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는 1998년 민주화 이후로 동남아에서 현재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이다. 세계에서 4번째로 인구가 많은 나라이며 그 인구의 88%는 무슬림이다. 인도네시아는 민주주의와 이슬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나라로서 지난 7월 9일 치뤄진 대통령 선거는 민주화 이후 세번째 대선으로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가 갈림길에 서게 된 아슬아슬한 선거이기도 하였다.
과연 인도네시아는 민주주의를 공고화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유권자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다행히도 인도네시아는 권위주의 세력으로부터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7월 22일 선거 관리 위원회에서 개혁을 주장하는 두번째 후보의 승리를 발표하였다. 두번째 후보의 승리에는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시민사회 조직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그 바탕이 되었다.
대통령 후보 기호 1번인 프라보워 수비안토 (Prabowo Subianto)는 수하르토 전 대통령 독재시기에 육군 전략사령부 사령관으로 승승장구 했던 인물로 독재자 수하르토의 전 사위이기도 하다. 1998년 수하르토 퇴위 시위가 한참일 당시 운동가들을 납치 학살 하고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을 대상으로 폭동을 일으킨 혐의도 받고 있다. 그러나 그 혐의에 대해 한번도 재판을 받은 적이 없다. 그 이후 요르단에 자진 망명을 하여 지내다가 인도네시아로 돌아와서 비지니스 타이쿤인 동생의 도움으로 정계에 도전을 한다. 이번 선거에서 자신이 창설한 대인도네시아운동당 (Gerindra)을 바탕으로 이슬람 정당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하여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다. 그의 캠페인은 포퓰리즘, 강경한 국수주의, 그리고 근본적 이슬람주의를 강조하면서 인도네시아 국민의 화합보다는 사회질서 유지를 핵심정책으로 내세웠다.
대통령 후보 기호 2번인 조코 위보보 (Joko Wibobo)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은 그를 조코위라 부른다). 조코위 신드롬을 일으키며 지난 4월 국회위원 선거에서는 인기가 주춤하던 인도네시아민주주의투쟁당 (PDI-P)을 최다 득표 당으로 만들었으며 그 여세를 몰아 인도네시아민주주의투쟁당을 중심으로 한 연합전선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였다. 원래 가구 사업을 하던 중산층 인물로서 정치와는 별로 관련이 없고 가난하고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2005년 그는 중부자바 소도시 솔로(Solo)의 시장으로 당선되면서 정치에 데뷔했다. 그 당시 빈곤층과 소통하는 정치인으로 솔로의 경제 개발, 사회복지, 그리고 부패 척결로 재선에 성공했으며 그의 인기는 나날이 올라갔다. 이를 바탕으로 2012년 자카르타 도지사 선거에서도 압도적으로 승리하였고 자카르타에서도 부패와 담합 정치를 척결하고, 자카르타 시민들을 대상으로 의료보험을 확대실시하며, 직접 빈민촌과 각종 시설등을 불시에 방문하는 방식으로 현실과 소통하는 정치를 하였다. 이번 선거에서 행정개혁, 의료 보험제도 및 복지 정책 확대, 인프라 개발과 교육발전, 그리고 지역 통합을 강조하면서 캠페인을 벌였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통상적으로 대통령이 되면 자신을 밀어주었던 정당들에게 주요 보직을 나누어주는 관례가 있다. 조코위는 이런 관례를 깨고 개개인의 검증된 능력에 따라 장관직을 맡기겠다고 약속했다.
독재정권과 무관한 서민 후보 승리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포퓰리즘, 배타적인 국수주의, 그리고 권위적인 리더인 프라보워 수비안토를 뽑을 것인가 아니면 화합과 소통의 리더십, 반부패 반담합을 대표하는 시민 정치인 중에서 말이다.
초기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프라보워 수비안토의 인기도는 조코위에 비해 그리 높지 않았다. 하지만 두달만에 이 두 후보는 막상막하의 경합을 벌이게 되고 여론조사 결과로는 과연 어떤 후보가 이길것인지 알수 없었다. 짧은 기간동안 프라보워 수비안토가 그의 인기를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돈봉투를 돌리는 등 금권 선거를 통해 인기를 확보하였고 미국의 전 부시 대통령 캠페인 전략가였던 롭 알렌(Rob Allyn)을 고용하여 인도네시아 선거에서는 흔하지 않던 블랙 캠페인을 하였다. 블랙 캠페인의 핵심은 조코위가 무슬림이 아니라 기독교인이라던가 인도네시아인이 아니고 조코위의 조상은 싱카포르에서 이민 온 중국인이라는 유언비어를 신문으로 제작하여 인도네시아 전역으로 보내기도 하였으며 조코위가 대통령이 된다면 무슬림들이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프라보워 수비안토는 선거의 불필요성을 강조하며 자신이 당선 된다면 선거를 폐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유권자 선호도 조사 결과를 보면 프라보워 수비안토를 지지하는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인도네시아는 '트가스’ (tegas)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트가스는 '결단력있는' 혹은 '강하다'는 의미로 '트가스'한 지도자가 아니면 대통령으로서 자질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군인 출신 정치인들의 지배에 익숙해진 권위주의 유산이 아닌가 싶다. 일반적으로 중산층 이상의 유권자들은 주로 프라보워 수비안토를 지지하고 빈곤층과 저소득층은 조코위를 지지하였으나 선거날이 다가올수록 이러한 구분이 애매모호해졌다. 프라보워 수비안토의 돈봉투 캠페인과 블랙 캠페인이 효과를 발휘하는 듯 했다. 아마도 선거가 7월 9일이 아니고 8월이었다면 프라보워 수비안토의 돈의 위력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조코위의 승리는 민주주의를 지키겠다는 시민조직들과 자원봉사자들의 힘으로 가능했다. 조코위를 공천한 당이 당내여론 분열로 대선 선거 지원을 조직적으로 해주지는 못했다. 조코위의 대중 인기도 때문에 후보로 내세우기는 했지만 인도네시아민주주의투쟁당 안에서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정당 구조 상 지역으로 내려갈수록 조직적이지 못한 면이 선거캠페인의 효율성을 떨어뜨렸다.
이에 반해 프라보워 수비안토는 돈의 위력으로 '자원 봉사자'들을 돈으로 사서 거리 캠페인을 하고 개인 비행기를 이용하여 기자들까지 한 비행기에 태워 하루에도 여러 지역을 순회하는 캠페인을 하였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조코위의 인기도는 점점 내려가고 있는 듯 했다. 하지만 시민사회조직들과 민주화 운동가들로 이루어진 자원봉사자들은 이대로 민주주의를 빼앗길수는 없다고 발로 뛰는 운동을 했다. 조코위 현수막과 전단을 사비를 들여 제조하고 배포하였다. 조코위를 지지하는 인도네시아 음악가들은 자카르타에 있는 붕카르노 경기장에서 조코위 지지 콘서트를 열기도 하였다. 이들은 조코위를 후보로 내세운 정당들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도 아니고 돈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순수하게 민주주의를 위해서 나선 사람들이었다. 이대로 가만히 앉아서 민주주의 후퇴를 바라 볼 수 없다는 신념으로 일어선 것이다. 이들의 도움없이는 조코위는 당선되지 못했을것이다.
이들의 노력으로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인도네시아 역사상 처음으로 권위주의 시대의 정치와 전혀 무관한 민주적이며 개혁적인 인물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조코위는 선거날 당선이 확실시 되면서 그의 승리를 기뻐하며 거리로 쏱아져 나온 지지자들에게 감사의 연설을 하였고 이제 인도네시아 민주주의 역사의 새 장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물론 조코위 혼자만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공고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려는 지도자가 그 최소 필수조건이다. 이제 인도네시아는 필수조건을 갖추었고 조코위가 시민의 힘을 바탕으로 어떻게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지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이제 지켜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 아시아에 속합니다. 따라서 한국의 이슈는 곧 아시아의 이슈이고 아시아의 이슈는 곧 한국의 이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아직도 멀게 느껴집니다. 매년 수많은 한국 사람들이 아시아를 여행하지만 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적 상황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낯설기만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아시아를 적극적으로 알고 재인식하는 과정은 우리들의 사고방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또한 아시아를 넘어서 국제 사회에서 아시아에 속한 한 국가로서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야 합니다.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 기반을 두고 참여연대 국제연대위원회는 2007년부터 <프레시안>과 함께 '아시아 생각'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이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 문화,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인권, 민주주의, 개발과 관련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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