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장관은 30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후임 통전부장이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직접 보고하고 비준을 받았던 김양건 통전부장처럼 일을 처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내다봤다.
정 전 장관은 "후임 통전부장은 김양건과 달리 보고 과정에서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 예를 들어 김양건 정도의 측근은 현지지도할 때 김정은에게 대면으로 보고하고 이야기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후임 통전부장은 국방위원회 서기실을 통해 문서로 보고 하고 이후 특별한 사안이 있으면 대면 보고를 하게 될 것"이라며 사안 처리에 있어 속도감을 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김양건은 김정은과도 가까웠다. 그렇기 때문에 남북관계에 있어서 일정 부분 건의를 할 수도 있고, 재가를 받아서 일을 한 뒤에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무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임 통전부장은 다르다. 몸을 사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후임 통전부장이 김양건 통전부장만큼 적극적으로 남북관계 사안을 다루기 힘들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후임 통전부장은 책임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양건보다 운신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면서 "앞으로 방어적이고 수세적인, 보수적인 입장에서 남북관계 사안을 다룰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한편 정 전 장관은 김양건 통전부장의 후임으로는 맹경일 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 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 유력할 것으로 내다봤다. 맹경일 부위원장은 지난 8월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의 평양 방문 시 공항 영접 등 이 이사장의 일정 전반을 수행한 바 있다.
김양건, 권력 암투로 사망?
북한은 김양건 통전부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권력 암투 과정에서 사고사로 위장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북한대학원대학교 양무진 교수는 이날 YTN에 출연해 "2002년경 김용순 비서가 부인과 같이 행사를 마치고 가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사망한 사례가 있다"며 "당시 여러 징후를 살펴보면 아마 남북관계를 갑작스럽게 개선한 데 대해서 군부의 견제세력에 의해 위장 교통사고가 아니었냐는 분석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당시 측근들을 데리고 늦게까지 술을 마시곤 했다. 그 때 김정일의 이른바 '파티 문화' 때문에 음주운전을 하게 됐고, 새벽에 귀가하는 도중에 사고가 났을 가능성이 제기됐다"면서 "김양건도 이와 비슷한 사고가 아닌가 싶다"고 추정했다.
그는 "<조선중앙통신>에서 사망 시간을 새벽 6시 15분이라고 밝혔는데, 사고가 났다면 그보다 전에 일어났을 것"이라며 "그 사람이 무슨일로 그 시간에 움직였겠나. 김용순과 비슷한 유형의 사고였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측했다.
김양건의 품성이 신중하고 차분하다는 것도 권력 암투와는 다소 거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진단도 나왔다. 정 전 장관은 "2009년 김대중 대통령 서거 당시 비행장에서 김양건을 영접하고 북한 조문단의 숙소에서 김양건과 이야기를 나눴다"면서 당시 일화를 소개했다.
그는 "김양건이 내 손을 붙잡더니 천장을 한번 보더라고. 도청 장치가 있는지 확인했던 거지. 그런 부분으로는 전문가니까"라며 "도청장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구석으로 끌고 가더니 나지막한 소리로 이번에 큰 결심하고 왔다고 하더라.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가겠다는 의사 표시였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은 "김양건은 이번에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서 남북관계가 잘 풀리지 않으면 그다음에는 자기들도 내부에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이후 상황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면서 "길게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신중한 성격으로 보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전체적으로 김양건은 거드림 피고 내세우고 그런 성격은 아닌 것 같았다"라며 "발언 자체도 신중하고 표정관리도 상당히 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권력자들로부터 신임을 받았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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