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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피로감'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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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피로감'이 문제다

[주간 프레시안 뷰] 지지율은 중요치 않다

이제 곧 추석입니다. 추석을 전후로 정치권은 분주해집니다. 여론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기에 그러합니다. 명절은 가족과 친지들이 한데 모여 앉아 서로 간에 정치적 판단과 선택에 영향을 주는 말을 주고받는 때입니다. 명절 맞이를 위해 자신의 보유 자원을 헤아리고 소비 행위를 하면서 전반적인 경제 상황에 대한 체감도도 높아지는 때입니다. 뿐만 아니라, 추석은 새로운 시작보다는 노고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때입니다. 정치권이 명절, 특히 추석에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이 때문에 정치권은 비록 거짓일지언정, 혹은 거짓으로 끝날지언정 이런저런 말을 선보입니다. 가령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은 추석을 앞두고 '민생'을 내세우고 있고, 야당은 여당의 민생은 가짜 민생이라며 '안전'을 내걸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연 얼마나 많은 국민이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 그리고 야당의 말을 진심이라고 믿으며 실현되기를 기대할까요? 대부분의 국민들은 그저 또 한 번의 거짓이라 생각하지 않을까요?

거짓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정치에서는 그러합니다. 정치에서는 거짓과 사실의 경계가 모호할 뿐만 아니라, 거짓이 순기능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윈스턴 처칠은 "진실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에 '거짓말'이라는 경호원을 필요로 한다"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정치에서 거짓이 갖는 의미를 정확히 포착한 말입니다. 불편한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정치는 본질적으로 진위를 가려야만 하는 실천이 아닙니다. 진실을 규명해야만 하는 실천도 아닙니다. 진리를 수호하고 관철해야만 하는 실천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이 알고 믿고 따르는 생각만을 고집할 경우,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정치입니다. 나치즘과 스탈린주의의 폐해만 떠올려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반공주의와 박정희 시대의 개발독재는 어떻습니까. 민주화 이후 사회양극화의 시대에 들어서도, 집권의 경험마저 보유했으면서도, 여전히 독재와 반독재 구도를 고집하며 툭하면 반정부론 혹은 정부심판론을 내거는 야당의 '민주주의론'은 또 어떻습니까. 모두가 결국은 인권과 민생을 저버리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나요.

▲ 2013년 9월 23일 자 만평 '"박근혜 추석 민심', 바로 이것?" ⓒ프레시안(손문상)

정치는 인간과 인간과의 사이를, 개인과 개인의 사이를, 시민과 시민의 사이를 조화롭게 만들어야 하는 실천입니다. 이것이 생사여탈을 결정하는 힘, 즉 권력을 가장 지혜롭게 쓰는 방법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느 누구 하나가 다른 누구 하나를 배제하고 제거해야 합니다. 즉, 권력이 곧바로 폭력이 되어 버립니다. 권력을 폭력으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면 정말로 지혜로워야 합니다. 조화를 목표로 거짓과 진실을 잘 융합시켜야 합니다. 거짓과 진실을 한데 섞어 악과 타협하고 절충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때는 '진실'과 '진리'라는 이름을 단 생각이 그런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 다른 어떤 때는 진위 공방은 물론, '진실'과 '진리'라는 이름을 단 생각에서 비켜선 것이 그런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거짓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이지요. 다른 말로 하자면, 정치는 사리분별에 밝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4년 9월의 대한민국은 어떤가요? 무엇이 조화를, 공존을, 공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또 정치가 사리분별에 밝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요?

대한민국 정치권은 쓸데없는 거짓만 선보이고 있습니다. 한편은 민생을, 다른 한편은 안전을 기치로 내걸었음에도 그러합니다. 조화는커녕, 반목과 대립만 키우는 거짓에 매달려 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 시한으로 못 박았던 날이 벌써 여러 번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6월 국회 종료가 임박한 7월 16일, 재·보선 전날인 7월 29일,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전날인 8월 13일, 7월 국회가 끝나 가던 8월 17일, 분리국정감사 법안 처리 시한인 8월 25일이 그것입니다. 결국 다 거짓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거짓은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 그리고 주류 보수 언론의 주장입니다. 세월호 정국의 지속이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 말입니다. 세월호 정국이 조기에 마무리됐다고, 과연 경제 상황이 좋아졌을까요? '최경환 노믹스'가 일각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비판의 대상이 된 이유가 장기화된 세월호 정국 때문인가요? 소득주도 성장론이라기보다는 소비주도 성장론, 그것도 소비활성화를 위한 고용 및 소득 보장책도 분명치 않은 소비주도 성장론에 매달려 있기 때문 아닌가요? '민생'이라 이름 지어놓고선 대통령과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규제완화 정책의 입법 지연은 또 어떻습니까? 이 역시 세월호 정국 때문인가요? 세월호 참사 이후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이 무능과 무책임을 드러내면서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기 때문 아닌가요?

더 나아가 세월호 정국을 질질 끌고 있는 것은 실제로는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 아닌가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을 국가혁신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 말입니다. 눈물까지 흘리며 국민들에게 다짐했던 약속을 지키고 있지 않은, 그 모든 것을 거짓으로 만들어버린 박근혜 대통령 자신과 정부와 여당 말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라고 규정한, 희생자와 유가족 또 국가혁신을 바라는 국민을 조롱한 정치인과 일부 보수단체 회원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이 대목에선 그들을 그저 방치만 하고 있는 박 대통령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다시 떠올릴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 주류 보수 언론이 야당을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너무나 쉽사리 현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에 넘기며 심판론을 내세웠던 야당 말입니다.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 안전과 민생 문제를 연결시킨 대안을 만들어내지 못한 야당 말입니다. 유족들이 원하지도 않는 각종 특혜성 조치를 앞세워 이들을 보호하겠다고 했던 야당 말입니다. 유족과 상의도 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여당과 타협해버린 야당 말입니다. 그래서 결국 유족을 보호하는 호민관과 갈등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야당 말입니다. 여전히 장외투쟁이냐 장내투쟁이냐에 머물러 있는 강온파 간의 수준 낮은 갈등만 보여주고 있는 야당 말입니다. 자신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정권교체라는 목표의 분명한 설정이라는 것을, 정권교체 이후 국정을 이끌고 갈 경제와 사회를 민주화할 수 있는 이념과 정책과 대오의 형성이라는 것을, 그것에 걸맞지 않는 정치인들의 교체라는 것을 모르고 있는, 혹은 모른 척 하고 있는 야당 말입니다. 세월호 특별법을 넘어 세월호 모멘텀으로 나아가기 위한 어떠한 구상도 실천도 선보이고 있지 못한 야당 말입니다.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 그리고 주류 보수언론은 야당을 만만하게 보고 있을 것입니다. 실제 현 집권세력의 핵심부가 야당을 주요 변수로 고려치 않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니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축소, 변형시키고 유족들에 대한 모욕을 서슴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의 비인간적-비시민적 행태를 방관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야당이 조만간에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할 때,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은 앞으로도 당분간 불필요한 거짓, 조화와 공존과 공화를 가져오지 못하는 질 나쁜 거짓에 기댈 것으로 보입니다. 정권교체의 전망이 높아지고 있다는 신호가 없는 상황에서,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은 쉽사리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지만 추석에 즈음하여 내릴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정치의 기상도가 그러합니다.

다만, 지금은 무능한 야당을 발판으로 삼아 정국을 주도하고 있다 해도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민심'입니다. 민심을 중시해 민생을 내세우고 있다지만, 사실은 민심이 아니라, 단지 야당에 비해 우위에 서 있는 지지율에 의지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이와 관련해, 작년 추석 때 한 칼럼을 통해 했던 말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습니다(<경향신문> 2013년 9월 24일 자).


"민심은 수치로 나타나는 여론조사 결과와 꼭 같지 않다. 민심은 서로 신뢰하는 사람들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을 통해 만들어지는 집단적 심정 혹은 의사이다. 여론조사가 서로 알지 못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선호를 몇 개의 보기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해 결과를 추려내는 것과 다르다. 민심은 그간의 여러 현상을 복기하고 종합하며 여론조사 결과마저 -서로 신뢰하는 사람들 중 가장 그럴듯한 논변을 제시하는 누군가의 주도로- (재)해석하고 그것을 공유함으로써 만들어진다. 이 때문에 민심은 한 번 만들어지면 쉽사리 변화하지 않는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미 신뢰하는 사람의 말을 더욱 신뢰하는 사람들의 특성, 혹은 신뢰하는 사람들 간의 소통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민심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이와 같은 신뢰의 네트워크 효과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지지율이 야당에 비해, 전직 대통령에 비해 높다고 해도, 혹은 낮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여론조사로 드러나지 않는 집합적 의사와 의지, 즉 민심입니다. 만약 박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이 이를 살피지 않고, 질 나쁜 거짓 정치를 계속한다면, 야당이 아무리 무능하다 해도, 아무리 지지율이 안정적이라고 해도 '박근혜 피로감'이 올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안정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경험과 지혜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민생 공세를 펼치면서 오히려 세월호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더 심화시키고,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진짜 민생 개선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박근혜 피로감은 거부감으로, 저항감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은 ‘세월호 피로감’이 아니라 '박근혜 피로감'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추석 연휴 기간 쉬어 갑니다. 54호는 9월 18일 발행됩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는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만의 차별화된 고급 칼럼지입니다. <프레시안 뷰>는 한 주간의 이슈를 정치/경제/국제/생태/세월호 등으로 나눠 각 분야 전문 필진들의 칼럼을 담고 있습니다.

정치는 임경구 프레시안 기자 및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번갈아 담당하며, 경제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 국제는 박인규 프레시안 편집인이 맡고 있습니다. 생태와 세월호는 각각 하승수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과 김익한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원장이 격주로 진행합니다.

이 중 매주 한두 편의 칼럼을 공개하고자 합니다.

※ 창간 이후 조합원 및 후원회원 '프레시앙'만이 열람 가능했던 <주간 프레시안 뷰>는 앞으로 최신호를 제외한 각 호를 일반 독자도 내려받을 수 있습니다.(☞ <주간 프레시안 뷰> 내려받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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