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검찰청에서 열린 세미나에 참석했을 때에는 교수 한 분이 그 자리에 있던 검사 한 명과 변호사인 나를 지목해서 일반 형사 사건에서도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수사기록 일부를 공개하지 않아 공방이 벌어지는 때가 자주 있느냐고 묻기도 했다. 비단 용산참사 사건뿐 아니라 수사기록 공개 전반에 관하여 학계에서도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다.
수사기록을 전부 제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유리한 사실이 발견되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관련된 모든 자료가 피고인에게도 제공되어야 한다는 점에 있다. 공정한 재판과 무기평등의 원칙을 위해서는 증거의 제출을 검찰의 일방적인 판단에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검찰의 논리는?
▲ 김준규 총장은 어떤 결단을 내릴 것인가ⓒ청와대 |
이에 맞서는 검찰의 논리는 크게 두 개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는 어떤 증거를 제출할지 선택하는 것은 기소한 쪽의 고유 권한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사건 관계자의 명예훼손과 수사기밀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 기록 전부를 공개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A 회사의 탈세혐의를 수사하던 중 대표이사가 관계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었다는 진술을 확보했는데 그 공무원이 행방을 감춘 경우를 생각해보자.
검찰로서는 일단 뇌물수수죄의 혐의를 받는 공무원은 지명수배한 채 회사 대표이사만 조세포탈죄로 기소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재판에서 뇌물수수와 관련된 진술까지 증거로 제출해야 한다면 수배 중에 있는 공무원의 손에 들어갈 수 있고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예기치 않은 부작용의 발생
수사기록 공개를 둘러싼 이런 공방은 과거에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최근 들어 격한 논란이 벌어지게 된 것은 형사재판에서 증거제출 절차가 크게 변했기 때문이다. 애초에는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의도로 시작된 일이었는데 예기치 않은 부작용을 낳게 되었고 결국 현재와 같은 논란이 벌어지게 된 단초가 되었다. 이 과정을 한번 돌이켜보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에 관하여 하나의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예전에는 검사가 사건을 기소하면 재판이 열리기도 전에 수사기록을 말 그대로 통째로 법원에 넘겼다. 판사는 그 수사기록을 다 읽어보고 법정에 온다. 판사가 미리 사건 내용을 다 알고 들어오다 보니 재판은 형식적 절차로 흐르기 쉬웠다.
오히려 검사는 수사기록을 읽어보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에 들어온다. 우리나라에서는 수사를 한 검사와 재판에 관여하는 검사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인데, 자신이 수사를 한 사건도 아니고 수사기록은 이미 법원에 가 있으니 결국 공소장만 읽어보고 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행에 문제가 많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일단 형사소송법 규칙에 규정된 공소장일본주의에 어긋난다. 공소장일본주의는 재판 전에 판사는 오직 공소장만을 읽을 수 있을 뿐 증거자료를 볼 수 없다는 원칙을 말한다. 수사기록 등 증거를 미리 볼 경우 사건에 대해서 선입관을 가지게 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증거능력에 관한 법 규정이 의미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 등은 증거능력이 없고 유죄를 인정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될 수 없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은 검사가 제출한 증거에 대해서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증거능력이 없는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그런데 판사가 재판 전에 미리 수사기록을 다 읽게 되면 재판 과정에서 그 중 일부가 증거능력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별다른 의미가 없게 되는 것이다. 과거의 재판이 조서재판이라는 비판을 받은 것은 많은 부분 이러한 관행에 원인이 있었다.
공판중심주의가 강조되고 절차의 중요성에 주목하게 되면서 얼마 전부터 이러한 모습은 바뀌게 되었다. 지금은 판사는 오직 공소장만을 읽고 재판에 들어오고 수사기록 등 증거는 법정에서 심사를 거쳐 하나하나 별도로 제출된다.
묘한 현상
예를 들어 뇌물 사건 수사 과정에서 피의자 외에 A, B, C 세 명의 참고인이 조사를 받고 그들의 진술조서가 수사기록에 첨부되었고 가정하자. 전에는 그 수사기록 전체가 일괄해서 법원에 제출되었다. 지금은 다르다. 피고인이 부인하는 경우에는 검사는 A, B, C를 각각 증인신청을 하고 그들이 법정에서 진술조서를 확인한 후에 하나씩 증거로 제출하게 된다. 즉 A가 증언을 마치면 A의 진술조서를 제출하고, B가 증언을 마치면 B의 진술조서를 제출하는 등 수사기록이 분리되어 제출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묘한 현상이 생기게 되었다. 재판에 관여하는 검사가 수사기록을 검토하면서 하나씩 증거를 제출하게 되자 검찰에 유리하지 않은 자료나, 혹은 굳이 제출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 자료를 선별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A가 폭행죄로 B를 고소하고 B는 폭행한 사실이 없다고 하면서 A를 무고죄로 고소한 사건이 있다고 가정하자. 이때는 폭행죄와 무고죄의 두 사건이 있게 된다. A와 B는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동일한 사건에서 각각 고소인과 피고소인 자격으로 유사한 진술을 두 번 하게 된다. 수사 결과 검사가 A의 진술이 사실이라고 판단하여 B를 폭행죄로 기소했다고 할 때 굳이 유사한 내용의 조서를 모두 제출하지 않고 하나씩만 제출하는 것이다.
언뜻 보면 효율적인 일처리인 것 같지만 재판을 받는 B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다. 대체로 유사한 내용이라고 하더라도 폭행죄의 고소인으로 진술할 때의 A의 진술과 무고죄의 피고소인으로 진술할 때의 A의 진술이 구체적인 점에서 다를 수 있다. 무죄를 받기 위해서는 A의 진술이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밝혀야 하는 B의 입장에서는 A의 진술이 사소한 점에서라도 변경되었다는 것은 중요한 자료가 된다.
피고인이 관련 수사기록 전부를 접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필요에 따라 검사가 증거를 일방적으로 선별할 수 있다고 하면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기 위하여 도입한 제도의 변경이 오히려 다른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공익의 대표자인 검사의 의무는?
그렇다면 수사보안의 유지를 위해서 수사기록의 일부를 공개하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앞서 든 뇌물사건의 경우 공무원이 검거될 때까지 증거를 공개하지 말아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형사소송법은 이렇듯 충돌하는 가치를 조정하기 위한 규정을 두고 있다. 즉 검사 측에는 관련 사건의 수사에 장애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 기록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을 권한을 부여하고, 동시에 피고인에게는 검사의 결정에 대한 이의 신청권을 주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법원이 양쪽의 주장을 듣고 공개로 인하여 생길 수 있는 폐해의 정도와 피고인의 방어를 위한 필요성을 비교하여 결정하게 된다.
재판은 게임이 아니며 검사는 유죄판결만을 목적으로 하는 단순한 당사자가 아니다. 검사는 공익의 대표자로서 객관의무가 있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도 공개할 의무가 있다. 강간사건의 진범이라고 판단해서 기소를 했다가도 그 후 유전자 감식결과 진범이 아닌 것이 밝혀진다면 당연히 그 자료도 제출해야 한다.
용산참사의 경우 진압 경위 등에 대한 자료는 피고인들의 방어권 행사에 결정적인 자료가 될 수 있다. 여러 가지 근거에서 검찰이 일단 수사기록 전부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더라도 법원에서 검찰의 주장과 피고인의 방어권을 고려한 끝에 공개를 명한 이상 따르는 것이 옳다. 보다 발전적인 형사절차의 정착을 위해서도 검찰의 합리적인 결단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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