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주일 사이에 대선구도에 지각변동이 발생했다. 문재인 후보 독주체제를 깨고 안철수 후보가 급부상한다는 조사가 나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이번 주 들어 안후보가 다자구도에서도 문후보를 앞서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줄을 잇고 있다. 놀라운 일인가? 적어도 문재인캠프와 안철수캠프는 이미 예상했을 것이다. 안희정 지사의 대연정이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힛트를 칠 때 필자도 이것이 본선에서 부메랑이 될 것을 우려했다. (☞관련기사 : 안희정의 '대연정', '반민주당' 세력에 반격수단 될 수도)
무엇이 이런 지각변동을 불러왔을까? 출마선언도 하지 않았던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약 25%정도의 지지율로 1등을 한 바 있다. 대연정을 내세운 안희정 지사는 3%에서 23%로 수직상승하였다. 황교안 총리도 15%내외의 지지를 받았다. 약 15~20%의 새누리당 계열의 지지표가 문재인 대항마를 찾아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대선구도의 유동성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이제 그 표들이 안철수 후보로 모여들고 있다. 원래 안 후보의 마지노 지지선인 10%에 이들이 합해지자 단숨에 30%를 넘어 버린 것이다. 그 다음은 밴드왜건효과까지!
안철수 후보가 모두가 놀랄 비젼과 정책을 깜짝 선보였다거나 국민의 당이 갑자기 의석수가 150석을 넘었다든지 하는 세력변화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 모든 변화는 단 한가지 사실, 문재인이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자마자 순식간에 일어났다. 따라서 이 지각변동의 원인과 대책을 분석하려면 문재인으로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 경선주자들의 지지율을 산술합산하면 60%가 넘었다. 당 지지도도 40%를 훌쩍 넘어 심지어 50%를 넘었다는 조사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경선이 끝나면 컨벤션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민주당의 경우, 문재인 후보가 60%까지는 안되더라도 50%가까운 지지율 상승을 보여야 정상이다. 그런데 컨벤션효과는 고사하고 지지율이 오히려 더 낮아지면서 단숨에 추격자의 고단한 처지로 내몰렸다.
그렇다고 민주당 경선이 문제라고 탓할 것도 아니다. 경선으로 따지면 국민의당도 내부적으로 시끌벅적했다. 그렇다면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안팎에 걸쳐있다.
외부적으로는 마침내 본선 구도가 최종 확정되면서 반문재인 성향의 표들이 가장 득표력있는 후보에게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새누리당 계열의 오피니언 리더와 대중들이 전략적 투표에 눈길을 돌린 것이다. 박근혜가 탄핵되고 구속되자 새누리당에 뿌리를 둔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은 당선을 바라볼 처지가 아니었다. 홍준표 후보는 비호감 1위의 후보이고, 유승민 후보는 본거지에서 '배신자' 타이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따라서 새누리당의 지지 기반들이 대안을 찾아서 안철수 후보에게 눈을 돌린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 역시 때를 놓치지않고 화답했다. 박근혜 사면론이랄지 사드 배치 찬성 표명 같은 것이 그런 것이었다. 이때까지 전략적 투표는 호남의 투표 행위를 특징짓던 용어였는데, 이번에는 TK를 중심으로 하는 새누리당 세력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것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문재인 집권을 두려워하는 모든 기득권 세력들이 안철수에게 집결하는 양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사회 최고의 극우예찬론자인 조갑제 대표의 '문재인 집권을 저지하기위해 안철수를 지지하자'라는 지지 표명이 그 예가 될 것이다. 안철수가 비록 공개적인 연대나 통합을 추진하지 않더라도 이들 극우-보수 세력의 표를 총결집하는 반문재인-반민주당 연합의 대표자로 자연스럽게 위상이 정리된 것이다. 1990년의 3당합당이 반김대중을 목표로 성사되었다면 이번 반문재인 연합도 일종의 저강도 3당합당의 성격을 띄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언론 역시 문재인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다. 이들은 공공연히 반문재인 연합을 촉구하거나 (조선일보 김대중 기자), 대연정을 수용하라고 (중앙일보 강찬호 논설위원) 종용해왔다.
그런데 최근 일련의 지각변동이 이런 외적변수에 의해서만 규정되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과장일 것이다. 외부적 변수는 충분히 예견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변수가 아니라 본선의 상수였다. 문제는 이 상수에 대처하는 주체적 요인이었다.
촛불항쟁이 발발하자 점차 문재인 대세론이 야권에 풍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세론이 가지는 함정들이 하나 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원래 대세론이 나오면 주위에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기회주의자나 출세주의자들이 운신이 더 빠르다는 말이 있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문 교수단이 1000명을 넘는가하면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한자리 했던 사람들이 총결집해 '10년의 힘'이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나섰다. 마치 인해전술로 정권교체를 해낼 요량처럼 보였다. 문재인이 집권하면 그 때 그 사람들이 다시 전성기를 누릴 것처럼 보였다. 지금 안철수 후보가 사람이 많고 세력이 커서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는가? 아니나 다를까 모인 사람들에 대해 아름답지못한 온갖 뒷공론이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때까지 더문캠이 긁어모은 인사들만이라도 제대로 역할했다면 이렇게 역전당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몇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광주항쟁과 관련한 발언 때문에 중도하차한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영입은 전통적인 지지자를 놀라게 했다. 재벌개혁의 상징인 김상조 교수를 영입한 것은 좋은 카드였다. 근데 이 좋은 카드를 박근혜노믹스 줄푸세의 입안자인 김광두 교수와 안철수 후보의 원년 멘토였던 김호기 교수를 나란히 세워 물타기했다. 보는 사람은 당혹했다. 뭐 한다는 사인일까? 변화와 개혁을 한다는 건가 아니면 물타기용이니까 안심하라는 사인인가? 집토끼도 잡고 산토끼도 잡겠다는 주관적 과욕이 아니었을까? 이런 과정 속에서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촛불민심은 더문캠의 용인술에 점차 식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문재인 후보까지 뛰어들었다. 문재인 후보는 촛불항쟁 초기까지만 해도 '중도확장론'에 따라 유화적 입장을 취했기 때문에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11월 초부터 촛불민심과 함께 하면서 20% 박스권을 돌파하고 대세론까지 올라섰다.
문후보는 현재의 구도를 '촛불민심을 받드는 정권교체 후보 대 부패기득권 세력들의 정권연장을 위한 후보'의 대결이라고 언명하고 있다. 이 구도는 본질적으로 맞다고 본다.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는 모든 사람들이 부패기득권 세력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안철수 후보가 부패기득권세력이 연합하여 미는 후보가 될 것으로 보는 것도 맞다. 여기서 문제는 이런 구도를 문재인 후보가 진정성있게 실천하고 있나라는 것이다.
지난 민주당 경선 텔레비전 토론 때의 한 장면.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 한 장 보여주라는 사회자의 말에 문 후보는 특전사 사진을 제시했다. 언론에서는 이 사진에 연관되어 반란군 수괴였던 전두환 장군에게서도 표창장을 받았다는 말이 화제가 되었지만, 사실 그것은 곁가지 화제꺼리에 불과했다.
민주주의자 문재인의 인생에 특전사 사진이 가장 자랑스럽거나 기억에 남는 사진이었을까? 부마항쟁에 참여하고, 광주항쟁으로 민주화유공자가 되었고, 6월항쟁 때 노무현과 함께 부산투쟁을 이끌었던 문재인이 왜 특전사 사진을 꺼냈을까? 그거야 말로 선거공학이었다. '문재인은 빨갱이가 아니다'라는 증명서로.
그 사진은 2012년 대선 때에도 본 기억이 있다. 그때도 본인의 사상검증용으로 널리 퍼뜨린 적이 있었다. 그 때와 지금 사이 촛불혁명이라는 대사건이 발생했는데도 문재인은 여전히 사상검증용 사진이 필요했을까?
그 장면을 보는 순간 힘이 쭉 빠졌다. 양 진영의 군대가 대치하는 와중에 양쪽의 대표 장수가 정면대결로 싸우는데 갑자기 뒤에서 응원하던 군사들의 사기가 쭉 빠지는 듯한 느낌.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이 60%를 넘는다. 그런데 이들의 대표 선수가 되려면 죽음을 각오하는 비장한 심정으로 기득권과 정면 승부하는 장수가 되어야 한다. 종불몰이나 빨갱이론을 정면돌파하는 자세로 정권교체를 염원하는 시민들의 열정을 불타오르게 해야 한다. 주눅들고 변명하는 자세로 배수진의 승리를 가져올 순 없다.
문재인은 빨갱이라는 사람을 한 달 안에 바꿀 자신이 있는가? 차라리 촛불집회에 열심히 참석했지만, 문재인에게 냉담한 사람을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 가능성이 훨씬 클 것이다.
특전사 사진은 지금 문재인 후보나 그 측근 참모들이 여의도 인사이더 의식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준다. 선거가 시작되자마자 모든 언론과 정치평론가들이 진보-중도-보수의 삼분법으로 유권자의 동향을 설명한다. 촛불민심은 지워진다. 촛불항쟁으로 인한 조기대선이라는 지금의 특별한 상황은 통상적인 3분법보다, 문재인 핵심 지지층 - 문재인을 지지하지 않는 촛불민심 - 정권교체를 바라지않는 유권자의 3층으로 나누어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60% 가까운 변화와 개혁, 정권교체를 바라는 세력의 온전한 대표자가 된다면 대선은 승리할 수 있다. 사실 대선은 51%의 싸움이다. 60% 또는 70%의 득표를 목표로 한다면 그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51%의 피말리는 계가싸움을 한다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 촛불민심을 중심에 확고히 놓을 때 중도온건층에 대한 여러 가지 방책도 그 나름의 효용이 있을 것이다.
지금 문재인 후보는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첫째는 자신의 변화다. 촛불민심을 받들어 진정한 개혁과 변화를 하겠다는 각오를 가지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야 한다. 촛불민심이 자신에게 모일 수 있도록 진성성을 보여야 한다. 정면승부를 피하거나 적당한 물타기는 금물이다.
둘째는 판을 뒤흔들 이슈를 던져야 한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닭싸움이 아니라 동북아와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가져오고, 부패한 기득권을 혁파할 전체판을 바로잡을 큰 어젠다로 승부해야 한다. 그럴 때 기득권 세력의 표에 의지하는 안철수 후보의 한계가 드러날 것이다. 이 부분은 글의 마지막에서 다시 재론할 것이다.
셋째, 문재인과 주변 사람들이 패권주의 논란으로 자유로워지도록 더욱 노력해야 한다. 본인들이 억울한 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자신과 주위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아야 한다. 김대중 후보시절 동교동계 정치인들은 임명직에 나가지 않겠다는 집단 선언을 하기도 했다.
넷째, 문재인 후보를 중심으로 올스타팀을 구성할 필요가 있다. 이재명 성남시장과 안희정 충남지사, 박영선 의원, 이종걸 의원, 김부겸 의원, 김두관 의원, 김상곤 선대위원장 등 차세대 지도자를 대선 본선에 전면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현직에 있는 분들은 오늘 이후에 사퇴하면 보궐선거에 대한 부담은 없다. 어차피 승리하면 차기 정부에서 중용해야 될 지도자들이다. 차라리 한 달 앞당겨 차출하여 선거전 전면에 뛰게 한다면 문재인정부에 대한 지지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현직에서 차출하는 것이 비판받을 소지도 있지만, 마이너스 보다는 플러스가 훨씬 크리라 예상된다.
문재인과 안철수의 진검승부를 결정지을 진정한 승부처는 어젠다 싸움에 달려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수없이 많은 개혁과제를 안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핵심 중의 핵심을 꼽는다면 3가지 과제를 논할 수 있다.
첫째는 남북한관계를 어떻게 풀 것인가이다. 사드 배치에 대한 찬반여부 또는 개성공단 재개, 북한 핵문제 같은 개별 이슈를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남북한 관계의 큰 틀에 관한 논쟁이다. 전쟁을 불사하는 남북 대결 노선인가 아니면 평화체제를 기반으로 한 남북한 경제공동체 건설인가? 김대중은 호남 고립을 돌파했다. 노무현은 낡은 정치를 정면돌파했다. 문재인은 종북 프레임을 정면돌파했으면 한다.
남북한 관계가 전면에 부각되면 극우세력과 남북화해세력의 동거가 불가능해진다. 안철수 지지 세력의 '잡탕연합'은 깨질 것이다.
둘째는 재벌개혁을 포함한 경제패러다임의 전면 개혁이다. 안철수 후보의 입에서 어느듯 재벌개혁이 들리지 않는다. 재벌체제 개혁은 한국이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고 복지국가로 진입하기 위해 넘지않으면 안될 산이다.
셋째는 선거구제와 개헌을 포함한 정치 개혁이다. 촛불항쟁의 최종적 결실은 정치판의 대변혁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개헌보다도 선거구제 변경을 통해 극우 세력을 제도적으로 억제하고, 정치권의 협치와 상생을 유도하도록 해야 한다.
노무현 후보의 행정수도 이전 공약, 김대중 후보의 농가부채 탕감 등 정책을 통해 비토세력을 극복한 사례는 많다.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이 전향적인 어젠다를 통해 촛불민심이 바라마지 않는 정권교체를 이루어내기 바란다. 이제 30일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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