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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미국을 버리고 중국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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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미국을 버리고 중국을 취한다!

[유라시아 견문] SCO : 천하의 지정학

이란 : Look East

캄보디아 견문에 앞서 이란부터 짚는다. 원체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핵 협상이 타결되었다. 녹록치는 않았다. 예정되었던 6월을 넘겨 지루한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몇 차례 합의 무산의 위기도 넘겼다. 앞으로도 합의 이행 과정에서 갈등과 마찰이 빚어질 소지는 있다. 그럼에도 '역사적'이라는 수식어가 조금도 부족해 보이지 않는다.

짧게는 12년 서방의 경제 봉쇄가 일단락되었고, 길게는 1979년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 이래 적대적 관계를 청산할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새 천년 '그레이트 게임'의 향방을 가늠해볼 수 있는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이 각별하다. 유라시아 대통합의 마지막 단추가 채워진 것이다. 이란의 '정상 국가화'야말로 유라시아 대동단결의 화룡점정이다. 새로운 세계 체제에 한발 짝 더 다가섰다.

서방의 경제 봉쇄가 해제됨에 따라 이란은 점진적으로 중동의 대국이라는 위상을 회복해 갈 것이다. 벌써 8000만 내수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다국적 기업들이 여럿이다. 더 많은 투자, 더 많은 교역으로 이란 붐이 예상된다. 특히 이란의 지리-문명적 위치가 백미이다. 유라시아의 한 복판에 자리한다.

이미 다양한 유라시아 프로젝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중국의 신 실크로드, 러시아의 유라시아 경제 연합, 브릭스(BRICs) 개발 은행, SCO(상하이협력기구), 아시아 인프라 은행 등 가지가지다. 핵심은 이 모든 프로젝트들이 동일한 관심과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라시아 전역에 걸친 교류와 통합의 완성이다.

이 신유라시아 프로젝트에서 이란은 허브가 될 가능성이 크다. 모든 길(교통망, 통신망, 에너지 망 등)이 이란을 지나고 통과하기 때문이다. 20세기형 분리-통치에서 21세기형 통합-공치(共治)로 가는 길목에 이란이 자리한다. 전략적 요충지가 아닐 수 없다.

서방의 제재가 해제된다는 것이 곧 이란과 서방의 관계가 한층 밀접해진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이란은 더 더욱 동방과 긴밀해질 것이다. 인도의 'LOOK EAST' 정책이 이란으로 옮겨가는 꼴이다. 빈에서 핵 협상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도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기어코 짬을 내어서 러시아의 우파(Ufa)에 다녀왔음을 크게 주목해야 할 것이다.

우파에서는 브릭스 정상 회의와 SCO 정상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이란은 브릭스의 일원도 아니고, SCO 또한 정식 회원국이 되려면 최종 승인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파에 친히 찾아감으로써 향후 이란 외교의 축이 '동방 정책(Pivot to Asia)'에 있을 것임을 확실하게 각인시키고 돌아온 것이다.

당장은 파키스탄과의 파이프라인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슬라바마드(파키스탄 수도)는 이란의 핵 협상 타결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파키스탄 또한 이란 핵 문제의 해결을 오래 기다려왔다. 중국과의 경제 회랑을 이란까지 연결하는 '一帶(일대)'와 '一路(일로)'의 가교 역할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파키스탄은 과다르 항을 이란의 국경까지 연결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 거리는 불과 80킬로미터 남짓이다. 과다르 항이 왕년의 중화제국과 페르시아제국을 잇는 유라시아의 '신경 중추'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럴수록 파키스탄 또한 이란과 중국, 이슬람 세계와 중화 세계를 연결하는 관문 국가(Gateway State)가 되어간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래 반서구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반서구 자체가 서구에 결박되어 있는 20세기형 탈식민주의의 모순과 한계를 노정한다. 그래서 점차 서구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고 있는 이란이 반갑기 그지없다. 반서구적/반근대적 이슬람에서 '이슬람적 근대화'로의 반전을 기대케 되는 것이다. 그럴수록 이란은 점점 더 유라시아의 일원이 되어갈 것이다. 그럼으로써 동(공산주의/사회주의)도 서(자본주의/자유주의)도 대안이 아니라던 호메이니의 이슬람 혁명의 예지에 더욱 가까워진다. 역사의 역설이고, 奸智(간지)이다.

이슬람 세계는 내년(2016년)에 견문할 계획이다. 짐작컨대 이란의 지리-문명적 잠재력도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표출될 것이다. 이르면 내년, 늦어도 후년이면 SCO의 정식 회원국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 천년 이란에 대해서는 현장에서 더욱 소상하게 짚을 것을 기약한다. 이번에는 SCO부터 정리해두기로 한다.

진화하는 SCO

올해 SCO 정상 회의에서는 획기적인 결정이 있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동시 가입을 승인한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 또한 남아시아의 '분단 국가'이다. 1947년 대영제국에서 독립하면서 두 국가로 갈라섰다. 간디의 읍소에도 불구하고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반목으로 끝내 등을 진 것이다. 이후에도 줄곧 앙숙이었다. 헌데 SCO는 양국이 화해 과정에 진입해야 동시 가입을 인정하겠다는 방침을 견지해왔다. 양국이 옵서버 자격의 준회원이 된 것이 2005년이었으니, 10년 만의 결실이다.

변화의 계기는 인도였다. 지난해 모디 정권이 출범했다. 힌두 민족주의자로서 모디는 인도 문명의 재건을 표방하는 독자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동방 문명의 중흥이라는 대의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에도 밀접하게 다가서고 있다. 올해 5월 중국 국빈 방문이 상징적이다. 대당제국의 수도인 시안부터 방문하여 시진핑과 손을 잡는 기지와 총기를 선보였다. SCO의 정식 회원 승격도 작년 9월에 일찌감치 신청해 두었다.

SCO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비교해볼 수 있겠다. 나토는 가맹국 중 일국이 공격을 받으면 회원국 전체가 반격을 가하는 것을 의무로 삼고 있다. 냉전형 동맹을 제도화하여 지금까지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명실상부한 집단 안보 기구라고 하겠다. 반면 SCO는 합동 군사 훈련을 전개하되, 회원국들에 대한 통제가 느슨하고 유연한 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친목 단체'라고 폄하한다. 그러나 내 보기엔 꼭 그렇지만도 않다. 중국과 러시아를 축으로 유라시아의 통합을 이끌어가는 국제 기구라고 보는 것이 온당하다.

SCO의 전신은 '상하이 파이브(5)'였다. 1996년 설립되었다. 중국 서부 개발의 연장으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지역 경제권을 확대하는 것이 출범 취지였다. 실질적인 과제는 중앙아시아와 신장 위구르 자치구 사이에 이슬람 급진 세력의 왕래를 방지하는 '테러 대책'에 있었다.

변화의 계기는 북방에서 비롯되었다. 푸틴이 등장(2000년)했다. 2001년 러시아가 가입함으로써 상하이협력기구로 개명한 것이다. 이때부터 중-러가 협조하여 유라시아 대륙의 안정과 번영을 도모하고, 미국의 일극 체제를 허무는 과업을 추진해가기 시작했다. 양국이 누리고 있는 군사적 독립, '자주 국방'이 독자 행보의 밑천이었다.

중국과 세계의 관계를 전공으로 삼아온 역사학자로서는 SCO의 구성 방식이 특히 흥미롭다. 정식 가맹국 외에, 옵서버, 대화 파트너 등으로 준회원의 위계를 두고 있다. SCO 밖에 있는 나라들을 배제하고 적대하기보다는, 차등적 방식을 통하여 더 많은 유라시아 국가들을 점점 더 폭넓게 포섭해가고 있는 것이다.

분명 20세기형 동맹과는 일선을 긋는다. 오히려 왕년의 중화제국을 연상시킨다. 자국과의 친밀한 정도의 여부를 따져서 국가들을 분화하고 상이하게 대응했던 외교 방식과 흡사한 것이다. 학문적 용어를 빌자면 '차서(差序)'적 발상에 가깝다. 차서란 다른 문화를 포용해가는 중화 세계 특유의 기제를 일컫는다. 중원-번부-조공-호시-조약의 중층적 질서를 통하여 다양한 문명권을 아울러 갔던 것처럼, SCO 또한 '차서의 근대화'를 통하여 유라시아를 한층 크고 넓게 품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돌아보면 2005년 옵서버 자격을 부여한 나라는 인도와 파키스탄에 그치지 않았다. 이란과 아프가니스탄도 있었다. 미국이 한창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아프가니스탄과 미국이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이란까지도 장기적으로 포용해가는 전략을 세워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차서적 발상의 근대화를 곧 조공-책봉 체제의 부활로 곡해할 것은 없겠다.

오히려 중화 세계가 번영과 평화를 구가했던 태평성대의 저비용 고효율 방책으로서 곰곰이, 또 꼼꼼히 되새겨볼 일이다. 혹여 SCO가 차서적 원리를 새로운 시대와 환경에 맞추어 제도적으로 쇄신하고 갱신하고 있는 것이라면, 유심히 관찰하고 연구하는 편이 나라의 장래에도 득이 된다. 남북 분단을 해소해가는 뜻밖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

소련의 속국에서 벗어난 (외)몽골이 SCO에 옵서버로 참가한 것은 2004년이었다. 유럽연합 가입에 안달하던 터키가 SCO로 선회하여 대화 파트너가 된 것은 2012년이었다. 그리고 올해 우파 회의에서는 벨라루스가 새 옵서버로 참가했으며,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캄보디아, 네팔은 처음으로 대화 파트너가 되었다.

나아가 '아랍의 봄' 이후를 모색하고 있는 북아프리카의 맹주 이집트까지도 SCO의 대화 파트너가 될 것을 희망하고 있다. 이로써 SCO는 갈수록 유라시아 대륙 전역의 국가들을 각기 다른 형태로 수용해가는 꼴을 갖추어 가고 있는 것이다.

여태 별다른 호응이 없는 국가로는 조지아(그루지야)와 방글라데시, 부탄 정도를 꼽을 수 있다. 조지아는 최근에도 나토의 군사 훈련이 진행되었을 만큼 미국이 깊숙하게 개입하고 있는 '현대화된 속국'이다. 방글라데시와 부탄은 인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남아시아의 국가들이다. 아무래도 인도의 입김이 미친다. 인도가 SCO의 정식 회원이 된 이상, 변화의 가능성이 적지 않다.

올해 SCO 정상 회의는 시리아 내전과 팔레스타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20세기 영국과 미국이 분탕질을 쳤던 이래 혼란과 혼돈이 가시지 않고 있는 중동 문제까지 SCO가 능동적으로 개입할 조짐이다. 역사의 추세와 대국을 보노라면 장기적으로는 이스라엘마저도 국가의 존속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SCO와 등을 질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하여 '유라시아 견문'을 일단락 지을 2018년이면 SCO는 대략 유라시아의 7할, 35억 인구를 아우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단순한 군사 안보 기구에 그치지 않고, 범 유라시아의 '대동 세계', '조화 세계'를 선도해가는 문명 간 통합 기구로 진화하는 것이다.

▲ SCO(상하이협력기구). 옵서버 국가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이 동시에 회원국이 되면서 그 영역이 더욱더 넓어졌다. ⓒicf.org

천하의 지정학

지난 200년 세계를 지배했던 영국과 미국은 국가들과 세력들 간의 대립을 부추겨 어부지리를 얻는 것을 기본 전략으로 삼았다.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아프가니스탄, 이란/이라크/사우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수니파/시아파, 그루지야와 우크라이나 등 도처에서 나누고 쪼개어 갈등과 분열을 조장했다.

한반도의 분단 또한 그 일환이었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패권을 확립하고 재생산하는 핵심 기제였다. 이러한 패권 전략을 학문적으로 정립한 것이 소위 '지정학(Geo-Politics)'이다. 그리고 이 지정학은 '거대한 체스판'이라는 유명한 비유처럼, 유라시아를 분할하고 분단하는 것을 핵심 교리로 삼는다. 해양 제국 영국과 그 후계 패권국 미국(및 영미의 대리인 일본)이 대륙을 포위하고 지배하기 위한 학문의 이름을 빈 책략이었다.

그 지정학에 빗대어 보더라도 앞으로의 세계는 미국보다는 중국이 주도하지 싶다. 영미 패권 아래서 의도적으로 저지되거나 방치되었던 유라시아 연결망이 신 실크로드라는 이름 아래 차근차근, 착착,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갈래는 여럿이다. 초원길, 바다길, 하늘길 등 육해공은 물론이요 온라인/디지털 연결망까지 겹겹이다. 100년만의 지정학적 대반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동시 가입을 견인해낸 것처럼 SCO가 추진하고 있는 세계 경영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영미의 그것과는 정반대이다. 모으고, 잇고, 엮고, 통합하고 융합한다. 이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대립,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갈등,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의 분열 또한 SCO의 틀 아래서 해결을 도모하게 될 공산이 크다. SCO가 유라시아 전체를 아울러 평화와 안정의 공공재를 제공하는 큼지막한 우산을 제공하는 것이다.

흡사 왕년의 '天下(천하)'에 방불하다. 옛 사람들은 국가 또한 私(사)에 그친다고 여겼다. 20세기처럼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충성을 맹세하지 않았다. 서세동점에 직면한 계몽기 지식인들은 '민족의식'과 '국가 의식'이 없음을 개탄했다. 민족주의를 고취한다며 고대사까지 창작하기 일쑤였다. 실상은 없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고 단련했던 것이다.

민족과 국가를 넘어서는 공공 의식으로 무장해 있었던 것이다. 내 나라만을 위해서는 내 나라의 태평 또한 이루기 어려움을 터득하고 숙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로지 천하만이 公(공)이라며 누누이 가르치고 다그쳤던 것이다. 만시지탄이로되 天下爲公(천하위공)을 교시로 삼았던, 천하의 지정학을 공부할 때가 되었다. 너무 늦지는 말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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