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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 청산은 아직 멀었다

[민교협의 정치시평] 공적 영역에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

1119일 탈핵에너지교수모임 창립 2주년 토론을 겸한 기념 세미나에 참여하였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이후 한국 에너지 전망과 과제'라는 주제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프리드리히에버트재단이 공동주최해 진행된 행사이다.

토론 내내 소위 핵마피아로 지칭되는 경제적 이익 집단들의 그 집요한 자신들의 기득 수호에 대해, 너무 순진하고 안일하게 대응하였다는 자기 반성이 앞선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특히 상식을 넘어 탈법적으로 대학을 운영하는 사학들의 사적인 이해를 챙기려는 잘못된 행태들을 직접 경험을 하였음에도, '당연히 선한 의지를 갖는 참여자들이 공공이익을 위해 잘 판단할 것'이라는 지나친 낙관에 대한 회한도 느껴졌다.

에너지경제연구소,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 소위 국가 에너지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원전 마피아들의 그 견고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과소평가 하였다는 한 토론자의 비판적인 의견 표명에도 많은 공감을 하였다. 국민 공론화위원회의 원전건설 재개라는 기대 밖의 결정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낙담한 상태지만 주변 일상에서 접하는 사회의 부조리에 결코 침묵하지 않겠다고 스스로를 애써 달래보았다. 잇따른 국내외 원전사고로 원전 폐기는 당연할 것이라는 기대를 했던 많은 사람들의 충격이 크다는 걸 자연스레 확인도 하였다. 한국사회에서도 상식은 통할 것이라는, 국민안전을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의 낙관론은 우려로서 현실화되었다. 사회개혁의 동력이 약화될 것 같아 심히 걱정되기도 한다. 자칫 수구 보수 세력에 반개혁의 구실을 주는 것 같아 공론화 결정에 대한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확실치 않는 낭만적 기대를 항상 경계하자고 다짐한 나 자신에 대한 질책도 해 보았다.

그들의 집요한 자기 기득 수호를 위해 일상적 거짓 정보 등을 활용한 활동들에 대해 적절하게 대응을 하지 못한 셈이다. 실례로서 이들이 내세웠던 매몰 원가(Sunk Cost)는 이익추구를 최우선하는 기업 등 영리조직체에서더 향후 의사 결정과 관련해 철저히 배제하는 것이 일반 상식이다. 이는 관리회계분야에서도 아주 기본적인 준칙이다.

그러나 원전건설 재개를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미 투입된 원전 투자액을 원전 고수의 주요한 내용으로 내세웠다. 이러한 엉터리 논리에 대해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그 부당성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럼에도 이들의 거짓 논리를 대부분 침묵으로서 묵인한 셈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를 과대 포장했다. 원전 건설 중단에 따른 먹이감 상실이라는 공통의 이해가 이들을 적극적으로 결집시킨 것이다.

탈핵에너지를 추구해야 하는 당위성을 인정함에도 공론화위원회 참여자들 중 상당수는 투자된 원전은 지속하자는 동정론에 찬성을 했다.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이미 지출한 투자액은 향후 의사결정시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다. 그러기에 절대로 이를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려해서는 안 된다. 학계나 일반 실무 현장에서 일치된 견해들이다. 그러나 원전건설 재개 여부라는 다수의 의사 결정 과정에서 이 기준들은 배제되었다. 생명 등 안정성을 대상으로 고려해서는 안되는 요인이 중요한 변수로 등장하였다. 아직까지도 이해될 수 없는 과정이다.

원전 폐기를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서 이는 당초 공론화 대상으로 제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공론화 대상을 잘못 택한 것이다. 오히려 국무총리를 대통령이 현행처럼 임명할 것인지 아니면 국회에 그 임명권을 부여할 것인지 등이 공론화로서 수행되어야 할 의제들이다. 이번 공론화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절차의 형식은 갖추었지만 그 실질에 있어서는 많은 모순들이 내포되어 있음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보수적인 성향을 견지할 수 밖에 없는 50, 60대 구성비중이 50%에 가깝게 설정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20대와 30대는 30%중반 수준으로 편성되었을 뿐이다. 더욱 생명의 안정성을 고려한다면 향후 남아있는 생이 더 짧은 고령층이 공론화 위원회에 더 많이 참여하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10, 20대 등은 향후 평균수명으로 60여년 이상을 더 활동할 수 있어 젊은 층에게 더 높은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선거권이 없는 연령대는 실질적으로 완전 배제를 한 꼴이 되었다.

행태재무학의 이론을 제시한 토론자도 있었다. 경제적인 이해로서 그 수혜를 누리고 있는 원전 찬성자들은 향후 이익의 창출보다는 동일한 손실에 대하여 더 큰 효용의 감소를 느끼게 된다. 그에 대한 강한 저항은 당연히 발생한다. 따라서 원전 재개를 당연히 예견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경제적 이해 없이 선한 의지로 모인 공론화위원들은 주로 원전 중단에 의견을 함께하는 계층이었다. 이들은 소위 핵 마피아들의 자기이익 고수를 위한 그 집요함에 대해 순수함만으로는 애초부터 대응할 수 없었던 것이다.

위 토론자의 의견 제시 배경은 경영자 등 의사결정자의 편향, 주먹구구식 규칙, 틀짜기 등을 주 내용으로 하는 전망(Prospect)이론에 근거한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 경제학자 버논 스미스가 주창하였다. 대리인이 주인의 이익에 반하는 자기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일종의 도덕적인 해이가 공공이익에 반하여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현상에 대해 쉽게 설명해 준다. 최근 사회 현상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고 있다. 실제 발생한 결과를 나중에 평가하면서 행태재무학이라는 학문의 영역으로 자리를 잡은 위 이론을 직접 적용해 볼 수 있다.

원전마피아 집단의 제몫 챙기는 행태와 닮은 꼴이, 온갖 비리로 점철된 사학들이다. 요즘 언론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사학의 모순투성이 행위들도 결국 경제적 이해와 결부시켜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사적 욕심으로서 ''과 직결됨을 쉽게 알 수 있다. 교육이라는 공공영역은 국가가 직접 개입하여 운영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럼에도 상당한 부분을 사학에 위임하고 그 감사기능 등을 방기한 교육 마피아들의 행태도 핵마피아들과 너무 흡사하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상당한 운영 금액을 혈세로 지원해 줌에도, 이를 본연의 교육 목적에서 이탈시키고 사학 경영주 개인적인 용도로 만들고자 하는 욕심이 오늘날 부패한 사학을 대량 양산하게 하였다.

대학준칙주의를 통하여 대학 등의 설립을 남발케 함으로써 그 부작용은 이미 예견되었다. 이를 주도한 자들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전혀 그러하지 못하고 있다. 권한이 부여되면 반드시 의무와 책임이 수행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잘못된 행위, 특히 공적인 과오에 대한 책임추궁을 철저하게 하지 못해왔다. 역사적으로 잘못된 과거사에 대하여는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연유에서 비롯되어, 악순환의 고리들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 전반에 비상식이 상식으로, 비정상이 정상으로, 가짜가 참으로 위장되고 거짓과 위선이 일상으로 행해지고 있다. 왜곡된 역사가 전혀 수정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 정의가 바로서기를 바라는 것은 그냥 소망 사항일 뿐이다. 비롯 그 기간이 2년 남짓 짧은 기간이었지만 나치에 협력한 자들을 예외없이 청산한 프랑스 등의 사례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케 해 주고 있다. 36년 일제 치하의 긴 치욕의 기간 동안 이들에게 적극 협조한 자들에 대하여 청산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아니 그들이 오히려 장기간 권력을 휘둘러 자신들의 잘못된 행위들을 정당화시켰다. 두 번이나 창씨개명하고 일본제국주의 만주괴뢰정부의 소좌로서 해방을 맞이한 자를 가장 존경스러운 대통령으로 칭송하고 그 자손이 다시 대통령이 되는 사회에서 정의란 단어 자체는 아예 떠 올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의'란 표현들이 주위에서 지나치게 남용되고 있다. 웬만한 부도덕한 행태들에 대해 일반 국민들은 그 감정이 이미 무디어진 상태다. 비정상적인 위정자들은 당연히 사회 도덕과 상식적인 사회 실현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사회에서 부도덕한 권력 행사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독재정권이나 군사정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대의 고금을 떠나 예외없이 사회 정기를 흐리게 한다. 그렇지 않고는 자신의 불의한 권력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젊은 청년들의 사회 현실 참여를 차단하고 그들을 사회 관심에서 격리하는 것은 그들의 권력 유지에 필연적이다. 이같은 우민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친다. 시정잡배의 윤리 의식조차도 갖추지 못하는 사학의 운영자들의 수 년 아니 수십 년 이어온 그릇된 관행의 반복은 부도덕한 정권들의 의도적인 방기가 있기에 가능하였다.

이젠 비정상을 정상으로 되돌려야 할 시점이다. 그렇지 않고는 한국 사회의 미래는 더 이상 희망을 가질 수 없다. 과거 부도덕한 정권의 여당 대표로서 1달에 4000만원이 넘은 활동비의 상당 부분을 사적인 생활비 등으로 유용한 정치가들이 아무런 법적인 제재도 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이다. 더 이상 공적인 영역에 사적 이해집단의 제 이익 챙기는 자들을 머물게 해서는 아니 된다. 이들을 당연히 인적청산 해야 한다. 제도로서 더 이상 공공 영역에 복귀할 수 없도록 마땅히 퇴출해야 한다. 온갖 악행으로 사적 이익을 우선시 하는 기득 계층의 완전 해체 없이는 이 땅의 그 누구도 희망을 갖고 살수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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