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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 "학교가 진리의 전당? 헛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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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국 "학교가 진리의 전당? 헛소리!"

[민들레] 교육·① 시대의 스승

'교사'라는 직업이 언제부턴가 직업화·획일화됐다는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들을 생각하고 교육을 고민하며 묵묵히 배움의 자리를 찾아가는 참된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 지식보다 지혜로 세상을 여는 채현국 선생 말씀을 통해 교육과 교사의 길을 되짚어본다.


"건달은 키울 수 있는 게 아니에요"


- 선생님, 점점 유명해지시는 거 같습니다. 요즘 인터뷰나 강연도 많이 하시고 책도 두 권이나 나왔던데요. 유명해지는 게 부담스럽지 않으신지요?

'유명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고 하죠.(웃음) <경남도민일보>에서 일하는 김주완이란 친구가 인터뷰해서 책을 내자고 하길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러자'고 했어요. 도민들 몇천 명이 십시일반 기금을 만들어서 내는 신문이거든요. 그래도 길에서 사람들이 알아보고 인사하면 '이거 큰일 났네' 싶어요.

- 어렵게 자리를 마련했는데, 오늘은 교육을 주제로 몇 가지 여쭙고 싶습니다. 사회도 교육도 온통 정답 찾기에 빠진 게 아닌가 싶은데요.

사실은 정답이 없는 게 교육인데 말이에요. 정답 의식에서 벗어나는 게 민주적인 인간이 되는 길이라고 봐요. 우리 지식 중에 전제 없는 지식이 없는데, 그 전제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면서 끊임없이 지식이 뒤집어지고 있잖소. 무수한 해답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서로 타협할 수밖에 없단 말이지. '정답(正答)'이라는 단어 자체가 군사독재 이후에 이렇게 흔하게 쓰이기 시작했어요. 예전에는 '해답(解答)'이라고 했지, 정답이라는 말 잘 안 썼습니다. 일제시대에도 정답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안 썼어요.

- 정답 찾기에 능숙한 사람만 교사가 될 수 있게 만든 것도 우리 교육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성직자라고 표현되지 않는 성직자가 교사라는 걸 인정하고 얘기해 봅시다. 성직자를 성적 보고 뽑아서 되겠습니까? 성적은 누구든 좋을 수 있는 거지요. 인류가 이 정도로 진화한 걸 보면, 사실 지적 능력 차이는 그다지 없다고 봅니다. 저는 어쨌거나 선생이라는 길을 택한 사람은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는 무지하거나. 교사는 결국 성직자 같은 건데 이걸 모르거나 알고도 용감하게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걸 존중해줘야 하지만, 일깨워주기도 해야 해요. 어떻게 모두가 성직자로 살아요. 우리가 어디까지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가 문제죠….

- 지금은 교사가 월급도 많고 안정된 직업이니까 하려는 사람들이 많은 게 현실입니다.

직업으로 교사하려는 사람들은 결국 불행해집니다. 교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 그걸 왜 해요? 다른 일도 얼마든지 잘할 수 있는데. 교사는 직업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사실 좋은 게 아닙니다. 권력이 교사를 존경하게 만드는 거죠. 자기 체제 유지를 위해서. 근대학교가 진리의 전당이라는 건 헛소리고, 자기 체제 유지의 방편이라는 걸 민들레 같은 잡지가 까밝혀야 해요. 계속 그런 얘기를 해주셔야죠.

▲ 효암재단 이사장 채현국 선생님. ⓒ민들레
- 모범생 출신 교사들이 모범생을 길러 내는 게 학교의 맹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나마 문화운동이 사회 속에서 건달을 길러 내는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건달은 그대로 살아가는 거지 키워낼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건달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겁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장보살(地藏菩薩)' 정도 돼야 건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우리말 '건달(乾達)'에는 '양반사회 규약을 지키지 않는 놈'이라는 뜻이 있는 걸 보면, 요즘 말로 '아나키스트(anarchist)' 정도 되겠지요.

- '건달'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신선하네요.

세상을 삐딱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이 진짜 건달이요.

"알고 싶게 만드는 게 선생이지"

- 지난 번에 뵈었을 때 '사람이 갖춰야 할 윤리는 어렸을 때 엄마만이 가르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게 인상적이었어요. 아버지나 교사는 가르칠 수 없는 걸까요?

엄마 외에 다른 사람이 가르친 건 진정 그 아이의 것이 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도 힘듭니다. 학교에서도 해야 하지만, 잘해야 위선이 될 뿐입니다. 나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윤리가 되어야지, 남을 위한 윤리? 그건 배부른 소리라고 봐요. 나이 들어서는 그게 되지만, 어릴 때는 그게 안 되거든. 엄마가 가르쳐도 될까 말까 해요. 인간은 사회적 동물, 위선적 동물입니다.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게 안 되면 죽습니다. 그 씨알은 엄마가 가르쳐야 합니다. 윤리적 '판단력'이 아니라 윤리적 '감정'을 가르쳐야 해요. 남들이 사는 길, 그게 내가 사는 길이라는 것. 엄마에 대한 신뢰감이 그걸 도와줄 겁니다. 감정의 영역이에요. 운동 코치가 선수의 역량을 가질 필요 없듯이 엄마 자신이 꼭 윤리적일 필요는 없어요. 자식이 제대로 살 수 있도록 그걸 가르쳐야 한다는 겁니다.

- 세월호 참사 이후에 부모나 교사들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어른 말을 듣지 말라고 해야 하나, 네가 알아서 가려들으라고 해야 하나' 고민이 많습니다.

애들한테 '가만히 있으라'고 가르쳐서 많이 죽었다고 말하는 것도 개수작이에요. 우리가 이런 엄청난 충격 앞에서 멀쩡하게 생각하는 훈련부터가 안 돼 있는 사람들이에요.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채로 들어봤자 무효요. 말을 가려서 듣는 게 아니라, 양심과 본능이 조화를 잘 이루는 사람으로 자라야 할 것 아닙니까. 양심이란 함께 살 줄 아는 그릇인데, 그게 본능처럼 사람한테 다 있어요. 인간이라면 벌써 슬픔이 있고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이 있고 양심이 있다는 소리인데, 야비하게 이기적인 걸 선택할 건지 양심을 선택할 건지는 가봐야 알아요. 죽음의 공포 앞에서 누구나 더 살아남을 수 있는 쪽으로 가는 거지. 원래 본능이 크고 양심이 적고 그렇지 않습니까? 혼자 다 먹고 미움을 사든지 나눠 먹든지, 알아서 하라고 기회를 자꾸 줘야죠. 본능 앞에서 길이 갈린다는 이 사실부터 현명히 볼 줄 알면 돼요. 원망, 핑계, 남 탓하려는 심보부터 갖지 않게 만들어야지. 사람을 자연스럽게 키우고, 책임져야 하는 만큼 (책임지게 하고) 존중해주면 돼요.

어린아이가 순진한 이유는 악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악의마저도 순진하기 때문이에요. 나는 내가 얼마나 못된 아이였는지 잊어버릴 수가 없는데, 다른 애들도 비슷했다고 봅니다. 좀 퍼진 아이라 해도 늦자란 애들일 뿐이에요. 나중에 다 슬슬 거쳐요. 아이들 속에는 그렇게 부정적인 것과 긍정적인 것이 늘 있는데, 살아가기 위해서 부정적인 것을 줄이고 긍정적인 것을 키워가는 겁니다.

- 지난번에 효암고 기숙사를 둘러봤는데, 밤늦은 시간인데도 학생들이 도서실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더라고요.

애들이 학교에서 밤늦게 공부하는데, 나는 딱 질색이에요. '정말 열심히 하려면 밤 9시에 자서 새벽 3시에 깨라. 그거 못하는 놈들이 뭘 공부를 열심히 해.' 공부는 거기에 자기를 집중시키면 저절로 되는 거지. 내가 어려서 한글을 못 읽을 때 모르는 글자밖에 없어도 그 부분을 건너뛰지 않았어요. 집중력이, 글자를 몰라서 생겼다는 걸 어느 부모가 믿겠습니까. 모르니까 답답해도 모르는 걸 건너뛰지 않고 뚫어져라 봐요. 아버지는 얘가 글을 아는 줄 알았는데 모르니까 기가 막혀 하고, 받침 읽을 줄 모른다고 해도 안 믿었어요. 사람의 집중력이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 선생이나 부모들이 알아야 해요. 자발적으로 알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열쇠인데…. 그렇게 받침 글자를 읽게 되자, 누나들 책 다 읽고 그랬어요. 사람이 얼마나 엉뚱한 데서 집중력이 생겨나는가에 대해 마음을 열어야 해요. 사람이 지나가는 엉뚱한 말에도 '탁' 깨우침이 오는 건데, 무엇이 집중력이 되고 무엇이 깨우침이 되는지 규정짓는 건 바보짓이에요. 아무도 모르는 거예요. 사람마다 장점, 단점보다는 장점을 '탁' 느끼게 해주는 거기에서 용기가 생기고 공부가 신나게 되는 거죠.

- 선생님은 어린 시절에 신나게 공부하셨습니까?

호기심이 어마어마해서 엉뚱한 짓 하다가 매번 혼나는 아이였어요. 껌이 되는지 안 되는지 궁금해서 고무신을 뜯어서 씹어볼 정도였다니까. 해보니까 결국 껌이 되더라고. 하하! 어렸을 때 시골로 이사했는데, 장난감이 없으니까 자꾸 뭘 궁리하고 찾아보게 된단 말이오. 개구리도 찔러보고, 벌레도 잡아보고. 인간은 그렇게 부족한 게 있고 결핍이 있어야 연구심이 생기는 법이에요.

- 호기심을 살려주는 것이 교육이라는 말씀이죠?

장난감 많이 사주면 궁리를 안 해요. 장난감이 없으면 호기심을 가져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인생을 살아갈까 궁리하는 게 선생이에요. 알고 싶게 만드는 게 선생이지, 아는 걸 가르치는 게 선생이 아니에요. 그건 교수, 박사지.

기백과 배짱, 그리고 뻔뻔함

- '지식은 권력에 이용당하기 마련'이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그래도 이용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식 자체가 좋은 거라는 말은 어리석은 소리예요. 불이나 물처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거지. '대학에 가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된다', 이런 말도 야비한 소리요. 서울대 나온 사람 중에서 야비하지 않은 사람? 0.1퍼센트(%)도 안 될 거요. 그렇게 되려면 끊임없는 자기성찰이 필요해요. 내가 '야비하게 살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세상 살면서 조금만 용기가 있으면 보이죠. 인간이 똑똑해질수록 얼마나 이기적이 될 수밖에 없는지. 본능과 양심의 그 균형이, 젊을수록 어릴수록 깨지기 쉬워요. 자기합리화 없으면 인간은 못 사는걸. 내가 자기합리화 때문에 살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해야죠. 위선이 쉬워요. 그렇기 때문에 늘 자기합리화인지 아닌지 봐야 해요.

- 요즘 부모들이 불안 증세가 심합니다. 대한민국의 아이들이, 열에 여덟 명은 대학에 가는데, 대학을 나와도 별 볼 일 없는 세상이 되다 보니 다들 좌절하고, 청년들도 갈수록 기백을 잃어가는 것 같습니다. 취직자리 알아보고 거기 맞춰 스펙 쌓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아요.

그것도 참…. 대학 4년을 즐겁게 다니는 것만 해도 얼마나 별 볼 일입니까. 그리고 먹고 사는 생각하는 거 좋아요. 그게 인생이에요. 뭘 하기 위해서 밥 먹는 게 아니라, 밥 먹는 거 자체가 인생이에요. 나부터가 마치 밥이나 먹는 인생은 망한, 시시한 인생인 것처럼 잘못 배웠죠. 진짜 인생은 밥 먹는 거 자체가 기백(幾百)이에요. 배짱 없으면 그 생각 못해요.

ⓒ민들레

- 선생님은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기백이 있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내가 가진 건 기백이라기보다 '뻔뻔함'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배짱이라 하면 이상하게 찬양조가 되니까 뻔뻔하다고 해요. 그걸로 충분해요.

- '기백, 배짱, 뻔뻔'이란 말이 다 같은 뜻인 거죠.

그래요. 그러니까 애들한테는 기백이란 말을 써야죠. 청년들은 배짱이라고 해야 하고, 늙은이들한테는 뻔뻔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아요.

- 어른들은 곧잘 '꿈을 가져라' 이런 말을 하는데, 이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젊은이들 꿈 없는 걸 가지고 안타까워들 하는데, 그 자체가 기성세대의 폭력성을 띠고 있어요. 좀 더 여유 있게 봐야 한다고 봅니다. 청년들에게 너무 앞질러 가르쳐주지 마시고, 기다려주십시오. 청년들이 어떻게 깨우치고 실천하느냐의 문제인데, 많은 대안학교가 그럭저럭 괜찮게 가고 있어요. 그런 게 희망입니다.

- 대안학교라 해도 부모들이 불안해하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갈수록 더 그런 것 같아요.

부모들이 자본주의에 짓눌려서 달리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습니까. 하루 이틀 사이에 이렇게 이기적으로 변한 게 아니라, 긴 시간 교묘하게 훈련이 된 건데…. 대학에 안 간다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해도 부모는 불안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내가 야비해서 대학에 갔다고 생각해요. 똑똑해서 갔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불한당 하려고 간 거요.

- 효암고 학생들한테도 이런 말씀 하십니까?

너무 좋아할까봐 아이들한테는 안 하지. 하지만 선생들한테는 해요. 학교에서 대학 잘 가게 만들어 놓으면 제가 훼방을 놓습니다. 요즘 부모들이 잘못된 꿈을 자식에게 심어주고 있지요. 사실은 부모도 그 희생자입니다. 노인들이 잘못한 거요. 부끄럽고 미안합니다. 하도 나쁜 가르침을 많이 받아서 그렇습니다.

- 중2 딸아이가 있는 어떤 엄마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셨어요. 그동안은 학교 빠지더라도 여행 자주 가고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보여주려고 제주 강정이나 세월호 문제에도 관심을 두고 같이 다녔는데, 점점 친구들과 성적에서 차이가 너무 나니까 학원에 보내야 할지 고민이 된답니다.

여태까지 아주 잘하셨어요. 간단합니다. 그 아이가 영어 못하고 수학 못해서 안 좋은 학교밖에 갈 수 없는 걸 확실히 알려주십시오. '그런 학교나 갈 사람으로 살래? 아니면 바른 정신 가진 사람으로 살래?' 하고. 어머니로서는 불안하지만, 요즘 세상에 대학은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 대학가는 건 제가 보기에 바보짓입니다. 돈벌이하러 댕기면서 세상 배우는 게 훨씬 나아요. 직장 대학이 훨씬 낫다 싶어요. 공부하고 싶으면, 방송통신대학도 있어요. 실제로는 머리 나쁜 사람은 없고 집중 안 하는 사람만 있어요. 요즘 사람들은 다 머리가 너무 좋아서 탈이에요. 속도가 너무 빨라서. 게다가 요즘은 TV만 봐도 엄청나게 영악해지게 돼 있습니다. 딸내미 그렇게 키우셔서 고맙습니다. 나중에 어머니한테 정말 고마워할 거예요.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커야 남을 깔아뭉개지 않는 인간이 됩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격월간 교육전문지 <민들레>와 함께 대안적인 삶과 교육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민들레>는 1999년 창간 이래, '스스로 서서 서로를 살리는 교육'을 구현하고자 출판 및 교육 연구 활동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은 곧 학교 교육'이라는 통념을 깨고,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장하는 '다양한 배움'의 길을 열고자 애쓰고 있습니다.(☞ 바로가기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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