(북한)원에서 등락을 보이고 있다. 정리해 보면 외환가격 폭락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으로 시장물가가 오르고 있는 가운데 수입산 물자의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 경제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북한 당국의 작업
북한 시장가격의 폭등을 놓고 경제제재와 북한 당국의 잘못된 정책판단으로 북한 경제의 불안정성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중국의 대북제재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코로나 19의 유입을 이유로 국경봉쇄를 강화한 데 원인이 있다.
국제사회의 고강도 대북제재가 가해지면서 2018년 이후 북한의 대외무역은 급감했지만 북한의 시장 가격과 외환가격은 큰 변동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 시장의 물가는 외환가격과 연동되어 있었으며, 환율변동에 따라 시장가격도 변동하는 양상이 지속됐다. 그런데 지난 10월 이후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했다.
12월 초 통일부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북한 대외무역의 98% 이상을 차지하던 중국과의 무역이 10월에는 99.4% 감소했다. 사실상 대외무역이 전면 중단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 10일 당 창건 행사 전후로 시작된 80일 전투를 계기 삼아 국경봉쇄를 더욱 강화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외무역이 감소해도 여전히 수입물자들이 시장에서 유통될 수 있었던 것은 일상화된 밀수 때문이었다. 그런데 80일 전투를 본격화하면서 밀수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 내부 소식통이 전언한 언론보도에 의하면, 밀수를 엄격히 통제한다는 포고문이 연일 내려오고 있으며 밀수업자들을 대대적으로 단속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함께 개인 환전상들에 대한 단속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활동하기 시작했던 2009년, 북한은 150일 전투와 100일 전투를 실시한 바 있다. 이때 김 위원장의 의도는 북한이 실제로 가동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정비하는 것이었고, 모든 부분의 생산이 정상화됐다는 보고를 받았다.
공급부문이 정상화됐다는 판단 아래 북한은 2009년 11월 30일 전격적으로 화폐교환조치를 단행했다. 비공식 부문의 화폐를 회수하고 공식경제를 정상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공식부문의 생산능력이 정상화되지 않았는데 각 단위에서 거짓보고를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시장가격은 폭등했고 북한 주민의 불만이 곳곳에서 표출됐다. 박남기 당 재정부장 등 몇몇의 책임자들을 처형하고, 평양시 인민반장들에게 총리가 직접 사과까지 하면서 사태를 무마한 바 있다. 이후 북한은 화폐교환을 통한 공식경제의 정상화를 모색하기 보다는 시장이 확산되어 있는 현실을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9년 4월 헌법개정에서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를 북한 경제운영의 기본으로 삼는 조항'을 넣기에 이르렀다.
사회주의기업책임관리제는 개별 기업들이 약 30% 정도의 국가계획을 수행하고 나머지 70% 정도는 기업이 독자적으로 생산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시장과 연계하여 기업활동을 할 수 있는 길을 경제운영의 기본으로 삼은 것이다. 이는 사실상 시장을 공식 인정하는 시장개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당국의 경제정책이 통화량 조절을 통해서든 재정정책을 통해서든 공식화된 시장을 대상으로 경제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국이 시장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시장은 오래전부터 달러라이제이션이 진행되어 왔기 때문에 당국의 정책이 작동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2019년 12월 31일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 새로운 길이라며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을 채택하였고, 2020년 말에 끝나는 경제개발 5개년 전략이 사실상 실패했음을 자인하며 계획경제가 아닌 시장경제와 함께 자력갱생을 하기 위한 새로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또한 80일 전투를 시작하면서 당의 시장경제 장악 및 통제를 위한 조치들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밀수를 통제하고 개인 환전상을 통제하는 것도 이러한 조치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직 결론을 내리기는 이르지만 국제시세보다 외환가격이 더 떨어진 것은 북한 주민들이 북한 원화를 선호함을 의미하며 물가 상승은 물자공급 부족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북한 원화가 기능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 19의 유입 차단을 명분으로 외부 경제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북한 당국의 작업이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고 있는 측면도 있다.
북한경제는 공급 능력 회복이 관건
그러나 북한 경제의 문제는 북한 당국이 인식하듯이 외부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자체적인 통제능력을 확보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은 아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언급했듯이 "더 이상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산력, 즉 물자의 공급능력을 회복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다.
비록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대미관계 개선이 장기전으로 갈 수밖에 없으니 자력갱생을 통해 정면돌파전을 벌이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북한 내부의 공급능력은 제한적이다. 그동안 밀수를 통해서라도 부족분을 공급했기 때문에 그나마 시장경제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가동이 가능했다. 지금 시점에서 밀수를 차단하며 당의 시장경제 장악력을 강화한다고 해도 일시적으로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지만 결국 공급부족의 한계는 조만간 드러날 수밖에 없다.
80일 전투를 통해 북한의 재고 능력을 정확히 파악했다면 자력갱생을 통한 장기전을 벌이겠다는 새로운 길이 허상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북한에서 선전하고 있는 80일 전투의 성과는 과거 150일, 100일 전투의 성과를 과시하던 것과 데자뷰를 이루는 듯하다.
북한 시장에서 가격이 급등하고 있는 것은 북한 내부에서 조달할 수 없는 물자들 가운데 주민들의 생활에 꼭 필요한 생필품들이다. 이는 아무리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시장에 대한 통제력을 갖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며, 외부세계와의 거래를 통해 조달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북한이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투자와 지원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시장의 불안정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으며 공급측면에서의 부족은 자력갱생 기조를 유지하기 어렵게 할 것이다.
대미관계 개선이 답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당시 베트남 경제의 발전을 직접 보았다. 베트남이 1986년 도이모이 정책을 실시했지만, 베트남 경제가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95년 미국과의 국교정상화 이후 10여 년이 지나서부터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 당시에 베트남의 개혁·개방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고 한다. 중국 역시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취했지만 본격적인 경제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79년 미국과의 수교 이후 10여 년이 지난 후부터였다.
중국과 베트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통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이후 적어도 10년의 시간이 흘러야 경제성과를 보이기 시작했음을 북한은 주목해야 한다. 북한은 지금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장기전으로 보고 이 기간을 버티기 위해 자력갱생으로 회귀하고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에 대한 실망감이 크겠지만, 이른바 빅딜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않고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길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2년 첫 육성연설에서 다시는 인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겠다고 약속했던 것을 실천하기 위해 나름대로 시장개혁과 대외개방을 추진해 오고 있다. 핵무력의 완성을 계기로 미국과의 담판에 나섰던 것이 실패로 끝나기는 했지만,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와 다시 협상을 재개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상의 비정상화'라는 방식으로 빠르게 변화를 가져오려고 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비정상의 정상화'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북한이 트럼프 행정부와 협상하려 했던 그때의 초지를 가지고 바이든 행정부와 다시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된다면 중국이나 베트남이 경험했던 길을 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개인적 친분을 과시하며 친서 외교를 통해 톱다운 방식으로 북·미 협상을 진행했다면 이제는 북·미 국교정상화를 목표로 바텀업 방식으로 근본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국제사회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는 2021년 1월 20일을 전후한 북한의 행동에 주목하고 있다. 종전과 같이 장거리 미사일 발사나 군사퍼레이드에서 대량살상무기를 과시하며 미국의 관심을 끌어내는 행동의 시도를 우려한다.
군사적 과시보다는 오히려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시기에 김정은 위원장이 선호하는 친서 정치가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친서의 형태로 먼저 보낼 것을 제안한다. 이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끌 수 있을 것이며, 북·미 대화가 재개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 7월 김여정 부부장은 대미담화에서 북핵문제는 더 이상 협상테이블에 올려지지 않을 것이며, '적대정책 철회와 북·미 대화 재개'라는 협상틀로 전환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새로운 협상틀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미국이 대북적대정책을 철회할 수 있는 여지를 북한이 먼저 만들어 내는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 미국의 대북적대정책 철회는 북·미 회담의 목표를 북·미 관계정상화, 즉 북·미 수교에 두도록 하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미국의 요구 없이도 장거리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에 대한 실질적인 모라토리엄을 단행했고, 아직까지 스스로 한 약속을 지키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 이후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회담이 재개될 수 있기 위해서는 북한이 '자력갱생의 정면돌파전'이라는 무리수를 접고 과감하게 미국과의 대화를 제안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길이 중국과 베트남과 같이 성공적으로 국제경제체제에 편입될 수 있는 첩경이며, 진정으로 다시는 북한 주민들의 허리띠를 졸라매는 일이 없도록 하는 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