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빠진 독에 물붓기식 지원' 3년 만에 채권단이 '포기'를 선언한 STX조선해양이 처음부터 청산을 염두에 둔 구조 조정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일각에서 '금융계의 세월호 참사'에 비유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지난 25일 채권단이 STX조선의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고 선언하기 불과 한달 전인 4월 26일 금융위원회는 STX조선에 대해 "정상화 방안을 재수립하고 충실히 이행 중"이라고 발표했다. 주채권은행이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지난해 12월 "인력·설비 감축을 통해 중소형 조선사로 탈바꿈하면 최소 1년 간은 정상 운영할 수 있다"면서 채권단에 4000억 원의 추가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더니 포기 선언 이틀 만인 27일 오후 서둘러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달 사이에 STX조선에 대해 정상화 방안을 포기할 만큼 급박한 상황이 닥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금융위원회의 판단은 정치적으로 왜곡된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구조조정의 총괄부처인 금융위원회는 컨트롤타워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IMF 사태 이후 처음이라는 대대적인 구조조정 사태를 맞아 박근혜 정부는 구조조정에 따르는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컨트롤타워의 부재를 방치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조사 결과, 퇴선 명령으로 바다에 뛰어든 승객들의 인명 피해가 날 경우 누가 책임을 지느냐의 문제로 퇴선 명령의 '골든타임'을 놓쳐버린 '책임 회피'가 큰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국책은행들, 무책임한 세월호 선장 역할
STX조선이 지난 3년간 무려 6조 원을 들이며 피해만 키우다가 끝내 청산될 운명을 맞은 것도 닮은 꼴이다. 국책은행들은 STX조선의 침몰을 방치한 세월호 선장 역할을 했다.
STX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4조 원을 투입했다. 그리고 농협과 우리은행, KEB하나은행, 신한은행 등 민간은행들도 억지로 끌여들여 2조 원을 지원하게 만들었다. 우리·KEB하나·신한은 지난 1월 "회생 가능성이 크지 않다"면서 뒤늦게 채권단을 탈퇴했다.
이때도 산은은 채권단에 남은 수출입·농협은행과 함께 4000억 원을 끝내 추가 투입했다. 그리고서는 불과 4개월만에 손을 들었다. 지난 3년간 퍼부은 6조 원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채권단은 앞으로도 수주한 계약 불이행에 대한 보증 등으로 3조 원 정도의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추가로 돈을 떼이게 될지 모를 금액만 이렇게 많다.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올해 들어 자율협약에 들어간 현대상선, 한진해운을 비롯해 비슷한 경로를 밞게 될 대우조선해양 등에 발이 묶인 자금만 무려 20조 원에 달한다. 이런 국책은행들이 '자율협약'이라는 미명 하에 구조조정을 질질 끌면서 늘어나는 손실은 결국 국민의 혈세로 메워줘야 한다.
일각에서는 회계법인의 무책임도 지적한다. 하지만 한때 세계 8위의 조선사였던 성동조선의 사례를 보면, 회계법인은 어차피 하수인에 불과하다. 의뢰인이 특정한 결과를 원하면, 숫자를 맞춰줄 뿐인 곳이다.
지난 2011년 9월 성동조선의 주채권은행인 수출입은행이 성동조선에 자금 지원을 추진하자 국민은행은 채권단에서 탈퇴했다. 삼정KPMG의 실사보고서로 존속 가치가 2200억 원, 청산가치가 1조4700억 원인 기업을 어떻게든 지원하라는 것이 탈퇴 이유였다.
수출입은행이 국민은행을 다시 채권단에 끌어들이기 위해 내놓은 대책은 또다른 회계법인의 실사보고서였다. 이번에는 딜로이트안진이 성동조선의 존속가치를 1조9200억 원으로 대폭 올려 청산가치(1조3200억 원)를 크게 웃돌게 만든 실사보고서를 작성했다. 비결은 연간 수주 물량에 대한 전망을 부풀린 것이었다. 삼정KPMG는 연간 수주 물량을 31척으로 잡은 반면, 딜트로이트안진은 48척으로 잡았다. 4대강 사업 등 정부가 국책사업을 강행하고자 할 때 내놓은 사업성 평가라는 것도 이렇게 전망치를 의뢰인이 원하는 결과에 맞춰 만들어지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국민은행이 끝내 채권단 복귀를 거부해도 수출입은행은 그해 12월 7300억 원을 성동조선에 지원했다. 이후 채권단은 2013년 1조6300억 원의 출자전환, 지난해엔 7200억 원의 자금 추가 지원을 결정하자 지난해 10월 우리은행마저 채권단에서 빠져 나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은 "보수적으로 봐도 2019년엔 성동조선이 흑자로 돌아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동조선은 지난해 11월 이후 한 척도 수주하지 못하고 이제 STX조선처럼 법정관리가 유력해지고 있다.
STX조선을 지원할 근거로 산업은행이 제시한 실사보고서도 딜트로이트안진이 작성한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감사도 안진의 작품이다. 이쯤되면 미국 기업 사상 최대의 파산 사건을 일으킨 엔론의 부실회계의 주역 아더앤더슨이 세계 5대 회계법인에서 하루아침에 파산한 것처럼, 딜트로이트안진도 엄중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국책은행들과 금융위, 그리고 배후의 무책임한 정치권력들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안진도 억울할 것이다.
1년만에 부채비율이 6000%나 급증한 대우조선해양에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4조 원이 넘는 자금을 지원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제2의 STX조선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예고되고 있는 상황이다. 대우조선이 침몰할 때까지도 미스터리한 지원은 계속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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