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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48편, <사이언스> 16편…이 과학자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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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처> 48편, <사이언스> 16편…이 과학자는 누구?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초협력자>

"말러의 <3번 교향곡(Symphony No. 3)>은 40억 년에 걸친 지구 생명의 이야기이기도 한 협력의 궁극적인 발현을 이해하려는 나의 장정과 함께 울려 퍼졌다. 1893년에서 1896년 사이에 쓰인 이 교향곡은 말러의 가장 긴 작품으로 그 연주 시간은 거의 2시간에 이른다. 이 교향곡은 우주에 대한 범신론적 전망이자 거대한 음악 시이며 위대한 창조의 사다리를 하나씩 오르는 형식으로 구성된 자연에의 송가다. 이 교향곡에 대한 나의 애정은 1990년 초반 옥스퍼드에 머물던 초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 셀도니언 극장의 딱딱하고 불편한 의자들 위로 내 삶 전체가 펼쳐지고 있었다."

'좀 거창해 보일까?' 지난 20여 년 동안 "눈부시게 휘황찬란한" 인물들과 협력하며 그가 생물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힘이라 믿는 '협력'의 원리를 찾아 과학의 여러 다양한 영역을 탐험한 한 과학자가 자신의 지난 연구들을 되돌아보는 느낌이 이러하다면 어떨까? 우리네 방식으로 그 과학자의 논문과 저서가 (오늘 확인해 보니) 430여 편이 넘고, 그 가운데 <네이처> 48편, <사이언스> 16편이라면 좀 달리 보이겠는가?

마틴 노왁(Martin Nowak) 자신이 본인의 연구 주제와 가장 잘 맞는다는 구스타프 말러의 <3번 교향곡>을 틀고, 그의 자서전 격인 첫 대중서 <초협력자>(허준석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의 책장을 넘기며 오스트리아의 빈 대학교에서 시작하여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와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를 거쳐 하버드 대학교에 이르는 그의 연구 여정을 다시 따라가 본다.

마틴 노왁은 196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학생 시절 장래 희망은 의사였으나, 우연한 기회에 분자 생물학을 소개하는 책을 읽고는 1983년 빈 대학교의 생화학과에 진학한다. 그는 첫 대학 수업을 이렇게 기억한다. 그리고 일생의 중요한 운명에 마주한다.

"1983년 10월 나는 대학 첫 수업에서 '여자들'과 마주쳤다. 이전에 만났던 여자들보다 훨씬 많았고 고맙게도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약리학 분야에 여자 입학생 수가 많았던 덕분에, 600명 중 3분의 2가 여성이었고 이제 강의실에서 내 주위에 온통 여자들이 있었다. 남학교에만 다녔던 터라서 나는 천국에 온 것 같았다. 그 중 얼마 안 되는 화학과 학생들 속에 우르슐라(Ursula)가 있었는데, 그녀는 나처럼 대학의 혹독한 기초 수학을 따라잡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6년 후 우리는 결혼했다. 지금도 수학 문제를 푸는 능력 덕에 내가 간택된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곤 한다."

▲ <초협력자>(마틴 노왁·로저 하이필드 지음, 허준석 옮김,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익살스러운 저자의 아직은 풋풋했던 혈기 왕성하던 시절을 보는 듯하여 재미있다. 이어 그와 연구 여정을 함께 하게 될 "눈부시게 휘황찬란한" 인물들을 만나게 되는데, 면면이 대단한 사람들이다.

마틴 노왁은 대학 3학년 이론 화학 수업을 통해서 후에 준종 모델(quasispecies model)로 유명한 페테르 슈스터(Peter Shuster) 교수를 만나 그의 학생이 되어 졸업 연구를 하고 대학원에 진학한다. 그러던 중 수학에 빠져들게 된 계기는 바로 슈스터와 함께 한 알프스 연구 여행에서 빈 대학교 수학과의 카를 지그문트(Karl Sigmund) 교수를 만나 게임 이론의 '죄수의 딜레마' 문제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그의 연구 방향에 중요한 변화가 일어나 이후 빈 소재 수학 연구소에서 박사 학위를 하게 된다.

"알프스 오두막에서 죄수의 딜레마를 처음 접하자마자 나는 얼어붙는 듯했다. 사실 마침 그때 카를이 내 죄수가 되었다. 그는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빈까지 그를 태워 주기로 했다. 우리 아버지가 지금도 타고 다니시는 폴크스바겐 차를 타고 이튿날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이 딜레마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를을 내려 준 후에도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머지않아서 나는 빈 소재의 수학 연구소에서 그와 박사 논문을 준비하게 되었다. 이 연구소를 거친 내 선배들로는 위대한 물리학자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 논리 수학자 쿠르트 괴델(Kurt Gödel), 그리고 유전학의 아버지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이 있었다."

그가 학위를 한 수학 연구소와 괴델과 볼츠만이 머물렀을 그 동네 커피숍의 분위기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그 후 박사 학위가 끝나갈 무렵 카를의 제안으로 옥스퍼드 대학교의 로버트(밥) 메이(Robert May)에게 박사 후 연구원으로 지원하게 된다.

결혼을 막 치르고,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로 떠나는 날의 험한 날씨와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한다.

"이후 9년간 지속될 신혼여행을 위한 기차에 오른 것이 1989년이었다. 짐이 든 일곱 개의 가방과 두 대의 자전거를 짊어지고 말이다. 차고 바람이 많이 부는 날씨였다. 전함 같은 회색 하늘이 험상궂게 폭우를 퍼부었다. (…) 기차가 어둠 속으로 들어설 무렵 내 아내는 눈물을 흘렸다. 이튿날 운하를 왕복하는 페리가 우리를 내려놓자 처음 마주하는 영국이 눈에 들어왔다."

영국의 첫인상이 상상했던 모습이 아니어서 실망이 컸었다. 하지만 그는 곧 그곳을, 그리고 그곳의 학풍을 좋아하게 된다.

"사우스팍스 로드에 위치한 정나미 떨어지는 콘크리트 더미인 옥스퍼드 대학교 동물학과에 마련된 나의 새 연구실로 마침내 걸어 들어갔을 때, 현실은 나의 기대로부터 또 한 번 멀리 달아나 버렸다. 조류 및 다른 동물들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벽을 차지하고 있었고 단 하나의 방정식이나 그래프도 눈에 띄지 않았다. 내가 제대로 찾아온 걸까? 그랬다. 그리고 이내 나는 내가 여기 온 게 행운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곳에는 격식이란 게 별로 없었다. 오스트리아의 위계적인 학문 체계에서는 바쁜 교수님들을 하찮은 학생들이 감히 귀찮게 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이곳은 달랐다. 나는 위대한 윌리엄 해밀턴(William Hamilton)에서 리처드 사우스우드 경(Sir Richard Southwood),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폴 하비(Paul Harvey), 그리고 존 크렙스(John Krebs)에 이르는 석학들과 커피 한잔 혹은 오후 차를 마시며 격 없이 대화할 수 있었다. 이는 매우 흥분되는 일이었다."

그는 1997년에 옥스퍼드 대학교 동물학과의 수리 생물학 교수가 되었고, 케블 대학(Keble College)의 선임 연구원이었다. 이때 즈음 또 다시 그에게 새로운 변화가 찾아온다.

"옥스퍼드를 떠날 마음은 전혀 없었다. (…) 하지만 몇 달 뒤 나는 고등 연구원으로 와 달라는 놀라운 제안을 받게 되었다. 당시 원장인 필립 그리피스(Phillip Griffiths)가 이론 생물학을 주제로 마련된 고등 연구원 최초의 프로그램의 책임자로 나를 초빙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뉴욕의 자선가인 레온 레비(Leon Levy)가 후원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기회였다. 동료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밥은 연구원에서 제안한 내용을 꼼꼼하게 검토하더니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것보다 훨씬 더 좋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너무나 기뻐했고 고등 연구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자기라면 그렇게 했을 거라고 말했다. 존 메이너드 스미스는 가지 말라고 했다."

다른 곳에서 듣기 힘든 비밀스러운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다. 다음 대목에서는 애잔하기까지 하다.

"영국을 영원히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밥을 보았을 때, 밀려드는 향수와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그는 에드먼드 휘태커와 조지 네빌 왓슨이 저술한 응용 수학 책인 <현대 해석학 강의>를 건넸다. 그는 이 오래된 책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자신의 지도 교수 로버트 샤프로스에게서 물려받았다. (…) 밥은 책에 '로버트 샤프로스가 로버트 메이에게'라고 써 두었다. '샤프로스'라는 이름 옆에 밥은 '전자를 띤 보손의 초전도성을 최초로 관찰한 사람'이라고 적어 두었다. 바로 밑줄에 그는 '로버트 메이가 마틴 노왁에게'라고 덧붙였다. 우리 둘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쯤에서 '지칠 줄 모르는 협력자'인 카를과 밥에게 헌정하는 이 책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마틴 노왁 교수의 <초협력자>는 상호 배신이라는 죄수의 딜레마를 이겨내고 협력하게 되는 원리와 진화에서의 협력, 그리고 협력의 진화를 연구해 온 그의 20여 년 연구 여정에 대한 자서전이다. 책의 구성 순서대로 한 번 읽고, 중요한 등장인물의 이름과 시기를 기록하여 그 순서를 빈-옥스퍼드-프린스턴-하버드 순으로 맞춰가며 다시 읽으면 인물들에 대한 묘사가 풍부한 소설 같은 그의 자서전이 나온다. 서사적이고 구체적인 묘사가 강한 그의 문체가 마치 소설책을 읽는 느낌을 준다. 게임 이론, 진화와 협력에 관한 논문들에서나 마주하던 "눈부시게 휘황찬란한" 대가들과 저자의 인간적인 만남을 좀 엿볼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가치가 아닐까?

죄수의 딜레마와 이를 해결하는 다섯 가지 협력의 메커니즘 1) 반복에서 오는 직접 상호성, 2) 평판으로 나타나는 간접 상호성, 3) 공간과 연결 구조에 따른 협력의 창발, 4)다수준의 그룹 선택, 그리고 5) 혈연 선택을 기술한 여섯 개의 장의 설명은 구체적인 예를 상세히 설명하지 하지 않았고 좀 급한 듯 간결하게 기술한다. (어떤 이유인지 이 책에는 표는 한 개만 있고, 그림은 하나도 없다. 심지어 논문의 특정 그림을 지칭하면서도 싣지 않았다. 수학자의 책이나 수식도 없다.) 좀 더 친절한 책인 경북대학교 최정규 교수의 <이타적 인간의 출현>(뿌리와이파리 펴냄) 2009년 개정 증보판을 참고하여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언어를 통해 직접 상호성과 간접 상호성을 포함한 다섯 가지 협력의 원리를 온전히 활용할 수 있는 인간에게 '초협력자'라는 멋진 타이틀을 걸어주고, '미래의 세대'와도 협력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길 기대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크다.

연주 시간이 1시간 45분인 레너드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지휘,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말러의 <3번 교향곡> 연주가 몇 차례나 돌았을까? 부드러운 선율의 6악장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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