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성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세대 간 정의'다. 현 세대에 풀지 못한 환경 문제를 다음 세대에 무책임하게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윤리적이며 실천적인 명령이다. 핵 발전과 관련해서는 핵폐기물이 대표적인 경우에 속한다.
우리에게 '방폐장(방사성 폐기물 처분장)'으로 잘 알려진 이 문제가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중저준위 폐기물을 다뤘다면 이제는 사용 후 핵연료인 고준위 폐기물을 다룬다는 게 일차적인 차이지만, 더불어 논의 방식에도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정부는 1983년부터 핵폐기물 처분 대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면도와 굴업도로 대표되는 '방폐장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임해 지역, 도서 지역, 폐광 지역, 농촌 지역에 방폐장 부지를 물색해왔다. 장기간 표류하는 핵폐기물 처분장(핵폐기장)을 확정하려면 주민들의 수용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낙후된 지역 개발과 경제적 보상을 핵폐기장과 연계시키는 전략을 적극 고려했다.
거듭 되는 실패 속에서 정부는 '일방적 부지 결정'과 '자발적 유치 신청' 방식을 병행했다. 하지만 어떤 제도적 절차를 도입했어도, 실제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적 갈등 자체가 '공론화' 기능을 수행했다. 2003년~2005년의 부안과 경주를 떠올려보자.
이에 비해 노무현 정부 집권 말기인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는 사전에 사회적 논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국가에너지위원회 산하의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 태스크포스(TF)' 팀이 구성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는 TF 팀의 활동이 마무리되었음에도, 공론화위원회의 공식 출범을 연기해 공론화의 부담을 무책임하게 차기 정부로 떠넘겨버렸다.
현재 박근혜 정부에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위원장 홍두승)는 회의, 여론조사, 타운홀미팅 등 여러 사업과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안을 들여다보면, 공론화가 공염불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결정된 중저준위 방폐장만 하더라도 아직 미해결 난제로 남아있는데, 더욱 위험천만한 고준위 방페장에 대한 공론화를 2년 만에 뚝딱 해치우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다. 하물며 위원회의 위상과 구성과 운영을 두고 벌어진 보다 본질적인 쟁점을 국민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지금처럼 위원회가 자신의 소임을 마무리하고서 나올 결과가 사회적 합의라는 목적에 얼마나 부합할까? 종국에 제2의 부안이나 제2의 경주가 반복될지 모른다.
중저준위 방폐장을 놓고 벌어진 지방 정부의 자율 신청이 지방 자치와 지역 사회 민주주의의 외피에 불과했다면, 주민 투표는 지방 자치와 지역 사회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킨 제도적 장치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2005년 당시 '경쟁적 주민 투표'는 경주와 군산 간의 지역주의적 대립 양상을 일으키는 정치적 동원 이데올로기로 작용했고, 이 지역들의 투표율과 찬성률을 높이는 데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주민 투표가 도입된 배경에는 좀 더 복잡한 의도가 숨어 있다. 노무현 정부의 '지역 혁신 체제'에는 '지역 경쟁 체제' 원리가 내재해 있었는데, 지방 정부로 하여금 국책 사업 유치에 더욱 집중하게 만들어 중앙 정부에 대한 지방 정부의 종속을 심화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국정 과제로 추진한 지역 균형 발전과 자방 자치를 강조한 것과 관련되는데, 핵폐기장 사업을 '지역 발전(균형발전)과 지방 자치를 위한 국책사 업'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는 것이다.
비록 부안에서는 실패했지만,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경쟁적 주민 투표 방식을 도입한 결과, 정부는 지역 주민의 동의와 민주적인 갈등 조정을 통해 핵폐기장 부지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사회 갈등 모델이자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지방 자치를 정착시키는 계기로 자평했다.
그러나 경주 방폐장의 의사 결정 과정과 결과는 핵폐기장의 갈등을 국지화해, 결국에는 지역 사회 민주주의를 축소시켜버렸다. 그렇게 보면, 부안의 핵폐기장 유치 실패가 경주의 유치 성공보다 생태 민주주의나 에너지 민주주의 측면에서 바람직하다는 평가가 타당할 것이다. 경제적 인센티브와 주민투표 등의 성공 요소가 역설적으로 실패 요소가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미 현실에 존재하는 핵폐기물을 어떻게든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핵발전소 부지 내에 있는 임시 저장의 포화 시점이 2025년이다. 달나라나 해외에 보낼 것이 아니라면, 임시 저장이든 별도의 공간에 (사실상 불가능한) 영구 처분 이전의 중간 저장이든, 국내 어딘가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엔 몇 가지 전제가 따른다. 폐기물을 재처리하지 않고, 단계적 탈핵 기조에서 현재 발생하는 사용 후 핵연료를 줄여나간다는 포괄적인 일괄 조건에 대한 (적어도 느슨한) 합의가 없을 경우에는 핵 발전 시스템의 정상화(?)를 용인하는 꼴이 된다. 또 임시 저장이든 중간 저장이든 핵을 품고 사는 지역과 그렇지 않는 지역 간의 갈등은 지금처럼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공론화위원회는 사용 후 핵연료라는 국가적 사안을 또 다른 밀양으로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런 상황이라면 '정당한 님비'에 '부당한 공권력'의 투입을 예고할 뿐이다.
세월호를 계기로 나타난 청와대의 반응이 국가 개조라면, 핵 발전 시스템과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 역시 개조의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사용 후 핵연료가 무엇인지 국민의 73%가 잘 모르는 상황에서 공론화 위원회는 진정한 공론화가 무엇인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사용 후 핵연료 공론화 TF 팀의 권고 보고서는 공론화의 기본원칙으로 민주성, 책임성, 도덕성, 진정성, 독립성, 숙의성, 회귀성, 투명성을 제시했다. 무엇이 부족한지 스스로 진단하고 개조할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뚜렷한 전망과 계획 없이 공론화위원회의 참여 여부에 오락가락했던 일부 환경 단체도 문제다. 늦게라도 다시 대응을 준비한다는 소식은 다행이지만, 공론화의 명분과 전략에 깊은 고민이 필요하겠다.
주민 투표와 마찬가지로 공론화 자체는 보편적인 긍정성을 갖는다. 하지만 외연과 달리 그 긍정성을 잘 살리려면 나름의 기준에 대한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공론화의 공(公)은 공(空)이 아니다.
최근 호주(오스트레일리아)에서 있었던 사례를 보자. 호주는 핵발전소를 운영하지 않아 사용 후 핵연료가 없지만, 의학과 산업 분야에서 중저준위 폐기물이 발생한다. 그런데 관련 방폐장 시설을 건설하려는 계획이 백지화되었다. 2012년에 개정된 관련 법은 "방사성 폐기물 관리 시설을 유치할 잠재적 부지는 자발적으로 지정되어야 하고, 관련 권한과 이해가 걸린 사람이나 단체가 지명에 동의해야 하는 것"을 조건으로 삼고 있다.
우리에겐 어떤 기준이 있을까? 판단할 기준이 없으면 성공과 실패, 다수와 소수,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다.
'초록發光'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으로 기획한 연재입니다.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는 이 연재를 통해서 한국 사회의 현재를 '초록의 시선'으로 읽으려 합니다.☞바로 가기 :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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