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롯데 그룹 회장이 오는 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다. 10대 재벌 총수 가운데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하는 최초 사례다. 이날 국정감사는 텔레비전 생중계까지 예정돼 있다.
신 회장은 지난 2012년에도 정무위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채택됐었다. 하지만 당시 신 회장은 출석하지 않았고,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롯데 그룹 측은 신 회장이 이번 국감에는 반드시 출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불거진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여론 악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론의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17일 국정감사에는 신 회장의 대표적인 가신으로 분류되는 황각규 롯데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도 함께 출석한다.
낮은 지분 비율로 편법 지배, 한국 재벌의 전형
이번 국감에서 최대 관심사는 형제 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드러난 후진적인 지배구조 문제다. 한국 재벌의 폐해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전형이라는 점에서, 개혁 성향 의원들의 집중적인 추궁이 예상된다. 한국 롯데 그룹은 재계 서열 5위, 93조 원대 자산 규모다.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활발한 인수합병(M&A)을 통해 계열사 수를 81개로 늘렸다.
하지만 경영 불투명성이 심각한 수준이다. 올해 4월 기준으로, 순환 출자를 보유한 기업 집단은 11개다. 순환 출자 고리 수는 모두 459개다. 그 중 대부분이 롯데 그룹 몫이었다. 편법 지배로 악명이 높았던 삼성 그룹조차 현재 보유한 순환 출자 고리는 10개에 불과하다. 이는 낮은 총수 지분 비율과 맞물린 문제다. 낮은 지분 비율로 그룹을 지배하려니, 온갖 편법이 동원됐던 것. 총수 일가 지분을 모두 합쳐도 2.41%에 불과하다. 법적 정당성이 약한 대신, 봉건적 권위는 강했다. 중요한 의사결정이 모두 신격호 총괄회장의 독단으로 이뤄져 왔다.
한국 재벌의 후진적 행태에 대한 '본보기'라는 점에서, '재벌 개혁' 요구를 뒷받침하는 동력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롯데 그룹 측도 나름의 대비는 했다. 롯데 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최근 꾸렸다. 한국 롯데 그룹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 상장을 위한 준비도 진행 중이다. 호텔롯데 기업공개(IPO)를 위해 지난 11일 KDB대우증권과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증권, 메릴린치인터내셔널 등 3곳을 대표 주관사로 선정했다.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골드만삭스증권, 노무라금융투자 등도 공동 주관사로 기업공개에 참여할 예정이다. 416개에 달하던 순환 출자 고리를 해소하려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한국 국적자라면서 병역은 회피
또 다른 관심사는 이른바 국적 논란이다. 롯데 그룹 지배 구조 정점에 일본 자본이 있다는 게 최근 확인됐다. 롯데 그룹 창업자인 신격호 총괄회장의 장남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아예 한국어를 못한다.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한 신동빈 회장 역시 한국어가 몹시 서툴다.
신격호 총괄회장 가문은 일본 우익 진영 및 한국의 군사독재 세력과 깊은 친분을 유지했다. 이를 바탕으로 기업을 키웠다. 정경유착의 대표 사례다. 이런 사실은 새롭지 않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었다. 이번에 널리 알려지면서, 롯데 그룹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됐다.
신동빈 회장은 줄곧 한국 국적을 유지해 왔다고 밝혔었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지난 1996년 6월 1일부터 같은 해 8월 6일까지 한국 국적자가 아니었던 것. 이에 대해 롯데 그룹 측은 행정상 문제로 인한 일시적인 국적 상실이었다고 해명했다. 고의로 국적을 포기한 건 아니라는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한국 국적자로서 져야 할 의무를 제대로 이행했느냐, 라는 점이다. 병역 문제가 대표적이다. 신동주, 신동빈 형제는 모두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
롯데 면세점 특허, 연장해야 하나
롯데 그룹 경영 현안도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대표적인 게 면세점 사업이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매출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면세점 사업은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곤 했다. 이런 면세점 시장에서 1위 사업자가 바로 롯데다. 지난해 롯데 면세점 매출은 3조9494억 원으로 시장점유율이 50.69%에 이르렀다. 한국 면세점 시장의 절반 이상이 롯데 몫이었다.
그런데 롯데면세점 소공점(12월22일)과 월드타워점(12월31일)이 올해 말에 특허가 만료된다. 특히 롯데면세점 소공점은 연매출이 2조 원에 달한다. 전국 8개 롯데면세점 매장 가운데 1위다. 특허 연장 여부는 관세청 특허심사위원회가 정한다. 급격히 확산된 '반(反)롯데 정서'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면세점 사업에서 기존 사업자가 바뀐 사례는 아직 없다. 그러나 롯데가 그간 누려온 특혜에 대한 비판 여론에 힘이 실리면, 상황이 바뀔 수 있다. 실제로 그렇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기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롯데그룹 소속 계열사 81개 중 28개 기업이 외국인 투자기업이었다. 세금 감면 등 외국인투자촉진법에 따른 다양한 혜택을 누려왔다. 이는 법에 따른 혜택인데, 법 바깥에서 누린 혜택이 더 크다. 공군의 목숨을 건 반발을 무릅쓰고, 제2롯데월드 공사를 강행한 과정은 특혜로 점철돼 있다. 특혜가 이미 넘치는데, 굳이 면세점 특허를 더 얹어줄 이유가 있느냐는 말이 나올 수 있다.
백화점식 갑질 행태, 한국 사회와 상생 의지 있나
따지고 보면, 기업의 국적을 따지는 건 부질없다. 한국에 진출한 외국계 기업 가운데 모범적인 경영을 하는 곳이 많다. 젊은이들이 외국계 기업 취업을 선호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롯데가 설령 일본 기업이라 해도, 한국 사회와 상생하는 경영을 한다면, 굳이 비난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서 문제다.
이른바 대기업의 '갑질' 문제가 쟁점이 됐던 지난 2013년, 가장 많은 횡포 사례가 접수된 기업이 롯데였다. 참여연대는 지난 8월 논평에서 롯데 그룹의 경영 행태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백화점과 쇼핑센터 입점 업체와 납품 업체에 대한 갈취, 비정규직 노동자 착취, 독점적 지위에 있는 롯데시네마 사업부의 불공정 행위 등 말 그대로 백화점식 갑질이었다."
한편, 한국 롯데 그룹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는 지난 10일 신동빈 회장을 대표이사로 추가 선임했다고 15일 공시했다. 이와 함께 신동주 전 부회장이 사내이사에서 10일 해임됐으며 11일 등기됐다는 내용도 공시됐다. 형제 간 경영권 다툼에서 승기를 잡은 신동빈 회장이 '굳히기' 단계에 들어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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