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1일, 청와대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이같은 내용을 발표했다. 사흘 전이었던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한 피해자 및 여론의 반발이 커지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내놓은 메시지였다.
졸속적인 합의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는커녕, 이번 합의 외에 다른 방안은 없으니 그냥 '받아들이라'는 사실상의 '협박'이었다.
이후 정부는 위안부 합의에 호의적인 피해자와 그렇지 않은 피해자를 분리키셔 내부 분열을 유도하는 소위 '갈라치기' 전략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합의 관철에 열을 올렸다.
특히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쉼터와 나눔의 집 등 시설에 거주하는 피해자는 합의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지만, 나머지 피해자들은 이번 합의에 호의적이라며, 마치 위안부 피해자 지원 단체들이 피해자 간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식의 '언론 플레이'를 벌이기도 했다.
실제 외교부는 합의 이후 지난 1월부터 국내에 개별적으로 거주하고 있는 피해자들과 면담을 가졌다. 마치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비밀 면담'이 이어졌고, 이후 합의에 찬성하는 피해자 및 피해자 가족은 몇 명인지, 이들이 어떤 발언을 했는지를 알리는 기자 간담회를 수차례 진행했다.
하지만 정대협과 나눔의 집 등 이번 합의에 반대하는 단체 및 피해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설득 작업은 벌이지 않았다. 또 이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려는 노력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한일 합의의 산물인 화해 치유 재단의 김태현 재단 이사장 역시 정부의 기조에 적극 동조했다. 그는 지난 6월 나눔의 집을 방문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언론들도 불러서 공개적으로 진행하자는 나눔의 집의 요구에 '비공개 면담'을 고집했다.
이후 정부는 나눔의 집을 방문해 2명의 피해자와 대화를 나눴다며, 이 중 한 명은 재단 설립에 반대했고 한 명은 정부 입장을 따르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하지만 안신권 나눔의 집 소장은 정부의 재단 설립에 찬성한 피해자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피해자로부터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음에도 김태현 이사장은 이를 묵살했다. 그는 지난 7월 28일 재단의 공식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극히 소수의 피해자분들을 제외하고는 재단이 설립되면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혀주셨다"며 합의 및 재단 설립에 반대하는 피해자들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화해 치유? 갈등만 조장한 '화해 치유 재단'
지난해 위안부 합의 이후 한일 양국은 피해자 지원과 명예 회복 및 상처 치유를 위한 '화해 치유 재단'을 설립했다. 하지만 재단은 설립 목표인 '화해‧치유'는커녕, 지난 7월 공식 출범부터 현재까지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논란만 키워왔다.
화해 치유 재단은 지난 5월 31일 재단 설립 준비위원회 1차 회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그런데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태현 준비위원장(현 재단 이사장)은 일본이 지급하기로 한 10억 엔의 성격에 대해 "치유금 명목으로 받은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배상금'이라고 주장했던 정부의 설명과 배치되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발언 이후 일본이 지급하는 금액이 배상금인지 치유금인지를 두고 벌어졌던 논란이 또다시 불거졌다. 이에 김태현 준비위원장은 다음날인 6월 1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정부에서도 배상금이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상 배상 조치로도 볼 수도 있다' 이렇게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재단이 공식 출범한 뒤, 김태현 이사장의 말은 또 다시 바뀌었다. 그는 지난 9월 26일 외교부 국정감사에 출석한 자리에서 10억 엔의 성격에 대해 "법적 성격의 명칭을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배상금적 성격을 띤 치유금"이라고 답했다.
일각에서는 일본의 10억 엔을 배상금으로 간주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송기호 국제통상위원장은 화해 치유 재단이 공익법인이든, 여성가족부의 허가 절차를 통해 설립되는 민법상 비영리법인이든 일본의 10억 엔이 배상금이 될 법적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 보면 이 금액은 배상금이기보다는 오히려 공적개발원조(ODA)의 '거출금'유형에 해당한다는 것이 송 변호사의 판단이다. 그는 "일본 예산에서 거출금과 배상금은 완전히 구별된다"면서 "일본 법에서 거출금은 손해 배상금이 아니라 대외 지원 거출금"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지난 8월 12일 한일 양국 외교장관이 전화통화를 통해 10억 엔의 지급을 논의했을 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은 "10억 엔을 속히 '거출'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또 화해 치유 재단의 정관에서도 10억 엔은 '거출'됐다고 명시돼있다. 이렇게 되면 일본의 10억 엔은 배상이 아닌, 개발도상국에 지원하는 일종의 '지원금' 형식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와 함께 재단이 일본의 10억 엔을 피해자 대신 수령하는 것이 기부금품법에 위반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기부금품법에는 반대급부 없이 취득하는 금전을 기부금품이라고 하는데, 재단이 외부에서 반대급부 없이 받은 돈이 여기에 적용된다.
이에 따르면 화해 치유 재단이 일본으로부터 받은 10억 엔은 기부금품에 해당된다. 그리고 해당법의 제5조는 국가와 공무원의 기부금품 모집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재단의 정관에는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여성가족부의 국장이 재단의 이사로 포함돼있다.
송기호 변호사는 "이런 상황에서 국가 공무원이 민간 재단에 일본이 10억 엔을 기부하는 것을 협의했다"면서 "이는 기부금품법에 위반되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재단의 설립과 10억 엔 수령, 이에 대한 집행 등 여러 측면에서 재단의 법적 정당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지만, 화해 치유 재단은 이러한 지적에 별다른 해명 없이 여전히 일본이 건넨 10억 엔의 집행에만 몰두했다.
'가만히 있지 않은' 피해자들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일본이 준 돈을 지급해 이 문제를 하루빨리 마무리 지으려는 정부와 재단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합의에 반대하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 생존자 12명은 지난 8월 30일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손해 배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지난 2011년 헌법재판소 판결을 박근혜 정부가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지난 12월 2일 열린 첫 재판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20부는 정부 측에 위안부 합의의 법률적 성격을 명확히 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함께 법원은 당사자 신문 등의 절차를 밟아나갈 계획이다.
일본 정부에 대한 소송도 진행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이상희 변호사는 28일 외교부 청사 앞에서 열린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무효를 위한 시민행동'에 참석해 위안부 생존 피해자 11명과 사망한 피해자 5명의 유족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한 2차 소송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민변은 "피해자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일본에 직접 책임을 묻고 배상청구권을 실현하기 위해 소송을 내기로 했다"며 "위안부 문제가 가지고 있는 인권침해의 중대성에 비추어 볼 때 우리 법원도 일본에 대한 재판권을 인정하고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위안부 피해자 지원단체를 비롯한 시민들도 위안부 합의의 부당함과 합의 폐기를 촉구했다. 합의 1년을 맞은 이날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열린 1263차 수요시위에 참석한 참가자들은 위안부 합의가 "잘못을 저지르고서 아니라고 우기며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박근혜식 농단'의 전형"이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범죄에 대한 인정과 사죄, 진상 규명과 교육은 계속되어야 한다"며 "'나비의 꿈'은 영원히 이어져야 하며, 우리의 행진은 계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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