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대선이 보름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론조사 지지율 1·2위를 달리던 문재인-안철수 두 후보 간의 경쟁 구도가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4월 중순의 팽팽한 양강 구도에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를 오차 범위 밖에서 앞서는 양상이 다수 여론조사에서 확인되고 있는 것.
지지율 추세는?
24일 <조선일보>가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21~22일 조사한 후 발표한 조사에서는 다자 구도에서 문재인 37.5%, 안철수 26.4%로 나왔다. 같은 기관의 직전 조사와 비교하면 안 후보가 5%포인트가량 하락해 격차가 벌어졌고,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앞섰던 2주 전 조사와 비교하면 안 후보는 10%포인트가량이나 하락했다.
문화방송(MBC)와 <한국경제>가 '리서치앤리서치'에 의뢰해 21~22일 조사한 후 23일 발표한 조사에서도 문재인 39.1%, 안철수 30.1%로, 지난 조사 대비 지지율 격차가 8%포인트 이상 벌어져 오차 범위를 넘어섰다. 같은날 발표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조사(21~22일 조사치)에서도 문재인 44.4%, 안철수 32.5%로 집계돼 격차가 10%포인트를 넘었다.
지난 금요일인 21일자 <프레시안>-리서치뷰 조사(18~20일 조사치)에서도 문재인 43.3%, 안철수 31.3%로 안 후보의 지지율이 5%포인트 추가 하락했다. 21일 발표된 '한국갤럽' 집계(18~20일 조사치)에서 역시 문재인 41%, 안철수 30%로 나왔고, 안 후보 지지율은 전주 대비 7%포인트 하락했다. (이상 5건의 조사 관련 응답률과 통계 보정 기법 등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안철수 하락, 왜?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이 안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데에 일치된 판단을 내렸다. 이는 국민의당 지도부에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는 24일 당사 기자 간담회에서 "이제 선거가 15일 남았는데, 14일 국회의원 선거운동 기간에도 초반·중반·종반이 있다. 안 후보에게 지금 좀 불리한 조사 결과가 나오더라도 다음 주말부터 긍정적인 상승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이상일 아젠다센터 대표는 "안 후보의 지지율이 빠지는 국면인 것은 맞다"며 "처음 양강 구도가 형성됐을 때는 박빙이거나 일부 조사에서 앞서기도 했지만, 지난주 초까지 5%포인트 이상 벌어진 데 이어 최근에는 10%포인트 정도 격차가 벌어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 대표는 "지지율이 오르면서 안 후보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졌는데, 그 이후 관리를 잘하지 못했다"는 것을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보수층이 안 후보에게 주목한 것은 맞지만, 그건 안 후보가 뭘 잘해서 모여든 게 아니다"라며 "그런 상태에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메시지를 내놓은 게 없고, 그저 '성원에 감사하다'는 정도 메시지만 내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안보 이슈가 주요 쟁점화되면서 보수 표의 분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안보 이슈로 보수 후보들이 문재인을 때리는데, 그 효과는 문재인이 아닌 안철수 지지율이 흔들리는 기묘한 현상"이라는 것. 윤 센터장은 또 "'조폭' 논란이나 경선 동원 논란은 안 후보에게 별 타격을 주지 않았는데, 부인 채용 특혜 논란이나 단설 유치원 논란은 다소 타격이 됐다"고 덧붙였다.
안철수 지지층의 특성은…
이 대표나 윤 센터장의 분석에는 공통점이 있다. 4월 중순 문재인 후보와 양강을 형성했던 안 후보의 높은 지지율은, 안 후보 본인이 내놓은 행보나 메시지에 대한 평가라기보다 일종의 '반사 이익'이었다는 것이다.
윤 센터장은 "보수층의 안철수 지지는 열성적 지지가 아니라 문재인의 당선을 저지하기 위한 견제 차원"이라며 "지속적으로 '문재인을 이길 수 있다'는 기대감을 유지해야 하는 게 관건이다. 그걸 보여주지 못하고 여기서 격차가 더 벌어진다면 추가 이탈이 이뤄질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 역시 "유권자 50~60%가 '반문(反문재인)' 정서를 갖고 있고, 이들의 현실적 대안이 안철수밖에 없다는 것이 국민의당과 안 후보 측의 자신이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TV토론에서 안 후보가 보여준 모습은 호남은 물론 보수층에서도 안 후보에 대한 기대를 상당히 접게 한 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23일 TV토론에서 안 후보가 '갑철수', 'MB 아바타' 등의 발언을 내놓은 것을 "대단한 패착"으로 평가하며 "안 후보가 토론을 잘 했다면 홍준표 후보가 '돼지 흥분제' 등 논란으로 인해 주저앉으면서 (안 후보가) '보수의 대안'으로서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을 텐데, 오히려 어제 토론으로 인해 실망감이 확산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익명을 요청한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지금 문재인 쪽으로 여론이 기울어진 상태인데, 문재인 캠프는 최근 '적폐 청산'에서 '통합'으로 전략을 변경했다"며 "민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처럼 문재인이 '적폐 청산'만 강조한다면 안철수에게도 기회가 있겠지만, 이렇게 되면 중도층이 문재인에게 반발을 가질 요인이 약해진다. 양측이 모두 통합을 내세우며 집권 후 국정 역량 대결로 가게 된다면 문재인의 비교우위가 지켜져 안철수가 역전의 발판을 만들기 쉽지 않게 될 것"이라고 평론했다. 실제로 최근 문 후보 측에서는 캠프 안팎에서 '입 단속'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공식·비공식적으로 나오고 있다. 선거 막판 설화(舌禍)에 대한 경계령이다.
향후 판세는?
국민의당 측에서는 '지지율 조정 기간'일 뿐, 여전히 역전의 가능성은 있다고 보고 있다. 박지원 대표는 "2주 전부터 조정기를 거칠 것이라고 했지 않느냐"며 "전국적으로 '문재인은 안 된다'는 공포증이 있어서 좋은 결과를 예상한다"고 했다.
손학규 상임선대위원장은 불교방송(BBS) 라디오에 나와 "격차가 오차 범위 밖으로 벗어난 것이 맞다. 안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가 전국적으로 세고, 특히 호남에서 'MB 아바타' 같은 구전 네거티브가 안 후보의 지지율을 떨어뜨리는데 많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면서 "중도 개혁 세력이 다음 정부를 이끌어 나간다는 믿음을 주는 조치가 필요하다. 국민의당의 새로운 시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희웅 센터장은 안 후보에게 남은 기회를 4월 마지막주까지로 봤다. 그는 "다음 주(5월 1주)는 연휴 기간이어서 정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완화·분산될 수 있다"며 "안철수로서는 이번 주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상일 대표는 더 비관적으로 봤다. 이 대표는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보수층은 '차라리 보수당을 살리자'고 하거나 선거에 대한 관심을 접을 수 있다. 심하게는 2등이 누가 될지도 알 수 없는 국면으로 갈 수도 있다"면서, 특히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와의 연대 논의가 추격의 불씨가 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때가 지났다. 지지율이 빠지는 국면에서 연대 카드는 효력이 없다"고 일축했다.
한 전문가는 "다만 남은 변수가 있다면 송민순 전 장관이 제기한 북한 인권 결의안 논란 정도"라며 "안보 이슈는 (전통적 보수-진보라는) 이념 진영이 결집하는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짚었다. 다만 이 경우에도 "보수층이 (문 후보에게) 화가 나서 전략적 투표를 할 가능성"과 "안 후보가 진보-보수 어느 한 쪽의 입장을 취할 수 없어 오히려 더 곤혹스러워질 가능성"이 모두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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