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이 또다시 정치권에서 논란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발단은 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 열병식에서 신형으로 보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공개한 것에서 비롯됐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종전선언은 ICBM, SLBM 등 북한의 추가 도발을 막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조치로서 의미가 있다"면서 "종전선언은 비핵화로 가기 위한 입구"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의 윤건영 의원도 "어제(10일) 보여준 북한의 무기를 한반도에서 영원히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다시금 남과 북이 상호협력을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진짜 평화'에 대한 약속이 필요하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선언'은 그래서 지금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자 국민의힘도 일제히 반격에 나섰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종전선언에 대해 "대한민국에 종말을 불러올 수밖에 없는 행위이고 반헌법적 행태"라며 극단적인 표현까지 동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 발언을 가리켜 "이 와중에 종전선언하자며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있다"며 "적장 말을 믿었다가 혼자 죽는 건 괜찮지만 5000만 명의 목숨을 책임지는 분이 혼자 종전선언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여야의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설전을 보면 한국전쟁 종전에 앞서 여야간 종전부터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런데 진영 논리를 넘어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정부여당의 종전선언 발언을 보면 '너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을 품게 된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종전선언에 대해 터무니없는 피해망상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종전부터 선언함으로써 평화와 비핵화 프로세스를 본격화해보자는 정부여당의 취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내용 없는 선언'은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가령 종전을 선언했는데 한미 연합 군사 훈련과 한국의 사상 최대 규모의 군비증강이 계속되면 어떻게 될까?
이는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야기하면서 남북관계와 비핵화를 포함한 평화프로세스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공산이 크다. 9.19 군사합의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사실상의 종전선언"이라고 의미를 부여한 반면에, 김정은 정권은 "있으나 마나 한"이라고 폄하한 것은 '내용 없는 종전선언'의 위험성을 예고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종전선언이 "비핵화의 입구"이자 "진짜 평화에 대한 약속"이 되려면 실질적인 조치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과의 "단계적 군축" 합의 및 전례 없는 민생 위기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는 5년간 약 300조 원의 국방비를 쓰겠다고 한다. 총선에서 "세계 5위의 군사강국 실현"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민주당은 이에 대해 아무런 견제도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핵 억제력"을 추구해온 데에는 한국에 대한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의도도 내포되어 있다. 미국의 정보기관들도 마찬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다. 이는 거꾸로 남북한의 군사력 격차가 벌어질수록 비핵화는 더욱 어려워질 것임을 말해준다. 종전선언을 또다시 화두로 꺼낸 정부여당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역대급 군비증강과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의 지속은 종전선언 자체도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종선선언을 해도 그 취지와 의미를 퇴색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의 과도한 피해망상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떤 근거로 종전선언이 대한민국의 종말을 가져오고 반헌법적인 발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헌법엔 대통령의 책무로 "평화적 통일"이 명시되어 있는데, 오히려 종전선언이 이러한 헌법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국민의힘은 종전선언이 되면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이게 실현되면 한반도를 공산화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모양이다. 그런데 밥 우드워드의 신간 <격노>에는 흥미로운 대목이 담겨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여러 차례 면담했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김 위원장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도 거론한 적도 없다"고 밝힌 것이다. 오히려 중국으로의 과도한 의존을 막기 위해 북한이 주한미군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 같다는 것이 폼페이오의 생각이었다.
또한 국민의힘은 북한의 위협 앞에 한국이 무방비 상태에 있는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군사력 건설에 있어서는 문재인 정부가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압도해왔다. 킬체인-한국형미사일방어체제-대량응징보복으로 이뤄진 '3축 체계'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이 국방정책이 확정된 시기는 박근혜 정부 때였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때보다 두 배 가량 관련 예산을 늘려왔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세계 12위로 평가되었던 군사력은 올해 6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정리하자면 정부여당의 종전선언 추진은 '공허'하고 국민의힘의 반대는 '맹목'이다. 그것이 선언의 방식이든, 아니면 협정의 방식이든 한국전쟁이 끝나는 날이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까닭이다.
* 국내외 시민단체들은 한반도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을 촉구하는 전세계 시민들의 서명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동참을 호소합니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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