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위험 수출 나설 이유 없다
탈원전 정부의 엇박자는 원전 수출 문제에서도 드러난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에도 원전 수출 사업 지원은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최근 영국 무어사이드 원전 사업권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 대상자로 한국전력공사가 선정되었다. 이를 두고 언론들은 아랍에미리트(UAE) 이후 8년 만에 원전 수출 길이 열렸다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 사업은 UAE의 경우와는 다르게 원전건설비를 다 부담해서 지은 뒤 장기간 전력판매를 통해 비용을 회수해야 하는 위험을 감수한 투자사업이다.
정부가 자국에서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정책을 펼치면서, 해외에는 원전을 수출하겠다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더구나 세계적인 원전 회사 웨스팅하우스, 도시바 등 세계 원전 건설 시장을 주도해온 기업들의 파산과 사업 퇴출은 전 세계적인 원전산업 퇴조와 가격경쟁력 하락에 원인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은 국내외에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안전을 담보할 수 없고, 위험한 핵폐기물을 남기는 원전은 전 세계에서 줄여나가고 퇴출해야 한다. 정부가 재정적인 위험까지 감수해가면서 지원과 보조를 통하지 않으면 경쟁력이 유지될 수 없는 사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연이은 지진이 불안하다
경주에 이은 포항 지진은 더 이상 한국이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한반도 동남부에 대부분의 원전이 위치해 있다는 점이다. 또한 지진 안전 대책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가동 중인 대부분 원전은 내진 설계가 규모 6.5 지진에 견딜 수 있는 최대지반가속도 0.2g에 대비되어 설계되어 있다. 신고리 56호기와 같이 신규 건설 원전들도 규모 7.0 지진에 0.3g로 내진 성능이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연구에서 한반도에서 발생가능한 최대 지진의 규모가 7.0 이상 7.5 수준까지 보고되고 있다. 이는 단순 계산으로도 현재 원전이 20~30배 낮게 내진 설계가 되어있음을 의미한다. 지난 박근혜 정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원전의 내진 설계를 0.3g로 강화하겠다고 하지만, 부족한 대책일 수밖에 없다. 더구나 경주에 있는 월성 1~4호기의 경우에는 원자로에 해당하는 압력관 자체가 내진성능을 근본적으로 강화시키기 불가능하다.
더구나 이번 포항지진은 규모 5.4였지만, 최대지반가속도는 0.58g을 기록한 곳도 있어 규모 7.0=0.3g 등식마저 깨뜨렸다. 규모가 작은 지진에도 더 많이 흔들릴 수 있는 위험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경주 지진에 비해 포항지진의 피해가 큰 것에 대해 포항지역이 퇴적분지로 연약지반에 의해 지진파가 더 증폭되었다는 점과 진원이 지표에서 더 가까운 거리에서 발생했다는 점을 원인으로 들고 있다.
운영 및 건설 중 원전 내진성능 및 부지 안전성 평가 자료 공개와 객관적인 검증과 재평가가 필요하다. 활성단층을 제대로 반영해 원전부지 최대지진평가를 실시해야 하며, 그에 따른 내진설계 기준 상향조정이 필요하다. 운영 및 건설 중인 모든 원전의 내진설계를 강화해야 하며, 그것이 불가하거나 미달된 원전은 폐쇄해야 한다.
대책 마련 못 한 핵폐기물
원전 증설이 문제가 되는 점은 핵폐기물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지난 40년 원전을 운영했지만, 우리는 아직 사용후핵연료(고준위핵폐기물)를 처분할 방법도 장소도 마련하지 못했다. 우리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아직 처분장을 만들지 못했다. 그런데 이대로 가면 2019년 월성원전부터 사용후핵연료는 포화상태에 이른다.
문제는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드러났듯이, 사용후핵연료를 현재처럼 원전 수조 내에 조밀하게 습식 보관하는 방식은 사고에 더 취약하며 대규모 방사능 유출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지난 정부가 진행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는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채로 일방적으로 추진해 형식적인 결론만 도출했을 뿐이다. 그래서 문제 해결은 못 한 채 원전 주변 지역에 중간저장, 최종처분장이 마련되기 전까지 임시저장 시설을 만드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여 다시 한번 지역에 부담만을 떠넘기고 있을 뿐이다.
핵폐기물의 문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절차를 되돌릴 수 있는 '가역성'과 처분장에서 안전성 문제 발생 시 핵폐기물을 회수한다는 '회수 가능성'의 원칙(국제기구에서도 권고)을 법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또한 현재 발생한 핵폐기물의 안전한 처분 방법을 찾는 것과 함께 폐기물 양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전제 속에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사용후핵연료 재공론화와 함께 임시저장 문제가 전력수급과 원전 가동의 문제보다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해서 마련되어야 한다.
원전 축소 미루지 말아야
문재인 정부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정책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뜻을 수용해 당선되었다. 한국도 8번째로 세계에서 탈원전 정책 시행하는 국가가 되었다. 장기적인 계획을 잘 세우고, 여러 부담을 최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탈원전 정부라면 에너지전환에 역행하지 않도록 최소한 원전 개수 및 용량을 줄이는 방향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우선 안전에 미달한 원전부터 조기 폐쇄하는 것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 현재 경주에 있는 월성 1~4호기는 내진설계 보강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원전은 안전을 위해서라도 조기 폐쇄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 지진 위험이 없다는 전제 아래 진행된 원전 안전 평가와 대책으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동남부 일대의 원전에 대한 내진설계 및 지진 안전성 평가를 위한 긴급 점검도 실시하자. 필요하다면 운영 및 건설도 중단하자. 모든 원전의 내진성능 및 부지 안전성 평가 자료도 투명하게 공개하여 객관적인 검증과 재평가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활성단층을 포함하여 최대지진평가를 새로 해야 하며, 내진설계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안전성 미달 원전은 조기 폐쇄해야 한다.
신규 건설보다 기존 원전 안전이 먼저
건설 중인 신규 원전들도 안전성 확보가 필요하다. 한국의 모든 원전단지는 6~9개까지의 다수호기가 밀집된 상황에서 원전이 건설,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다수 호기 안전성 평가조차 실시하지 않았고, 이제야 방법론을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현재보다 더 원전을 밀집하는 계획을 내놓으려면 안전성 평가부터 실시하는 게 순서다. 또한 경주, 포항 지진을 반영하지 않은 상태의 내진설계로는 가동 중 원전은 물론 건설 중인 원전의 사고 위험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신규원전 건설은 다수 호기 안전성 평가, 내진설계 강화부터 전제되어야 한다.
운영 중 원전 역시 최신 안전 기준 적용, 내진설계 강화에 예외일 수 없다. 또한 운영 허가 갱신 기간 역시 현행 설계 수명 기간인 30~60년에서 10년 이내로 축소해야 한다. 원전의 설계 수명을 기준으로 운영허가를 갱신하는 것은 최신 안전을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원자로의 설계수명을 60년까지 늘려 운영허가를 받고 있지만, 수백만 개의 부품과 설비, 기기, 배관, 케이블과 격납건물의 수명과 안전을 제대로 보장할 수 없다. 모든 운영 중인 원전의 안전 기준은 건설, 운영 허가 당시의 기준이 아니라 최신 안전 기준으로 갱신 적용해야 한다. 이를 제대로 적용하기 위해 현재 설계수명 기준이 아니라, 10년 이내로 운영허가 갱신기간을 적용하여 안전성 평가 및 검증이 필요하다.
원전 밀집도 1위, 문재인 정부에서 벗어나야
한국은 지금 전 세계 1위의 원전 밀집도 오명을 갖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 전력계획대로라면, 이 오명을 문재인 정부 내내 유지할 상황이다. 이 말은 그만큼 우리는 원전의 위험을 많이 안고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고리 원전 단지의 경우, 신고리 56호기까지 건설된다면 총 9기가 밀집해 있는 전 세계 유례없는 밀집 단지가 된다. 반경 30킬로미터 안에 382만 명의 인구와 부산, 울산 등 국가산업 단지가 사고 위험 속에 불안 불안한 시간을 연명하고 있다.
현재 전력수급이 안정적이고, 전력 수요가 제자리걸음인 상황 등을 고려하면, 운영 원전 개수와 용량을 줄이는 정책이 현 정부 임기 내에 시작돼야 한다. 현재대로라면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선언만하고, 다음 정부에게 그 역할을 떠넘긴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탈원전 가는 길, 돌아가지 말고 그 첫 단추부터 바로 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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