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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인, 기회주의와 불의에 편승한 삶이…"

[다산 칼럼] 총선을 지나며

솔직히 말해 나는 이번 20대 국회의원 총선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관심도 갖지 않았다. '1여 다야'로 치러지는 선거는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이었고, 결과도 뻔해 보였다. 거기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시끄럽고 난삽하기만한 그들만의 잔치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 말기에 '깜'도 되지 않는 정권 핵심부 사람들의 저질스럽고 돌출적인 언행들이 난무하는 것을 놓고 "육갑, 꼴값 다 떤다"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그와 유사한 육갑, 꼴값이 다 연출되었다. 공천과 관련한 여, 야의 막장극이 그랬고, 정당 지도부란 사람들이 벌이는 각종 세레모니와 말의 성찬이 그랬다.

또 지극히 상식적인 얘기지만, 총선은 집권 세력에 대한 중간 평가 내지 심판의 성격이 강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이번 총선은 박근혜 정권 3년에 대한 총제적 심판의 장(場)이 되어야 했다. 그 3년 동안 소득의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었고, 청년 실업률은 사상 최악으로 높아졌으며, 전셋값은 폭등하고, 가계 부채는 급등했다. 그야말로 '헬조선'이 된 것이다. 민주주의와 역사 인식은 30년 전으로 후퇴하고 있으며, 남북 관계는 퇴행을 거듭했다. 그들의 말대로 경제와 안보의 이중 위기가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도 현 정권의 무능과 실정에 대한 본격적인 논쟁이나 토론은 이번 선거에서 이루어지지조차 않았다.

안철수와 김종인이 보여준 풍경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이번 총선 과정에서 나타난 몇 개의 풍경만은 차제에 짚고 넘어가고 싶다. 작년 12월 13일, 안철수의 새정치민주연합 탈당으로 총선 정국은 시작되었다. 그의 탈당에 뒤이은 연쇄 탈당은 한때, 어쩌면 한국의 정치 지형과 정치 행태를 바꾸어 낼 수 있는 모처럼의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적 전망을 갖게 했다. 그러나 그러한 기대는 결코 오래가지 않았다. 그때 그가 만약 자신을 더 낮추고 신망 있는 인사들을 삼고초려로 광범하게 영입, "나를 딛고 나를 도구로 삼아 함께 일어서자"고 했더라면 선거 판도는 그때부터 달라졌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연쇄 탈당으로 위기에 처한 더불어민주당이 당의 색깔을 바꿔달라고 김종인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면서 선거 정국은 또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색깔 바꾸기란 명분 아래 민주화의 가치가 폄훼되고 옥석을 구분하지 못하는 공천으로 유인태가 공천에서 탈락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이상한 감회에 사로잡혔다. 다행히 유인태는 내 언젠가 이러한 날이 올 줄 알면서도 일찍이 스스로 진퇴를 결정하지 못해 이런 수모를 겪는다면서 애써 장자지풍(長者之風)을 보여주었지만, 나는 '김종인이 유인태를 날린다'는 것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언젠가 노무현은 한국의 현대 정치사를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정의가 패배한 역사라고 말한 바 있는데, 드러난 행적만을 놓고 본다면 김종인이야말로 기회주의와 불의에 편승한 삶을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두환의 국보위에 참여하고 경제 민주화의 지적 소유권을 내세워 여, 야를 넘나들며 4선의 비례대표 국회의원을 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말해준다. 유인태는 1974년의 민청학련 사건의 주역으로 사형 선고까지 받은 바 있던 민주화의 산파였으며, 3선에 걸친 의정 활동의 과정에서도 특유의 친화력으로 여, 야로부터 신뢰를 받는 중견 정치인이었다. 그는 필생의 의정 활동 목표로 사형 폐지 입법을 주도, 추진해왔다.

나 역시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해서 그 모두가 지고지순했다고 보지는 않는다. 해방된 뒤에 독립운동하는 사람이 나왔듯이, 민주화가 된 이후에 민주화 투사가 된 사람도 있고, 이념 과잉에 괜히 목소리만 큰 삼류 운동권이나 똥오줌 못 가리는 막가파가 있다는 것도 잘 안다. 노무현 탄핵 사건 이후 '탄돌이'들이 양산되면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국회에 진출했던 것도 사실이다.

한 표 한 표가 만든 집합의 기적

더불어민주당의 비례대표 공천 파동 역시 일장의 드라마였다. 비례대표 2번으로 자신을 셀프 공천하면서 당내에서 소란이 벌어지자 "그것이 무엇이 문제냐. 나는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산 사람" 운운하며 당무를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받는 것처럼 비례대표 2번을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결국 국회의원 한 번 더 하는 것이 그의 진짜 속내요, 목표였구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우려와 곡절 끝에 치러진 20대 국회의원 총선 결과는 총선 혁명에 준하는 '집합의 기적'을 보여주었다. 국민의 채찍으로 내리친 새누리당에 대한 심판은 준엄했다. 당선 가능한 후보에게 표 몰아주기로 국민의 손으로 야권 단일화를 이루어냈으며, 교차 투표를 통해 국민의당으로 하여금 제3당의 위치에 확고하게 서게 했다. 이제 비로소 한국에서도 독일의 연정을 연상케 하는 정치 행태를 모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진보를 표방한 정의당에게도 국회에서의 활동 영역을 제공했다. 국민이 이번 선거를 통해 보여준 집단 이성의 메시지는 참으로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과연 정치는 삼류였지만, 우리의 유권자는 일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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