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习近平) 주석이 한국을 찾았다. 국빈 자격으로 방문한 만큼 정부도 이에 걸맞은 대응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언론도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 때를 능가할 정도로 연일 관련 뉴스를 쏟아내고 있다. 우리에게 중국이 얼마나 중요해졌는가를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정부 관계자나 전문가들의 의견,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해보면 이번 시진핑 주석의 방문에서는 크게 3가지 영역에 걸쳐 한중관계 발전을 위한 의제들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한중 FTA 체결 가속화를 중심으로 경제 분야에 있어서 양국 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방안들이 논의될 것이다. 또 정치외교 분야에서는 북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정착에 있어 한중 협력 방안이 논의될 것이며, 인문사회 분야에서도 양국 간의 교류 확대를 위한 다양한 논의들이 이뤄질 전망이다.
조급증 경계하고 북핵문제의 중국 의존 탈피해야
그런데 이번 시진핑 방문 기간 동안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들이 있다. 우선 조급증을 경계해야 한다. 시진핑의 방문은 분명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에서 기회임이 틀림없다. 혹자는 시진핑이 이번에 어떤 선물 보따리를 들고 올지 벌써부터 기대에 부풀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시진핑의 방문은 우리에게 기회이면서도 동시에 시련이다. FTA 체결이나 서해 불법어업 문제, 방공식별구역 중첩 문제, 이어도 관할권 문제 등 한중간에는 국가이익이 대립하는 문제도 적지 않은데, 이에 대해서는 냉철한 자세로 중국과 담판을 벌여야 한다.
걱정되는 것은 지금의 국내 정치 상황이다. 세월호 침몰사고로 인해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또 문창극 총리 후보 낙마를 비롯하여 계속되는 인사난(人事亂)으로 인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정운영 지지도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월드컵 대표팀도 현 정부를 도와주지 못했다. 당연히 정부와 집권 여당으로서는 지금의 난국을 타개할 뭔가가 필요한 상황이다. 미니 총선으로 불리는 국회의원 보궐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도 조급증을 더 유발할 수 있다. 섣부른 북풍 카드로 역풍을 맞은 경험이 있기에 이 또한 여의치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외교성과는 현 정부에게 있어 분명 매력적인 카드임이 분명하다. 시진핑 주석의 방한 기간 눈에 띌만한 외교성과를 만들어내고, 이로써 잃어버린 민심을 회복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음이 급하면 악수(惡手)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외교 분야에 있어 '장기적 안목' 접근이 강점인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자칫 우리 정부가 조급증에 걸려 악수를 두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다음으로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중국에 너무 의존하는 태도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는 시진핑 주석이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하는 것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과대 해석하는 경향도 보인다. 마치 중국이 북한과 한국 사이에서 한국을 선택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사고의 연장선에서 시진핑 주석이 이번 방중 기간 동안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강경한 메시지를 보여주길 바라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중국은 '북핵 반대'와 함께 '한반도 비핵화',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중국의 국가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중국에 '한국과 협력하여 북한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마치 중국이 우리에게 '중국과 미국 중에서 중국을 선택하라'고 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알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중미 사이에서 균형 잡힌 외교를 펼쳐야 하듯, 중국도 북한과 한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를 펼치는 것이 그들의 국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중국의 힘을 빌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보다는 우리가 주동적으로 나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북핵 문제 해결로 이어가는 것이다. 이러한 큰 그림을 잘못 그리게 되면 자칫 이번 시진핑 방한이 서로에게 실망과 불쾌함을 주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풀어야 할 난제들
한편, 이번 시진핑 주석의 방한에서 빠질 수 없는 화제는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한중의 협력일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에 대한 한중 양국의 공조는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일본의 우경화 이면에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라는 전략이 숨어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이 정한 마지노선을 넘지 않는다면 일본의 우경화는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전략과 상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는 이번 시진핑 방한을 계기로 다시 한 번 한중 역사 공조와 한미일 안보 협력이라는 사이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는 시련을 겪게 됐다. 과거 중국에서 왕조가 교체할 때마다 우리는 덩달아 큰 시련을 겪었지만 나름대로 슬기롭게 극복해 왔다. 원과 명 사이에서 고민하던 이인임(李仁任)이나 명과 청 사이에서 실리를 취했던 광해군이 그랬듯 말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슬기롭게 대응해야 할 운명에 처해있는 것이다.
시진핑 주석이 200여 명의 경제사절단을 대동하고 방문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이번 시진핑 방한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경제 분야에서의 한중 협력 모색이다. 이에 코트라(KOTRA)는 중국기업만을 대상으로 하는 투자유치 설명회를 개최하고, 대한상공회의소는 양국 450여 명의 재계 인사들이 참여하는 '한중비즈니스 포럼'을 개최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와는 달리 우리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사안이 있다. 중국이 설립을 추진 중인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대한 한국의 참여 여부가 이번 정상회담 의제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AIIB는 시진핑 주석이 2013년 10월에 처음 제안한 것으로 역내 국가들의 사회 인프라 시설 확충에 사용될 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중국은 이미 우리에게 AIIB 가입을 요청한 바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역시 'G2'다. 미국은 AIIB에서 중국이 다수의 지분을 차지한다는 이유로 역내 위상 강화를 위한 중국의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동맹국인 한국의 참여에 대해 반대의 뜻을 나타내 우리 정부의 입장을 난처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시진핑 방문은 우리에게 기회이면서도 시련이지만, 어찌 됐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가 G2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실감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는 더 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이다. G2시대에 걸맞은 체계적 국가전략 수립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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