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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라틴아메리카 통합'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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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 '라틴아메리카 통합'을 꿈꾸다

[대결, 차베스와 룰라] 룰라 집권 7년 ②

룰라 정부의 외교 행보도 인상적이다. 2003년 출범한 이래 룰라 정부는 라틴아메리카 지역 국가들과 통합을 확대하는 한편, 세계적인 수준에서는 선진국에 맞서 신흥국가들과 결속을 강화해왔다.

특히 2008년 경제위기 이후에는 역내외교와 세계외교를 더욱 긴밀하게 결합시켜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대표 국가이자 신흥경제 국가의 선두주자로 부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통합

룰라 정부의 지역외교는 지금까지의 경제통상 분야협력을 정치·사회·문화 등 사회 전 분야로 확대해가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남미국가연합(UNASUR)의 창설이다.

▲ 2004년 페루 쿠스코에서 열린 남아메리카 정상회담 폐막식. ⓒ로이터=뉴시스
남미국가연합은 2008년 공식 출범한 지역통합기구로 남아메리카 12개국 전체가 참가하고 있는데, 2004년부터 무려 4년간의 논의 끝에 결성되었다. 당시까지 남미국가 전체가 참가하는 국제기구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비록 현재까지는 국가 정상들의 회의체 수준에 불과하지만 역사적인 의미가 깊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남미국가연합은 남미국가들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가스관 등 대규모 인프라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2010년대에는 남미 공동통화도 도입할 계획이다.

2008년에 이 기구는 역내 분쟁 해결에도 뛰어들었다. 당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이 국민투표로 재신임을 얻었음에도 반대파 주지사들의 공격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남미국가연합은 반대파 주지사들의 분리주의 경향에 제동을 걸었다. 미국의 개입 없이 남미국가들 스스로 역내 정치 분쟁의 해결을 위해 나선 것은 보기 드문 사례였다.

남미국가연합 출범 과정에서 룰라 정부는 우파정부들을 설득해 지역 블록에 참가시키는 역할을 수행했다. 차베스 대통령이 이념동맹의 성격이 강한 좌파국가블록을 결성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반면, 룰라 정부는 지역 전체의 공동이익을 목표로 하는 지역블록을 건설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라틴아메리카·카리브 정상회의

룰라 정부의 지역통합외교는 라틴아메리카·카리브 정상회의에서 절정을 이뤘다. 작년 12월 브라질 북동부의 한 휴양지 해변에서 개최된 이 회의에는 중남미 33개국 정상들이 모두 참석했다. 1박 2일의 토론 끝에 정상들은 2010년까지 중남미 국가들의 독자적인 국제기구를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중남미 국가수반들끼리 한 자리에 총집결한 것 자체도 초유의 일이었고, 그들이 독자적인 기구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도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룰라 대통령은 정상회의의 의의를 이렇게 요약했다. "(중남미국가들이) 드디어 힘을 모았다. 이제 그 누구에게도 굽실거릴 필요가 없다" 중남미 대륙이 더 이상 '미국의 뒤뜰'이 아니라는 선언이었다.

브라질은 이 회의를 성사시키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중남미 국가 33개국 정상 모두에게 일일이 초청장을 보냈다. 중미와 카리브 해 소국에는 브라질 공군 비행기를 직접 보내 대통령들을 공수했다.

이번 회의에서 눈길을 끄는 점은 참가국의 면면이었다. 1962년 이후 아메리카 대륙의 국제회의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던 쿠바가 국제무대에 복귀했다. 우파 성향의 멕시코 대통령 펠리페 깔데론은 쿠바를 '형제국'으로 소개했다. 쿠바가 이 회의에 참석하게 된 데는 룰라 대통령의 적극적인 설득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반면, 이 대륙의 굵직한 국제회의에 늘 참가해온 미국과 식민지 종주국 스페인· 포르투갈은 초청받지 못했다. 정상회의를 소집한 룰라 정부의 메시지는 명백했다. 우파의 멕시코에서 공산주의 쿠바까지 중남미 국가들이 모두 모여 자기 대륙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뜻이었다.

정상회의 개최시점도 흥미로웠다. 당시 중남미 국가들은 세계경제위기의 영향을 받아 경기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2003년부터 6년 연속 평균 5%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었던 중남미 대륙에선 그동안 경제적 낙관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신자유주의 20년의 사실상의 정체를 뛰어넘는 성적이었고, 40년 만의 연속 호황이었다.

특히 1990년대 내내 경제위기에 시달렸던 중남미 대륙으로선 실로 오랜만에 찾아온 호경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 호황이 막을 내리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경제위기 때마다 중남미 국가들에 시장만능주의 경제 정책을 강요해온 미국에 의해서 말이다.

좌파정부와 우파정부를 막론하고 중남미 국가들은 달러 체제의 모순으로 인해 미국발 경제위기로 자신들이 손해를 보는 것에 대해 불만을 터뜨렸다. 멕시코 우파 대통령은 미국발 경제위기를 '빅맥 위기'라고 명명했다. 과거 자국의 경제위기를 '떼낄라 위기', 아르헨티나 경제위기를 '탱고 위기'로 명명한 국제금융기관들을 완곡하게 조롱한 것이다. 브라질 정부는 바로 이 시기가 중남미 국가들의 단결을 꾀할 기회를 보았다.

▲ 브라질 외교부 건물. ⓒ박정훈

한편, 경제위기의 진원지 미국에선 오바마 당선자가 새로운 외교를 천명하며 취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대중남미 외교에서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었다. 부시 정부 8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에서 미국의 존재감은 갈수록 축소되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2002년 베네수엘라에서 발생한 쿠데타를 지지해 스스로 고립을 자초했고, 중남미 대륙 전체가 좌회전하고 있는 와중에 쿠바에 대한 봉쇄 조치를 더욱 강화하는 시대착오적 정책을 펼쳤다.

또한, 2005년에 미주자유무역지대를 출범시키려던 미국의 계획은 중남미 좌파정부들에 의해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차베스 정부와 같은 급진 좌파들은 아예 '협상장' 대신에 '집회장'을 택했다. 룰라 정부와 같은 온건 좌파들은 집회장에 가지는 않았지만, 협상장에서 미국 정부가 먼저 농업에 대한 보조금을 철폐해야 개발도상국 농민들도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게다가 미국이 대테러 전쟁의 수렁에 허우적대면서 계속 중남미에서 '외교적 헛발질'을 하고 있을 때 중국, 인도, 러시아 등 미국의 경쟁자들이 중남미 국가들과 협력을 확대해왔다.

사정이 이랬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는 취임과 동시에 대중남미 관계를 시급히 개선해야만 했다. 부시 정부 내내 외교적 마찰을 빚어왔던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좌파 정부들과 시급히 관계를 정상화하고, 쿠바에 대한 전향적인 조치로 중남미 국가들의 환심을 사야 하는 처지였다.

그때 룰라 대통령은 "세계를 카지노 판으로 만들어버린 선진국"을 비판하고, 미국을 정점으로 하는 선진국들의 신자유주의 국제금융체제를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국제달러체제의 덫에 빠진 중남미국가들의 주도적인 공동대응을 촉구했다.

또한, 오바마 정부의 외교정책에 의지할 필요 없이 중남미 국가들 스스로 냉전의 마지막 유산을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런 선제적인 조치를 통해 중남미 대륙이 미국에 대한 외교적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정상회의 소집자로서 브라질 정부는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브라질 정부는 미주 대륙을 통틀어 가장 안정적인 정치·경제적 조건을 갖고 있었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 경제는 이미 침체에 빠져들었지만 브라질은 안정적인 경기하강국면을 보여줄 것이라는 예측이 대세였다. 브라질 정부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도 아주 높아 정치 안정도 유지하고 있었다. 룰라 정부는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중남미 통합 운동의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하고자 했다.

브라질의 전략은 주효했다. 그것은 2009년 4월 개최된 제5차 미주정상회의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오바마 행정부는 50년간의 쿠바 고립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쿠바에 대한 전향적인 조처들을 취했다. 또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중남미 대륙에 남아있는 마지막 '냉전의 유물'인 쿠바 봉쇄 조치가 철폐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룰라 대 차베스

남미국가연합, 라틴아메리카·카리브 정상회의 등 지역통합 운동에서 보여준 룰라 정부의 리더십도 주목을 받았다. 특히 남미국가 가운데서 가장 활발한 외교 활동을 벌여온 차베스 정부의 리더십과 비교되곤 했다.

▲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왼쪽)과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 ⓒ로이터=뉴시스

룰라 정부는 지역통합운동의 주체를 좌파정부로 한정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페루, 콜롬비아, 멕시코 등 역내 우파정부들도 지역통합 흐름에 합류할 계기와 조건을 만드는 일에 앞장서왔다. 반면, 차베스 대통령은 대륙 내 우파정부들과는 고강도 설전도 불사하면서 역내에서 이념동맹의 좌파 블록을 형성하고자 노력해왔다.

룰라 정부는 쿠바 정부를 향해서는 우파정부들도 참여하는 중남미 국제기구에 참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득해왔다. 반면, 차베스 대통령은 쿠바의 국제적인 고립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선명한 반미 정책에 기반을 둔 중남미 국가들의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했다.

룰라 대통령과 차베스 대통령은 대미 경제외교에서는 실용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미국과의 무역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 혹은 강화하면서도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여 나갈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정치·외교적인 측면의 대미외교 스타일은 명확히 달랐다. 차베스 대통령이 거침없이 미국 정부를 비판하는 역할을 수행한 반면, 룰라는 미국과의 외교에서 중남미 대륙 전체를 대변하는 역할을 수행하려고 노력했다.

판이하게 다른 전략과 스타일 때문에 양국 정부의 견해는 종종 충돌했다. 하지만, 미국 주도의 미주자유무역지대 협상을 결렬시키고 쿠바를 국제무대에 복귀시킨 것이 보여주듯이 차베스와 룰라의 행보는 지역통합운동에서 상호보완적인 효과도 발휘했다.

개발도상국의 대표주자

브라질 정부는 국제무대에서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국가는 물론이고 남반구(선진국들이 대체로 위치한 북반구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개발도상국과 빈국을 포함하는 개념)의 대표주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왔다.

2008년 경제위기 발발 이후의 첫 유엔 총회에서 룰라 대통령은 '정치의 순간'이 도래했다고 선언했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낳은 기존 국제경제 질서를 개혁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지적이었다. 그 개혁 과정은 2차 대전 후 브레튼우즈 달러체제가 탄생할 때처럼 선진국들의 일방적인 합의가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참여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 지난 7월 10일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에 참석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기념촬영을 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신화=뉴시스
미국 발 금융위기 이래 개최된 주요국 정상회의(G20)에서는 아르헨티나, 멕시코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공동 전선'을 조직해 '세계를 도박판으로 만든' 선진국의 경제위기 책임론을 주장했다. 룰라 정부는 국제금융기구의 의사결정과 국제적인 금융규제시스템에 개도국이 더 많이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경제위기에 허덕이는 빈국들에게 신자유주의적 도그마 없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구제 금융을 제공할 기금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또한, 최근 개최된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는 세계 GDP의 4분의 1 가량을 차지하고, 전 세계 경제성장의 65%를 맡고 있는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등 주요 신흥경제국들이 달러체제의 대안이 될 다극화된 경제체제를 수립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자고 합의했다. 이미 중국과 브라질은 자국 통화로 무역대금 결재를 시작했고 이에 러시아도 합류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최근 스페인 저명언론 <엘빠이스>에 실린 기명 칼럼에서 룰라는 "브릭스 국가들이 이제 성년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칼럼에서 선진국이 국제금융제도에 대한 초국가적인 통제와 감독을 수용하고, 국제금융기구(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에 대한 통제를 버릴 용의가 있는지 묻고 있다. 또한, 개발도상국에게 과학·기술의 성과를 제공해 지구 환경에 대한 피해를 줄이고, 개도국 농업의 현대화를 위해 선진국들이 자국 농업에 대한 보조금을 철폐할 용의가 있는지도 따져 물었다.

그는 글 말미에 정치가로서 늘 간직하고 있는 교훈을 독자들에게 알려주었다. "정의가 우리 편이라는 생각만으론 부족하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먼저 힘을 합쳐 조직하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것이 룰라 대통령이 중남미 국가들의 통합운동을 주도하고, 세계무대에서 신흥경제국들의 연대를 강화해온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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