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총수 증인 채택 문제로 파행을 겪고 있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산재 은폐 문제에 대한 정부의 무사 안일한 대응이 구체적으로 제기되었다. 이는 세월호 참사로 안전한 사회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 있는 현실에서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하는 문제이다.
한국은 매년 2300여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OECD 국가 산재 사망 1위 국가이다. 그러나 전체 산업재해 발생률은 OECD 국가 평균 이하인 기이한 통계를 가진 국가이다. 이는 산업재해의 80% 이상이 은폐되고 있는 현실에 기초한다. 한국보다 산재 사망률이 낮은 독일만 하더라도 매년 100만 명이 산재인데, 한국은 매년 9만여 명만이 산재로 발표되는 것이다. 그러나 2007년 '국가 안전관리 전략 수립을 위한 직업안전 연구'에서는 288만 명, 2008년 서울대 의대 이진석 교수 연구 보고에서는 278만 5000명 등 각종 연구 보고에서는 산재의 실질 규모는 정부 통계의 13배에서 30배로 추정하고 있다.
산재은폐는 노동자에게 치명적이다. 직접 경험한 사례 중의 하나로 수년 전 경기도 건설 현장에서 한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국회의원을 포함한 진상조사단을 구성하여 약 2개월간 조사와 투쟁을 진행했다. 현장에서는 사고 직후 현장의 물청소를 하고, 보고도 늦게 하면서 개인 지병에 의한 돌연사로 몰고 갔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안전보건조치를 하지 않아 낙하물을 머리에 맞아 사망한 사고로 결국 산재로 인정되었다. 노동조합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당사자와 유족은 하루아침에 억울한 죽음으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현대중공업 현장에서는 사고 은폐를 위해 119가 아닌 사설 응급차량을 이용하거나, 개인 승용차로 옮기다가 응급처치를 하지 못하여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다. 사고 이후 은폐에 급급하다가 결국 노동자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산재 은폐가 감독도 적발도 되지 않는 가운데 이러한 억울한 죽음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산재 은폐 문제에 대해 "정부는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다"며 읍소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진실은 달랐다.
첫째, 매년 교통사고의 5배가 넘는 산재 사고가 건강보험으로 처리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권익위원회 '2013년 건강보험 환수현황'에서 자동차 보험은 9만 건에 불과한 반면, 산재보험은 44만 4천 건에 달했다. 자동차 보험의 5배에 달하는 산재보험이 건강보험으로 처리되고 있었던 것이다. 건강보험공단의 환수 현황도 제한된 자료에 근거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실질 규모는 더욱 클 것이다.
둘째는 노동부의 산재 은폐 적발 건수 중 사업장 감독을 통한 적발 건수는 10건 내외에 그친다는 것이다. 노동부의 산재 은폐 적발 건수의 절대적인 비중은 건강보험 공단에서 산재보험으로 판명되고 산재 은폐로 통보되어 조사를 의뢰한 경우이다.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의 진정이나 고발로 감독이나 조사가 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노동부가 산재 은폐를 위한 적발과 감독 사례는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정도이다.
셋째,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건강보험공단이나 119 구급대 등에서 산재 은폐로 노동부에 통보한 건수의 90%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경고 처분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이다.
사업장에서 119 구급대로 이송되는 경우는 중대 재해의 경우이다. 그러나 노동부는 산재 은폐에 대해 경고 처분을 남발했다. 또한, 2011년 산재 은폐에 대한 처벌은 벌금형에서 과태료로 전환했다. 당시 정부의 입장은 신속하고 실질적인 처벌을 하기 위해 전환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질적인 처리 결과는 큰 차이가 없다. 처벌의 수위만 낮춘 꼴이다. (2012년은 유성기업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등 2개 사업장이 190여 건을 차지함)
넷째, 산재 예방과 산재 은폐 방지를 위한 제도가 노동부의 경고 처분 남발로 무력화되었다. 건설업은 대표적인 산재 다발 업종으로 산재 예방을 위해 '공공 공사 입찰에 재해발생률'을 반영하도록 되어 있다. 2006년 건설 기업과 정부가 반영 비율 축소를 추진했고 노동계가 강력하게 반발하면서, 반영 비율을 조정하면서 산재 은폐 1건 당 감점제를 적용하는 강력한 조치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산재 은폐에 대한 노동부의 처분의 90% 이상이 경고 처분으로 그치면서, 제도는 휴짓조각에 처할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2008년부터 2013년 6월까지 산재 은폐로 감점을 받은 것은 79건에 그치고 있다. 사업주 단체 조사에서도 80%를 은폐한다는 보고가 수차례 나온 건설업 산재 은폐 현황이나, 노동부에 통보된 산재 은폐 적발 건수에 비하면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였던 셈이다.
독일이나 미국 워싱턴 주에서는 산업재해를 노동자나 사업주가 아닌 초기 진료 의사가 신고하는 '의사 신고제도'를 도입하여 산재 은폐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일본에서는 후생 노동성이 산재 은폐를 차단하기 위해 의료 기관, 사업자 단체, 노무사회, 지자체, 발주 기관 등 각종 기관을 통하여 산재 은폐 예방 사업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산재 은폐에 대해 대안이 없다며 감독을 방기하면서 중립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처럼 주장했던 정부의 대책은 사실상 허위였던 것이다. 오히려 지난 9월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소규모 사업장의 산재 은폐를 조장하는 개별 실적 요율제 확대를 강행했다. '손톱 밑 가시'라는 미명 하에 규제 완화를 재 강행하면서 입법 예고 5일 만에 전격적으로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세월호 참사와 이후 연속적으로 터진 각종 사고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안전지대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다. 살고 있는 아파트, 집 주변의 공장,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어린이집 모두가 각종 사고에 노출되어 있었다. 철도, 지하철, 버스 터미널 등 각종 대중교통은 내구연한도 지난 설비를 1인 혹은 무인으로 운영하면서 외주화된 날림 정비와 부실 점검 상태에서 운영되고 있었다. 각종 산업 단지는 노후화되어 있어,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였다. '규제 완화, 위험의 외주화, 비정규직 고용' 등 끝을 모르는 자본의 탐욕과 이를 구조적으로 보장하는 정부 정책으로 우리는 고도의 위험 사회에 던져졌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안전 대책의 주요 기조에는 안전 산업 육성 대책이 남발되고 있다. 안전이 또 다시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전락할 위험성이 높다.
몰론, 대형사고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지난 시기 수많은 사고가 은폐되어 왔으며, 사고에 대한 망각이 '안전지대 없는 한국 사회'를 불러왔다는 점이다. 이에 많은 안전 관련 전문가들은 '사고를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진정한 대책이 출발할 수 있다고 한다. 사고 자체가 드러나야 하고, 또한 사고의 원인도 철저히 가려져야 한다. 수많은 사고가 은폐되는 현실 문제를 도외시한 안전 대책은 통제 강화와 기업의 돈벌이 수단으로만 전락한다. 사고 은폐에 대한 대책은 최악의 안전 대책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이다.
※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기획·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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