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제11차 기후변화당사국 총회(COP11)가 열렸다. 당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국가의 수장들이 참석해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위한 선진국들의 적극적인 감축 행동을 촉구했다. 그것이 나의 첫 기후변화당사국 총회의 경험이다. 비록 미국이 교토의정서에 비준하지 않았고, 중국과 인도가 새로운 온실가스 다배출 국가로 부상하면서 새로운 갈등이 빚어지던 시점이었지만, 그래도 유엔기후변화기본협약(UNFCCC)은 유용하고 활용 가능한 체제로 보였다.
하지만 이후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선진국들은 교토의정서에서 합의된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교토의정서 만료 후인 Post-2012(2013~2020년)에 대한 합의도 제때 제대로 도출하지 못했다. 결국 교토의정서는 ‘전 지구적 참여와 합의를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미국과 일본, 호주 등 주요 국가들의 참여 없이 연장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마지노선인 2015년 파리총회(COP21)를 1년 앞두고 있다. 2020년 이후 전 세계가 참여하는 새로운 기후변화대응체제를 논의 할 시간이 우리에게는 많지 않다. 하지만 페루 리마에서 개최된 20차 기후변화당사국총회장은 희망보다 절망의 기운이 감돌고 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윤성규 환경부 장관이 희망의 메시지를 피력했음에도, 협상 2주차 고위급 회의와 연설이 진행중인 현재의 분위기다. 슈퍼태풍 하구핏이 필리핀에만 불어 닥친 것이 아니다.
진정한 대안은 아래로부터 나온다
교토의정서가 선진국들의 배출 감축량과 목표를 설정한 하향식(Top-Down) 방식이었다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신기후변화대응체제(Pst-2020)는 각국이 스스로 결정하는 자발적 기여(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INDCs)를 제출하는 방식이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각자의 상황에 맞게 감축목표를 목표를 세운다는 의미에서 상향식(Bottom-Up) 방식이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예상되는 각 국의 감축목표치가 터무니없이 낮아 기후변화의 재앙을 막을 수 없다는 데 있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유엔 체제 안에서 더 많은 국가와 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는 민중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교토의정서가 선진국들로 하여금 그들의 역사적 책임을 인정하고 수치화된 명확한 감축목표를 설정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선진국의 감축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시장 기반의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기후 식민주의’라는 새로운 착취 시스템을 가져왔다.
일례로 현재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산림전용 및 황폐화 방지 프로그램(REDD+)은 단순하게 보면 개도국과 저개발국가가 숲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 보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숲에 가격을 매겨 판매하고 온실가스를 상쇄하는 시장 기반 시스템이다. 이러한 시장 기반 시스템은 탄소시장을 창출시킬 수는 있지만 기대한 만큼의 탄소감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숲과 조화로운 삶을 유지해 온 원주민들과 공동체들의 문화를 파괴하고, 단일 조림사업으로 인해 생태계를 새로운 위험에 빠트릴 가능성을 높인다.
이처럼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만들어진 시장 기반의 프로그램들이 부작용을 보이자, 세계 곳곳의 민중들은 다른 체제, 다른 목표 그리고 다른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2020년 이후의 새로운 기후변화체제가 단순히 수치화된 목표뿐 아니라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토의정서가 하향식 방식으로 결정되었다면, 2020년 이후의 새로운 기후변화대응체제는 노조, 농민, 여성,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민중의 목소리가 모여져 상향식으로 결정되어야 합니다.”
국제노총(ITUC)의 정책담당자인 아나벨라 로젬버그(Anabella Rosemberg)의 말이다. 진정한 상향식이란 각국이 ‘개별적으로’ 자발적 감축이라는 미명 하에 ‘집합적으로’ 노력하는 교토의정서에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아래로부터의 기후대응 역량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높아지는 민중의 목소리
기후변화총회장 안의 국가 간 협상이 파편적이고, 비밀스럽고, 지지부진한 반면 민중진영은 다시 힘을 모으고 있다. 그 중심에는 기후정의(climate justice)와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있다.
민중진영은 지금껏 저마다 다른 의미의 정의와 전환을 이야기해왔다. 예를 들어 환경진영에서는 100%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을 정의로운 전환으로 이야기해 왔지만 에너지산업 구조개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실업과 같은 노동의 문제에는 눈을 돌리지 않았다. 노동조합 또한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환이 장기적으로 맞는 방향이라고 말하지만, 노조의 핵심의제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올해는 적극적으로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을 맞추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국제노총은 성명을 통해 탈집중화된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을 적극 지지했고, 그린피스는 이들과 함께 정의로운 전환에 관한 공동 세션을 마련했다.
노동과 환경만 손을 잡은 것이 아니다. 정의로운 전환만큼이나 시각차가 컸던 것이 기후정의라는 개념이다. 시장 기반 체제를 반대하고, 남반부에 대한 북반부의 기후부채(climate debt)를 인정해야한다는 강한 입장에서부터 시장 기반을 무시할 수 없으며 더 많은 국가와 자본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실용주의 입장까지 모두 기후정의라는 단어를 각자의 입맛에 맞게 써왔다. 그러다보니 당장의 삶을 위협받는 원주민과 군소도서국가의 국민의 입장에서부터 온건한 환경단체와 구호단체의 입장까지, 이 모든 것들을 기후정의라는 바구니 안에 함께 담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웠다.
하지만 올해 7월과 11월에 베네수엘라에서 전 세계 시민사회진영이 개최한 행사(Social Pre-Cop)를 거치면서 그들의 목소리를 가능한 하나로 묶는 입장 문서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리마에서는 이 문서를 토대로 환경, 농민, 원주민, 노동자 등으로 파편화 되어있던 그룹의 의견을 더 정교하게 담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로써 서로 다른 기후정의에 대한 외침이 파리를 향해 하나로 모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실을 부정할 것인가? 미래를 부정할 것인가?
토드 스턴 미국 기후변화대사는 기후변화와 탄소의 핵심이 금융에 있다고 주장한다. 스턴 뿐 아니라 기후변화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시장체제를 활용해야한다는 경제학자들의 생각도 이와 비슷하다. 흔히 이들은 기후정의에 입각한 주장들은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뜬 구름 잡는 이야기로 치부한다. 어느 국가도, 어떤 기업도 보상 없이는 온실가스 감축 행동에 나설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 체제는 현실적 대안인가? 이미 많은 과학자들은 우리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가능하도로 하기 위한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의 5차 보고서에는 지구 평균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2℃ 이상 상승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2050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0~70%까지 감축해야하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은 약 30~50GtCO2eq/년 수준에서 유지해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른 미래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유엔기후변화총회를 앞두고 기후변화에 대한 양국 합의를 진행했다. 세계를 움직이는 G2가 기후변화를 위해 움직였다고들 해석하지만, 사실은 중국은 그들의 행동을 2030년까지 연장시킨 것이고, 미국은 가능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약속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2020년에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이 정점을 찍고 점차 줄어들 가능성은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이곳 협상장에서는 어떻게 정의롭게 기후변화를 막을 것인가 하는 이야기보다 누가 더 책임을 덜 질 것인가 하는 눈치게임이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점점 약화되고 있는 협상 내용에도 불구하고,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대기업들의 이윤이 줄어들 것을 우려하는 입김이 드센 상황이다.
과연 이들의 행동은 현실적인가? 누가 돈을 더 낼 것이고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합의만이 우리의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기후변화체제를 더욱 깊숙하게 시장으로 끌고 가고 나아가 화석연료 기업들의 로비에 눈감는 유엔 체제 안의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은 현실적이라는 이유로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부정하고 있다.
현재 리마에서는 협상을 위한 협상이 존재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도 그들의 협상놀음에 동조하는, 일종의 ‘기후협상 스톡홀름 신드롬’에 빠져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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