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족이 사는 법
2011년 어느 날 밤, 승용차에 탄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녀가 어머니 옆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소녀가 부르고 있는 노래는 1986년 발표된 들국화 2집 '내가 찾는 아이'다. 40, 50대는 되어야 알 만한 노래를 천진난만하게 부르고 있는 소녀의 아버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때문에 5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출소하는 윤기진이다. 평범한 듯 보이는 이들이지만, 감시와 탄압 때문에 함께 지낸 시간보다 떨어져 지낸 시간이 훨씬 더 많은 가족이라는 건 절대 범상치 않은 일이다.
영화 <불안한 외출>(김철민 감독, 2014)은 윤기진이 수원구치소에서 출소하는 2011년 초겨울부터 '통일토크콘서트'를 진행한 아내 황선의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 시기까지 약 4년의 시간을 담은 작품이다. 2011년 출소부터 다시 구속 수감되기까지 1년의 시간을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데, 1년의 시간이 4년으로 확장된 건 윤기진과 아내 황선에게 재판·항소·구속·출감이라는 시련의 시간이 지속되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을 목격하며 감독은 카메라를 내려놓기 어려웠을 것이다. <불안한 외출>은 뫼비우스 띠처럼 반복되는 그들의 불안한 삶의 주기를 떼어낸 기록이다.
윤기진은 1999년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하 한총련) 7기 의장출신이다. 당시만 해도 한총련은 굳건한 학생운동조직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단체 의장인 윤기진의 인상은 강렬할 수밖에 없었다. 2004년 연세대에서 한총련 주최의 통일대회가 열렸을 때 윤기진은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이하 범청학련) 의장의 자격으로 참여했다. 그의 목소리는 꽤 당차고 힘이 있었다.
7년이 지난 2011년 <불안한 외출>은 기억 저편에 있던 윤기진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담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은 윤기진이 처음으로 입을 떼는 순간만큼은 10년의 수배생활과 5년의 수감생활을 견뎌낸 신화적 인물, 종편에서 시도 때도 없이 거론하는 수많은 수식어들이 무색할 만큼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다. 당장에라도 힘차게 결의문을 외칠 것 같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불안에 떨고, 의심하고, 또다시 의심하면서 순간의 자유를 갈망하는 40대 남자 한 명의 목소리였다. 극명한 차이를 보이는 두 개의 목소리는 15년 동안 그가 견뎌온 시련을 조금이나마 실감할 수 있는 증거다.
10년의 수배와 5년의 수감을 견뎌온 윤기진의 삶도 파란만장하지만, 연인과 부부로 지내면서 학생운동과 통일운동을 함께 했던 동반자 황선의 인생에도 고통의 시간이 길다. 10년 동안 도망쳐 다니는 인생을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본인도 감독도 의도하진 않았지만 <불안한 외출>에서 아내 황선은 어딘가 아득한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눈빛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황선은 수배생활 중인 남편이 없는 공간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구명운동을 하고, 그 사이 태어난 딸아이를 혼자서 키운다. 묵묵하게 혼자 현실을 헤쳐나가면서 쫓겨 다니는 남편 윤기진을 기다린다. 어디에 있는지, 떨어진 거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을 견디며 그저 기다린다. 윤기진을 향한 기약 없는 기다림, 그것이 곧 황선에게서 머나먼 시선을 느끼게 된 까닭일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파괴한 한 가족의 일상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은 2004년 이들 부부의 결혼식 영상이다. 결혼식장 근처엔 윤기진 씨를 체포해 갈 경찰버스가 대기해 있고, 식장으로 향하는 하객들은 구호를 외친다. 식이 끝나자마자 경찰과 하객들은 수배자인 윤기진을 두고 치열한 추격전을 벌인다. 신혼여행을 떠나야 할 신랑 윤기진은 말끔히 차려입은 한복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안경을 쓴 뒤 부리나케 경찰들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겨우 경찰을 따돌린 후 지하철 한구석에서 거친 숨을 몰아붙이는 신랑의 모습, 어떤 결혼식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또 다른 장면은 영화 끝에 윤기진이 외출 준비를 하는 아침 풍경이다. 부엌에서는 윤기진의 어머니가 눈물범벅이 된 채 식사를 준비한다. 평온보다는 적막에 가까운 침묵의 순간이 등장하고 부부는 아이들에게 다녀온다는 인사를 한 후 집을 나선다. 단순한 외출이 되어야 할 장면은 잠시 후 울고 있는 황선의 모습을 통해 돌아올 수 없는 외출이 되었음이 드러난다.
"사실 오래전부터 윤기진 씨의 이야기를 영화화할 구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수배 중에는 윤기진 씨를 만날 수조차 없어서 촬영이 어려웠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금씩 촬영을 했다. 그런데 출소 이후에도 재판 중이기 때문에 외부활동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다양한 내용의 촬영이 쉽지 않았다."(2014년 10월 <오마이스타> ''종북' 부부 1위… 이 부부의 영화 같은 삶' 중)
감독의 말처럼 윤기진의 이야기는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다큐나 극영화로 만들기에 충분한, 시대의 탄압으로 망가진 개인의 인생살이지만 수배생활은 그를 기록하려는 계획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15년이라는 탄압의 세월 중에서 10년이 수배생활이고, 5년이 수감생활이었다. 그의 시간을 기록하기엔 쫓겨 다니는 현실이 쉽게 허락하지 않았기에 <불안한 외출>은 제목을 뒷받침해줄 실질적인 영상이 많지 않다. 그 빈자리에는 그의 가족이 겪어온 불안의 시간에 아득함으로 채워진다. 공백의 시간을 가까스로 채운 인터뷰들은 한편으로 <불안한 외출>이 본래 담고 싶었을 기록의 반증이기도 하다. 기록되지 않았기에 망각될 수 있는 한 가족의 고초와 불안은 영화 안의 공백에 가까스로 기대는 방식으로 체감할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불안한 외출의 끝은 언제일까
영화 <불안한 외출> 또한 주인공들의 삶과 비슷한 고초를 겪어왔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를 뜨겁게 달군 화제작 <다이빙벨>(이상호·안해룡 감독, 2014)과 함께 문제작으로 거론되며 '북한을 찬양하는 영화'라며 손가락질을 받아야 했다. 당시 온라인 매체 <뉴데일리>는 "사실과는 너무 다르게 왜곡됐음에도 불구하고 상영작으로 선정됐다"는 주장과 함께 "황선 씨의 평양 출산을 두고 북한은 이를 체제 선전용으로 활용했다"(2015년 1월 '부산국제연화제 독립 훼손한 곳은 영화제 집행부' 중)며 영화제의 상영작 선정기준에 문제로 삼기도 했다.
<불안한 외출>은 개봉부터 지금까지 난항을 겪고 있다. 영화제 상영 문제가 불거진 후 정식 개봉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2015년 12월 정식 등급분류를 받을 때까지 공동체 상영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영화진흥위원회는 정식 등급을 받지 않은 채 무리하게 상영한 것은 '영화 및 비디오물 진흥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며 고발하기도 했다. 그동안 수많은 한국 독립영화들이 제대로 개봉 절차를 밟지 못했어도 공동체 상영을 통해 관객들을 만나 왔는데, 평소에 없던 고발 조치를 감행했다는 것은 특정 영화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대두되고 있다.
감독은 <불안한 외출>을 통해 이들 부부에게 일상을 돌려주고 싶었지만, 이 가족들도 그리고 이들을 다룬 영화도 여전히 편협한 이데올로기 탄압 속에서 '평범한 외출'에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2016년을 살아가는 우리가 <불안한 외출>을 본다는 것은 시대의 목격자가 되는 중요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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