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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전실 해체가 삼성 위한 '정답'은 아닌 세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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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미전실 해체가 삼성 위한 '정답'은 아닌 세가지 이유

[분석] 삼성, '사령탑' 유지보다 더 나은 대안 마련해야

삼성 미래전략실이 28일 해체됐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했던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지성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장충기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사장) 등 5명을 기소한 직후다.

삼성은 이날 보도 자료에서 "최 부회장 및 장 사장 등 미래전략실 팀장급 7명은 전원 사직"한다고 밝혔다. 이어 삼성은 각 계열사의 대표이사와 이사회 중심 자율 경영, 그룹 사장단 회의 폐지, 대관 업무 조직 해체 등을 약속했다. 아울러 현 미래전략실 임직원 200여 명은 원래 소속인 계열사로 복귀한다고 발표했다. 또 일정 금액 이상 외부 출연금은 이사회 또는 이사회 산하 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지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발표는 이미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예고된 바였다. 현재 구속 상태인 이 부회장이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에서 '미래전략실 해체'를 약속했었다. '미래전략실'의 모태는 이병철 삼성 창업자가 1959년에 만든 '비서실'이다. 초기엔 소규모로 유지되던 삼성 비서실은, 8대 비서실장인 소병해 비서실장 시절을 거치며 영향력이 대폭 커졌다. 이후 '재계의 청와대'로 불렸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취임 후에도 영향력이 계속 확대됐다. 다만 이 회장 시기엔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다양한 업종에 걸쳐 계열사를 둔 삼성은 사실상 하나의 기업처럼 움직인다는 평가가 있다. 그 역시 비서실부터 미래전략실로 이어지는 그룹 사령탑 조직 때문이다. 미래전략실과 그룹 사장단 회의를 폐지하고, 계열사 자율경영을 한다는 28일 발표는 기존의 삼성 경영 방식과 단절한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는 생색내기 수준이라는 비판에 무게가 실린다. 크게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경영권 승계, 숙제는 남아 있다


첫 번째,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경영권 승계 작업 때문이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학교 교수)은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은 '기승전결' 네 단계 가운데 이제 겨우 '승' 정도에 와 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1990년대 중반,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61억 원을 줬다. 그걸 종잣돈으로 삼아 이 부회장의 지분을 늘리는 작업을 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헐값 발행 사건 등이 있었다. 불법, 편법 논란이 뜨거웠다. 2000년대 초에는 정보기술(IT) 벤처 열풍에 편승해서 'e삼성' 사업을 벌였다. 종잣돈을 확 키우려는 시도였으나 결국 실패했다. 2000년대 중후반에는 삼성 X파일 사건,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 등이 있었다. 이런 일들을 거치면서,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은 제동이 걸려 있었다. 그러니까 "'기승전결' 네 단계 가운데 이제 겨우 '승' 정도"라는 게다. 그리고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졌다. 이후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에 속도를 냈는데, 사고가 났다.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에게 돈을 주고 그 영향력을 활용하려다가, 총수가 구속돼 버렸다.


삼성의 28일 발표는 현재 구속 상태인 이 부회장이 삼성 경영에서 손을 떼겠다는 뜻은 아니다. 법원의 최종 판결, 그리고 형 집행 이후 이 부회장은 삼성에 복귀한다. 그 뒤엔, 경영권 승계 작업을 다시 해야 한다. 다양한 계열사 지분을 정리해야 한다. 2014년 말, 화학 및 방위산업 관련 계열사를 한화 그룹에 넘길 때처럼, 계열사 임직원의 반발이 있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을 매끄럽게 진행하려면, 어떤 식으로건 그룹 사령탑 조직이 필요해진다. 이 부회장이 법적 책임에서 벗어난 뒤엔 그룹 사령탑 조직이 이름만 바꾼 채 다시 꾸려지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삼성 부품 계열사가 정말 '자율 경영'하면?

두 번째, 순수하게 경영 차원의 이유가 있다. 1987년 이병철 창업자가 사망하고 이 회장이 취임하던 당시의 삼성그룹은 고만고만한 계열사의 묶음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삼성전자 더하기 알파'다.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다. 삼성전자가 아닌 삼성 계열사 직원들은 "우린 '삼성후자'"라는 농담을 한다. 전자(前者)가 아닌 후자(後者)라는 말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 역시 지난해 말 국회 청문회에서 "경영 관련 고민의 90퍼센트는 삼성전자에 관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경영권 승계를 위해 온갖 편법을 동원해야 했던 이유 역시 이건희 회장 시기에 거둔 삼성전자의 성공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한주 가격이 200만 원에 달하는 회사 지분을 늘리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이 부회장의 관심을 독차지하는 삼성전자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지금의 체제가 필요하다. 삼성전자의 경쟁 우위 요소 중 하나가 삼성SDI·삼성전기 등으로부터 소재 및 부품을 공급받는 수직계열화 체제다. 만약 삼성SDI·삼성전기 등이 정말로 자율 경영을 한다면, 삼성전자의 경쟁력도 흔들린다.

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삼성물산 등 이른바 '그룹 내 수주산업 계열사' 역시 그룹 단위 경영을 전제로 사업 설계가 돼 있다. 그룹 사령탑 조직의 조정 역할 없이, 이들 계열사가 정말로 자율 경영을 한다면, 위기가 필연이다. 당장 이들 계열사의 현안인 구조조정 작업부터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삼성생명 등 금융 계열사 역시 처지는 비슷하다.

불법 로비와 사회적 대화의 차이

세 번째, 이른바 대관 업무가 어떤 식으로건 유지되리라는 점 때문이다. 국회 관계자 등에 따르면 삼성의 대관 업무는 다른 대기업보다 악명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관(對官)은 관청을 상대한다는 뜻인데, 삼성은 특유의 정보력을 바탕으로 치밀하게 인맥 관리를 했다. '비리의 온상'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소리를 듣고 있다. 또 정·관·법조·언론·학계에 대한 영향력을 악용해 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건희 회장 체제 삼성에서 이런 역할을 주도한 것으로 지목된 사람이 장충기 사장이다. 이런 업무는 특성상 개별 계열사가 하기 힘들다. 정보가 집중된 조직, 비밀 유지가 잘 되는 조직, 바로 그룹 사령탑 조직이 필요하다는 쪽으로 결론이 날 수밖에 없다.

삼성은 창업 당시부터 정경 유착을 통해 성장했다. 정부 정책 동향에 늘 민감했다. 79년 동안 이렇게 진화한 조직이 한순간에 바뀌리라고 보는 이는 없다. 대관 업무를 담당하는 사령탑 조직이 어떻게든 부활하리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다만 이 대목에서 한 전직 삼성 관계자가 흥미로운 설명을 했다. 뇌물을 통해 정치인, 관료, 법조인, 언론인, 학자 등에게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 당연히 잘못이다. 하지만 순수한 의미의 대관 업무까지 싸잡아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반도체 등 대규모 장치 산업은, 공장부지 선정 단계부터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 같은 협조 작업을 합법적이고 투명하게 진행한다면, 문제가 없다는 게다. 또 대기업은 지역 경제 및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따라서 지역 시민사회와의 대화 역시 필요하다. 지금껏 한국 대기업은 이런 대화가 너무 없어서 문제였다. 삼성 반도체 직업병 문제가 대표적이다. 골목 상권 침해 논란 등도 비슷한 경우다. 노동계 및 진보 성향 시민사회와 진솔한 대화를 했다면, 문제가 그토록 곪지는 않았을 게다.

나쁜 의미의 대관 업무, 즉 불법 로비는 사라져야 하지만, 사회와 소통하는 기능은 오히려 키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불법 로비와 사회와의 건강한 소통은 어떻게 구별할까. 명확한 기준은 없다. 그저 전제 조건이 있을 뿐이다. 바로 투명성이다. 기업 외부로 빠져나간 돈이 실제로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해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가능하다면, 설령 그룹 사령탑이 부활해도, 정경 유착과 불법 로비는 사라진다.

요컨대 문제의 핵심은 그룹 사령탑 그 자체가 아니다. 투명한 정보 공개, 권한과 책임의 일치 등이 우선이다.

"그룹 사령탑, 감추는 게 오히려 문제"

경제개혁연대는 이날 "미래전략실 해체가 정답이 아니다"라는 논평을 냈다. 경제개혁연대 역시 삼성이 그룹 사령탑 기능을 버릴 수는 없다고 본다. "현대자본주의의 핵심적 생산 활동 주체는 개별 독립기업이 아니라 다수의 계열사로 이루어진 기업집단"이라는 설명이다. 기업집단을 인정한다면, 그룹 사령탑 기능도 필요하다. 경제개혁연대는 "그룹(기업집단)이 존재하는 한 컨트롤타워(그룹 사령탑) 기능은 필수불가결하다"면서 "컨트롤타워를 숨기지 말고 투명하게 드러내는 것이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삼성의 이날 발표는 답답하기만 하다. 삼성그룹이라는 기업집단이 있고, 그걸 물려받으려는 사람(이재용 부회장)이 있으며, 그 사람이 앞으로도 계속 경영권을 행사하려 한다. 이런 상황이 그대로인데, 그룹 사령탑만 없앤다는 건, 모순이라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제개혁연대는 "미래전략실 해체는 컨트롤타워 기능을 완전히 없앤다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미래전략실 기능을 일부 축소하고 부분적으로 분할하여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의 핵심 계열사 내부로 이전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존 미래전략실이 낳았던 문제를 더 키울 수 있다. 미래전략실 등 그룹 사령탑의 문제가 권한과 책임의 괴리였다. 그룹 사령탑이 계열사로 숨어버리는 형태가 된다면, 이 문제는 더 커진다. '막후의 사령탑'으로 권한을 휘두르지만,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묻기는 애매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삼성이) 2008년 구조조정본부를 해체하고 전략기획실(2010년에 미래전략실로 명칭 변경)로 개편한 것과 마찬가지로 또 다른 꼼수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해법은 투명성과 책임성이다. 법적으로 이를 보장하는 유력한 대안은 지주회사 전환이다. 당장은 쉽지 않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삼성 계열사 이사회에 외부 추천 사외 이사 받아들여야"

경제개혁연대는 "문제 해결의 핵심은, 컨트롤타워의 잠정적 판단을 각 계열사 차원에서 자율적으로 검토하고 수정하고 승인하는 절차를 구축하고, 이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엔 조건이 있다. 계열사 이사회의 자율적 판단을 신뢰할 수 있게끔 하는 장치다. 현재의 삼성 계열사 이사회는 지배 주주와 '거수기 사외이사'로만 채워져 있다. 삼성전자 등에서 433억 원이 최순실 씨 일가로 새나가도, 다들 조용했던 건 그래서였다. 계열사 내부에서 견제와 감시 기능이 작동해야 한다.

경제개혁연대는 "컨트롤타워 기능이 분산 배치될 것으로 예상되는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 등의 핵심 계열사에는 외부 주주가 추천한 독립적 사외이사를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삼성 총수 일가의 행태에 대해 비판적인 사외이사를 이사회에 받아들이지 않는 한, 삼성이 발표한 온갖 쇄신 안은 눈속임에 그치리라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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