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흑인' 이어 '여성' 대통령 돼도 '가난한 미국'만 존재할 뿐…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흑인' 이어 '여성' 대통령 돼도 '가난한 미국'만 존재할 뿐…

[나라 밖 이야기] 미국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미국 대선의 성격

"전지구적인 패권국가이며, 지구를 수백 번 파괴할 수 있는 물리력을 가진 국가로서,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부문에서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데, 역사는 짧은 국가."

프랑스의 한 역사학자는 이러한 미국에서 인류의 미래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본다고 말했다.

오는 11월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후임자를 선출한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 중 누가 선출될 것인가는 미국 국민들의 운명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오히려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패권적 지위와 연관되는 지역의 국가 구성원들은 미국민들보다 더 엄중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가령 미국민들은 총기 사망의 위협은 느낄지언정, 자국 내에서 전쟁의 위협은 느끼지 않는다. 최근 상황만 보더라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등 중동 국가 구성원들은 일상화된 전쟁의 참화 속에서 생명을 잃거나 난민이 되어야 했다. 수백만 명을 넘어 수천만 명에 이르는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은 누구 탓으로 돌려야 할까? 사담 후세인이나 바사르 알 아사드 등의 자국 통치자들인가, 아니면 조지 부시 등 미국 통치자들인가? 사드 문제는 우리에게도 이 엄중한 질문과 만나게 한다.

이처럼 미국민들보다 특히 미국의 패권이 충돌하는 지역 사람들에게는 더 엄중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미국 대선이지만, 선출권은 미국민들만 갖고 있다.

▲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대선 후보. ⓒAP=연합뉴스

미국 대선 선거일이 다가오는 시점에 <르몽드>가 "미국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라는 주제로 특집을 마련한 데에는 이런 문제의식도 작용했을 것이다. <르몽드>는 미국 대선 캠페인을 통해 드러날 사안들 넘어 미국 사회에서 어떤 생각들이 토론되고 있는지 알고자, 여섯 명의 미국 지식인들에게 발언 기회를 주었다.

"경제 위기와 이라크 전쟁 실패로 각인된 미국은, 그들의 글로벌한 패권적 지위가 흔들리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미국은 인종적, 사회적 불평등을 극복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함께….

버락 오바마, 열광 뒤 실망

오바마 대통령이 8년 전 당선됐을 때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갖는 의미, 그리고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변화의 가능성이 그의 성공 스토리와 함께 전 세계의 언론과 출판계를 달구었던 때를 잠시 돌아보자.

당시 버락 오바마와 지금의 버락 오바마가 같은 사람인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말하면, 지나칠까? 열광과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클 수밖에 없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08년 유세 모습. ⓒgoogle.com

<르몽드> 특집의 첫 발언 기회를 가진 미국의 34살의 흑인 작가 토마스 채터턴 윌리엄스의 평가도 냉정했다.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처럼 나 또한 확신했다. 명석하고 정직한 흑인 후보가 대통령에 선출된다면 은밀한 방식으로 관철되는 인종 배제에 변화를 가져오거나 어쩌면 없앨 수도 있으리라고. 나는 2008년 11월만큼 내 나라가 자랑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그때 우리는 어두운 과거와 결별했다고 믿었다. (중략) 오바마의 8년 대통령 집권이 준 교훈의 하나는 진보가 고르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처럼 불평등이 심화되는 시기에 '부유한 미국'과 '가난한 미국'이라는 두 개의 미국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사회적 환경 속에 있는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흑인 미국'이 차이를 점점 더 벌리면서 존재한다. 백인과 흑인 사이의 차이는 줄어들고 있는데 말이다."

그는 오바마의 마지막 집권 해인 올해 7월 첫 주에만 18명의 미국(흑)인이 경찰에 의해 살해된 일은 신기록이라고 지적하며, 2016년 대선에 대한 평가 또한 차가웠다.

"2016년 대선이라는 끝없는 서커스가 인기 없는 두 후보, 하나는 리얼리티 텔레비전의 상스런 배우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낫긴 하지만) 권력의 회랑에 익숙하고 거기에 충분히 유착된 후보가 충돌하면서 그 한탄스러운 종막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나로선 가까운 장래에 진보의 새로운 상징이 이 나라를 뜨겁게 고취하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의 고립주의와 관련된 기고글에서 뉴욕대 교수이자 작가인 폴 버먼(Paul Berman)은 "트럼프는 미국을 고립시키려 한다. 관세 장벽을 세워 미국으로 하여금 세계무역상 중요 부분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무슬림들의 미국 입국을 불허하고, 특히 남쪽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세우려 한다"고 지적하며 "'장벽'이 인기를 얻는 것은 트럼프 지지자들이 영어 아닌 언어를 듣는 것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클린턴의 당선을 예상했다. 그렇다면 그녀는 미국의 고립주의에 일정 부분 양보할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해 "클린턴은 쉽게 굽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세계적 사건과 관련된 그녀의 정치적 성향은 1990년대, 즉 그녀가 '퍼스트레이디'일 때 이미 굳어졌다. 그리고 오바마의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여러 차례 오바마보다 더 강력한 정책을 선호했다"면서 미국의 고립주의보다는 개입주의 쪽에 무게를 두었다.

▲ 도널드 트럼프는 조직이 아닌 개인의 힘으로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됐다. 폴 버먼에 따르면, 그는 "영어 아닌 언어를 듣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AP=연합뉴스

▲ 힐러리 클린턴은 미국의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폴 버먼에 따르면, 그는 "오바마보다 더 강력한 정책을 선호"한다. ⓒAP=연합뉴스

<르몽드> 특집에 등장한 여섯 명의 미국 지식인 중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끈 사람은 비판적 좌파에 속하는 낸시 프레이저(Nancy Fraser)였다.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의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자본주의에 자주 보조물이 되는 페미니즘이 가져올 변화에 유보적인 생각을 하는 인물이다.

<르몽드>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당선 가능성이 높은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비판적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좀 길지만, 미국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높은 힐러리 클린턴이 취할 대외 정책과 재정 정책의 기조를 짐작하게 하는 그의 발언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나는 별로 열광적이지 않다. 원칙적으로 두 거대 정당 중 하나에서 여성이 처음으로 대선 후보가 나왔다는 점은 나를 기쁘게 한다. 나는 여성이 백악관의 주인이 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꼭 힐러리 클린턴이어야 하는 건 아니다. 과거 국무장관은 나를 불안케 한다. 나는 그녀가 대외 정책 부문에서 매파(hawks, 보수강경파)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어쩌면 그녀는 남자들만큼 강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려고 그런 입장을 취했는지 모르지만, 근본에 있어서 이유가 무엇이든 중요하지 않다. 버락 오바마에 비해 그녀는 리비아에서 군사력을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 잘못된 것인데, 그녀는 시리아에서 바사르 알 아사드와 이슬람 국가 조직의 두 전선에서 한꺼번에 싸울 수 있다고 믿고 있다.(중략)

특히 나는 그녀가 월스트리트와 유지하는 관계 때문에 혼란스럽다. 아무 것도 그녀가 재정 정책을 개혁하거나 그녀의 남편의 집권 기간과 바락 오바마의 집권 기간이 포함된 지난 30년 동안 유지된 정책기조를 되돌리기를 바란다는 점을 보여 주지 않는다. 그 결정들이 가져온 결과는 가난한 자의 부를 가장 부유한 자들에게 나눠 준 것이었다. 99퍼센트에게서 1퍼센트에게. 그러므로 힐러리 클린턴은 1퍼센트의 후보다.(중략)

불평등이 더욱 격심해지는 오늘날, 여성이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 싸우는 것은 평등의 동기에서 나온 게 아니다. 다만 소수만이 이 투쟁의 수혜자다."

문제는 자본주의

2008년 흑인에 이어 2016년 여성이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이른바 '정체성의 정치'의 승리라고도 할 만하지 않을까. '정체성 담론이 이윤을 보호한다'는 제목의 기고글에서 일리노이대학 교수 월터 벤 마이클즈(Walter Benn Michaels)는 정체성과 관련된 미국의 좌우 대립 토론 구도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보호되는지를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인종주의(그리고 일반적으로, 차별)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에 불평등의 논리(그리고 정당화)를 제공한다. 점점 더 많은 미국인들이 경제적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데, 우파는 문제가 멕시코인, 무슬림, 흑인들에 있지 자본주의에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면, 좌파는 문제가 반(反)멕시코 반무슬림, 반흑인 인종주의에 있지 자본주의에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실상 문제는 자본주의에 있다."

결국 특집에서 <르몽드>가 던진 "미국은 그들의 글로벌한 패권적 지위가 흔들리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미국은 인종적, 사회적 불평등을 극복할 것인가?"라는 두 개의 물음에 여섯 명의 미국 지식인의 응답은 부정적이다. 자주 등장한 '불평등의 심화'라는 말과 함께 힐러리 클린턴을 지칭하여 '매파'라는 단어가 나올 때 나의 뇌리에는 조건반사처럼 '사드'가 떠올랐다.

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장의 '나라 밖 이야기'는 <작은책>과 필자의 동의를 받아, 한 달에 한 번 <프레시안>에 소개됩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