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재임 중 주한미군 철수를 추진했기 때문에 한미 관계는 급랭한 상태였고 그래서 한국 정부는 극진한 환대를 위해 국빈 방한 준비에 공을 많이 들였다. 아침 기상 후 미군 부대 내에서 달리기를 한 그는 당시 한국에 생소했던 '조깅'을 가르쳐 준 최초의 인물이었고, 박정희와 주한미군 철수 등 안보 문제로 설전을 벌이는 바람에 둘 사이가 나빠진 사실은 꽤 유명한 일화이다. 박정희는 4개월 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에 의해 암살당한다.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은 그의 교회 방문이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그는 방한 중 일요일 아침에 예배를 보기를 원했다. 그래서 미 대사관 직원들과 경호요원들이 여의도의 한 교회를 사전 답사했고 일주일 후 카터 대통령은 그 교회에서 아침 예배를 보게 된다. 문제는 교회 길 건너편의 E아파트였다. 작은 도로를 사이에 둔 이 아파트의 A동은 당시로선 고층인 12층이었는데 그 교회 정면을 내려다보는 형국이었다. 경호상 조치가 필요했다.
결국 그 아파트 120세대 모두 경호원이 배치됐다. 경호원들은 교회를 바라보는 모든 창문을 커텐으로 가리게 하고 카터 대통령 일가가 교회에서 예배를 보는 동안 배치된 아파트에서 경호 임무를 수행했다.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 예배를 본다지만 그 때문에 아파트 거주민들을 집에서 내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40여 년이 지나 문재인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마지막 날 그는 충칭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했다.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에 고통 받고 함께 저항했던 항일투쟁의 공감대와 역사적 동질감을 새롭게 하는 의미 있는 방문이었다. 그런데 청사 뒤편 아파트에 주민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중국 공안에 물어보니 문 대통령 경호를 위해 거주자들을 소개했다는 것이다. 국빈 경호를 위해 공안이 아파트 주민들을 모두 내보낸 것이다.
내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두가지다. 첫째, 한국 대통령은 이번 중국 방문에서 40년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방문 때 받은 경호보다 훨씬 엄중하고 철저한 경호를 받은 셈이다.
둘째, 기자들의 '방중 보도 행태'다. 이번 '한국 기자 집단폭행' 사건은 중국의 과잉 경호와 한국 언론의 취재 열의가 충돌해 벌어진 불상사였다. 폭행은 어떤 이유에서라도 옳지 못하다. 그런데 폭행과 홀대가 문제라면 그 행위자인 중국 정부를 비판해야지 왜 자국 대통령을 비난하는가.
엉만진창이 된 한중 관계 회복을 위해 애쓰는 대통령과 이를 비난하는 언론
이번 문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대한 중국 등 외국 언론은 호평 일색이다. 사드 갈등 당시 한국을 맹비난했던, 사실상 중국 정부의 기관지인 <환구시보>조차 문 대통령이 자신의 의전에 개의치 않고 노영민 대사를 중국의 주중 대사로서는 최초로 난징 대학살 추모기념식에 참석하게 한 것을 높이 평가했고 이번 정상회담에 120점을 주겠다는 인터뷰 기사까지 실었다. <환구시보>는 중국 정부보다 더 '중화주의'에 치우쳐 있다는 평가를 받는 중국 내 '우파'매체다. '중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 매체도 문 대통령의 방중을 이렇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중국 언론 뿐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도 성과를 얻었다. 문 대통령은 고위급 회담 뿐 아니라 중국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서민 식당을 찾았고 중국을 '대국,' '높은 봉우리'라 칭하며 치켜세우면서 결국 리커창 총리로부터 '양국 관계의 완전한 회복'이라는 답을 이끌어 냈다. 이는 사드 문제로 인해 양국 관계가 이미 엉망이 되어버린 현실, 그리고 중국이 사실상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강화하는 상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썩 훌륭한 외교적 성과이다. 전 정권이 망쳐놓은 경제·외교·안보 문제를 일단 진화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럼에도 언론의 보도 태도는 국익이라는 측면에서는 거의 '자폭 보도'라 해도 무방할 지경이었다. 기사와 뉴스의 헤드라인은 온통 '홀대'와 '혼밥'이었다. 대한민국이 홀대 받고 왕따라는 사실을 마치 세계 만방에 알리려는 듯했다. 이렇듯 언론이 자국 대통령을 흠집 내고 맹비난하는 가운데 급기야 상대국 언론이 타국 대통령을 옹호하면서 그 나라의 언론을 꾸짖는 일이 벌어진다.
보다 못한 <환구시보>는 '문재인 방중, 한국 언론은 자살골을 넣지 말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런 보도는 양국 관계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중국이 문 대통령의 방문에 성의를 다하고 있는데도 일부 한국 매체가 양국의 관계 회복 시도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문 대통령의 성과를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일본이나 미국이 할 일이라며 "한국 매체의 보도는 '국익의 대문'을 향해 자살골을 넣는 것과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안타까운 '기자 폭행' 문제와 관련해, 해당 사건을 '소비'하고 '이용'하는 언론의 행태는 어떤가? 폭행 사태의 진상을 밝히는 것과 별개로, 이 사안을 '중국의 문재인 홀대론'의 프레임으로 악의적 기사를 쏟아내는 모습은 문제가 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방중 때도 중국 공안의 한국 기자 폭행이 있었다. 2013년 7월 3일자 <SBS> 뉴스 '취재파일 한중 경호 신경전…중국에서 무슨 일이?'라는 기사다.
"우리 측 영상취재 기자들이 박 대통령을 근접 촬영하는 것을 중국 경호 측에서 노골적으로 막는 모습입니다. 상대국 언론사 기자들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태였습니다. 보통 정상회담이나 국가원수 방문 행사에서는 상대국 경호 측과 동행 기자단 취재 문제에 대해서 어느 선까지 취재를 허용한다는 것이 사전에 약속이 돼있는 상황에서 중국 경호원들의 행동은 이런 관행과 상대국 취재진에 대한 배려를 무시한 막무가내식 행동이었습니다. (…) 당시 우리 측에서 여기자 1명도 대표 취재기자로 현장을 취재했는데, 박 대통령의 말을 듣기 위해 뒤쪽으로 가까이 가려하자 중국 경호원이 뒤쪽에서 여기자의 뒷머리를 잡아당기기도 했다고 합니다."
왜 당시에는 '박근혜, 중국에서 홀대 받았다'는 문제로 지면을 할애하지 않았을까?
언론은 이제 대통령 숨 쉬는 것조차 비판할 것인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대통령 해외 방문 관련 아무런 문제 제기도 않던 언론은 왜 유독 문재인 대통령만 물어 뜯으려 달려드는 것인가. 아침에 밥 먹는 것을 가지고 시비 거는 것을 보면 곧 숨 쉬는 것 가지고도 '혼숨'이라고 비난할 것인가.
언론과 평론가들도 적당히 했으면 한다. 수십 명 중국인들과 함께 식당에서 주중 대사 부부, 외교부 장관 등 일행과 같이 아침식사를 하고 식당 주인과 다정하게 사진까지 찍었는데 이걸 혼밥이라고 비난하는 그 기상천외한 멍청함은 어디에서 빌어왔는가. 이걸 가지고 혼밥이라 한다면 세월호가 침몰하는 그 순간에도 청와대 방구석에서 혼밥을 했던 박근혜의 혼밥은 무엇이라 칭해야 할 것인가. 혼밥의 금자탑은 박근혜 아니던가. 박근혜의 혼밥, 혼숨, 혼잠, 혼욕, 혼말, 혼변, 혼레이저, 혼머리를 비난했던 언론이 있기나 했던가.
아침 식사를 가지고 막 나가다보니 희한한 주장까지 등장한다. 이준석은 대통령의 혼밥은 중국의 비협조이고 굴욕이며 외교라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언론에는 '귀빈 만찬이 기본'이라는 말까지 등장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으면서도 스스로의 무식함을 자랑하는 궤변이다. 어느 대통령이더라도 외국을 방문하면 아침 식사는 참모들과 함께 하며 그날의 일정을 점검하고 회담 전략을 짜는 시간으로 활용한다. 아침밥을 상대국 고위급 인사와 만찬을 하며 먹는 경우 봤는가. 아침식사를 가지고 '귀빈 만찬이 기본'이라는 주장엔 아예 쓰러질 지경이다.
해외 순방 중 '혼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전매특허 아니었나? 박 대통령이 해외 순방시, 심지어 '수행원'과 함께도 아닌 제대로 된 '혼밥'을 즐겨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고 있는 일이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11월 29일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참석차 프랑스 파리에 가서 아침마다 '혼밥'을 먹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국정농단' 사건이 벌어진 후에야 알려진다. 2017년 1월 10일 <JTBC> 보도의 한 대목이다.
"고풍스러운 호텔방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바로 저 전자레인지! 2년 전 런던에서 대통령이 아침마다 혼밥을 먹기 위해, 특히 죽을 먹는 데 필요하다며 갖다놨다는 그 전자레인지! 역시 증언만 있었을 뿐 사진으로 확인된 건 없었는데 이렇게 파리에선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홀대'를 당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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