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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이후', '연산군 이후'와도 닮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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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박근혜 이후', '연산군 이후'와도 닮았을까

[기자의 눈] 촛불 민심은 '양날의 칼', 다음 정권도 벨 수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파면 전에도 연산군과 종종 비교됐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비슷한 지적을 했었다. (☞관련 기사 : "박근혜는 연산군…대통령 하기 싫다")

가족으로 인한 심리적 상처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 공조직을 무시하고 '문고리 권력'에 의지한 점 등이 닮았다. 박 전 대통령을 조종했던 최순실 씨를 보면, 연산군에게 반말을 했다던 노비 출신 장녹수를 떠올리게 된다.

'박근혜 이후'와 '연산군 이후'

연산군이 폐위됐듯, 박 전 대통령도 파면 당했다. 여기서 궁금증. '박근혜 이후'도 '연산군 이후'와 닮았을까.

연산군 폐위, 이른바 중종반정은 조선 왕조에서 왕족이 아닌 신하가 왕을 끌어내린 첫 사례였다. 반정 세력 역시 불안했을 게다. 그러니까 '최소 강령, 최대 연합' 전략을 택했다. 연산군을 반대하기만 하면, 누구나 끌어들였다.

그 결과, 연산군 시절 정승을 지냈던 이들이 반정 이후에도 대거 공신으로 책봉됐다. 연산군 시절 영의정을 지내면서, 왕의 비위 맞추기에 급급했던 유순은 2등 공신이 됐다.

연산군의 채홍사 노릇을 했던 구수영은 당초 반정 세력에게 제거 대상으로 꼽혔다. 하지만 반정 직전에 말을 갈아탔다. 반정 세력과 손을 잡았다. 연산군과 사돈 사이였던 그는 반정 성공 이후 아들을 이혼시켰다. 구수영 역시 2등 공신이 됐다.

연산군 폐위 이후, 훈구파 기득권층 확대

반정으로 왕이 된 중종은 확실히 연산군보다 나았다. 사치와 유흥을 멀리했고,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당시 정치는 어땠나. 연산군 시대보다 얼마나 나아졌나.

'최소 강령, 최대 연합' 전략의 한계가 이 대목이다. 최대 연합 유지를 위한 무분별한 공신 책봉은, 인적 청산의 포기를 뜻했다. 연산군의 폭정을 거들었던 이들이 계속 권세를 누렸다.

늘어난 공신 집단은 기득권층 확대와 통한다. 이른바 훈구파다. 제한된 토지에서 나는 쌀은 그대로인데, 기득권층이 늘어나면 결국 농민들이 밥을 굶는다.

'연산군만 바꾸자', '새누리당만 아니면 돼'

'최소 강령, 최대 연합'은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이 곧 위기다. 연산군 폐위를 위해 뭉쳤다. 그 뒤엔 뭘 할 건가. 갈등이 필연이다. 중종 시대 역시 옥사와 사화로 점철돼 있다. 조선 시대 4대 사화가 무오, 갑자, 기묘, 을사사화다. 이 가운데 무오, 갑자사화는 연산군 시대, 기묘사화는 중종 시대다. 농민뿐 아니라 선비들에게도 좋은 시절은 아니었다.

'박근혜 이후'가 '연산군 이후', 그러니까 중종 시대와 비슷하리라고 예단하는 건가. 그건 아니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이 촛불집회로 퇴진한 게 아니었다면, 그저 정권 교체일 뿐이었다면, '박근혜 이후'를 '중종 시대'에 빗대서 전망할 법 했다. '연산군만 바꾸자'라는 반정 세력의 정치와 '새누리당만 아니면 돼'라는 현 야권 사이엔 닮은 점이 있다.

고작 '박근혜보다는 나은 대통령' 뽑자고, 촛불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파면 직전까지 133일 동안 연인원 1587만 명이 참가한 촛불 집회가 있다. '박근혜 이후'가 어쩌면 '연산군 이후'와는 다를 수 있다고 보는 근거다.

촛불 집회에서 나온 요구가 오로지 '박근혜 퇴진'만은 아니었다. 적폐 청산, 재벌 개혁 목소리도 높았다. 누군가가 지도하거나 선동한 결과도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이 재벌을 정점으로 한 기득권 체제와 긴밀한 관계라는 걸, 촛불 시민은 몸으로 깨달았다.

반면, 연산군 폐위는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이 주도한 하룻밤 무력시위의 결과였다. 이들 반정 세력은 판서, 참판, 관찰사 등 고위직 출신이다. 그들의 요구는 연산군 폐위, 한 가지였다. 폭군을 갈아치우는 것 말고, 다른 요구는 없었다.

아마도 다음 대통령은 박근혜보다는 나을 게다. 연산군보다는 중종의 정치가 나았던 것처럼.

하지만 133일 촛불 집회를 거치며 각성한 시민은 여기서 만족할 수 없다. 그들이 고작 '박근혜보다는 나은 대통령'을 뽑자고, 촛불을 든 것은 아니었다.

'촛불 시민의 승리', '양날의 칼'이다

'촛불 시민의 승리'는 그래서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론 박 전 대통령을 쫓아냈다. 그러나 133일 촛불집회는 다음 대통령 후보에게 거는 기대치도 함께 끌어올렸다. 촛불로 각성하고, 승리로 자신감 얻은 시민의 눈높이에 맞추지 못하는 야권 후보에겐 위기다.

촛불 집회 이전의 관성에 의지한 정권 교체라면, '연산군 이후' 수준을 벗어날 수 없다. 중종반정 승리의 과실은 훈구파가 독점했다. 왕 한 명이 누리던 혜택이 소수 기득권층에게 넘어갔다. 현대의 언어로 옮기자면, 1% 특권층의 몫이 10%에게 넘어간 꼴이다. 물론, 그 역시 작은 진보다. 그러나 다수 서민에겐 그저 남의 일이다.

하위 90% 소득 측면에선, 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비슷한 흐름

인상적인 통계가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2015년까지의 최상위 소득 비중' 자료를 보면, 종합 소득 상위 1% 집단의 소득 비중이 지난 2015년에는 14.2%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다. 상당수 언론이 이 대목에 집중했다.

하지만 다른 내용도 봐야 한다. 같은 해,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48.5%였다. 역시 역대 최고치다. 해당 항목의 2000년 비중은 36.4%였다. 지난 20여 년 동안, 성격이 제각각인 네 정권이 들어섰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다. 하위 90%의 소득 측면에서만 보면, 별 차이 없는 정권이었다. 상위 10%의 몫이 꾸준히 늘었고, 이는 전체 경제 성장치를 웃돌았다.

'촛불 시민의 승리'가 없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기겠다. 이 나라 정치는 대개 그런 식이었다. 소수 특권층과 중산층 일부만의 행사였다. 다수 서민, 빈민이 참여할 공간은 턱없이 좁았다.

촛불은 광화문에서만 타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2016~17년 촛불 집회는 변화를 예고한다. 촛불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만 타오르지 않았다. 전국 곳곳에서 집회가 열렸다. 2008년 광우병 시위와도 다른 점이다. 2008년 당시엔 서울과 다른 지역 사이에 온도 차이가 컸다.

이번엔 아니었다. 서울에 사는 중산층만 목소리를 낸 게 아니었다. 김제동 씨가 사회를 본 한 소도시 촛불 집회에서 젊은 노동자가 말했다. 정말 열심히 일하는데, 번 돈으로 교통비, 식비, 주거비 쓰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그래서 결혼은 꿈도 못 꾼다고. 연애가 두렵다고.

최순실 씨 일가에 대한 분노만으로 촛불을 든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지난 수십 년 '적폐'를 더는 견디기 힘들다는 외침이 겹쳐 나왔다.

그리고 '적폐'는 약자부터 짓누른다. 여성과 청년, 비정규직, 농민 등이 먼저 피해를 본다. 이들까지 촛불을 들었으므로, 연인원 1587만 명 참가가 가능했다. 대도시 중산층만의 집회였다면, 불가능한 규모다. 따라서 이들 약자들은 '촛불 이후' 체제에 대해 발언할 권리가 있다.

"올해 겨울에 또 수백만 명이 촛불 들 수 있다"

야당 정치인들도 133일 촛불 집회에 꾸준히 참가했다. 그들이 그 자리에서 어떤 목소리를 들었을까. '박근혜 퇴진' 구호만 기억한다면, 위기가 기다린다.

상징적인 사건이 있다. 박 전 대통령 파면이 있던 주의 월요일, 그러니까 지난 6일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故) 황유미 씨의 10주기였다.

하필 그날, 양향자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활동가들을 대놓고 모욕했다.

그 소식이 보도된 건, 황유미 씨 10주기 추모행사가 진행 중이던 6일 저녁이었다. 행사 사회자가 "방금 나온 뉴스"라며 양 최고위원의 발언을 전했다. 행사 참가자들이 술렁였다. 그리고 황유미 씨의 아버지 황상기 씨가 무대에 섰다.

"이번 주 금요일(3월 10일), 아마도 국민 축제가 열릴 겁니다. 하지만 이런 식이면 올해 겨울에 또 수백만 명이 촛불을 들 수 있습니다."

박근혜 파면 이후 들어설 정부 역시 촛불 민심을 배반할 것 같다는 이야기다. 결국 양 최고위원이 다음날 공개 사과하는 것으로 사태는 일단락됐다.

인재 영입 성공 사례가 촛불 민심 반대편

그런데 양 최고위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인재 영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였다. 양 최고위원은 고졸 여사원으로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부에 입사해서 임원이 됐다. 고졸 신화, 워킹맘의 성공 사례로 포장됐다.

하지만 양 최고위원은 1985년 가을 그와 함께 삼성에 입사한 여자상업고등학교 출신 동료보다는 2014년 상무로 승진하면서 합류한 삼성 경영진에 더 소속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반올림 비난 발언'을 설명할 길이 없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고졸 워킹맘'이 아닌 노동자 직업병을 외면하는 전직 재벌 임원을 영입한 셈이 됐다. 그리고 지난겨울, 촛불 시민들은 "박근혜 퇴진"과 함께 "재벌도 공범"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불과 1년도 안 돼서, 인재 영입 성공 사례가 촛불 민심의 반대편에 서게 됐다.

노무현 비서실장이 사학 비리 공범 영입

전인범 전 특전사령관 사건도 상징적이다. 그 역시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사였다. 하지만 5·18 광주민주화항쟁 관련 부적절 발언으로 영입이 취소됐다. 하지만 그렇게 잊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전 전 사령관의 부인인 심화진 성신여자대학교 총장은 사학 비리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전 전 사령관은 심 총장의 비리 공범이다. 자신의 취임 행사에 성신여자대학교 직원을 동원했다.

노무현 정부의 개혁 의지에 대한 평가는 항목마다 제각각이다. 예컨대 재벌에 대해선 개혁 의지가 약했다는 평가가 있다. 하지만 사립학교 비리에 대해선 개혁 의지가 강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실제로 사립학교 개혁 관련 법안을 놓고, 노무현 정부와 보수 진영이 첨예하게 대립했었다. 사립학교 개혁에 가장 격렬하게 저항한 정치인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거리 시위를 주도하며 보수 진영에게 깊은 인상을 심었다. 박 전 대통령 본인 역시 영남대학교 이사장을 지냈었다.

노무현 정부의 사학 개혁 시도는 결국 크게 후퇴했다. 만약 당시 개혁이 성공했다면, 정유라 씨의 이화여자대학교 학사 농단 역시 쉽지 않았을 게다. 박 전 대통령이 사학 개혁을 막았던 탓에, 최경희 전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은 불투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다. 최 전 총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교육비서관을 지냈었다. 기묘한 역사의 반전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냈던 문 전 대표가 사학 비리 공범을 영입했다. 이는 명백한 퇴행이다.

'박근혜 파면'의 학습 효과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 자주 인용됐다. 대형 사고가 있기 전에는 반드시 비슷한 사고가 소규모로 여러 번 일어난다는 뜻이다. 앞서 황상기 씨가 "올해 겨울에 또 수백만 명이 촛불을 들 수 있다"라고 했다. 양향자 최고위원, 전인범 전 사령관 등이 배반당한 촛불 민심의 새로운 폭발을 예고하는 징후가 아니길 바란다. '하인리히 법칙'을 인용할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

중종반정 이야기를 다시 하자. 연산군의 폐위는 '군약신강(君弱臣强, 임금이 약하고 신하의 힘이 세다)'의 전통을 굳히는 계기였다. 혹독한 공부로 성리학 교양을 쌓은 신하들이 왕권을 견제하는 정치 모델은 이렇게 정착했다. 이 시기를 다룬 책 가운데 <16세기, 성리학 유토피아>가 있다. 제목 그대로, '성리학 유토피아'였다. 연산군 이후 다양한 개성을 지닌 왕이 등장했지만, 누구도 '군약신강' 전통을 근본적으로 뒤엎지는 못했다.

'2017년 박근혜 파면' 역시 다음 대통령들에게 학습 효과를 남길 게다. 누구도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다. 외면하면, 대통령 파면이다.

박근혜 벤 촛불 민심, 다음 대통령도 벨 수 있다

따라서 다음 대통령에겐, 133일 촛불 집회를 꼼꼼히 돌아보는 게 필수 과제다. 누가 촛불을 들었나. 그들은 133일 동안 무엇을 느끼고 깨달았나. 다음 정부가 답을 찾지 못하면, '박근혜 퇴진'을 향했던 촛불 민심은 역류할 수 있다.

거듭 이야기한다. '촛불 집회 참가자, 연인원 1587만 명'. 그들의 눈높이는 5개월 전과 확연히 다르다. 한국 사회 적폐에 대한 인식이 깊어졌고, 시민의 힘으로 권력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고양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에 대한, 높은 지지 여론이 방증한다. 정경 유착 비리 구조에 대한 인식, 그리고 재벌 총수가 구속돼도 경제에 별 영향이 없으리라는 자신감. 이 두 가지가 모두 높아졌다.

이런 변화에 뒤쳐진 정치 세력은 몰락한다. 촛불 민심은 양날의 칼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변화에 뒤쳐졌던 박근혜를 먼저 베었다. 그 칼날이 '촛불 이후' 대통령을 향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 연산군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 <간신>.ⓒ수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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