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4.13 총선은 보수 여당의 '종북 몰이'가 통하지 않은 선거였다. 왜? 불행하게도 야권이 먼저 '항복'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북한 궤멸론'을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일찌감치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라고 자신의 정책 노선을 말한 바 있다.
선거 전략으로서 '안보의 보수화'는 여당의 '색깔론'을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했을지 모른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오로지 견제와 제재밖에는 없다'며 남북한의 경제협력 사업인 개성공단마저 중단시킨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을 과반 의석을 차지한 야당들이 지켜만 봐도 되는 것일까? 북한에는 '채찍'만 휘두르며 한반도 내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논의 등을 통해 중국을 몰아세우는 미국 일변도의 박근혜 외교 정책은 자칫 한반도가 또다시 '전장'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낳고 있다.
이런데도 야당은 '종북 몰이'가 무서워 고개 숙이고 있어도 되는 걸까? 그런 점에서 20대 국회 당선자 중 더불어민주당 박정(파주을) 당선자를 만났다. '박정 어학원'을 설립했던 그는 중국에서 역사학(국제관계학 전공)을 공부하면서 '중국통'이 됐다. 군사도시인 파주에서 새누리당 사무총장이자 군인 출신인 황진하 의원을 꺾은 것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박 당선자는 "더민주가 2017년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남북문제에 대한 현 정권의 과오(過誤)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며 야당이 현재와 달리 더 책임 있는 자세로 정부의 외교 정책에 개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도 '여소야대'의 선거 결과를 주목하고 있을 것"이라면서 "그에 따라 야당 대표의 위상도 달라질 것이다. 대중, 또는 대북 관계에 있어서 중국과의 공조를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4월 27일 전홍기혜 편집국장이 진행한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싸웠노라, 이겼노라
프레시안 : 3선의 집권여당 사무총장을 상대로, 승리를 예상했나?
박정 : 4월 13일 출구조사 결과, 2.6%포인트 우세로 나왔다. 중앙당에서도 예상 밖이었던지, 출구조사 결과에 함성이 터졌다고 한다. 개표 초기에 역전을 당하기도 했지만, 개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표 차이가 꾸준히 벌어졌다. 최종적으로는 6.78%포인트 차로 이겼다.(더민주 박정 후보는 47.10%의 지지를 받아 당선됐다. 새누리당 황진하 후보는 40.32%를 득표해 낙선했다.)
프레시안 : 눈을 맞으며 선거 운동을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전략으로 선거 운동을 했나.
박정 : 선거를 많이 치른 선배들이 유권자의 선택 기준에 대해 얘기해줬다. 첫 번째, 가까운 미래에 자신과 이익을 공유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한다. 두 번째, 얼굴을 보고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본 사람에 대한 감성적 교감을 중시한다. 세 번째는 정부에 대한 분노든, 개인에 대한 분노든 '심판하겠다'는 생각으로 투표한다. 그리고 네 번째가 이념이나 정책이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상대 후보가 새누리당 황진하 사무총장이었다. 공천 파동 등 중앙당 일로, 지역구에 자주 내려오지 못한 대신 TV나 신문 등 언론에 자주 노출됐다. 본인은 애가 탔을 것이다. 후보 자신이 지역을 돌봐야 하는데, 선거운동원들을 종용하는데도 한계가 있었을 테니까.
전략 면에서도 '군사도시' 파주가 아닌, '경제도시' 파주를 외쳤다. 황 사무총장 선거캠프에서는 KBS 드라마 <태양의 후예>를 본 떠 군복을 입고 군가를 부르며 유세를 벌였다. 하지만 파주시도 이제 42만 명의 거대 도시다. 경제 발전과 문화 부흥, 그리고 교육이 필요하다며 정면 돌파했다.
파주을 주요 거점 10개를 선정해 120일 동안 체감온도 영하 25도에서도 눈비를 맞으며 인사했다. 거점 지역 시민들과 적어도 12번씩 마주한 셈이다. 그렇게 계속 보니까, '또 왔네?'라며 손을 흔들며 인사하거나 자동차 클랙슨으로 호응해 주는 시민들이 차츰 늘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숨겨져 있던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가 표출됐다.
프레시안 : 4.13 총선 결과만 놓고 보면, 수도권에서 박근혜 정권과 집권여당에 대한 심판 바람이 불면서 더민주가 원내 제1당이 됐다. 하지만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당이 26.7%로, 더민주보다 1.2%p 높았다. 선거 평가를 한다면?
박정 : 국민들이 무관심한 차원을 넘어 정치를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 호남 홀대론에 대한 분노도 있었다. 시민들은 싸우지 않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원했다. 국민의당은 이 틈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럼에도 교차투표로, 더민주에게도 기회를 준 것은 국민의당 후보들이 약했기 때문이다. 국민들도 '이기는 선거'를 위한 판단을 한 것이다.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젊은 세대의 투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투표율 잠정치에 따르면, 지난 총선에 비해 20대 투표율은 4.4%p(45.0% → 49.4%), 30대 투표율은 7.7%p(41.8% → 49.5%) 올랐다. 그동안 내재되어 있던 분노가 선거 참여로 나타난 것이다.
프레시안 : 앞으로 어떤 의정 활동을 할 생각인가.
박정 : 선거운동을 시작하면서 '100만 파주시대', '통일경제특별시' 등 큰 슬로건을 내걸었다. 하지만 시민들은 수돗물 불평등 문제와 같은 일상부터 해결해 달라고 했다. 시민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이런 게 민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한 대로, 이런 문제부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갈 것이다. 유권자의 선택을 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20대 초선 의원 중 의정 활동 평가만큼은 1위를 하고 싶다.
"더민주, 수권정당이 되려면…"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은 대북정책에 있어 오로지 견제와 제재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박정 : 아버지 때부터 체득한 대북관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스스로 외교를 잘하고 있다고 하지만, 외교 문제의 핵심은 남북 관계 아닌가. 개성공단 폐쇄 이후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남북 경색에 분명히 책임져야 한다.
남북 간 긴장 완화를 통해 침체된 경제를 다시 살려야 한다. 또 중국이 동북아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그 어느 때보다 남북 협력이 요구되고 있다. 파주시는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의 역할이 더욱 기대되는 곳이다.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 재임 시절 남북 관계는 확실한 진전을 보였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 10년간 이뤄진 대북지원금 2조379억 원이 '핵 개발과 미사일로 돌아왔다'며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더민주가 2017년 수권정당이 되기 위해서는 남북문제에 대한 현 정권의 과오(過誤)를 분명히 가려야 한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의 핵 도발과 남북 경협을 계속 연결 짓고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문제는 남한의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박정 : 북한을 몰아가면서도 결국에는 원하는 바를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쥐도 궁지에 몰리면 문다고 하지 않나. 개성공단과 같은 경제적 공조(共助)는 이어가되, 북한이 바라는 체제 안정 문제에 대해서는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도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경원선을 복원해 남한의 철원과 북한의 평강, 중국의 나진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 철도까지 연결하자는 구상이다.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육상 실크로드(일대)와 동남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일로)를 뜻하는 말)에 국가의 흥망성쇠가 달렸다고 생각한다.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통해 개발 자금을 모으는 것도 이를 위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고 서비스산업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AIIB 파트너로 '일대일로' 사업에 참여해 북한과의 경협을 이끌어내야 한다. '중국과 함께 경제 협력을 모색하자'는 제안만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생기는 것 아닌가.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우회적 방법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가 북한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외교적인 시각이 굉장히 협소(狹小)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은 남한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나라가 아니다. 될 수 있는 한 남한에 유리하게 활용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 입장에서 보면, 남북 문제에 억지로 끌려와 북핵 제재를 위한 무조건 동참을 강요받고 있다. 중국을 외교적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박정 : 중국은 공산당 창당 이래, 내정(內政)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외교 정책을 단 한 번도 바꾼 적이 없다. 중국은 14개 국가에 둘러싸인 나라로, 방어하기도 쉽지 않다. 현재 중국은 미국-일본-한국-필리핀-호주까지 열십(十)자로 포위당한 형국이다. 정치적·외교적·군사적으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다. 남은 것은 서쪽, 유럽이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일대일로'를 추진하는 것이다.
우리가 한 발 먼저 중국과 서쪽으로 간다면, 미국과도 대립하지 않은 채 관계를 개선할 수 있다. 지금 발생된 외교적 문제 대부분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면서 생긴 것이다. 경제적 문제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북한과 함께 AIIB에 동참하겠다는데, 정치권도 이를 막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프레시안 : 책 <4생결단 코리아>(책보세 펴냄)에서 파주에 제2의 개성공단을 만들자고 했다. 시민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박정 : 북핵 문제 등의 위협이 따르기 때문에 물론 반대하는 시민들도 있다. 하지만 설명하면 다들 이해한다. 개성공단은 남북한만의 문제였지만, 세계적 평화를 위한 국제평화공단이 파주에 들어서면 북한과의 문제 해결 또한 쉬워진다. 이는 대통령의 의지 문제다. 제재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는 북한 핵 포기 선언이 나오지 않는 한, 태도를 바꿀 것 같지 않다. 박근혜 정부 3년 반 동안 야당이 대북 정책과 관련해 지렛대 역할을 제대로 했다고 보기 어렵다. 야당의 변화, 기대해도 될까?
박정 : 나는 초선의원으로 당 내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시각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트리거'(trigger) 역할을 할 것이다. 지난해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임진각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때 문재인 대표와 참석자들과 함께 '한반도 신경제지도'(한국의 경제 영역을 북한과 대륙으로 확장하겠다는 것)를 구상했다.
중국도 '여소야대'의 선거 결과를 주목하고 있을 것이다. 그에 따라 야당 대표의 위상도 달라질 것이다. 대중, 또는 대북 관계에 있어서 중국과의 공조를 선제적으로 제시해야 한다. 싸우는 게 아닌, 평화시대를 열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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