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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과 노회찬의 어머니 원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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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과 노회찬의 어머니 원태순

[추모글] 故 원태순 님의 명복을 빕니다

2020년 10월 25일 저녁 '진보정당 대표 의원' 노회찬의 어머님 원태순 님께서 노환으로 별세하셨습니다. 머리 숙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얼마 전 노회찬의 동생 노회건 님께서 사진 한 장을 '노회찬재단'으로 보내주셨습니다. 3년 전인 2017년 12월 29일 모친 생신날 집에서 기념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어머님께선 이 액자를 자주 어루만지며 닦으셨다고 합니다. 푸근함과 정겨움이 마음으로 전해집니다.

모든 자식들에게 그렇겠지만, 노회찬에게 어머님은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언젠가 한 신문사에서 노회찬에게 인터뷰를 하며 질문은 합니다.(☞ 관련 기사 : <경향신문> 2011년 1월 16일 자 '[노회찬]겨울철 낚시꾼이 행복한 이유') '본인에게 어머니란 어떤 의미입니까.' 노회찬의 대답입니다.

▲어머님과 함께. ⓒ노회찬재단

"모든 사람들에게 어머니는 존경의 대상이죠. 다만 제가 걷는 길은 밖에서 보기에 손해를 보는 길, 위험해 보이는 길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도 처음에는 걱정하시며 만류했어요. 하지만 나중에 제 결심이 굳다는 걸 아시고는 격려해주셨죠. 정치적, 이념적 격려라기보다 '힘들더라도 옳다고 하면 그 길을 가라. 막지는 않겠다.'라고 하셨는데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나를 만든 건 팔 할이 어머니입니다." 박규님 노회찬재단 운영실장이 전한 노회찬의 말입니다.

어머님은 노회찬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였습니다. 맏이가 노동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늦게 알게 된 어머님은 "노동운동 하려면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을 잘 알아야 한다"며 노동계 신문 기사를 스크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식에 대한 걱정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어머님의 마음은 스크랩북 표지에 오롯이 적혀 있습니다.

"왜 이 길이냐, 왜 하필 이 길이냐"

노회찬은 훗날 어머님의 지극한 정성에 대해 글로 화답합니다.(<명사 28인이 어머니께 드리는 감사장-어머니>(노회찬 외 28인 지음, 매경출판 펴냄) 중 '어머님의 신문스크랩 20년')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감당 못 할 무게감 때문에 감히 꺼내 읽지 못하는 글들이 있다. 1980년대 말 노동운동으로 감옥에 있는 동안 어머님이 보내주신 174통의 편지, 지난 20년 동안 아들과 함께하기 위해 신문 기사를 모은 스무 권의 스크랩이 바로 그것이다. 스크랩 첫 권 맨 앞에는 '왜 하필 이 길을…'이라고 써놓으셨다."

2007년 1월 5일 노회찬은 <난중일기>에 이 글을 올리며 글을 적어 내려갑니다.

"왜 하필 이 길을 가려하느냐는 원망과 한탄으로 시작된 스크랩은 세월이 쌓이면서 자식이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한 이해와 애정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스크랩북 곳곳에 쓰신 짧은 글을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랴!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두렵지 않다는 심정으로 마치 어렵고 힘든 일을 혼자 다 짊어진 양 고군분투하는 동안에도 실은 어머님의 사랑과 성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는 사실을 이 스크랩북을 보면서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 그리고 어머님이 정성껏 오려붙인 스크랩북의 기사들은 어머님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 길이 만들어 왔다는 또 하나의 진실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민노련 사건으로 청주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노회찬을 면회 간 어머님은 교도소에 흩날리던 낙엽들을 모아 편지 한 통과 함께 '落葉(낙엽)의 기도'라는 제목의 자료철을 만드셨습니다(1991.11.10.).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머님의 간절한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落葉아! 너의 몸 불태워 우리 맏이 따시게 언 몸을 녹여나 주렴… 이 간절한 마음도 부탁할 수 었었으니…

그러나 母情의 속내를 알아차려 응답하듯 돌아오는 봄에 떨어졌던 그 마디마디에 새 生命의 싹을 돋게 되리라… 이것은 너무도 엄숙한 순리인 것을…"

▲ <낙엽의 기도> ⓒ노회찬재단
▲ <낙엽의 기도> ⓒ노회찬재단

2004년 MBC TV <사과나무> 방송에 출연한 노회찬과 김지선 부부는 어머님과 전화 통화를 합니다.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잔잔하면서 정갈한 어머니의 육성에는 맏이에 대한 사랑이 묻어납니다.

"교도소 마당에 낙엽이 떨어지면 그거 하나라도 저는 소중하게 가져와요.

떨어진 걸, 그걸 책 속에 넣어두고 심지어 교도소 주변 꽃집에 가서 사온 분재에

수인번호 336번, 그걸 써놓고 키워요.

이 나무가 안 죽어야지 이 사람이 살아나온다는 그런 신념으로 키웁니다.

남이 한 걸음하면 나는 열 걸음을 꼭 해주려고 했는데,

보통 이 땅의 어머니들이 하는 기도 말 없는 기도, 그것을 했을 뿐입니다."

14년이 흐른 2018년 7월 27일 오전 '고(故) 노회찬 정의당 의원 영결식'이 국회 본청 앞에서 엄수됩니다. 제단에는 그가 보물처럼 아꼈던 어머님의 손편지와 그에 대한 기사를 모은 스크랩북이 노회찬의 영정과 함께 놓였습니다. 이날 공개된 어머님의 편지에는 맏이를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 손편지. ⓒ노회찬재단

어머님은 "정말 진실하고 착실하고 예의 바르고 효심이 깊은 우리 집 맏이가 272번의 수인이라니. 정말 어머니의 기도가 부족함을 통탄한다"며 "1월 9일 저녁 들어선 너의 집은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깨끗하고 잘 정돈되어 있고 화초도 파릇파릇 잘 자라고 있었고, 금방이라도 주인이 현관으로 들어올 것 같은 착각을 했다"고 안타까워했습니다.

노회찬의 이루지 못한 꿈 가운데 하나는 어머님, 아버님을 모시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쪼록 하늘나라에서 어머님, 아버님과 함께 '자유롭게' 세계여행을 떠나시기를 기원합니다.

'생명', 그리고 '자유'.

어머님이 노회찬에게 주신 첫 선물이었습니다.

"나에게 자유라는 것이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생명이 없으면 자유가 무의미합니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자유는 생명만큼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주신 선물은 나에게 생명을 주신 것이고 또 그 생명이 있기 때문에 자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명만큼 자유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자유는 어머니가 주신 첫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관련 기사 : <프레시안> 2011년 8월 30일 자 '"삼성 X파일은 19금, 미성년자 관람불가 판결"')

다시 한번 두 손 모아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영면하십시오.

※ 노회찬의 어머님 故 원태순 님은 1929년 함경남도 흥남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교사를 하던 중 6.25전쟁이 터져 1.4후퇴 때 거제도로 피난한 뒤 함경남도가 고향인 노인모 님을 만나 결혼, 슬하에 1녀 2남을 두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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