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담장위의 안철수와 유승민
정치인은 '담장 위에 서있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주로 정치자금과 관련하여, 한발 잘못 딛으면 교도소 담장 밑으로 떨어진다는 비유적 표현이다.
요즘 안철수 대표와 유승민 대표가 정치생명이 걸린 담장 위 곡예를 선보이고 있다. 국민의 당과 바른정당을 통합하여 중도세력과 개혁적 보수세력을 묶는 새로운 '개혁정당'을 탄생시키겠다는 것이다. 만약 잘못되면 두 사람은 정계은퇴의 궁지로 몰릴 것이다.
통합반대세력의 공세도 나날이 거칠어지고 있다. 국민의당에서는 호남중진을 중심으로 한 세력들이 사활적인 저지활동을 벌이고 있다. 홍준표 대표의 자유한국당은 바른정당을 왜소화시키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왔다.
그럼에도 양당의 통합작업은 설날 연휴 전까지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보인다. 안대표와 유대표는 과연 무엇을 이루기 위해 통합을 하려할까?
안대표는 통합의 목표로 극우세력의 주변화를 들었다. 유대표는 수구보수를 개혁보수로 대체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다. 제1의 타겟이 자유한국당임이 명백해 보인다. 즉 자유한국당을 주변화시키고 보수세력의 주류가 되어, 그다음 민주당과 건곤일척의 승부를 해보겠다는 전략으로 읽힌다.
2. 집권 민주당의 정치력이 중요하다
'자유한국당의 주변화' 또는 '수구보수의 퇴출'은 민주당으로서도 강 건너 불 보듯 할 사안이 아니다. 지금 촛불혁명은 자유한국당의 '몽니'에 부딪혀 한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주변화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다. 촛불혁명이 제도적 완성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입법부의 세력구도가 새로 짜여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탄핵연대에 입각한 사안별 협치로 근근히 국회를 운영해 왔다. 그러나 2년차에 접어든 지금 여태까지의 방식에서 벗어나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선 청와대와 민주당의 역할분담이 확실해야 한다. 청와대는 적폐청산, 경제살리기와 북핵위기 해결같은 국가적 어젠다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정치적 어젠다는 제1당이자 집권당인 민주당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민주당이 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동안 청와대의 역할이 전면에 두드러지고, 민주당은 상대적으로 피동적으로 비춰 졌다. 그러나 이제 완전히 달라져야 한다. 민주당이 판을 주도해야 한다.
3. 선거구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촛불혁명이 교착상태에 빠진 현상태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자유한국당의 몽니를 극복하고 정치혁명을 제도적으로 완수하는 일이다. 그 핵심에는 선거구제와 개헌의 문제가 있다.
선거구제든 개헌이든 일체의 변화를 자유한국당은 결사반대하고 있다. 안대표와 유대표는 현상을 타파해야 할 사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 민주당은 어떤가? 혹시라도 높은 지지율을 믿고 제도적 개혁없이 다음 선거에서 이기면 된다라는 계산을 셈하고 있지나 않을까?
여기에 대해 민주당이 단호하게 '노'라고 답변해야 한다. 현상유지가 아니라 촛불혁명에 걸맞는 혁명적 변화를 가져오는 주체가 되겠다는 선언이 필요하다.
민주당이 판의 중심에 서려면 선거구제 개혁이라는 중심고리를 단단히 잡아야 한다. 제1당이라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과감하게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당론으로 채택하여 정치권을 연동형 비례대표제 찬성세력과 반대세력으로 단순화시켜야 한다. 국민의당에 있는 호남세력과 정의당은 명분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이 연대에 같이 할 것이다. 안대표와 유대표를 적극적으로 포용해야 한다.
안과 유의 통합정당이 출범한다면 야당의 입장에서 집권당에 대해 많은 비판을 할 것이다. 특히 북핵문제를 둘러싼 안보문제에 대해 날선 비판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야당의 입장에서 여당에 대해 비판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렇지만 국정은 일단 여당이 책임지고 해나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많은 차이가 있지만 선거구제와 개헌을 둘러싼 대연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4. 권력구조는 대타협으로
만약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중심으로 정치연대가 성립한다면 자유한국당도 내부가 소용돌이칠 것이다. 즉 정치권의 유동성이 높아진다. 자유한국당이 마지막으로 기대는 마지노선이 개헌저지선이다. 현재 자유한국당은 개헌저지선인 100석을 훌쩍 뛰어넘는 116석을 갖고 있다. 자유한국당의 개헌저지선을 어떻게 깨트릴 것인가. 개헌이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 국민여론은 권력구조에 대해 4년중임제에 가장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주지하다 시피 국회의원 다수는 국회가 권력에 참여하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내각책임제에 쏠려있다.
만약 독일식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된다면, 권력구조를 새로운 각도에서 검토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대안으로 분권형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가 거론되는데, 우리 실정에 총리와 대통령의 권력투쟁이 일상화되는 분권형은 거론할 필요도 없다고 본다. 그런데 독일식 내각책임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전제한다면 의원내각제를 검토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도 그동안 선거구제의 비례성이 확보되면 권력구조는 열려있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즉 연동형 비례대표제라는 선거구제 개혁과 독일식 의원내각제라는 개헌문제를 연계하여 대타협을 성사시킬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자유한국당의 개헌저지선이 무너질 가능성이 커지리라 예상한다.
만약 둘 다 바꾸는 변화가 합의되어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이 의결되면, 다음 총선까지 2년반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하반기에 새로운 총선을 실시하는 것도 충분히 검토가능해 질 것이다.
5. 중(中)연정(聯政)을 향하여
지금은 내우외환의 엄중한 시기다. 거대한 전민항쟁의 열기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새로운 정부를 탄생시켰다. 정치판이 본질적으로 새로 짜여져야 한다. 그렇다면 가장 화급한 당면과제에 대해 국가적 힘을 모아야 한다. 민주당과 안철수·유승민 세력의 중(中)연정(聯政)을 제안한다. 민주당이 진보정당이나 호남세력과 소연정하거나, 또는 자유한국당과 대연정하는 것은 지금 이 시기 정답이 아니다. 민주당과 안철수·유승민 세력이 선거구제 개편과 개헌을 놓고 우리 정치권에서 있어본 적이 없는 초유의 정치적 연대를 맺어야 한다. 필자는 이것을 중(中)연정(聯政)이라 부르고 싶다. 호남세력과 정의당도 당연히 동참할 것으로 본다.
촛불시민 역시 방관할 수는 없다. 정치지도자의 개인적 권력의지를 제어하고 자유한국당의 개헌저지선을 돌파하는 데 촛불시민의 거대한 함성이 다시 일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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