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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엄청난 죄인인줄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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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렇게 엄청난 죄인인줄 꿈에도 몰랐다"

[프덕프덕]<15> 어느 청목회원이 보내 온 편지

다음은 가상의 청목회원 입장에서 쓴 편지글로 기자의 창작물이다. <편집자 주>

내가 이렇게 큰 죄를 저질렀는지 몰랐다. 국회의원님들에게 매달리기도 하고, 홈페이지에 글도 올리고, 출판기념회장을 따라다녀서 작년 12월에 청원경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을 때만 해도 전국 8만 동료들이 만세를 불렀었는데….

정년 채우기도 힘들지만 정년까지 근무해도 우리 봉급은 순경 봉급과 동일했다. 법이 바뀌어서 15년 미만은 순경, 15년 이상 30년까지 근속을 하면 경장 월급을 받게 됐다. 언감생심 노조야 난망하지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도 인정됐다. 정년도 1년이 늘었다. '신의 직장'에서 보면 코 웃음 칠 내용이지만 기쁘기 한량이 없었다.

그런데 내가 죄를 지은 줄은 정말 몰랐다. '맞춤형 로비'란다. 임원단이 의원님들 출판기념회에 돌아다니면서 고맙다고 인사한 것, 회원들이 의원님들 홈페이지에 감사 인사 올린 것, 우리 카페 홈페이지에 의원실 전화번호 올려놓고 독려운동을 한 것, 행전안전위원회 의원님들 약력 올려놓고 돌려본 것도 전부 '다양한 방법의 로비 정황'이란다.

8만 회원들이 한 달에 1000원 씩 떼서 모은 우리 회비 8억 원 중 4억 원이 남았는데 이것도 "법률안 추가 개정을 위한 로비 자금'이란다. 그랬나? 나도 몰랐다.

'두배나 올리냐'는 볼멘소리도 많았지만 법을 더 좋게 바꿀 수 있으면 바꿔보자고 설득해 지난 5월부터 월 회비를 1000원에서 2000원으로 올렸다. 이것도 '추가로비자금 확보용'이란다.

한 명이 10만 원 씩 정치자금 후원하면 연말 정산 때 돌려 받는다 길래 회원 명단을 모아서 고마운 의원님들한테 몇백만 원씩 후원하고 쪼개서 영수증 처리한 것 자체는 사실이다. 그런데 불법이란다. 누가 가르쳐 주길래 참 좋은 방법이다고 무릎을 쳤는데, 불법이라니. 죄를 지었으면 벌은 받아야겠다.

하지만 일전에 <PD수첩>에 나온 건설업자들은 의원님, 검사 영감님 일식집, 룸살롱으로 모셔 일상적으로 대접하고 꼬리표 없는 봉투도 챙겨드리고 '2차' 보내드려도 별 탈이 없던데. 전국경제인연합회니 이런 곳은 사흘이 멀다하고 "법 바꿔라. 법 만들어라" 성명도 내던데 내가 죄인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때 그 의원님한테 "이런 부탁 드려서 송구스럽다"고 말씀드리니까 "무슨 말씀이냐, 이게 공정사회 아니냐"고 말씀하시더라. 다른 의원님은 "우리가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 아닙니까"라면서 껄껄 웃던데.

감사패 만들어서 의원님께 드리면서 '2만 원 주고 맞춘 거 혹시 표시날까? 3만 5천원 짜리 할 걸 그랬나. 손이 부끄러워서 어쩌나 싶었지만 이것도 '조직적 로비의 정황'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청목회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통해 정치권의 불법 후원금 관행을 근절하겠다"는 석간신문 기사를 보니 무릎이 덜덜덜 떨린다.

이제 어떻게 해야 되나?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니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죄의 경우 수뢰액이 5000만 원 이상 1억 원 미만인 경우에는 7년 이상의 유기징역, 3000만 원 이상 5000만 원 미만인 경우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받는 사람이 벌 받는 건지 주는 사람이 벌 받는 건지 모르겠다.

민주노동당에 1만 원 후원했던 전교조 교사가 해직됐다는 뉴스가 생각난다. 아이엠에프 이후 통닭집 말아먹고 겨우 잡은 자리가 여긴데 나도 직장도 잃고 콩밥 먹게 되는 건가? 법을 어겼다니 그런가 싶은데, 정말 난 아직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검사님이 겁주면서 묻길래 의원님들한테 드린 후원금 내역, 그 의원님이 고맙게 악수를 흔쾌히 받아주셔서 기억나는 출판기념회 날짜, 홈페이지에 감사글 올린 거 다 털어놓았는데 바로 다음 날 신문에 불법로비양상이라면서 나오더라. 사람이 무섭다.

내 이야기를 물어보는 사람도, 이야기를 털어놓을 사람도 없다. 옆동네 은행 지점에서 일하는 동료 하나가 하나가 고종사촌 동생이 작년에 기자시험 합격했다고 자랑하던 기억이 난다. 수소문해봐야 하나? 변호사부터 불러야 되나? 변호사 부르는 데는 얼마나 들까?

(어이없어 실소만 나오는 일들을 진지하게 받아쳐야 할 때 우리는 홍길동이 됩니다. 웃긴 걸 웃기다 말하지 못하고 '개념 없음'에 '즐'이라고 외치지 못하는 시대, '프덕프덕'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풍자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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