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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껴안은 현대중 노조, 진정성 보여 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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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 껴안은 현대중 노조, 진정성 보여 주려면?

[기자의 눈] 노조 규정 변경 통해 비정규직 가입 문호 열었지만...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끌어안았다.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노조 가입이 허용돼 있던 노조 규정을 하청 노동자 등으로까지 범위를 넓힌 것이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는 지난 21일 대의원대회를 열고 '현대중공업그룹사 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중 조합에 가입한 자로 구성'하며, '일반직지회와 사내하청지회에 가입한 조합원은 지부 대의원대회 통과 후 지부 조합원 자격을 갖는다'고 노조 규정을 변경했다.

노조 규정은 대의원대회에서 3분의 2 이상 찬성을 얻어야 한다. 이날 참석한 대의원은 132명으로 이중 찬성 88명, 반대 44명, 찬성률 66.7%로 겨우 통과됐다. 앞서 두 차례 대의원대회에서도 같은 안건이 상정됐지만 3분의 2를 넘기지 못했다.

이번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의 선택, 즉 비정규직에게 노조 문호를 연 점은 큰 의미가 있다. 적어도 노조에 가입했다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해고되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두 명은 하청 노조 가입을 이유로 해고됐다며 107일 동안 고공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산업재해 문제나 임금, 복지 문제 등도 지금보다는 나아질 여지가 있다. 사측과의 교섭에서 이를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현대중공업 정문. ⓒ프레시안(허환주)

비정규직 끌어안은 정규직, 극히 이례적인 일

하지만 정규직 노조가 규정 변경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를 노조에 가입토록 한 사례는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금속노조 완성자동차 노조 중 유일하게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한 기아차노조 조차도 지난 4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조합원 자격을 박탈한 바 있다.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같은 틀 안에 있기가 매우 어렵다는 이야기도 된다. 각기 다른 입장과 견해를 가진 조합원들이 반목할 경우, 이는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속노조가 1사1노조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나 이를 지키는 단위노조는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다.

일례로 기아차노조도 비정규직 투쟁을 두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는 서로 입장이 달랐다. 법원에서 기아차 사내하청 전체 공정이 불법 파견임을 인정하자 2016년 11월, 기아차지부는 4000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 가운데 일단 1049명만 특별채용하기로 사측과 합의했다. 그러자 사내하청분회(비정규직 노조)는 이에 반발하며 싸울 것을 요구해왔다.

법원 판결보다 훨씬 뒤처지는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게 논리였다. 이후 사내하청분회는 전원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독자 파업을 벌였고 정규직 조합원들은 이를 두고 사전에 자신들과 협의하지 않고 파업을 강행했다며 하청노조를 비판했다. 그러다 더는 함께 할 수 없다며 총회를 열고 분리 수순을 밟았다.

그렇다면 이를 모를 리 없는 현대중공업 정규직은 굳이 비정규직을 노조에 가입하도록 했을까. 자기네 발등에 떨어진 불(정리해고, 유급순환휴직, 분사 등)도 버거운 상황이다. 또 다른 문젯거리가 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비정규직 가입' 건이 진정성을 보이려면...

무엇보다 이대로는 가다가는 노조 교섭력 자체가 사라진다는 위기감이 작용했다는 게 크다. 현재 현대중공업 정규직 노조 조합원 수는 1만2000여명. 2015년 기준으로 1만7000여명이었던 것에서 5000명이나 감소했다. 게다가 매년 발생하는 퇴직자로 인해 매해 1000여 명의 조합원이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 지금은 상당히 줄었으나 하청노동자의 숫자는 정규직 노동자의 2배 가까이 차지한다. 또한, 앞으로 조선업에서 하청의 비율은 정규직보다 높으면 높았지 낮아질 리 없다. 회사는 정규직 4 : 비정규직 : 6 비율을 맞춘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있다.

이런 구조에서 정규직 노조의 힘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의 힘은 조직된 노동자의 숫자가 좌우한다. 노조의 목소리가 약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끌어안은 이유는 여기에 있다.

하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단순히 노조 가입 문만 열어 놓았다고 만사가 해결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하청 노조 조합원 숫자는 미미한 수준이다. 블랙리스트 등 그동안 만연했던 부당노동행위가 하청 노동자의 노조 가입을 막았다.

단순 가입만 하면서 자신들의 일이 끝났다고 손을 터는 게 아니라, 하청 노동자를 어떻게 조직할지, 그리고 이들의 권리를 어떻게 지킬지를 고민하는 테이블이 필요하다. 정규직 노조는 단순히 특별위원회에서 신분보장, 선거 등 통합노조를 위해 절차적 논의를 한다고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하청 노동자 조직을 위한 실질적 논의 과정, 그리고 실천력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회사와의 교섭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하청 노동자의 가입을 선택했다면, 이것이 실효성을 거두기 위한 노력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오는 10월, 현대중공업 집행부 선거에서 겨뤄야 하는 '어용' 집행부와의 선명성을 위해 '비정규직 가업'건을 꺼내들었다는 비난을 받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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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환주

2009년 프레시안에 입사한 이후, 사람에 관심을 두고 여러 기사를 썼다. 2012년에는 제1회 온라인저널리즘 '탐사 기획보도 부문' 최우수상을, 2015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서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했다. 현재는 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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