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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간의 역사>는 1000만 부 넘게 팔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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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간의 역사>는 1000만 부 넘게 팔렸나?

[월요일의 '과학 고전 50']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

<프레시안>이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APCTP), 사이언스북스와 함께 특별한 연중 기획을 시작합니다. 매주 월요일 아침 한 권의 '과학' 고전을 뽑아서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서평 대상으로 선정된 고전 50권은 "우리에게 맞춤한 우리 시대"의 과학 고전을 과학자, 과학 담당 기자, 과학 저술가, 도서평론가 등 여럿이 머리를 맞대고 2015년에 새롭게 선정한 것입니다. 이번 연재는 선정된 과학 고전 각각을 독자에게 소개하고 또 새롭게 읽어보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김상욱 부산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손승우 한양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이강영 경상대학교 교수(물리학자), 이권우 도서평론가, 이명현 박사(천문학자),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 강양구 기자 등이 돌아가면서 서평을 쓸 예정입니다.

오늘은 김상욱 교수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과학 고전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를 다시 읽어봅니다.

▲ <그림으로 보는 시간의 역사>(스티븐 호킹 지음, 김동광 옮김, 까치 펴냄). ⓒ까치
스티븐 호킹이 쓴 <시간의 역사>(김동광 옮김, 까치 펴냄)는 교양 과학 서적의 전설이다. 1988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세계적으로 1000만 부 이상 팔렸다고 한다. <코스모스>나 <이기적 유전자>보다 훨씬 많이 팔린 것이다. 판매량이라는 자본주의적 잣대만 놓고 보면 최고의 교양 과학 서적인 셈이다. <시간의 역사>가 국내에 번역되어 나온 것은 1990년 7월이고, 같은 해 9월 호킹이 한국을 방문한다. 그의 방문은 우리나라에 물리학 붐을 일으킨다.

믿거나 말거나, 당시는 물리학과가 의예과보다 들어가기 힘들었다. 그때 나는 물리학과 2학년 학생이었고, 긍지와 열정으로 가득하여 <시간의 역사>를 펴들었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너무 힘들었다.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게 태반이었다. 누가 이 책에 대해 물어보면 그냥 "어, 그래." 하며 재빨리 넘겨야했던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대체 사람들은 이 책을 보며 얼마나 이해한 걸까?

서평 때문에 25년 만에 다시 <시간의 역사>를 펴들었다. 이제는 술술 읽힌다. 그 동안 내가 놀지 않았다는 얘기인가? 물리학자의 기준으로 봐도 모호하거나 틀린 표현이 거의 없다. 정공법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많다. 더구나 내용의 밀도도 높다. 일반인에게는 무리로 보인다. 아마도 이 책은 사놓고 읽지 않는 책 50권에 포함되어 있으리라.

이 책이 유명해진 데에는 저자의 특이한 이력이 한 몫 했을 거다. 호킹은 뛰어난 이론물리학자이기 전에 장애를 뛰어 넘은 위대한 인간이다. 휠체어에 앉은 그의 모습은 이제 천재 과학자의 아이콘이 되었다. 여기에 필적할 자는 헝클어진 머리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뿐이다. 이런 가정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알지만, 호킹이 아니었다면 이만큼 성공하지 못했을 책이란 말이다. 하지만 책의 성공을 호킹의 이력에만 떠넘기지는 않으련다. 최고 수준의 과학자가 쓴 최고 수준의 책인 것은 분명하니까.

시간의 역사라. 기막힌 제목이다. 사실 시공간의 역사나 우주의 역사가 더 정확한 제목이다. 그랬으면 그렇게까지 책이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보라, 호킹의 이력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다니까! 이 책은 우주 전체를 다룬다. 우주를 바라보는, 시공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최첨단 물리 이론으로 무장하고 추적한다. 물리학자판 <코스모스>라 할 만하다. 도입부에서 저자는 물리 이론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론이란, 우주 또는 그 제한된 일부의 모형에 불과하며, 그 모형 속에 담겨 있는 양과 우리가 실제로 얻은 관측 결과를 관계 짓는 규칙들의 집합일 뿐이다."

이런 입장은 '물리 이론이 절대적 진리'라 생각하는 일반인의 생각과 사뭇 다르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이렇게 이야기하는 이유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시간의 역사>는 물리학자가 이런 주제를 다룰 때 선택할 전형적인 구조를 취하고 있다. 우선 인간이 시공간을 이해해온 역사를 간단히 소개한다. 그 이야기는 갈릴레오, 뉴턴, 칸트를 지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까지 이어진다. 사실 시공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상대성 이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상대성 이론 이전에 시공간은 불변의 무대였다. 그림의 프레임 같은 거란 말이다. 상대성 이론은 시공간 자체를 기술의 대상으로 삼는다. 물체가 움직이면 무대가 따라 변한다. 그림에 따라 모양이 변하는 프레임인 셈이다. 시공간을 기술하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은 여러 가지 흥미로운 예측을 내놓는다. 우주가 한 점에서 시작하여 팽창하고 있다든지, 강력한 중력으로 빛조차 빠져나올 수 없는 물체가 있다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제 우리는 이런 예측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공간 내에는 많은 '것'이 있다. 이런 모든 것의 근원이 무엇인지는 철학의 오랜 질문이었다. 이제 우리는 답을 안다. 옛 철학자들을 만나면 붙잡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아리스토텔레스! 이제 우리는 물질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요!" 물질의 근원 및 그들 사이의 상호 작용은 표준 모형으로 설명된다. 쿼크, 힉스보존 같은 것들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표준 모형에 나오는 입자들은 레고 블록과 같다. 우주의 모든 물질은 바로 이 레고 블록들의 적절한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물리 이론은 양자역학이다. <시간의 역사>에서 양자역학, 소립자에 대한 설명은 불과 두 장이다. 브라이언 그린이나 미치오 카쿠는 이 주제만으로 <시간의 역사>보다 긴 책을 썼지만,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암튼 호킹은 천재 아닌가! 이 부분 역시 물리학자의 기준으로 보아도 흠 잡을 곳 없으면서 간결하다. 이보다 더 짧게 쓰는 것은 쉽지 않을 거다. 반복되는 얘기지만 그래서 어렵다.

호킹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블랙홀에 대한 연구다. 이 책에서도 블랙홀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블랙홀에 털이 없다거나, 블랙홀도 증발한다는 얘기는 일반인에게 흥미롭다기보다 좀 황당하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블랙홀 자체도 SF 같은데 이것의 자세한 특성을 연구하고 있다니!

블랙홀은 수학적으로 빅뱅과 유사하다. 특이점이라 불리는 것이다. 블랙홀의 연구에서 우주의 기원에 대한 단서를 찾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원래 특이점은 수학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특이점이 전체의 기하학적 구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현대 세계의 모습이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특이점 하나에 의해 대부분 결정된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우리 우주가 지금 이런 구조를 갖는 것이 블랙홀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의 마지막에 가서야 제목에 가장 부합하는 내용이 나온다. 왜 시간은 과거에서 미래로만 흐를까? 호킹은 '시간의 화살' 세 종류에 대해 이야기한다. 열역학적 화살, 심리적 화살, 우주론적 화살. 심리적 시간의 화살은 우리가 사건을 기억하는 순서로 결정된다. 기억을 저장할 때 엔트로피가 증가하므로 열역학적 화살과 심리적 화살의 방향이 같다. 우리가 미래를 기억 못하는 이유다. 시간이 지금처럼 흐르기 위해서는 엔트로피가 극도로 작은 상태에서 출발했어야만 한다. 빅뱅이 아니었으면 시간이 흐르지 않을 거란 말이다. 사실 물리학자들이 엔트로피를 이해했을 때 빅뱅을 알 수도 있었을 거란 얘기다.

이 책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인류 원리'다.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우리가 우주를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보는 까닭은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인간과 같은 지적인 생명체는 엄청난 엔트로피를 생성한다. 자신의 높은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주변에 엔트로피를 높여야하기 때문이다. 즉, 강한 열역학적 화살, 빅뱅이 있어야했다는 말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많은 과학적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거야 말로 모든 것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거나 인간이 우주의 중심일지 모른다는 전근대적 우주관의 부활이 아닐까? 당대 최고 물리학자의 책 여러 곳에서 인류 원리적인 설명을 볼 수 있는 것이 흥미롭다.

끝으로, 이 책의 개정판이 나온다면 고쳐야 할 곳이 보인다.

"중력파는 너무 약해서 검출이 힘들기 때문에 아직도 관측되었다는 보고가 나오지 않고 있다."

작년(2015년) 미국의 라이고(LIGO)에서 수십 년간의 노력 끝에 드디어 중력파를 검출했다. 우리는 우주의 비밀에 다시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 돈도 안 되고, 이해도 안 되는 우주론. 우리는 왜 우주에 대해 알려고 할까? 호킹의 결론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만약 우리가 그 물음(우주가 왜 존재하는가?)의 답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최종적인 승리가 될 것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신의 마음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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