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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상상하는, 가장 아름다운 초원과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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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당신이 상상하는, 가장 아름다운 초원과 호수

7월 몽골학교 <훕스굴 특집>

당신이 상상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원과 호수를 체험하고 싶다면 올 여름, 몽골학교(교장 이평래, 한국외대 교수, 몽골학박사)가 떠나는 몽골 탐사에 참가하십시오. 이번 탐사지는 몽골만의 일망무제의 대초원과 호수, 그리고 대자원을 가로지르는 강, 삼림이 어우러진 가장 몽골다운 풍요로운 땅입니다.

이번 탐사는 7월 24일(금)부터 7월 31일(금)까지 8일간 진행되며 국내 최고의 몽골 전문가 이평래 교장선생님이 직접 인솔하고 해설해주십니다.

▲끝도 없이 광활한 대초원. 순결하고 너른 마음을 선사한다. Ⓒ몽골학교

7월 답사지에 대해 교장선생님의 설명을 들어봅니다.

올 여름 몽골 탐사는 <훕스굴 특집>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청정한 호수 훕스굴을 찾아갑니다. 훕스굴은 지금부터 200만∼500만 년 전에 생긴 세계 17대 고대 호수 중 하나입니다. 길이가 무려 136킬로미터이고, 그 폭도 36.5킬로미터이며 가장 깊은 곳이 267미터에 달하는 초대형 호수입니다.

크기만이 아닙니다. 훕스굴은 물 표면의 해발고도가 1,645미터에 이르는 고원의 호수입니다. 호수 사방에는 해발 2,000∼4,000미터급 높은 산이 포진하고, 그 산들에는 낙엽송, 자작나무 등 광활한 침엽수림인 타이가 지대 특유의 수목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그 숲 사이사이에는 이름 모를 들꽃이 지천에 널려 있습니다.

훕스굴과 그 주변은 몽골 생태의 보고입니다. 시베리아의 타이가 숲과 몽골의 초원이 만나는 이곳은 시베리아와 초원에 사는 거의 모든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곰, 여우, 늑대를 비롯하여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들짐승이 훕스굴 주변의 산악지대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특히 야생순록과 야생 사슴은 훕스굴의 명물 중 명물입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훕스굴은 몽골에서도 가장 북쪽에 위치한 오지 중의 오지입니다. 그래서 몽골 전역을 통틀어 전통 민속과 무속이 가장 온전히 보존되어 있는 곳입니다. 매년 여름이면 세계 여러 나라의 관광객과 민속학자들과 언어학자 그리고 샤머니즘 연구자들이 훕스굴을 찾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훕스굴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몽골의 소수민족 차탕(Tsaatan)입니다. ‘차 보가’라 일컬어지는 순록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이른바 순록 유목민입니다. 현대화의 물결 속에 인구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지만, 차탕은 여전히 자신들의 전통과 고유문화를 간직하고 전통 방식대로 타이가 숲을 지키고 있습니다.

훕스굴은 또한 사라져 가는 몽골 무속의 보고입니다. 차탕 무당과 함께 훕스굴 지역의 또 다른 소수집단인 다르하드족 무당이 단연 유명합니다. 이들은 현대화의 거친 물결 속에서 현대사회에 적응하면서 재난을 막고 복을 부르는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자신들의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청정 호수와 타이가 숲과 들꽃이 흐드러진 초원을 생활무대로 우리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차탕 및 다르하드족 무당과의 만남은 여러분들에게 인간의 실존에 대한 근원적 성찰을 요구할 것입니다.

▲환상 속에 빠지다, 청정 호수 훕스굴 Ⓒaltairaeal.snu.ac.kr

이런 점에서 이번 답사에서는 예전의 나를 반추하고, 현재의 나를 성찰하고, 미래의 나를 설계하는 시간을 최대로 잡았습니다.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어둠에 휩싸인 훕스굴 바다와 장엄한 타이가 숲을 결에 두고, 소중한 너무한 소중한 인생을 이야기기하고, 삶보다 더 귀한 죽음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갈 길을 그려보는 ‘토론의 향연’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훕스굴의 가치만큼 훕스굴 가는 길은 험난합니다. 차로 10시간 이상 달리고, 또 100킬로미터를 들어가야 훕스굴 바다를 만날 수 있습니다. 비행기를 이용하면 잠깐이지만 이번에는 차로 가기로 했습니다. 작년 말 도로가 포장되어 달리기 쉽고, 훕스굴 가는 길에 있는 몽골의 대초원과 문화유산과 유목민들의 삶을 체험하기 위해서입니다.

먼저 기원전 3세기 몽골초원에서 처음으로 국가를 세운 흉노족이 남긴 유적인 노용 올(일명 노인-울라)에 들를 것입니다. 20세기 초에 발굴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발굴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적인 유적입니다. 당신은 아마 이를 보고 몽골 전역이 문화유산의 보고임을 눈으로 확인할 것입니다.

이어 에르데네트라는 도시와 그 주변을 둘러볼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구리광산이 있는 광산 도시입니다. 그곳은 마치 러시아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아 묘한 분위기를 자극합니다. 사회주의 시절 러시아인들이 광산 개발에 적극 참여하면서 건설된 도시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몽골의 자연유산인 ‘오란토고’라는 4개의 사화산(死火山) 지역을 방문하고, 몽골의 유수한 라마교 사원인 ‘아마르바야스갈랑트 사원’과 9세기에 몽골 초원에 거대한 유목국가를 건국했던 위구르족이 세운 도성(都城)인 바이발릭 유적을 거쳐 우리의 목적지인 훕스굴로 향합니다.

그리고 오는 길에는 몽골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자 청동기시대 복합문화유산(사슴돌과 대형 적석무덤군락)인 오시깅 어버르를 방문할 것입니다. 전 일정은 제가 동행할 것이고, 모든 일정에서 제가 배운 것을 아는 대로 친절하게 설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 밤, 매일 일정 중 몽골의 자연과 역사와 문화 및 종교에 대한 해설 겸 강의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당신의, 훕스굴에서 Ⓒaltairaeal.snu.ac.kr

이번 몽골 탐사의 주요 방문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노용 올(노인-울라)] 기원 전후 시기 약 200여 기에 달하는 흉노족의 귀족 무덤. 세계적인 문화유산으로 20세기 처음 발굴 당시 각국 전문가들로부터 20세기 최대의 고고학 연구성과로 평가받았다. 이때 발굴된 유물은 대부분 러시아의 에르미타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그 일부가 몽골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에르데네트 시와 구리 광산] 몽골 제2의 도시로 광산 개발을 위해 몽골에 온 러시아 사람들의 거주지 용도로 건설된 도시다. 그 주변의 엄청난 크기의 광산은 몽골 광산의 규모를 실감할 수 있다.

[아마르바야스갈랑트] 몽골의 3대 불교사원의 하나로 전형적인 라마불교 건축양식으로 조영되었다. 고즈넉한 풍경 속의 시골 마을 몽골 사원의 전형을 보여준다.

[오란토고]
4개의 사화산의 하나. 모든 산 정상에는 분화구와 호수가 있다. 주변의 초원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바이발릭 성터] 8∼9세기 몽골 초원에서 대규모 유목국가를 건설한 위구르족의 최초의 도성. 유목민들이 처음으로 정착도성을 건설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오시깅 어버르] 청동기시대 복합문화유산으로, 몸통에 사슴이 아름답게 표현된 이른바 ‘사슴돌’ 14기가 줄지어 서 있으며 주변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적석 무덤이 줄지어 있다.

[울란바타르]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몽골의 대표적인 박물관 세 곳과 몽골 불교의 본산인 간단사, 울란바타르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1910년대 몽골에서 활동한 독립지사의 유적에 대한 관람과 강의가 있다. 역사박물관, 자연사박물관, 예술박물관, 간단사(불교사원), 자이상톨고이(전망대), 이태준기념관, 전통공연 등.

당신은 몽골 탐사 내내 대초원과 대호수에 감탄하고, 그 초원과 호수를 따라 흐르는 거대한 강물에 감사하고, 지천에 널린 들꽃에 취하고, 기암괴석에 반하고, 별빛 쏟아지는 밤하늘에 홀려 찌든 일상에서 벗어나 참마음의 평안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한국 최고의 몽골 전문가인 이평래 교장선생님이 동행, 깊이 있고도 재미있는 <길 위의 명강의>를 해주실 것입니다.

▲금빛 햇살에 평화롭게 자라는 빛나는 대지 Ⓒ몽골학교

몽골 탐사 상세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초원과 호수> 몽골 탐사로 ⓒ몽골학교

이평래 교장선생님은 몽골 과학아카데미 역사연구소에서 역사학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중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몽골 연구자로 몽골사뿐 아니라 신화와 종교 등 몽골인들의 정신문화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실크로드의 삶과 종교> <중국학자들의 몽골사 인식> <세계사교과서 바로잡기> <중국학자들의 소수민족 역서서술> <동북아 곰 신화와 중화주의 신화론 비판> <아시아의 죽음 문화-인도에서 몽골까지> 등을 공동 저술하고, <몽골 민간 신화> <몽골의 종교> <중앙유라시아의 역사> <몽골 신화학의 형상> <몽골의 역사> 등을 우리말로 번역했으며, 몽골사, 몽골 문화, 종교와 신화에 관한 30여 편의 논문을 썼습니다.

이번 탐사는 7월 24일(금)부터 7월 31일(금)까지 8일간 진행되며 이평래 교장선생님이 인솔하고, 몽골 전문여행사인 (주)세븐데이투어가 준비·진행합니다. 참가비는 참가자 20명 이상 249만원, 25명 이상 243만원입니다(모든 단체여행경비 포함). 항공 예약 관계로 가급적 6월 12일까지 참가신청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세한 문의와 참가신청은 (주)세븐데이투어 전화 02-3210-0507∼8번 팩스 02-720-5628번 7daytravel@naver.com 최서영 담당자에게 해주십시오.

[학습자료]

몽골 시인 S.돌람은 몽골 초원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맑고 푸른 하늘

맑고 푸르게 하는 자 이 하늘에서, 우리는
지혜와 밝은 지성을 배운다.
끝도 없이 광활한 이 초원에서, 우리는
순결하고 넓은 마음을 얻는다.
멈춤 없이 앞으로 물결쳐 흐르는 강물에서, 우리는
목적한 곳에 이르는 믿음을 생각한다.
수직으로 연이은 회색빛 산, 산에서 우리는
용기와 인내의 이야기를 듣는다.
분홍빛 작약꽃 그에게서, 우리는
가슴을 성스럽게 하는 사랑을 발견한다.
즐겁고 명랑한 여름, 우리는
뜨거운 청춘의 생명력을 느낀다.
누렇게 변한 초원의 가을에서
고통을 맛보는 자의 인고를 생각한다.
균열되는 소리를 낼 듯한 겨울의 희디흰 성에에서, 우리는
백발의 생애를 읽는다.
풍요롭고 드넓은 고향에서, 우리는
삶을 영위하는 법칙을 깨닫는다.

▲그대 태어난, 아름다운 몽골 땅 Ⓒ몽골학교

몽골 시인 D.나착고르지는 몽골을 이렇게 들려줍니다.

나 태어난 고향

헨티, 항가이, 사얀 같은 높고 아름다운 산맥들
북방을 꾸며주는 숲, 산줄기, 산들
메넹, 샤르가, 노밍 같은 광막한 고비들
남방을 상징하는 모래 언덕의 바다들
이는 내가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헤를렝, 오농, 톨 같은 맑고 깨끗한 강들
모든 이에게 약이 되는 시내와 샘과 광천(鑛泉)들
훕스굴, 오브스, 보이르 같은 깊고 푸른 호수들
사람과 가축이 먹는 웅덩이, 늪의 물들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오르홍, 셀렝게, 후후이 같은 빼어나게 아름다운 강들
광산 자원의 보고인 수많은 산과 고개들
옛 기념비들, 유적들, 도시와 성터들
먼 곳으로 갈 수 있는 넓고 단단한 길들,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멀리서 번쩍이는 눈 덮힌 고산준령들
푸른 하늘 활짝 갠 거친 들과 소금 벌들
먼 모습이 보이는 우뚝 솟은 만년설 봉우리들
사람의 마음을 펴주는 드넓은 초원들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항가이 고비 사이의 드넓은 할하(*외몽골) 땅
유년시절부터 종횡무진 말달리던 곳
온갖 짐승을 몰이 사냥하던 기나긴 산등성이들
준마를 타고 경주하던 분지며 아름다운 협곡들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바람 끝에 흔들리는 싱싱하고 부드러운 푸새
탁 트인 초원에는 번쩍거리는 갖가지 신기루
의적들 모여들던 험준한 땅이 있는 곳
제사가 이어져온 수미산 같이 큰 오보(*돌무지 신앙대상물)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부드러운 풀이 자라는 아름다운 초장이 있는 곳
이리 저리 누빌 수 있는 평평하고 아름다운 땅
사시사철 마음대로 유목할 수 있는 목영지와
오곡이 자랄 토양을 가진 흙이 있는 곳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요람 같은 아름다운 산에 조상들을 모신 땅
자자손손 자식을 낳아 기르는 곳
5종 가축이 초원 가득 풀을 뜯는 목영지
몽골 사람 우리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대지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한겨울 살을 에는 추위에 눈과 얼음으로 덮여
수정빛 은빛으로 반짝이며 빛나는 대지
한여름 좋은 시절에 꽃과 잎이 피어나고
철새들 멀리서 날아와 끼룩대는 대지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알타이 흥안령 사이의 풍요로운 처녀지
내 아버지 어머니가 머무른 영원한 운명의 고향
금빛 햇살에 평화롭게 자리잡은 대지
은색 달빛에 영원히 빛나는 곳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흉노(匈奴)이래 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살던 곳
푸른 몽골 시대(몽골 제국시대)에 힘차게 일어선 곳
년년(年年)에 몸에 배고 세세(歲歲)에 정이든 고향
새 몽골의 붉은 기가 뒤덮인 곳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우리가 나고 자란 겨레의 사랑하는 고향
호시탐탐하는 적이 오면 당장 차서 쫓아버린다.
복된 이 땅에 혁명의 국가를 흥륭(興隆)케 하여
후세의 새 세상 위해 막중한 공을 세우리.
이는 나 태어난 고향, 아름다운 몽골 땅

▲훕스굴 가는 길, 순록을 만나다. Ⓒaltairaeal.snu.ac.kr

[몽골의 자연과 유목생활] 몽골은 초원과 사막의 나라다. 초원은 황량하면서도 포근하다. 몽골 초원의 풀은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자라는 잡초와 근본이 다르다. 실처럼 가늘고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가 난다. 향내 나는 풀 사이로 이름 모를 들꽃이 피어 있다.
고비사막도 흔히 생각하듯 황막한 불모지만은 아니다. 그런 곳은 고비의 중심부 극히 일부 지역에 한정된다. 대부분은 모래와 자갈, 덤불과 관목, 짧은 풀이 자라는 사막성 초원이다.
초원 및 고비와 한 짝을 이루는 것이 몽골의 하늘이다. 몽골은 세계적으로도 맑은 날이 많은 나라에 속한다. 그래서 몽골 하늘은 유난히 푸르다. 그 아래 떠 있는 구름도 유별나게 하얗다.
이것이 몽골 자연환경의 전형이다. 적어도 유목 목축이 행해지는 몽골국에서는 변함없이 이런 장면이 연출된다. 밤이면 초원 대신 하늘이 축복을 내린다. 푸른 하늘은 별천지로 변하고, 그 틈새로 은하수가 강물 되어 흐른다.
몽골인들은 지난 2천년 동안 이 아름다운 대지에서 유목을 하며 살아왔다. 유목은 이동하는 목축이다. 유목민은 적어도 1년에 네 차례 이상 거주지를 옮긴다. 소‧말‧양‧염소‧낙타 5종 가축을 이끌고 처자식을 거느리고 생활도구를 챙기고 천막을 뜯어 아예 사는 곳을 옮긴다. 그렇다고 아무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을 유목민이라고 하지 않는다. 유목민은 봄집, 여름집, 가을집, 겨울집이 따로 있고, 그 사이를 정기적이고 규칙적으로 옮겨 다닌다.
유목민이 거처를 옮기는 것은 방랑벽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유목민이라 해도 거처를 옮기는 것은 번거롭다. 풀과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수량이 적어 물이 부족하고 목초지 상태도 보기보다는 좋지 않다. 재미 삼아 구경하는 자와 그곳을 삶의 터전 삼아 살아가는 사람은 초원을 보는 눈이 다르다. 확실히 초원은 보는 자의 눈을 즐겁게 한다. 그러나 봄이면 모래 폭풍이 몰아치고, 여름이면 불볕더위가 내리쬐고, 겨울이면 온 대지를 얼게 하는 매서운 추위와 폭설이 엄습한다. 그것도 매년 때만 되면 반복된다.
그만큼 유목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고달프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당연히 아무나 유목민이 될 수 없다. 어려서 몸으로 익히고, 근면하며, 강인인 체력과 인내와 끈기를 갖추고, 해당 지역의 자연과 지형과 기후를 꿰뚫고 있는 사람만이 유목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강인하고 근면해도 하늘이 돕지 않으면 유목은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사소한 재해에도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유목이다. 이런 점에서 유목민들의 삶은 전적으로 자연에 의존하고 있다.
자연의 심술에 대하여 유목민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화난 자연을 두려워하고, 그 주인에게 노여움을 풀도록 기도하는 것이 고작이다. 몽골인들이 찾아낸 첫 번째 기도 대상이 머리 위의 하늘과 밭 아래의 대지다. 이렇게 하여 하늘 숭배와 대지 숭배 신앙이 생겨났다. 몽골 초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오보는 대지 숭배의 뚜렷한 흔적이다. 불교가 들어온 이후로는 또 부처님께 빌었다. 이와 더불어 오보에 제사를 올리는 것도, 하늘에 천제(天際)를 지내는 것도 무당을 대신하여 스님이 떠맡았다.
하늘과 대지에 제사를 지내고 나서는 한데 모여 기예를 겨루고 한 해의 수고를 얘기하고 먹고 마셨다. 이렇게 하여 몽골 축제 나담이 생겨났다. 나담은 몽골인들의 삶의 여정이 여과 없이 투영된 놀이문화다. 나담에서는 ‘남자의 3종경기’가 벌어진다. 이는 몽골인의 전통 생업과 관련이 있다. 수렵과 목축을 하면서 살았던 몽골인의 삶에서 기마와 궁술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자 삶의 조건이었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대대로 기마와 궁술을 연마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으며, 종교의례 등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평소에 익힌 기예를 선보이는 시합을 벌였다.
기마와 궁술은 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놀이문화로 정착되었다. 씨름도 마찬가지다. 녹녹치 않은 대지와 혹독한 자연환경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시련이었다. 여기서는 강인한 정신력과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아가기 위한 사냥과 전쟁에서도 튼튼한 체력이 요구되었다. 몽골인들이 수시로 씨름판을 벌여 평소에 닦은 실력을 겨루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씨름도 삶에 필요한 힘과 기예를 연마하는 과정에서 놀이문화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몽골의 자연환경] 몽골 고원은 북에서 남으로 갈수록 건조하고 자연환경도 다르다. 고원 북부에는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이 이어진다. 그 반대편 남쪽에는 황량한 고비 지대가, 그리고 그 중간에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의 대초원이 펼쳐져 있다.
초원은 얼핏 보면 황량하고 삭막하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몽골 초원은 포근하기 그지없다. 몽골의 풀은 우리나라 산과 들, 빈터에서 자라는 잡초와 근본이 다르다. 실처럼 가늘고 부드럽고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풀이다. 향내 나는 풀 사이로 이름 모를 들꽃이 듬성듬성 피어 있다.
고비도 흔히 생각하듯 황막한 불모지가 아니다. 그런 사막은 고비의 중심부 극히 일부 지역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모래와 자갈, 덤불과 관목, 짧은 풀이 자라는 사막성 초원, 이른바 반사막이다. 몽골국(외몽고)을 예로 들면 사막 고비의 비율은 전국토의 약 15%, 사막성 초원 비율은 대략 27%정도다. 이것만 보아도 고비가 결코 버려진 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초원 및 고비와 한 짝을 이루는 것이 몽골의 하늘이다. 몽골은 세계적으로도 맑은 날이 많고 일조량이 높은 나라에 속한다. 연평균 250일 이상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다고 하니 꽤나 밝은 땅이다. 그래서 그런지 몽골 하늘은 유난히 푸르다. 그 아래에 떠 있는 구름도 유별나게 하얗다. 푸른 하늘과 연녹색 풀밭은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하늘은 새하얀 구름을 걸쳐 입고, 초원은 들꽃 장식을 달고 있으며, 고비 곳곳에는 원색의 모래 언덕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저 멀리 한 무리 양떼가 풀을 뜯고, 건너편 냇가의 흰 게르(천막)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을 보노라면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느낌이다.
이것이 몽골 자연환경의 전형이다. 적어도 유목 목축이 행해지는 몽골국에서는 변함없이 이런 장면이 연출된다. 밤이면 초원 대신 하늘이 축복을 내린다. 푸른 하늘은 이내 별천지로 변하고, 그 사이로 은하수가 강물이 되어 흐른다.

[몽골의 사람들] 몽골 인구는 작년 말로 겨우 300만이 넘었다. 이 중 수도 울란바토르에 100만이 산다. 나머지 도시를 합하면 유목민보다 도시민이 많다. 도시민은 물론 우리와 똑같이 아파트에 살고 우리처럼 회사원, 공무원, 사업가로 살아간다. 부문별 국민총생산 비율 역시 유목 부문보다 기타 부문이 높다.
따라서 몽골은 분명히 목축국가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몽골하면 초원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유목 목축을 떠올리고, 그것이 몽골의 본 모습이라고 믿고 있다. 직업별 인구 구성 및 산업구조와 관계없이 몽골인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소똥 연기 피어오르는 유목민 천막에서 태어났다, 나는/거친 들판 초원을 나의 요람이라 여긴다/…맑고 고운 고향땅을 뿌듯하게 바라볼 때…환희의 눈물이 나의 두 눈을 가린다…”
1945년에 발표된 <나는 몽골인>이라는 시의 일부다. 1945년은 몽골사회주의가 일로 번창하던 시기다. 목축보다 공업, 천막보다 아파트가 돋보이던 시절이다. 그러나 시인은 거친 들판과 초원을 자신의 요람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고향땅을 바라보면서 감격에 겨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한 적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몽골인의 본연의 모습이다. 거친 곳에서 태어났지만 착하고 부드러우며, 무뚝뚝한 외모와 달리 섬세하고 자상한 사람이 몽골 사람이다. 문명에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적 인간상. 몽골인들도 이 이미지를 결코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시인은 오히려 짐승을 키우며 자연의 섭리에 따라 살아가는 유목민의 삶에 무한한 긍지를 갖고 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도 몽골인을 몽골인답게 하는 몽골인의 정체성은 초원과 유목이라는 뜻이다.

[몽골의 유목생활] 유목은 계절에 따라 주기적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목축을 말한다. 몽골인들이 언제부터 유목을 시작했는가에 대해서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엇갈린다. 그러나 서기전 3세기 말 몽골 땅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흉노(匈奴)시대부터는 이곳 사람들이 유목으로 생계를 꾸려간 것만은 확실하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흉노전’에는 “흉노는 물과 풀을 따라 이동하고 성곽과 일정한 거처가 없고 농사를 짓지 않았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사계절 이동하며 지내는 유목민의 생활을 말한다. 그 후 2천년 동안 유목은 몽골인들의 가장 중요한 생업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그리하여 현재도 몽골국 경제활동 인구의 절반인 40만 명 이상이 3천여만 마리의 가축을 키우며 살고 있다.
조금 전 언급했듯이 유목은 이동목축이다. 그래서 유목민은 적어도 1년에 네 차례 이상 거주지를 옮긴다. 소‧말‧양‧염소‧낙타 5종 가축을 이끌고 처자식을 거느리고 생활도구를 챙기고 천막을 뜯어 이사를 한다. 그렇다고 아무렇게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을 유목민이라고 하지 않는다. 유목민은 봄집, 여름집, 가을집, 겨울집이 따로 있고, 그 사이를 정기적이고 규칙적으로 옮겨 다닌다.
유목민이 거처를 옮기는 것은 방랑벽 때문이 아니다. 유목민이라 해도 거처를 옮기는 것은 번거롭다. <사기>에 쓰인 대로 좋은 풀과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강수량이 적어 물이 부족하고 목초지 상태도 그다지 좋지 않다. 유라시아 초원 중 최고라는 몽골 초원도 풀이 무성한 초원보다 흙이 드러나 있는 곳이 더 많다.
그만큼 유목민의 삶이 고달프다는 증거다. 이 점은 현재도 큰 변화가 없다. 그래서 아무나 유목민이 될 수 없다. 어려서 몸으로 익히고, 근면하고, 강인인 체력과 인내와 끈기를 갖추고, 해당 지역의 자연과 지형과 기후를 꿰뚫고 있는 사람만이 유목민으로 살아갈 수 있다.

[몽골의 축제] 몽골어로 축제를 ‘나담’이라 한다. 원뜻은 ‘놀이’라는 말이다. 나담에서는 ‘남자의 3종경기’가 벌어진다. 이는 몽골인의 전통 생업과 관련이 있다. 수렵과 목축을 하면서 살았던 몽골인의 삶에서 기마와 궁술은 가장 중요한 생산수단이자 삶의 조건이었다. 그래서 몽골인들은 대대로 기마와 궁술을 연마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으며, 종교의례 등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면 평소에 익힌 기예를 선보이는 시합을 벌였다.
기마와 궁술은 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기술을 연마하는 과정에서 놀이문화로 정착되었다. 씨름도 마찬가지다. 거친 대지와 혹독한 자연환경은 그 자체로 인간에게 시련이었다. 여기서는 강인한 정신력과 힘 있는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아가기 위한 사냥과 전쟁에서도 튼튼한 체력이 요구되었다. 몽골인들이 수시로 씨름판을 벌여 평소에 닦은 실력을 겨루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씨름도 삶에 필요한 힘과 기예를 연마하는 과정에서 놀이문화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나담은 몽골인의 삶이 여과 없이 투영된 놀이문화다. 그래서 몽골인은 어디에 있든 나담을 기억하고 여름이 오면 어떤 식으로든 나담을 즐긴다. 외국에 있는 사람들도 나담을 지내기 위하여 귀국하고 도시 사람들도 나담에 맞추어 고향을 찾는다. 돈벌이를 위하여 한국에서 일하는 노동자들(2만~2만5천 명)도 사회단체의 주선으로 해마다 약식 나담을 한다.
나담은 거국적으로, 유제품이 풍부한 여름철(7월 11~12일)에 열린다. 겨울 명절인 ‘차간 사르’(음력 정월)가 정적이라면 나담은 동적이고 활력이 넘친다.
무엇보다 따듯하여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든다. 겨울이 길고 추운 몽골에서 6, 7, 8월은 말 그대로 황금의 계절이다. 여름에는 대자연의 선물인 유제품도 풍부하다. 유목민은 유목민대로 행복하고 도시민은 도시민대로 행복한 시절이 이때다. 겨우 내내 발길이 끊긴 유목민 천막에 외지인이 찾아오는 것도 여름이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이면 으레 외국인이 찾아온다.

[몽골의 종교] 몽골은 불교 국가다. 인구의 90%가 불교 신자이거나 친불교적이다. 불교는 물론 외래종교다. 그것도 상당히 후대에 몽골 땅에 전해졌다. 몽골인들이 자발적으로 불교를 믿기 시작한 것은 13세기 후기부터다. 그러나 이때 전해진 불교는 대중 속에 뿌리내리지 못했다. 대다수 사람들은 전통신앙을 숭배하고, 불교를 적극 장려하고 옹호한 궁정에서도 무당이 활동했다.
불교가 몽골에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것은 16세기 말기부터다. 그 후 불과 1~2세기만에 불교는 몽골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종교로 자리 잡았다. 초창기 불교 교단은 몽골의 전통신앙에 대하여 강경한 입장을 견지했다. 전통신앙에 대한 탄압은 주로 샤머니즘에 집중되었다. 개종 초기 몽골 불교사는 두 종교간 투쟁과 대립으로 점철되었다. 그러나 탄압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무당들의 저항은 여전했으니 불교는 탄압과 아울러 통합이라는 온건 정책을 병행했다. 즉 불교는 전통 신앙의 특정 요소를 수용하고 이를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는 한편, 전통신앙을 불교 체계로 통합시키는 데 힘을 쏟았다.
반면에 무당들은 불교 요소를 수용하여 자신을 위장하는 방법으로 살길을 찾았다. 이 과정에서 승려는 무당의 역할을 수행하고, 무당은 승복으로 갈아입고 화해를 모색했다. 그 결과 18세기를 전후하여 몽골 무속에 등장하는 신들이 불교의 만신전으로 흡수되고, 민간신앙은 대부분 불교식으로 정비되었다. 그래서 18세기 이후 몽골의 종교 지도를 보면, 불교가 중심을 차지하고, 불교화한 샤머니즘이 그것과 나란히 또는 그 뒤를 쫓아가고, 불교식으로 조정된 민간신앙이 기층을 이루는데, 그 상황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 몽골국 초원 곳곳에 산재하는 신앙대상인 오보와 신목(神木)에서 펄럭이는 푸른 비단천(하닥), 바이칼호 올혼 섬의 무당 바위에 놓인 헤진 불교 경문은 불교와 전통신앙의 통합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또한 오보제를 주제하며 오보의 신을 불러내는 승려는 먼 옛날 무당을 연상케 한다.

[몽골의 유적] 몽골 땅에 처음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70여만 년 전이다. 몽골에는 이들 선사인과 그들의 후손들이 남긴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과장하면 몽골은 국토 전체가 문화유산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로 유적과 유물이 풍부하다.
이 땅에 처음으로 나라를 세운 사람들은 흉노(기원전 3세기)라 불리는 집단이다. 그 뒤 선비(기원 2~4세기), 유연(4~6세기), 돌궐(6~8세기), 위구르(8~9세기), 거란(10~12세기) 등 어디서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이 번갈아 가면서 몽골 땅에 나라를 세우고 지배자로 군림했다. 이 사람들은 물론 몽골족은 아니다. 몽골족은 원래 중국 동북방에 있는 흑룡강 상류 지역에서 살았다. 그러다가 9~10세기경 지금의 몽골초원으로 이주하고 13세기 초기부터 이 땅의 주인이 되었다.
따라서 몽골초원에는 선사시대에서 몽골 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인간 집단이 남긴 다양한 유적이 남아 있다. 암각화도 그 중 하나다. 여러 시기에 걸친 암각화가 몽골 전역에 산재하지만, 서부 지역에 특히 집중 분포한다. 서기전 10세기 전후 또는 이보다 약간 앞선 시기의 대형 적석총도 몽골의 대표적 선사유적이다. 적석총 주변에는 대개 사슴 문양이 그려진 사각 돌기둥, 즉 녹석(鹿石)이 단독 또는 복수(10~20개)로 서 있다.
역사시대 유적으로는 무덤과 분묘 주변의 구조물을 들 수 있다. 무덤은 그 구조나, 크기, 형태를 통하여 해당 시기 사회 구조를 추측할 수 있고, 무덤 주변의 구조물을 통하여 그 시대의 의복, 무기, 일용품 등을 재현할 수 있다. 사진 자료에 보이는 돌궐 시대 비문과 그 앞의 석렬(石列)은 무덤의 부속물이다. 원래는 주변에 담장이 둘러쳐 있고 무덤의 주인인 훈촐로[石人]가 서 있다. 다만 이번에 전시된 훈촐로는 다른 구조물이 없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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