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시민의 응원을 받으며 거칠 게 없던 특검이 처음으로 주춤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주범 중 한 사람으로 삼성 재벌 3세 이재용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되고 말았다. 구속영장이야 재청구할 수도 있고, 불구속 수사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서슬 퍼런 특검조차 삼성이라는 벽 앞에서는 일단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음을 확인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삼성 공화국'은 빈말이 아니었다.
한데 이 대목에서 한 번쯤 이런 의심을 던져볼 만하다. 과연 이재용을 구속한다고 해서 재벌 개혁의 일대 성과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재용은 죗값을 톡톡히 받아야 한다. 그도 죄를 지으면 형사 처벌 받는 한 명의 시민일 뿐임을 확인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는 어느덧 세습 귀족 국가로 변질 중인 민주공화국을 되살리는 결정타가 될 수 있다. 이재용 구속은 촛불 시민 혁명이 반드시 실현해야 할 장면 중 하나다.
다만 의문이 드는 것은 재벌 총수가 형사 처벌을 받는다고 해서 촛불 시민 혁명의 핵심 과제라 이야기되는 재벌 개혁이 성취됐다고 할 수 있겠냐는 점이다. 현대-기아자동차의 정몽구도 구속됐었다. SK의 최태원도 구속됐다가 박근혜 덕분에 풀려나왔다. 한화의 김승연도 감옥살이를 한 바 있다. 그러나 그들의 권력에 어떤 변화가 있었던가? 저들은 저마다의 기업집단 안에서 여전히 제왕이다.
수갑을 채우고 수의를 입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전두환, 노태우는 그렇게 해서 역사의 대로에서 쓸어버릴 수 있었지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흔들리지 않는 핵심인 재벌은 그것만으로는 어림도 없다. 도대체 어떤 처방이 더 필요한가?
재벌 개혁의 맹목 지점 - 권력의 빈 곳은 다른 권력이 채운다는 진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여러 제도적 처방들이 제출됐다. 순환출자 금지, 집단소송제, 금산분리, 하청업체 보호 등등. 하나같이 간단하지 않은 내용이지만, 하도 오랫 동안 들어서 결코 낯설지 않은 말들이다. 현재 야권 대선 주자들은 이들 정책 중 이러저런 내용을 선별해서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아예 '3대 세습 금지'를 약속하기도 한다.
이 정책들을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같이 재벌 권력을 어떻게든 축소하려는 조치라는 점이다. 소극적으로는 재벌의 힘을 '규제'하려 하고, 보다 적극적으로는 '해체'하려 한다. 재벌이 기업사회와 국민경제를 농단하는 독재자라는 점에서 이런 대응은 당연하게 느껴진다. 제왕으로 군림하려는 자들이 있다면, 일단 권좌에서 몰아내고 봐야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이 대목에서 다시 의문이 든다. 과연 기존 권력을 줄이거나 잘게 쪼갠다고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될까? 이것은 어쩌면 총수 1인의 형사 처벌만큼이나 한계가 뚜렷한 임시변통은 아닐까?
왜냐하면 권력의 속성 때문이다. 자연이 진공을 싫어한다지만, 이 말은 오히려 사회에 더 잘 들어맞는다. 기성 권력을 해체하면 권력 없는 세상이 열린다는 것은 대개 순진한 몽상이다. 옛 권력이 사라지면 반드시 새 권력이 그 빈곳을 채운다. 달리 말하면, 새 권력이 등장해야만 옛 권력은 온전히 대체될 수 있다. 그런 권력이 준비돼 있지 못하다면 옛 권력은 아무리 위기에 빠지고 부패했더라도 좀처럼 퇴장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혹은 외양만 바꾼 채 쉽게 목숨을 이어간다.
재벌 권력도 마찬가지다. 진보개혁파가 주장해온 개혁 정책들이 그대로 관철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재벌 일가는 자신들이 보유한 지분만큼만 투표권을 지니는 대주주 중 일부로 돌아갈 것이다. 지금처럼 거대 기업집단을 밀실 지령으로 움직일 수는 없게 될 것이다. 제일 잘 나가는 핵심 기업의 지배 주주로 남으려고 스스로 관심과 권한을 좁히거나 아니면 서구 대자본 가문처럼 경영에서 손을 떼고 금융 투자자로 만족하게 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성취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독재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재용이 구속돼도 삼성 일가(이 씨-홍 씨 집안)는 건재한 것처럼, 재벌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더라도 말 그대로 경제가 '민주화'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권력의 빈 곳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누구'가 재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자본 소유자라면, 재벌 개혁에도 불구하고 기업 내 독재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왕좌의 주인만 바뀔 뿐이다.
지금으로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는 구 재벌과 초국적 금융자본 사이의 새로운 타협이다. 이미 대기업 소유구조는 이런 타협을 강요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해외 금융세력이 재벌 일가보다 더 덩치가 큰 대주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자기들이 보기에 주주자본주의 규칙을 어기며 전횡을 일삼는 재벌을 규율하길 바란다.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타협을 성사시키고 기업지배구조에 이를 반영시키길 원한다.
단지 기존 재벌 권력을 '규제'하거나 '해체'하기만 하는 재벌 개혁은 이런 타협의 더없는 기회가 될 것이다. 금융 투자자로 물러선 구 재벌과 해외 투자자들은 이제 크고 작은 이권다툼을 끝내고 안정적인 동맹을 맺을 것이다.
그것은 단기간의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동맹일 것이다. 산업 논리보다는 금융 논리에 따른 기업 운영에 뜻을 함께 할 것이다. 전문경영인 체제가 들어서겠지만, 이런 대주주 연합의 합의를 충실히 집행하는 대리인이 될 것이다. 한 마디로 신자유주의의 강화다.
기존 권력이 허물어져 빈 공간은 다른 권력이 채운다. 그리고 이 권력은 새 권력을 키우려는 특별한 노력이 없다면 기존 권력과 크게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더 못한 권력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전통적인 재벌 개혁 정책들, 지금도 재벌 개혁의 주된 처방으로 이야기되는 정책들의 맹목지점이다.
재벌에 맞설 사회 권력을 키우는 개혁이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진보 지식인 중에도 재벌 개혁에 반대하는 이색적인 목소리가 있다. 자칫 더 나쁜 자본주의가 될 수 있으니 섣불리 손대지 말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지나치게 일면적인 우려이고, 촛불 시민 혁명 정신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주장이다. 대한민국을 막후에서 조종하는 세력들의 수장 격인 재벌을 민주공화국의 규율 아래 두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직접 연루된 재벌들의 처벌을 시작으로 묵혀뒀던 재벌 개혁 조치들에 착수해야 한다. 다만 이와 함께 반드시 재벌에 맞설 대항 권력, 재벌을 대체할 대안 권력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재벌 개혁이 단지 지배연합의 두목 자리 교체에 그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재벌 문제를 고심하는 이들이 대안 중 하나로 노동자 경영 참여를 빼놓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노동자는 기업 안의 시민이다. 기업 내부의 대항 권력이라면 자연스럽게 노동자부터 떠올리게 된다. 산업별 노동조합을 강화하든 아니면 독일식 노사공동결정제도를 도입하든 노동자의 경영 개입으로 재벌 권력을 뿌리부터 견제하고 대체할 수 있다.
한데 지금까지 이런 대안은 항상 수줍은 어조로 제시됐다. 재벌 개혁론자들 스스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노동을 대안으로 내세우기에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동자들이 기업 안에서 강력한 야당 구실을 할 수 있을지 좀처럼 확신이 서지 않는다. 삼성은 아직 노동 세력 자체가 미약하고, 현대-기아자동차 노동자들은 여론으로부터 고립돼 있다.
실은 재벌 개혁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국 사회 전체의 변화가 마냥 지연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존 사회 경제 체제의 한계와 모순은 오래 전부터 너무나 분명했다. 그런데도 이 체제가 완강히 지속되는 것은 이를 바꿔나갈 사회 세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 이론과 서구의 경험이 그런 세력의 후보로 지목하는 노동계급은 지금 이 땅에서는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여러 분파로 갈가리 찢겨 있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변화로 대기업 노동자가 '사회'를 온전히 다 대변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모순은 분명하나 모순의 타래를 끊을 첫 번째 주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다. 재벌 문제는 한국 사회가 직면한 이러한 궁지의 축도(縮圖)다.
하지만 어렵더라도 개혁은 시작되고 봐야 한다. 난마처럼 얽힌 현 상황에서는 개혁이 일단 시작돼야 개혁 주체도 성장할 수 있다. 즉, 개혁 추진 과정에서 개혁 주체의 성장을 꾀해야 한다. 대안 주체들이 스스로 성장할 근거가 개혁 정책의 주요 내용 중 하나가 돼야 한다. 재벌 개혁 정책 안에 재벌 권력을 깎고 쪼개는 조치뿐만 아니라 재벌 권력에 맞서고 이를 대체할 사회 권력을 키우는 전략도 녹아 있어야 한다.
가령 노동자 경영 참여를 현대 자본주의 상황에 맞게 사회적 기업지배구조 방안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현행 사외이사 제도를 대기업 지배구조에 다양한 사회 주체들이 참여할 통로로 바꾸는 것이다.
상법 제542조의 8에 따라 상장회사는 이사 총수의 1/4 이상이 사외이사여야 한다. 그 중 자산 규모 2조 이상(대통령령)인 기업은 과반수가 사외이사여야 한다. 이 제도 역시 빗발치는 재벌 개혁 요구로 도입됐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외이사는 전직 정치인, 공직자나 대학 교수가 불로소득을 챙기는 수단일 뿐이다. 이들은 이사회에서 재벌의 거수기 노릇이나 한다.
이 '사외'이사제도를 '사회'이사제도로 바꾸면 어떨까. 주요 기업 이사회의 과반수를 노동자, 소비자, 연관업체(하청기업 등), 지역사회, 중앙정부를 각각 대표하는 사회이사로 채우는 것이다. 그래서 재벌의 빈 자리를 주주가 독점하는 게 아니라 노동자를 비롯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나눠 갖게 하는 것이다. 이들 이해관계자는 구 재벌과 해외 투자자들의 새로운 동맹에 맞서고 이를 제압할 사회 동맹을 구축하게 될 것이다. 이 사회 동맹을 통해 이해관계자들의 합의와 협력으로 움직이는 새로운 대기업 모델이 진화할 것이다.
전례는 없다. 다른 나라에서도 공기업이 아닌 민간기업에서 이런 사회적 기업지배구조를 실현한 사례는 보기 드물다. 그러나 전례가 없기로는 한국의 재벌 문제도 마찬가지다. 또한 독일의 노사공동결정제도도 다른 나라의 전례가 있어서 처음 시작된 게 아니다. 유례없는 문제는 유례없는 해결책을 요구한다.
사회 권력의 성장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공공
노동이나 다른 시민사회 세력들이 미성숙한 상황에서 이렇게 대항, 대안 권력이 성장하려면 공공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회 집단들이 일상의 훈육을 통해 역량을 쌓아가도록 공공이 바람막이가 돼줘야 한다. 단, 이때의 '공공'은 개발독재 시대부터 재벌과 운명을 함께 한 관료기구일 수 없다. 이 전통적 공공은 관치(官治)에 가장 어울리게 진화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좌파의 공식이었던 '국유화'가 재벌 문제의 대안으로 매력 있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옛 공공이 바뀌지 않고서는 국유화란 박정희 시대의 두 산물 중 하나인 재벌에서 다른 하나인 관료기구로 주인이 바뀌는 것일 뿐이다. 이미 실례도 있다. 산업은행이 대주주였던 대우조선해양은 일상 경영이든 구조조정이든 어느 하나 재벌 대기업과 다른 구석이 없었다.
재벌 권력을 대체할 사회 권력을 육성하려면 '새로 재구성된' 공공이 필요하다. 새 공공은 광장의 목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공공이다. 예컨대 이런 구상을 해볼 수 있다. 정부 안에 국유 부문을 관리할 새로운 기구를 설립한다. 이 기구는 산업은행 지분, 국민연금 지분을 통합 관리하면서 이에 따른 경영 개입을 지휘한다. 사회이사 중 중앙정부 대표자는 바로 이 기구에서 파견된다. 이 기구는 기존 경제부처로부터 독립해 시민사회 내 다양한 집단의 대표자로 구성되며, 국회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다.
이런 기구가 설치된다면, 국민연금이 청와대와 삼성 재벌의 밀실 거래에 동원되는 일 따위는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다. 국가 소유 지분에 따른 경영 개입 방향은 이 기구에 참여하는 시민사회 대표들의 토론에 따라 결정되며, 중대한 사안의 경우는 국회 심의까지 거친다. 필요하면 국회가 경제시민의회(=시민정책배심단)를 구성해서 토론을 확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이 사회적 기업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다.
이런 기구가 새 공공의 대표 주자가 될 것이다. 새 공공은 이제 관치가 아니라 민치(民治)의 통로가 될 것이다. 이런 새 공공의 뒷받침 아래 각 대기업 현장에서 재벌 체제 '이후'를 책임질 이해관계자 동맹이 구축돼나갈 것이다.
물론 이것과는 또 다른 여러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위의 구상은 단지 한 가지 사례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오직 '재벌 권력 해체'와 '사회 권력 육성'이 동전의 양쪽 면임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런 깨달음이 상식이 돼버린 세상이야말로 이재용에게는 형무소보다 더 끔찍한 악몽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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