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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필버그가 말하는 트럼프의 미래는?

[김경욱의 데자뷔] '펜타곤 페이퍼' 보도과정 그린 <더 포스트>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여기 두 명의 스필버그가 있다. 리얼리즘 영화를 찍는 스필버그와 SF, 판타지 영화를 찍는 스필버그. 다시 말하면, 뤼미에르 형제의 후예 스필버그와 멜리에스의 수제자 스필버그. 또는 작가로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영화에 담아내는 스필버그와 블록버스터 영화의 대명사로서의 스필버그. 전자의 사례 <더 포스트>와 후자의 사례 <레디 플레이어 원>이 차례로 개봉을 앞두고 있다.

스필버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여러 편 연출해 왔는데, 그 가운데 <더 포스트>는 <링컨>(2012)과 <스파이 브릿지>(2015)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링컨>은 남북전쟁이 4년째 계속되고 있던 1865년 초, 재선에 성공한 링컨 대통령이 노예제를 폐지하는 내용의 수정법안 13조를 통과시키려고 악전고투하는 과정을 다루었다.

<스파이 브릿지>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핵전쟁의 위기가 고조되던 1957년, 미국에서 체포된 소련 스파이와 소련에서 붙잡힌 미국 스파이를 맞교환 했던 사건을 각색했다. 그리고 <더 포스트>는 1971년, 워싱턴 포스트가 미국의 베트남전 개입에 관련된 기밀문서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한 과정을 그렸다. 그것은 ‘의회는 언론 또는 출판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평화로운 집회의 자유 및 정부에 대한 탄원의 권리를 막는 어떠한 법도 제정해서는 안 된다’는 미국 수정 헌법 제1조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세편의 공통점은 미국역사에서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이자 민주주의의 가치인 자유, 평등, 박애가 관철된 순간을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스필버그가 이와 같은 영화를 앞으로 더 이상 연출하지 않는다면, ‘스필버그의 미국역사 영화 3부작’이라고 할만하다.

스필버그가 민주주의의 가치를 주제로 부각할 때, 항상 용기를 가진 영웅적인 개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링컨은 의회에서 수정법안 13조를 통과시키기 위해 종전 협상을 미루고 반대하는 의원을 매수하는 ‘더러운 정치’를 행한다. 주변의 최측근들마저 반대의견을 내고, 불길한 꿈과 암살 시도를 통해 죽음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잡히기도 하지만, 링컨은 물러서지 않는다.

<스파이 브릿지>에서, 주인공인 변호사 도노반은 소련 스파이 에이블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걸고 스파이 맞교환 임무를 맡는다. <더 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은 신문사의 사활을 걸고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관철해낸다. 트루먼에서 케네디를 포함한 역대 대통령들이 베트남에서 공산주의 정권을 와해시키기 위해 진실을 어떻게 왜곡했는지를 기록한 펜타곤 페이퍼를 폭로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 민주주의 대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어떤 손해와 위험도 감수한다.

▲ <더 포스트>의 한 장면.

<스파이 브릿지>와 <더 포스트>에는 주인공들 앞에 '국익'과 '국가안보'라는 까다로운 문제가 대두된다. 도노반과 캐서린에게 반대파들은 질문한다. '에이블을 적극적으로 최선을 다해 변호함으로써 적국인 소련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려고 하는가?' '기밀문서를 폭로함으로써 베트남전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려고 하는 것인가?' 도노반은 매국노라는 비난과 물리적인 공격까지 감수하면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자신의 신념을 관철한다.

여기서 캐서린의 경우는 도노반과 차이가 있다. 영화 도입부에서 캐서린은 회사의 재정 상황을 호전시키기 위해 회사를 증시에 상장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러므로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하면 정부와 갈등을 초래할 수 있고 그러면 투자자들이 투자를 철회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한다. 펜타곤 페이퍼는 당시 국방장관 로버트 맥나마라의 지시로 만들어졌는데, 그는 캐서린과 오랜 절친이다. 캐서린은 회사의 운명뿐만 아니라 절친과의 절교까지 감수해야 한다. 링컨과 도노반처럼 그녀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증시상장을 발표하고 결정하는 이사회 장면에서, 캐서린은 그녀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남성들에 포위되어 있다. 따라서 그녀는 자신의 능력도 인정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펜타곤 페이퍼를 보도하기로 결정하기까지 그녀는 숙고를 거듭한다.

스필버그는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장 벤 브래들리에게 비중을 두면서, 펜타곤 페이퍼에 얽힌 이야기를 메인 플롯으로 놓고 첩보영화처럼 스릴 있게 끌고 나간다. 한편으로 캐서린의 이야기를 서브플롯으로 설정하고, 그녀의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냈다(캐서린 역의 메릴 스트립과 벤 역의 톰 행크스의 연기만으로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이다). 캐서린은 딸에게 "가정주부로 사는 게 행복했고 직업을 갖게 될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남편의 사망으로 이 자리에 오게 됐다"고 말한다.

그녀는 아버지와 남편이 키워놓은 회사를 망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리면서 자신 없는 태도를 보여 왔다. 하지만 언론의 사명을 놓고 옳은 판단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아버지와 남편의 그들에서 벗어나 워싱턴 포스트의 탁월한 능력을 가진 최초의 여성 발행인으로 성장하게 된다.

스필버그는 링컨, 도노반, 캐서린 등, 역사적인 인물을 그릴 때 자신이 지향하는 주제를 벗어난 그들의 개인사, 그들의 더 깊숙한 내면의 고뇌 따위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캐서린이 자기 남편의 자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다. 영화 배경도 주제에 한정해서 묘사될 뿐이다. 그들은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답게 단순한 편이고, 역사적 배경의 뒷면은 재현되지 않는다. 소련은 미국 스파이에게 정보를 빼내려고 가차 없이 고문을 가하는데, 미국은 정말 에이블에게 그런 일을 전혀 하지 않았을까?

만일 <링컨>이 오바마 대통령과 관련되어 있다면, <더 포스트>는 트럼프 대통령과 연관되어 있는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닉슨에 대해 민주주의의 파괴자로서 너무나 부정적인 인물로 비난을 가할 때, 트럼프를 겨냥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는 워터게이트 사건의 발단이 된 워터게이트 빌딩에 괴한이 침입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캐서린이 이끄는 워싱턴 포스트의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기자는 이 사건을 끝까지 파헤쳤고, 결국 닉슨은 사임하게 된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후편을 예고하는 것 일 수도 있지만, 트럼프의 탄핵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영화의 보도 자료에서, 스필버그는 "이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이끌렸는데, 오늘날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 놀라웠다"고 말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비리와 국정농단에 대한 정보를 알았던 대한민국의 언론사는 하나도 없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만일 알았다면 그들은 왜 침묵했던 것일까?

"우리가 보도하지 않으면, 우리가 지고 국민이 지는 겁니다."

캐서린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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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욱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하고, 동국대와 중앙대에서 영화이론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영화사에서 기획과 시나리오 컨설팅을 했고,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영화평론가로 글을 쓰면서 대학에서 영화 관련 강의를 하고 있다. 저서로는 <블록버스터의 환상, 한국영화의 나르시시즘>(2002), <YU HYUN-MOK>(2008), <나쁜 세상의 영화사회학>(2012), <한국영화는 무엇을 보는가>(201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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