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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표현 가해자는 '당당' 피해자는 '죄송'…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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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표현 가해자는 '당당' 피해자는 '죄송'…왜?

[토론회] "일베,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

홍어, 김치년, 유족충, 엑윽…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 통용되는 용어들이다. '홍어'는 전라도 사람, '김치년'은 한국 여자, '유족충'은 세월호 유가족을 지칭하는 말이다. '엑윽'은 청각 장애인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일베를 중심으로 이러한 혐오 표현은 생산되고 변주되고 확산된다. 혐오 표현으로 망가지는 한국 사회. 그 실태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됐다.

'혐오 표현의 실태와 대책' 토론회가 28일 서울대학교 근대법학교육 백주년기념관에서 서울대 인권센터 주최로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객석이 턱없이 모자랄 정도로 많은 청중이 몰려들었다. 사회를 본 문경란 전 인권위원회 위원장은 "근 10년 동안 토론회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건 처음"이라며, "그만큼 혐오 문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다는 걸 알 수 있다"고 했다.

ⓒ일간베스트저장소

"격차 사회의 민낯... 혐오 표현 가해자는 '당당', 피해자는 '죄송'"

혐오 표현의 실태를 주제로 한 1부 발제자들은 '무엇이 혐오 표현을 부추기는가'에 주목했다. 이들은 "혐오 표현을 합리화할 수 있게 해주는 정치‧사회적 배경이 점점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 '혐오 표현'에 대한 정의가 필요하다. 어떤 대상을 향한 단순한 불쾌감이나 적대감만으로는 '혐오 표현'이 성립되지 않는다.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GP네트워크 팀장은 혐오 표현에 대해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장애 등의 차별 사유를 가진 집단이나 그 구성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표출하는 것"이며, "해당 집단을 사회적 발언과 권리로부터 배제시키는 영향을 초래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대표적인 집단은 여성, 호남 등 특정 지역민, 이주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이다.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대한민국에서 가해자는 늘 당당하며 억울하고, 피해자는 늘 염치없고 죄송하다". 차별 사회, 격차 사회 안에서 차별은 언제나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효율과 속도 경쟁에 의한 성과 중심의 사회는 차별을 불가피한 것으로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차별이 구조화된 체제에서, 국가는 통치의 필요에 따라 비판적 저항성이 거세된 인간상을 만들어낸다.

점점 심화되고 있는 '격차 사회'의 구조를 들여다 보지 않는 한, 혐오 표현의 문제를 바로 볼 수 없다는 게 바로 김 소장의 주장이다.

"장애인에 대한 혐오의 작동 과정에서 정작 장애를 둘러싼 권력 관계나 차별 구조는 은폐된 채 공리주의적 효용론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차별과 배제는 수평적 민-민 갈등으로 왜곡된다."


"인권 담론의 발전, 일베 '역차별 논리' 만들었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묵'으로 표현한 일베 유저. ⓒ일베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2000년대 이후 분명 인권 담론은 우리 사회에서 힘을 얻었다. 이전에는 인정되지 않던 여러 권리들도 제도적 논의 영역으로까지 들어왔다. 그럼에도 차별이 심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영 팀장은 오히려 이러한 사회적 배경이 '일베'의 논리를 구성했다고 분석했다.

"막 시작된 인권 논의와 사회적 소수자들의 활발한 투쟁, 그리고 이에 따른 변화는 이들이 소수자, 약자임을 내세워 특혜를 차지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치열한 경쟁 끝에 있는 자신들에 비해 노력도 하지 않고 책임질 거도 없으면서 권리에 무임승차한다는 혐오 논리를 구성, 그에 따라 차별의 논리를 정당화하며 나아가 역차별을 주장했다."

혐오 표현은 하나의 '방어 기제'인 셈이다. 나영 팀장은, "혐오를 뒤집어 보면, 정작 그들이 얼마나 불안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지 보인다"며 "평범하고 안정적으로 살고 싶다는 소망을 침해하고 자신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타자들을 향해 격한 혐오 표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혐오 표현을 법적으로 규제하는 경우 또한 이같은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소장은 "'가해 대 피해'의 구도를 '결핍 대 충족'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했다.

"인권 침해 상황은 가해와 피해를 막론하고 인권 역량의 결핍 사태가 초래한 것이므로, 이의 충족을 위한, 인권 침해에 대한 선제적 조치로서 법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가해자를 배제하지 않고 인권 증진에 주체로 초대해야 한다."

나영 팀장 또한 "불안은 일베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며 "현재의 혐오 표현에 대한 대응이 발화자나 가해 행위자 개인에 대한 법적 제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만 가선 안 된다"고 밝혔다. "일베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는 말처럼.


"혐오 표현 규제, 차별금지법 제정이 출발점"-"차별시정기구에서 예방적 규제"

이 때문에 '혐오 표현'을 법 규제 테두리에 끌어들이기는 매우 조심스럽다. 제재 범위와 수위를 고르는 것 또한 까다로운 문제다. 자칫하면 '표현의 자유' 영역을 침범할 수도 있다. 토론회에서 역시 규제 방법론을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이주영 서울대 인권센터 전문위원은 소수자 집단에 속하는 특정인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혐오 표현뿐 아니라, 불특정 청자가 소수자 집단에 대한 적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차별, 폭력까지 부추길 수 있는 행위, 이른바 '증오 선동' 또한 규제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자유권 규약 제 20조 제2항, 인종차별철폐협약 제4조 등은 증오 선동의 법적 규제를 국가의 의무로서 명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며 "증오 선동은 대상이 되는 소수자들의 존엄성을 훼손할 뿐 아니라,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고착시켜 이들의 평등권과 공적인 장에의 참여를 제약한다"고 했다.

이어 증오선동의 규제는 차별금지법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혐오 표현의 유형과 해악에 따라 형사적, 민사적, 행정적 규제 등 다각적인 규제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2014년 한 고등학생이 일베에 예고 후 '신은미 콘서트'에서 인화물질을 던졌다. ⓒ연합뉴스

홍성수 숙명여자대학교 교수는 차별금지법을 기본 틀로 하여 혐오 표현을 규제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동의하면서도, 형사범죄화 여부에는 회의적 입장을 밝혔다.


홍 교수는 "시행보다 효과가 중요한데, 혐오 표현에 대한 법 규제가 있는 나라에서도 사실상 '상징 입법화'돼 있는 실정"이라며 "법 집행의 일관성을 기하기 어려워 프랑스 등에서도 시범적 처벌에 그치는 수준이고, 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것만 하기 쉽다"고 했다.

만일 국가가 혐오 표현 단속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형사범죄화 이외에도 다른 방법이 있다고 했다. 홍 교수는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 결혼 찬성' 입장을 밝힌 점을 예로 들었다. 이러한 상징적인 조치가 사회적 압력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홍 교수는 규제 목적을 피해자들의 '카운터 스피치', 즉 '대항 표현' 지원에 둘 것을 주문했다. 또 다른 규제와 혼용되지 않고 일관된 규제를 하기 위해서라도 '차별시정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혐오표현의 실태와 대책' 토론회. ⓒ프레시안(서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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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어리

매일 어리버리, 좌충우돌 성장기를 쓰는 씩씩한 기자입니다. 간첩 조작 사건의 유우성, 일본군 ‘위안부’ 여성, 외주 업체 PD, 소방 공무원, 세월호 유가족 등 다양한 취재원들과의 만남 속에서 저는 오늘도 좋은 기자, 좋은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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