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조>(김성훈 감독, 2016) 같이 북한 사람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영화에는 먼저 관심을 갖게 된다. 가장 큰 이유는 여전히 '종북'이라는 딱지가 유효하게 작동하는 상황에서 북한 사람이 재현되는 방식이 흥미롭기 때문이다.
한국 영화의 기획에서 대규모 액션 장면이 가능한 장르를 통해 흥행을 견인하려고 할 때, '북한'은 매우 적절한 소재가 된다. 한국 전쟁이 아니라, 남북의 대치 상황을 소재로 한 <쉬리>(강제규 감독, 1998)의 대대적인 흥행성공은 시금석이 되었고, <공동경비구역JSA>(박찬욱 감독, 2000)의 흥행 성공은 이를 뒷받침했다. <쉬리>와 <공동경비구역JSA>는 '북한'을 소재로 하면서 갈등의 핵심에 '분단' 문제가 놓여있었다. 전자에서는 북한의 특수 8군단장 박무영이 전쟁을 통해 통일을 하려는 목표로 거대한 음모를 획책한다. 후자에서는 순수하게 우정을 나누던 남북한 병사들이 분단 상황 때문에 결국 목숨을 잃는다. 이 영화들을 보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분단'의 현실을 생각하게 된다.
반면 <공조>는 그 동안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가 많이 등장했기 때문인지, 이전 영화의 흥행요소를 가져오면서 북한과 분단을 시종일관 액션을 가능하게 하는 소재로 소비한다. 사건은 북한의 특수부대원 출신 차기성(김주혁 분)이 완벽하게 달러를 위조할 수 있는 동판 '명도전'을 강탈해 남한으로 잠입하면서 시작한다. 북한 검열원 임철령이 차기성 일당의 음모를 분쇄하기 위해 남한에 오고, 남한 형사 강진태가 공조하게 된다.
북한의 임철령(현빈 분)과 남한의 강진태(유해진 분)의 결합은 북한 간첩 송지원(강동원 역)과 국정원 요원 이한규(송강호 분)가 의형제를 맺는 <의형제>(장훈 감독, 2010)를 떠오르게 한다. 임철령이 자신의 아내를 살해한 차기성에 대한 복수로 임무를 맡는 설정은 <용의자>(원신연 감독, 2013)의 지동철(공유 분)의 경우와 비슷하다. <공조>와 <의형제>는 남북한의 인물 관계에서, 남한의 인물을 형으로 설정했다. <쉬리>의 경우에는 '제국-남성'과 '식민지-여성'의 구도를 가져와 남한 요원 유중원(한석규 역)과 북한의 여성 간첩 이방희(박하 분)를 연인관계로 만들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공동경비구역JSA>에서 북한 병사 오경필(송강호 분)을 형으로 설정한 것은 파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1990년대 이전의 시점에서는 현빈, 강동원 같은 스타가 북한 사람으로 등장한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공조>는 차기성의 음모와 남북한 형사의 공조를 통해 액션의 토대를 마련한 다음, 영화의 모든 요소들을 흥행의 잣대에 따라 배치한다. 그러다 보니 차기성이 동판을 탈취한 이유조차 오락가락 한다. 처음에 그는 동판을 윤 회장에게 넘겨주고 거액을 챙겨 남한에서 안락하게 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는 윤 회장과 거래를 할 때 '조국, 가족, 내 청춘까지 다 바쳐서 핏 값으로 가진 동판'이므로,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대목에서 그는 임철령에게 '이 숭고한 계획은 인민의 나라를 만들지 않은 공화국에 대한 복수'라고 말한다. 결국 동판은 강으로 버려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부분들이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동판은 액션을 만들어내기 위한 일종의 '맥거핀(Macguffin)'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재미를 강화하려는 전략이었는지, 현빈의 스타이미지와 유해진의 코믹한 이미지를 활용해서<의형제>와 같은 영화보다 분위기가 훨씬 가벼워졌다. 그러다보니 다소 과한 무리수까지 동원하게 되는데, 강진태의 처제 박민영(윤아 분)이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그 사례이다. 상부에서 임철령과 24시간 같이 있으라고 명령하자, 강진태는 임철령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온다. 여기서 임철령의 수려한 외모에 반한 박민영이 갖가지 우스꽝스런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그런 다음 박민영이라는 인물은 사라져버린다. 이렇게 이 영화는 시종일관 흥행을 위한 요소에만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북한 사람이 등장하는 영화에 담긴 무언가를 읽어낼 여지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무튼 앞뒤가 맞지 않아도 카체이스 장면과 매우 폭력적인 액션의 반복, 그리고 현빈의 스타 이미지만으로도 흥행에 성공하고 있는 중이다. 이유는 지금처럼 온 국민이 골치 아픈 상황에서는 그저 킬링 타임용(시간 때우기) 영화가 필요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두 가지 점은 지적해보고 싶다. 하나는 북한에 관련된 사건이므로 당연히 국정원 요원이 등장해야 하는데, 형사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이다. 강진태는 마땅히 이 사건을 담당해야 할 정도로 유능한 형사가 아니다. 그는 몇 명의 적과 대적할 수 있는 능력조차 갖추지 못했다. <아저씨>(이정범 감독, 2010), <악마를 보았다>(김지윤 감독, 2010) 같은 영화에서 전직 국정원 요원 차태식(원빈 역)과 국정원 요원 김수현(이병헌 분)은 범죄조직을 일망타진하고 어마무시한 살인마를 분쇄한다. 그러나 <공조>에서 국정원 요원은 잠깐 등장할 뿐이다. 유능한 북한 형사와 코믹한 남한 형사의 결합에서, 코믹한 국정원 요원은 설정하기 어렵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난 몇 년 동안 국정원에 대한 이미지가 점점 나빠지면서 국정원 요원을 주인공으로 출연시키기가 어려워진 것일까?
또 다른 하나는 스타들이 주인공으로서 북한사람의 역할을 맡으면서, 긍정적인 인물로 설정되고 있는 점이다. <의형제>의 송지원(강동원 분)은 북한의 아내와 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가장이며, <용의자>의 지동철은 가족의 복수를 위해 남한에 온다. 임철령의 동기도 그들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온갖 역경 속에서도 결코 북한을 배신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미지 구축은 북한 사람인 그들이 남한 관객에게 주인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동기가 된다. 여기에 그들의 희생이 더해진다. 송지원은 이한규가 국제 결혼 브로커 조직에 걸려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지명훈에게 살해당할 뻔할 때, 자신의 목숨을 걸고 구해준다. 임철령은 강진태의 가족이 차기성에게 납치되자, 임무를 마치고 북한으로 돌아가면 되지만 다시 돌아와 그들을 구해낸다. 이러한 설정은 비슷한 계열의 다른 영화에서도 반복된다. 다시 말해서 북한 사람이 남한 관객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려면, 목숨을 거는 희생을 보여주어야 한다.
스타가 연기하는, 이상적인 남성인물이자 완벽한 요원의 역할이 북한 남성에게 주어졌지만 이혼을 한 <의형제>의 이한규와 딸의 스마트 폰을 사줄 여력이 없는 강진태로 그려지는 남한 남성은 실패했거나 무능한 가장이다. 심지어 임철령이 스마트폰을 사주라며 강진태에게 돈을 주는 장면까지 있다. 기이하게도 관객이 현실에서 만날 확률이 거의 없는 북한 남성은 이상적인 인물로 등장하고, 남한 남성은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저씨처럼 설정된다. 이러한 설정이 텔레비전으로 이동하면, tvN의 <도깨비>와 같은 드라마가 되는 것일까?
<공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차기성이 '동판 없이 북에 가봤자 총살 아니냐'고 했지만, 임철령은 여전히 검열원으로 별 탈 없이 살아간다. 남한에서 북한으로 도망간 연쇄살인마를 잡기 위해 강진태는 북한에 파견되고, 임철령과 다시 공조를 하게 된다. 이 마지막 장면과 어쩌면 후편을 위한 포석인지 모르겠지만, 임철령이 남한에 정착하지 않고 북한으로 돌아가는 설정이 이 영화가 가장 차별화되는 지점 같다.
이 영화를 포함, 최근 일련의 한국 영화를 보면서 드는 질문은 '현재 한국 영화의 기획 시스템에서는 자극적이고 잔인하고 폭력적인 영화만을 양산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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