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학사 비리 의혹이 일파만파다. 주인공은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씨의 딸 정유라(승마 특기생) 씨다. 정 씨를 둘러싼 의혹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사학 비리 의혹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어떻게 한 사립학교의 학생의 학사 문제가 박근혜 정권을 뒤흔들 수 있는 것일까?
학사 비리 의혹은 과거에 심심치 않게 등장해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게 박희태 전 법무부 장관 딸 편법 입학 파동이다. 김영삼 정부 임기 초에 박희태 당시 법무부 장관(후에 그는 한나라당 대표, 국회의장에까지 올랐으나 퇴임 후 돈 봉투 사건, 성희롱 사건 등으로 홍역을 치렀다)의 딸이 이화여대에 편법 입학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박 당시 장관이 낙마한 일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87년 민주화 이후 대거 드러난 동국대, 영남대, 세종대 등 유명 사학들의 부정 입학 파동이 있다. 당시 노태우 정부는 이를 대대적으로 수사하면서 전두환 정권과 선을 긋는 정치적 제스처로 활용했다. 특히 영남대 부정 입학 사건은 박근혜 대통령과 관계가 많다.
최태민의 손녀, 대학교 학사 비리 의혹에 빠져들다
지난 16일 <중앙일보>는 정 씨 입학 자체가 입시 규정 위반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 씨는 2014년 9월에 실시된 2015학년도 수시 전형에서 체육특기자로 지원, 그해 9월 20일 인천아시안게임 승마(마장마술 종합 단체전) 경기에서 딴 금메달도 인정받으면서 최종 합격했다.
그런데 당시 수시 모집 요강에는 2011년 9월 16일부터 2014년 9월 15일까지 개인전에서 입상한 실적만 평가 요소로 반영하게 되어 있었다. 정 씨가 금메달을 딴 것은 9월 20일, 심지어 개인전도 아닌 단체전이었다. 기준 미달이었던 셈이다.
정 씨 입학 후 학사 관리는 더욱 가관이다. 김혜숙 이화여대 교수협의회 공동회장은 17일 SBS 라디오 <박진호의 시사전망대>에 출연, "(정 씨 수강 과목 교수인) 이 선생님 과목에서 벌어진 일 같은 것은 정말 저희가 굉장히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공동회장은 정 씨가 들은 수업 학사 관리 규정에 "(성적 평가 관련) 강의계획서에 명시가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학생의 경우 전혀 이런 보고서 제출 내용이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다음, 출석 자체를 거의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정 씨는 높은 학점을 받았다. (☞관련기사 : 최순실 이대 방문 후, 딸 성적 F→C+→B+) 이를 비판하는 이화여대 한 재학생의 대자보도 화제다.
김 공동회장은 "이화여대가 비교적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이화여대, 그리고 제 주변의 교수님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학사 관리를 '너무 심하지 않나?' 할 정도로 상당히 엄격하게 관리해왔다"면서 정 씨 사례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이화여대 교수협의회는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정권 실세의 딸이어서 이같은 특별 대우를 받았다는 정황은 셀 수 없이 많이 드러나고 있다. 이화여대 학생들의 분노도 극에 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 씨가 과연 어떤 사람이길래, 대한민국 명문 사학의 학사 관리가 이처럼 짓뭉개졌을까?
28년 전, 최태민 아들이 연루된 영남대 사학비리 사건이 떠오른 이유
표면적으로 이화여대에서 벌어진 정 씨 관련 부정 의혹은,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연관이 없는 이야기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박 대통령의 과거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특히 최태민 씨 일가와 관련된 부분에서 그렇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가 들어선 1980년,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29세의 나이로 영남학원(영남대) 이사장에 취임한다. 박 대통령 취임 후 영남대는 "교주(校主)는 박정희"라는 내용의 정관을 포함한다. 이후 박 대통령은 영남대 이사로 1988년까지 11월까지 재직했다.
관심을 모으는 지점은 박 대통령이 영남대 이사직에서 물러난 계기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정권을 잡은 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듬해인 1988년 대대적인 사학 비리 수사를 진행한다. 대구지검 특수부는 1988년 11월 3일 영남대 전 총장 김기택 씨와 전 사무부처장 곽완석 씨 등을 조사한 후 영남대가 1987년에 8명, 1988년에 21명 등 학생 29명을 총 4억3000만 원의 기부금을 받고 부정입학 시킨 사실을 밝혀냈다.
당시 1988년 11월 3일 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영남대 교수들이 주축이 돼 꾸린 부정입학진상특위는 김 전 총장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부정입학을 종용했고, 곽 사무부처장이 부정입학을 박근혜 당시 이사에게 건의, 작업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들은 모두 박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했었다.
박 대통령은 당시 성명을 내고 "신입생 부정입학 문제 등 최근의 사태가 돌아가신 분(박정희 전 대통령)의 뜻을 빛내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학교 일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했다"며 물러났다. 그해 국정감사에서 이름이 거론되는 '모욕'도 당했다. 박 대통령 나이 37세였다. 박 대통령이 사회생활을 하며 가진 첫 '직장'인 사학재단에서 불명예 퇴진한 계기가 '학사입시 비리'였던 셈이다.
여기에서 공교로운 지점이 드러난다. <한겨레>가 이후 1993년 보도한 교육부의 사립대 부정 편입학 학생 학부모 명단을 보면 최태민 목사의 의붓아들 조순제 씨도 자녀를 부정입학시킨 인물로 등장한다. 조순제 씨는 최태민 처의 전 남편 아들로 알려져 있다.
조순제 씨 관련에서는 <허핑턴포스트>에 연재되고 있는 '정두언 회고록'의 일부를 참고할 수 있다.
"조순제는 최태민의 의붓아들로 최태민의 마지막 부인이 데려온 아들이다. 과거에 문공부장관 비서관도 지낸 조순제는 박희태, 최병렬과 동년배 지기라고 알려져 있다. 똑똑한 사람이었다. 최태민은 공식적으로 아들이 하나도 없었다. 다 딸이었다. 데리고 있는 아들이라고는 의붓아들 조순제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구국봉사단부터 시작해서 영남대, 육영재단까지 사실상 도맡아 한 사람이 조순제로 알려져 있다. 청문회장에서 강훈 변호사가 박근혜에게 물었다. "박근혜 후보는 조순제 씨를 아십니까?" 박근혜가 "모릅니다"라고 했다. TV를 보고 있던 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설마 박근혜가 조순제를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관련기사 : [정두언 회고록] 6. 최태민의 의붓아들 조순제 "이런 사람은 안 된다" 기자회견)
2016년 10월, 이제 최태민 씨의 손녀가 부정 입학 시비에 걸려들었다. 박 대통령으로써는 과거의 '악몽'이 떠오를 수도 있다. 최태민 씨 3대, 박 대통령 2대에 걸쳐 무슨 인연이 이리 질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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