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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천지 조선소, 누구의 위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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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무법천지 조선소, 누구의 위기인가?

[레고를 아시나요? ②] 법률가, 왜 조선소 하청노동자를 만나러 가는가

조선업이 위기라는 말이 몇 개월째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지난 4월 총선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부는 조선업 관련 각종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고, 대형 조선사(이른바 빅3)들은 인력 구조조정이 포함된 자구(?) 계획을 제출하고 있다. 중형 조선사들은 이미 상당수가 자율협약 상태에 있었는데, 일부는 기업회생절차 내지 파산절차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현재의 상황이 조선업의 위기 상황인지부터 시작하여 위기의 원인이 무엇인지, 이후의 상황은 어떨 것인지 등에 대하여 여러 논란이 있지만 논란의 여지없이 확실한 것이 하나가 있다. 바로 조선업 비정규직이 대규모로 구조조정 되고 이들이 조선업의 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업 비정규직의 구조와 연원

조선업의 기능직 인력은 크게 ①원청업체 직영 ②1차 사내하청업체의 상용직(본공) 및 기간제 ③물량팀(상시), 물량팀(돌관)로 구성된다. 이 중 '물량팀'은 2차 혹은 3차 사내하청 업체에 고용되었거나 그 소개로 1차 하청업체의 작업 장소에서 근무하게 된 노동자들로서 상대적으로 일정하게 업무를 부여받는 상시 물량팀이 있고, 단기간 업무만을 부여받은 돌관팀이 있다.

돌관팀이라는 이름은 '돌격하여 관철한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선업 고용구조에서 비정규직(위 ②,③)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2015년 말 기준 조선 산업에 고용된 기능인력 17만1593명 중 79.1%인 13만5785명이 비정규직이다. 이 비율은 조선업 위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해양플랜트 부분에서 더욱 높은데 해양플랜트의 기능 인력 90.8%가 비정규직이다.

조선업 비정규직이 조선 산업에 등장한 것은 오래 전부터이나 지금과 같이 대규모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로 보인다. 즉, 조선 산업 초기에도 비정규직이 일정 범위에서 존재하였으나 1970년대 말부터는 오히려 하청을 직영화하는 추세였는데 IMF를 계기로 전 사회적으로 소위 '외주화' 바람이 불면서 비정규직 규모가 급속도로 증가하였고 조선업에서도 비정규직 노동자층이 대규모로 발생하였다.

또한, 선박건조에 비하여 훨씬 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해양플랜트에 조선사들이 집중하면서 이러한 현상이 더욱 가속화되었다.

ⓒ정기훈

조선업 비정규직(특히, 물량팀)이 마주한 조선업 위기

위와 같은 경위로 조선업 기능직 인력의 절대 다수를 비정규직이 차지하게 되었는데, 소위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가장 먼저 그 칼날을 마주하게 되었다. 즉, ①아무런 보호장치 없이 도급계약 해지만으로 해고될 뿐 아니라 ②다양한 요인으로 임금 체불이 발생하고 있으나 현 제도상 별 도움이 되지 않고 ③해고되더라도 실업급여 등 고용보험법상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상황이 이러한데, 물량팀으로 불리는 2~3차 하청 노동자들의 경우 정확한 실태조사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실정이다. 조선업 비정규직이 소위 조선업 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는 것은 2015년 12월 말에서 2016년 6월 말까지 국내 10대 조선사의 기능직 인원 중 직영 기능직이 3만5808명에서 3만5258명으로 550명 감소하였으나, 비정규직 인원은 13만5785명에서 11만7830명으로 1만7955명이 감소한 것(즉, 32배 차이)으로 파악되는 점만 보더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법도 없고, 있어도 지켜지지 않는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조선업 비정규직(특히, 물량팀)은 조선업 위기를 온몸으로 겪고 있다. 원청(혹은 1차 하청)이 도급계약을 해지하면 물량팀 노동자는 아무런 방어 장치도 없이 고용을 상실할 수밖에 없다.

고용보험법상 고용유지지원금 제도가 있기는 하나, 사용자가 일부 부담(25%)하는 금원 혹은 절차상의 번거로움 등으로 하청업체들(특히 물량팀장)은 거의 이용하지 않고 있다. 조선업종 표준하도급 계약서상 재하도급에 대하여 일부나마 제한(절차와 방법상의 제한)하는 조항이 있기는 하나 큰 의미가 없는 내용들(표준계약서 사용, 과업 범위 특정 등)이며, 표준하도급 계약서 자체가 강제력이 없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

또한 원청(혹은 1차 하청) 업체가 기성금을 부당하게 삭감하면 물량팀 노동자들의 임금도 삭감될 수밖에 없다. 기성금 삭감 과정 대부분 하도급법 위반이나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여 결과를 받기에는 (해당 업체 사용자도 아닌) 물량팀 노동자들이 가진 자료가 너무 부족하다. 또한 기성금 자체는 예정대로 지급되었다고 하더라도 물량팀장이 기성금을 소진하여 물량팀 노동자의 임금이 체불되는 경우도 다반사(이러한 경우는 1차 업체의 경우도 많다)이다.

직접 고용한 사용자가 회생, 파산 절차 등에 들어가면 더욱 힘들어진다. 상위수급인의 귀책 사유가 있을 경우 물량팀 노동자가 체불임금을 상위수급인에게 청구할 여지는 있으나 그 채권 자체는 공익 채권으로 인정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회생절차에서 권리보호가 안되고, 우선변제권도 인정되지 않는다.

체당금 제도도 고용노동부가 행정해석을 변경(사업주 판단 기준을 여러 사업장의 근무기간 합산하는 등)하였으나 여전히 물량팀 노동자들과는 거리가 멀다. 최근 국회 통해서 확인된 바에 의하면 최근 3개월간 81명의 물량팀 노동자들이 체당금을 신청했을 뿐이다.

나아가 해고되더라도 실업급여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사용자라고 주장하는 물량팀장이 피보험자격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물량팀원은 근로계약서가 없는 경우도 많고 임금지급 사실 입증도 어려운 경우가 많아서 피보험자격 확인을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도 노동부가 "원청 회사의 협조를 받아" 하청노동자들의 사업장 출입 내역을 확인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나, 실제 그 결과는 알려진 바 없다.

해결을 위한 짧지 않은 길

조선업 비정규직(특히, 물량팀)은 간접고용의 일반적 문제점을 고스란히 포함하면서 몇 가지 점에서는 더욱 심각하다. 물량팀장과의 형식적 근로관계가 아니라 1차 하청(혹은 원청)과의 관계가 그 실체를 인정받아 묵시적 근로계약 혹은 근로자 파견으로 인정받으면 위와 같은 문제의 일정 부분은 해결될 수 있겠으나 이를 인정받으려면 지난한 법정 투쟁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최근 국회를 통해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고용노동부는 2014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조선업의 경우 재하도급(물량팀)에 따른 불법파견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수시감독을 추진하라는 공문을 시달했다.

이에 부산지방고용노동청은 2014년 11월부터 2015년 3월까지 대우조선해양 등 원청 5개사, 1차 하청업체 25개사, 2차 하청업체(물량팀장) 31개사 등 61개사에 대한 감독을 벌이고 31개 2차 하청업체 중 4군데를 불법파견, 1군데를 직업소개업(단, 직업안정법이 아닌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의율)으로 판단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고용노동부의 판단 기준 자체가 매우 협소해서 위 결과의 신빙성에 심각한 의문이 들지만, 고용노동부 기준에 의하더라도 16%(즉, 31개 중 5개)가 도급이 아니고 형사처벌 대상(파견법 위반, 근로기준법 위반)이라고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시정조치만 하고 아무 처벌없이 종료된 것이다. 이런 식의 대응으로 조선업 비정규직(특히, 물량팀) 문제가 해결될 수 없음은 명백하다.

법률가들이 조선소 하청 노동자들을 만나러 가는 이유

이상에서 본바와 같이 조선소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 조선업의 시작부터 내재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조선업 시황이 악화되면서 가장 먼저 피해당사자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뿌리가 깊은 만큼 그 해결책도 근본적인 것(간접 고용 철폐)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문제의 뿌리를 뽑기는커녕 썩은 가지를 치기에도 각종 법제도가 미비한 상태이다.

그래서 10월 24일부터 28일까지 변호사, 노무사들이 경남 거제를 찾아 조선소 노동자들을 만난다. 노동법률가 단체들의 법률상담을 통해 문제의 뿌리를 뽑을 해결책을 찾고자 한다.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는 못하더라도 현재의 어두컴컴한 상황에서 조그마한 해결방안이라도 찾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것이 법률가들이 조선소하청 노동자들을 만나러 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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